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신문 = 서한범 명예교수] 지난 주 속풀이에서는 이민영의 세 번째 가야금 독주회 이야기를 하였다. 산조 음악의 전통은 전통적인 12줄의 가야금으로 연주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민영은 18현으로 종래의 가야금보다 6줄이 늘어난 가야금으로 초연하면서 극찬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또한 새로운 주법에 도전이라도 하듯이 25현 가야금으로 북한의 ‘눈이 내린다’ 를 연주하였다는 이야기도 하였다. 뿐만이 아니라 북한에서 개량한 대표적인 현악기 옥류금(玉流琴)을 김계옥교수로부터 익혀서 영역을 확대시켰다는 이야기도 하였다.
이로 인해, 국립민속국악원을 비롯하여 서울의국립국악관현악단,국립남도국악원,전주시립국악단,전주전통문화센터,강원도립,목포시립교향악단등과 협연무대를 가졌으며 해외연주 활동도 활발했던 것이다. 특히 지난 주 가야금 독주회에서 <백인영류 18현 산조>외에 5곡을 발표하였는데, 특히 18현 산조는 고 백인영 명인이 2002년부터 직접 가락을 읊어 주면서 짠 산조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었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이번 속풀이에서는 산조 음악의 속이야기를 조금 해 보고자 한다.
종래의 산조음악을 전수하는 방법으로는 선생이 전해주는 대로, 선생의 가락을 그대로 따라서 배우는 구전심수(口傳心授)의 방법이 유일한 방법이었다. 이 방법은 한가락, 한가락, 선생의 가락을 따라서 듣고 배워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오래 걸린다. 그렇기 때문에 오래 배우지 않고는 짧은 시간에 도저히 배우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런 반면에 선생의 음악을 극히 자연스럽게 거의 그대로 익힐 수 있다는 점에서 최고의 전수방법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악보로 옮기기 어려운 성음(聲音)이나 음색을 직접 들으며 익히기 때문에 거의 그대로 선생의 가락을 받아 들일 수 있다는 점이 큰 장점이 된다.
그러나 배우는 사람의 암기력이 부족한 경우에는 음조직의 체계라든가, 또는 복잡한 리듬구조를 파악하기 힘들다는 점과 무엇보다도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점이 단점이라 하겠다. 그래서 근래에는 악보를 통해 배우는 현대식 전수방법이 일반적이다. 배우는 사람이 채보가 가능하다면 그날 배운 분량을 악보로 기록할 수 있기 때문에 더더욱 좋은 방법이 된다. 그러나 악보 자체가 음악이 아니기 때문에 악보와 음악의 괴리를 얼마나 좁히느냐 하는 문제는 남는 것이다.
▲ 이유라 해금산조
이처럼 복잡한 변화와 기교를 요하는 산조 음악의 전승방법으로 전통적인 구전심수의 방법도 장단점을 지니고 있고, 또한 악보를 통한 전수방법도 문제가 있다. 상호 보완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상호보완의 문제는 산조음악의 발전이나 확산을 위해서 반드시 그 방법을 연구하고 개발할 필요성이 절실한 것이다. 누구보다도 산조를 연주하고 지도하는 전문가들에게 이러한 전승의 문제는 더욱 절실한 문제가 되고 있다.
구전심수의 방법은 음악 자체를 배우는 차원뿐이 아니라 선생과 제자가 인간적인 유대관계를 갖기 때문에 더욱 자연스러운 전수가 이루어진다. 그런 반면에 배우는 사람의 기억력에 의존하기 때문에 학습의 분량이 극히 제한적이라는 단점을 안고 있는 것이다. 이와 함께 악곡의 구조를 총체적으로 파악하기 어렵다는 단점도 안고 있다. 그래서 한 선생이 여러 사람들을 동시에 지도하게 되는 경우에는 이 방법이 적절히 않은 것이다. 그래서 각급 학교교육에서는 일반적으로 악보에 의한 지도가 이루어지고 있다.
산조음악을 악보화 하기 위해서는 우선 채보가 선행되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국악의 전통적인 기보방법보다는 서양식 5선보로 채보되는 현상이 지배적이며 복잡하고 다양한 표현의 산조음악을 서양의 5선위에 얹다 보니까 악기의 조율법에 따라 각기 다르게 기보되는 예가 많다. 더욱이 다양한 농현이나 시김새를 표현해 내기 위해 채보자들 스스로 만들어 낸 각기 다른 형태의 기호를 만들어 넣거나 특수 부호들을 사용하고 있는 형편이어서 이들을 알아보기가 어렵다.
이처럼 채보자 간에 공통적인 기호나 부호의 약속이 이루어지지 못하는 상황이어서 가야금 산조를 비롯한 산조 음악의 악보 표기는 부분적으로 혼란이 야기되고 있는 것이다. 가야금을 배우려는 개인이나 또는 동호인들의 집단은 점차 그 숫자가 늘어나고 있는데, 배우는 과정에서 기호나 부호로 서로 다른 표현법을 익히게 된다는 점은 매우 불편할 뿐이다. 악보를 제작하거나 채보자들은 이 점에 신중해야 한다.
간혹, 산조 한 바탕은 얼마나 배우면 잘 탈 수 있나요? 또는 짧은 시간내에 잘 탈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가요? 를 물어오는 사람들이 있다. 연습하고 노력하는 길 이외에 요령이나 지름길이 있을리 없지마는 굳이 지름길이라면 남도(전라도 지역을 통칭함) 특유의 떠는 소리, 즉 농음(弄音)과 미분음의 기교가 잘 드러나 있는 육자배기라든가, 단가, 판소리, 시나위 음악이 몸에 젖어 들도록 자주 듣고 익히는 방법이 크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대답하고 싶다.
산조음악이 전라도 지방, 혹은 충남 일부지역에서 연주되기 시작하였다고 해도 지금 산조 음악의 계승이나 확산작업에는 어느 특정지역이나 특정인의 구분 따위는 별로 의미를 갖지 못한다. 지금은 서울이 문제가 아니고 한국 전체가 대상이 아니다. 서울대 국악과의 한 외국인 교수가 연주하는 해금 산조를 만난 적이 있는가!
장차 산조음악의 세계화가 도래할 경우, 어느 외국인이 한국인보다 더욱 더 산조음악을 잘 연주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일이다. 축구가 영국에서 시작되었다고 해서 세계 최강이 영국이 아님을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태권도 역시 한국에서 시작되었다고 해서 항상 우리가 세계최강을 지켜나간다는 보장도 없는 일임을 바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산조 음악의 세계화가 서서히 도래하고 있다는 사실은 생각만으로도 반가운 일이다. (다음주에 계속)
▲ 이민영 가야금 산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