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신문 = 김영조 기자] 옛 사람들은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라 했다. 곧 “농사는 천하(天下)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큰 근본(根本)”이라는 것이다. 그때 임금의 특권임과 동시에 의무이며, 정치의 중요한 깨달음이 바로 “관상수시(觀象授時)” 곧 천체현상을 관찰하고 역서(曆書)를 만들어 농사지을 때를 백성들에게 알려주는 것이었다. 그 관상수시의 중심인 역서란 책력(冊曆)이라고도 했고, 지금은 달력이라고 부른다.
▲ 일만 원 짜리 지폐에 오른 혼천시계 복제품(전시장 들머리에 있다)
그런데 맨 처음 만들어진 달력은 무엇이며, 지금의 달력과 어떻게 다를까? 또 옛날의 달력에는 어떠한 것들이 기록되어 있었을까? 그 모든 것에 대한 것을 알려주는 <달력, 시간의 자취> 전시회가 경기도 남양주의 ‘실학박물관(관장 김시업)“에서 내년 2월 29일까지 열리고 있다. 특히 이 전시회는 국립민속박물관(관정 천진기)과의 공동기획전으로 생활필수품인 ‘달력’이 인간의 삶 속에서 어떻게 변화되어 갔는지를 살펴보는 자리로 마련되었다.
먼저 전시회에서 눈에 띄는 것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달력으로 1580년(선조 13) 만든 보물 1319호 “경진년 대통력(庚辰年 大統曆)”이다. 이 대통력은 당시의 시간 개념과 생활상을 엿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관상감활자(觀象監活字)라고도 하는 인력자(印曆字)로 찍은 점, 관용어가 한 덩어리로 들어가 주조되는 연주활자(連鑄活字)를 사용했다는 점 등에서 학술적 가치를 높이 평가 받고 있다.
▲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달력으로 1580년(선조 13) 만들어진 보물 1319호 “경진년 대통력(庚辰年 大統曆)”(왼쪽), 서애 류성룡(柳成龍)이 사용했던 대통력(보물 제160-10호)
그뿐만 아니라 또 하나의 책력 조선중기 서애 류성룡(柳成龍, 1542~1607)이 사용했던 대통력(보물 제160-10호)도 눈에 띄는데, 달력면 뒤쪽에 류성룡이 잊지 않기 위해 기록한 정유재란(1597~98년) 상황과 의학 내용 따위 비망기(備忘記)가 적혀 있다. 당시 명재상 이었던 류성룡의 친필로 기록된 나라 사랑 정신을 엿볼 수 있다는데 큰 의미가 있다.
전시물 취재 중에 기자가 중요한 점을 놓칠까봐 가까이 다가와서 박성연 해설사는 조목조목 중요한 부분을 설명해주면서 보물로 지정된 대통력과 맨 마지막 전시품 2015년 다이어리를 견주어보라고 한다. 그러면서 조선시대의 대통력은 임금에게 받을 수 있는 소수의 고위직만 가질 수 있는 것으로 개인의 소유물이지만 소유자의 나라 걱정이나 전쟁 상황 따위가 기록되어 있다고 설명해준다. 따라서 대통력은 개인 것이지만 동시에 국가적인 가치가 담겨진 귀중한 기록물임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다이어리는 소수가 아닌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것으로 지극히 개인적인 사유물에 불과하다. 그렇게 옛 책력과 지금의 다이어리 사이에는 큰 거리가 존재한다고 박성연 해설사는 자칫 관람자들이 놓칠 수 있는 부분까지 차근차근히 설명채주어 취재에 큰 도움이 되었다.
▲ 청국시헌서(1772년, 왼쪽), 영조 7년의 조선 시헌서(1730)
▲ 1696년 일본 정향력, 조선통신사가 전해준 칠정산법을 바탕으로 만들었다.
▲ 책력의 구성도
이곳에는 근현대의 달력들도 전시돼 있다. 옛 책력과 달리 당시의 생활상이 고스란히 담겨있어 어딘가 정겹다 크리스마스카드를 겸한 1931년의 달력도 눈에 띄었으며, 6ㆍ25전쟁 직후인 1954년 달력엔 “건설도 방첩, 통일도 방첩”이라는 구호가 있고, 1955년 달력엔 태극기 양 옆으로 유엔기와 미국 성조기가 나란하다. 또 가족계획이 큰 관심사였던 1968년 달력에는 “알맞게 낳아서 훌륭하게 기르자”란 구호가 등장했다.
전시회 맨 마지막 부분은 그냥 끝나지 않는다. 관람객들에게 달력에 대한 상식을 묻고 있다. “윤달은 왜 있을까요?”, “달력의 ‘력(歷)’ 자가 금지어인 때가 있었다구요?” 따위다. 관람객의 가려움증을 풀어줄 수 있는 배려를 잊지 않는 박물관 관계자들의 마음이 따뜻하다.
▲ "방첩(防諜)"을 강조한 달력(왼쪽) / 인기가 있었던 일력(가운데) / 1931년에 나온 크리스마스카드를 겸한 달력
▲ 전시의 마지막, 관람객들의 눈을 붙드는 "달력 퀴즈"
경기도 하남시에서 아이들과 함께 달력전을 구경 왔다는 황수연(39, 주부) 씨는 “명재상 류성룡 선생의 나라사랑 정신이 담긴 대통력을 보고 감명을 받았습니다. 지금 우리는 달력을 지극히 개인용으로만 쓰고 있는데 옛 사람들은 달력 하나에도 나라를 염려하는 마음을 담았다니 놀랍군요. 옛 사람들에겐 농사를 잘 짓기 위해 달력이 소중했다는 것도 알게 되는 등 아이들에게 좋은 역사 교육의 현장이라는 생각입니다.”라고 관람 소감을 말했다.
달력 ! 너무 흔해서 이제 달력을 귀한 물건으로 여기는 사람은 없는 시대다. 예전에 방마다 걸어두었던 달력도 이젠 빛바랜 사진처럼 온 집안에 하나 걸린 집을 보기도 쉽지 않다. 인터넷과 슬기전화(스마트폰) 시대에는 더 이상 달력도 무용지물인 세상이다.
▲ 친절하게 중요한 점을 짚어주는 박성연 해설사
▲ 근대달력 전시를 보고 있는 관람객
하지만 예전에 달력은 더 없이 소중한 삶의 동반자였음을 전시회장을 둘러보며 새삼 느껴본다. 1년 365일 절기표에는 빼곡하게 날씨와 길일(볍씨 뿌리기 좋은 날 등), 방위(이사하기 좋은 날 등) 따위가 적혀있을 뿐 아니라 근대에 오면 정겨운 그림과 사진이 함께 있어 밋밋한 벽을 장식하기도 했던 달력은 이제 근대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다.
정겨운 추억의 달력을 포함한 한국의 달력의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실학박물관의 <달력, 시간의 자취> 전시장에 을미년 새해를 앞두고 발걸음 한번 해보는 것도 뜻 깊을 것이다. 특히 어린아이들과 함께 온가족 나들이로도 적극 권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