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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그리고 우리말

김슬옹 교수, “세종과 들뢰즈의 언어관” 발표 주목받아

세계문자연구소, 세계문자심포지아 2014서

   
 
[그린경제/얼레빗=용소영, 김지영 기자]  세계문자연구소는 1024()부터 1026()까지 문자생태계, 100년 후를 읽는다라는 주제로 서울세종문화회관에서 국제학술대회를 열었다.  

둘째 날인 25일 김슬옹 교수(Washington Global University 한국학)세종과 들뢰즈의 언어관을 발표하며 크게 주목을 받았다. 전혀 다른 시기에 살았던 두 인물을 접속하여 두 인물이 이룩한 업적이나 성과를 새롭게 드러내는 독특한 발표여서인지 최다 청중이 몰려 이 논문에 대한 관심이 증폭됐다. 

김슬옹 교수는 이 발표에서 15세기 훈민정음이라는 소리문자를 창제한 세종의 언어관(문자관)20세기 최고의 철학자로 여겨지는 들뢰즈의 언어관을 비교함으로써 이들 언어관의 역사적 가치와 의미를 밝히면서 푸코의 예언대로 20세기는 들뢰즈의 것이 되었지만 21세기는 세종의 것이 될 것이라고 단언했다.  

아마도 들뢰즈(1925~1995)가 생전에 세종(1397~1450)을 알았거나 한글을 알았다면 그는 당장에 한국으로 달려오거나 한글과 세종을 익히는데 푹 빠져들었을 것이라고 다소 흥미로운 추론도 했다. 들뢰즈의 사유나 사유 방식에 딱 들어맞는 문자와 그 문자를 발명한 세종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 세계문자연구소 주최로 서울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세계문자심포지아 2014> 국제학술대회 모습

세종은 오랜 병마에 시달리다 54세에 운명했고 들뢰즈는 70세에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실제 들뢰즈가 세종과 한글을 알았는지 몰랐는지는 모른다고 한다. 김 교수는 세종이 직접 반포한 <훈민정음>(해례본)(1446)과 들뢰즈가 가타리와 공저한 <천 개의 고원자본주의의 분열증 2>을 비교하여 주로 공통된 언어관을 뽑아냈다. 

김교수는 랑그(동일성, 체계성) 중심의 근대적 언어관과 파롤(차이, 관계) 중심의 탈근대적 언어관을 모두 밝힌 소쉬르의 <일반언어학 강의>(1916)에서 융합적 언어관을 뽑아내고 이를 통합언어학으로 보는 관점에서 분석했다.  

소쉬르의 근대적 언어관을 더욱 발전시킨 이가 촘스키(1956)이고 탈근대적 언어관을 발전시킨 이가 들뢰즈(1980)이며 소쉬르(1916)에 앞서 근대적 언어관과 탈근대적 언어관을 철저하게 융합한 이가 세종(1446)이며 들뢰즈(1980)에 앞서 욕망과 생성의 언어관을 보여준 이도 세종(1446)이라는 것이다. 

   
▲ 소쉬르 언어학의 근대성과 탈근대성

   
▲ <훈민정음> 해례본의 구조

김교수는 세종의 언어관(문자관)을 실용주의 언어관, 민본주의 언어관, 자연주의 언어관, 과학주의 언어관으로 분석하고 들뢰즈의 언어관은 중층적 뿌리식 언어관, 역동적 맥락 언어관, 소수자(마이너리티) 중심 언어관, 생성적 욕망의 언어관으로 추출한 뒤 집중 비교를 했다. 

첫째, 세종과 들뢰즈 모두 보편적이면서도 획일적인 언어주의를 거부했다고 보았다. 세종은 보편적 중화주의에 절대 복종해야 하는 15세기에 우리식 천문 과학, 우리식 음악을 완성했고 이를 바탕으로 우리식 문자 창제에 성공했다고 보았다. 천문과 음악의 표준을 정하고 그것을 만백성에게 나눠 주는 것은 중국 황제의 특권이었지만 세종은 그런 시대적 절대 한계를 극복하고 마치 게릴라처럼 하나하나 중국과 다른 문화대국을 건설했다는 것이다 

   
▲ 훈민정음의 천문자연지문도

들뢰즈 역시 언어의 동질성 추구에 대한 비판과 이질성에 대한 문제설정을 보여준다. 모든 언어는 본질적으로 이질적인 것이 혼합된 것이다. 언술과 행위 사이의 관계는 동질성이 없다. 차이의 반복일 뿐이다.  

둘째, 세종과 들뢰즈는 언어는 욕망의 도구로 문자는 그 욕망을 가두기도 하고 해방시키기도 한다는 점에 주목했다. 세종이 욕망이란 말을 쓴 적은 없지만 훈민정음은 자연의 소리를 문자로 담고자 하는 인간의 오랜 욕망을 실현한 것이며 가장 과학적인 쉬운 문자의 조건으로 인해 소통과 표현의 온갖 욕망을 드러내게 하는 장치라는 것이다.  

1797년에 한문의 최고 대가인 정조가 신하에게 보낸 한문 편지에서 느닷없이 한글 뒤죽박죽을 노출시킨 것은 글자와 욕망의 관계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조선의 지식인들은 말과 생각으로는 자연스런 욕망 그대로 뒤죽박죽이라 하면서 실제 글을 쓸 때는 그런 욕망을 錯綜이라는 한자에 가두었던 것이다. 그런데 정조는 마음이 급해서인지 그 욕망을 가두기 싫어서인지 한글로 그 욕망을 드러냈다. 

   
▲ 정조가 심환지에게 1797년 4월 11일에 보낸 한문 편지. 일명 ‘어찰 뒤죽박죽’(안대회 2012: 119)이라 부른다.(개인 소장)

한글은 굳이 정조 편지의 예시가 아니더라도 욕망을 드러내기 좋은 글자라고 보고 한국어에 발달되어 있는 예사소리-된소리-거센소리의 삼분법과 음성-양성의 이분법의 말 빛깔이 한글로 맘껏 드러남을 다음과 같은 입체적인 그림으로 보여 주어 청중들의 흥미를 끌었다. 

   
▲ 소리시늉말의 다채로움

   
▲ 예사소리, 된소리, 거센소리가 빚어내는 어휘 빛깔

셋째, 언어는 이질적인 것들의 접속이며 생성이란 측면에서 세종과 들뢰즈는 일치한다. 들뢰즈에 의하면 다양한 발화나 언어 행위는 그러한 언어 구성 요소의 배치와 그러한 배치가 이뤄지는 맥락에 의해 의미작용과 의미효과를 일으킨다(그림 "담론구성도" 참조).   


   
▲ 담론 구성도

세종은 기본 문자소(모음 세 자, 자음 다섯 자)를 가장 단순한 직선, , 원이라는 도형 배치를 통해 온갖 소리를 역동적으로 담아낼 수 있는 생성의 문자를 창출했다. 모음 기본자는 천지자연의 우주를 본뜨고 자음 기본자는 작은 우주인 사람의 발음기관을 본떠 큰 우주와 작은 우주를 접속시켜 음소 문자이면서 음절 단위로 모아쓰는 전무후무한 문자 짜임새(시스템)을 만들어 냈다.  

또한 모음에는 음양 이분법과 천지인 삼분법을 동시에 배치하고 자음에는 오행과 오시와 오방, 오음 철학을 적용과 과학과 이질적인 철학이 만나 조화로운 문자의 생성 의미를 부여했다(그림 11). 또한 [그림 12]처럼 최소의 자음과 모음이 최소의 규칙적인 움직임을 통해 최대의 글자를 생성해 내는 문자 생성의 극치를 보여준다. 이러한 한글의 생성적 배치 원리는 다양한 손전화에서 다양한 배치 효과로 나타난다. 

   
▲ 자음에 부여한 오행 철학

   
▲ 자음자와 모음자의 다양한 배치와 결합

넷째, 소수자 지향의 언어관이다. 들뢰즈는 차이의 보편성을 통해 소수자 지향의 언어관을 피력했다. 동질성으로서의 보편성이 아닌 차이로서의 보편성을 통해 소수자의 언어가 지향해야 할 맥락을 제시했다. 훈민정음은 절대 권력을 가진 임금(세종)이 창제했지만 철저하게 하층민을 배려한 문자이다. 세종은 입말(한국어)과 글말(한문)이 일치하지 않는 언어의 절대 모순 해결을 통해 한자를 몰라 글말로부터 철저히 소외당해온 하층민이 언어 주체로 나설 수 있는 길을 열었다.  

물론 한글의 긍정적 효과와 가치만을 얘기한 것은 아니다. 한글의 가치와 의미는 사용 맥락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다양한 접속이 가능한 문자와 그렇지 못한 문자의 차이는 분명하다는 것이다.  

토론자로 나선 고창수 교수(한성대학교)는 이 발표는 기본적으로 20세기의 서구 철학자의 시각에서 15세기 세종의 언어관과 문자관을 재해석한 것으로, 세종의 언어관은 한글이 한자가 가지는 권위의 탈피, 그러한 권위가 가져온 소수자의 폭압을 해결하는 가장 합리적 대안이었다는 점에서 세종의 언어관을 높이 평가하였다. 들뢰즈의 리좀식 언어관이 사실의 이미지로 위장한 지배 이데올로기 로부터 해방되기 위한 사상적 대안이며 한글은 역사의 길을 따라 그러한 해방의 진정한 기호적 기능을 수행하였음은 이 발표를 통해 더욱 분명해졌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