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멀리 떠납니다. 부디 행복하시길>단 두 마디 밖에 쓸 수 없었다. 아홉 해라는 세월을 어찌 다 쓸 수 있으랴. 영상이 흘렀다. 그녀 집안의 무조건적이며 집요한 반대. 노숙자 행색으로 낯 선 거리를 떠돌던 도피행각. 친척집이란 친척집은 죄다 돌며 두 육신 깃들 곳을 찾아 헤매던 날들. 열 개나 되던 그녀 오빠들의 거친 팔. 그 완력에 몸은 둘로 나뉘었어도 끝내 놓지 않았던 손, 손. 무모했으나 빙어 속 같이 맑고 시린 사랑. 다시 한 번 방안을 둘러보다가 그만 눈을 감고 말았다. 이런 것인가. 결국 이렇게 되고 마는 것인가. 쪽지를 써서 그녀의 옷 보따리 위에 올려놓기는 했으나 선뜻 방문을 나설 수가 없었다. 쇠가 제 몸에서 이는 녹으로 사그러지듯 이렇게 우리 스스로 허물어지고 마는 것인가. 그 극렬한 반대를 무릅쓰고 여기까지 왔건만... 문틈 사이로 회한이 밀려들어왔다. 내가 알고 있는 글씨 가운데 기쁨이라든가 환희, 행복 같은 단어들은 모두 지워지고 상처, 아픔, 방랑 같은 단어들만 또렷이 살아났다. “윙윙, 어디로 간다고?” “어디 정해진 곳은 없고요. 윙윙, 가서 자리 잡히면 연락드릴게요. 윙윙” 먼
[우리문화신문=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정박(碇泊) (1) 너 댓 해전이었을까 나는 전혀 알지 못하는 길에 서 있었지 머릿속은 맨 눈으로 일식을 본 양 하얗게 비어 몽유병에서 방금 돌아온 듯 악몽을 꾸고도 악몽인 줄도 모르고 빈 동공을 바람으로 채우며 유랑의 길을 떠났지 위험하고, 힘들고, 더럽다는 곳엔 언제나 내가 있었지 활자를 지우고, 음표를 지우고 원고지마저 까마득히 지우고 석면가루가 날리면 마셨고 공구리 죽이 튀면 덮어쓰고 제 무덤 파듯 삽질하며 오로지 육체로만 살았지 정신을 상실했다는 사실조차 상실하고 살았지 (2) 척박한 황무지 그 폐허의 가슴에도 싹은 트는가? 몽유병 환자가 꿈을 기억해내려 애쓰듯 소금밭에 씨앗을 뿌려 놓고 옛 기억을 기억해내려 발버둥 치던, 유난히 비가 많았던 어느 해 가을날 기타를 안은 당신이 광배를 지고 기적에 실려 내게로 왔지 (3) “세상의 끝이 멀다한들 채찍질하여 가다보면 언젠가는 당도할 날이 있다(莫嫌海角天厓遠但肯搖鞭有到時)1“ 누구나 그러하듯 나도 마음에 이런 기둥하나는 세우고 살았지 거기에 새겨 넣은 좌우명이 좋다는 당신 담박(淡泊), 잔잔한 호숫가에 매어진 한 척의 나룻배처럼 고요하게, 한 폭의 수묵담채화를
[우리문화신문=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참으로 오랜만에 자네에게 편지를 쓰는군. 아니, 자네 뿐 아니라 마지막으로 편지를 썼던 기억조차 아스라하군. 아무리 기계문명이 세상을 지배한다 하더라도 인본 위주의 가치관만은 버리지 말자던 우리가 아니었던가. 어느 바람에 우리의 다짐을 날려 보냈는지. 노장사상을 논하고, 헤르만 헤세와 카프카의 문학세계를 논하고 헤겔, 프로이트를 희롱하는 것도 모자라 크리슈나무르티, 라즈니쉬를 혀에 올려놓고 밤을 새운 게 한 두 번이 아니었지. 어느 물길에 우리의 그 순수함을 떠내려 보냈는지... 며칠 전 아내와 용문사를 다녀왔다네. 벌써 거목은행나무에 노란 물이 들기 시작하더군. 둘이 양 팔을 펼쳐 거목의 둘레를 잴 때 아내의 웃는 모습이 자네 얼굴과 오버랩 되었네. 그게 그러니까... 오, 벌써 30년도 넘었군 그래. 자네와 내가 그 절에서 하룻밤을 묵었던 게. 우리는 새로운 체험에 한껏 부풀어 밤을 꼬박 새웠지. 그 때 참여했던 새벽예불의 경험은 아직도 명화의 한 장면으로 나에게 돋을새김으로 남아있다네. 막 솟아오른 태양이 새벽안개를 몰아낼 때 은행잎을 모아 시루떡처럼 쌓아 올리는 한 젊은 스님의 평온한 표정에서 우리는 무심의 세계
[우리문화신문=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시월 어느 멋진 날에 붉은 물감 머금은 칸나였거나 키 큰 서어나무 잎이었다면 내 진작 알아보고 다가갔으련만 어찌하여 키 작은 구절초로 오시는가 모래알에 박힌 석영이거나 고드름 끝에 매달린 물방울이었다면 그 영롱함에 이끌렸으련만 하필이면 초저녁 어스름으로 오시는가 백봉령에 걸린 뭉게구름이었어도 한 섬 앞바다의 물거품이었어도 내 알아봤으련만 어느새 그림자로 옆에 와 계시는가 빈한한 이 영혼은 마음밖엔 드릴 게 없는데
[우리문화신문=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꿈을 짜는 연인들 꿈을 짰어요 뜨개질은 첨이지만 서툴긴 하지만 그래서 더 정성의 땀으로 짰어요 사랑을 짰어요 사랑이 첨은 아니지만 포옹이 첨은 아니지만 이렇게 산맥물결이 밀려오긴 첨이네요 여행을 떠났어요 별과 별 사이를 흐르는 꽃과 꽃 사이는 걸어봤지만 이국의 야자그늘 아래서 시를 써보긴 했지만 바람타고 별 밭을 나는 건 첨이네요 그녀는 음악에 취해 자주 눈을 감고 내 어깨에 기댔어요 아직도 꿈을 짜요 아침이 와도 깨지 않는 꿈 깨어나도 꿈같은 꿈
[우리문화신문=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아무 말 않기 춥다 추분이 지났다지만 비가 온다지만 진동모드 전화기처럼 온 몸이 떨린다 냄새, 치석이 앉도록 똥내가 난다 창자를 지나 똥끝까지 타나보다 아직도 못다 태운 그리움이 이리도 많았던가 그랬었구나 내 물음에 대답이 없었던 게 내게 물음이 없었던 게 같이 있어도 쓰리다는 건 말을 섞을수록 공허하다는 건 알고 있었었구나 우리의 이해구조가 다르다는 걸 나는 “사랑”을 “불”이라 쓰고 “남김없이 붓는 것”이라 읽으면 자신은 “얼음”이라 쓰고 “조금씩 붓는 것”이라 읽는다는 걸 이젠 정말, 아무 말 않기 원망도 말기 자책도 말기 기다리지도 않기 그냥 그런 거 계절 하나가 지나간다는 거
[우리문화신문=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내 판꽂이엔 아직도 겨울비 내리는 밤이었지 취객들의 잡담과 웃음소리에 스피커는 금새 병약해져 그녀가 들어올 즈음엔 아예 앓는 소리가 났지 가게가 터져나갈 만큼 취기가 부풀어 올랐을 때였지 저 많은 엘피와 주인의 명성에 어울리지 않게 음향이 왜 이 모양이냐고 따지는 그녀 앞에 연신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지만 그녀 입안의 새 하얀 차돌만은 침침한 조명 아래서도 반짝이고 있었지 턴테이블이 돌고 술잔이 돌고 노래도 바뀌고 술병도 바뀌고 다음에 비오는 날 올 테니 들려 달라며 그녀는 노래 한 곡을 신청하고는 또 하얀 차돌을 내보이며 밤안개에 스미었지 베르테르 신드롬을 재현 했다는 노래 니힐리즘 최고의 걸작이라는 노래 비 내리는 날이면 그 노래를 들으며 몇 장의 달력이 찢길 때까지 그녀를 기다렸지 우리의 그리움이 임계치에 이른 여름 어느 날 비등점을 넘은 물처럼 그녀는 내게 달려왔지 그 때부터 우리는 서로에게 물들어 음악으로 셀 수없이 많은 밤을 지새웠지 낙엽의 목소리를 가졌다는 가수의 노래와 불어로 시를 쓴다는 미국의 음유시인과 스물넷에 요절했다는 기타리스트, 존 슈만
[우리문화신문=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목로(木壚)*에서 블루스 선율이 적막보다 무겁게 내려앉는 목로에서 아내에게 들려줄 음반을 고른다 손가락 끝에서 기타는 울고 덱스터 고든이 따르는 싱글몰트 한잔을 색소폰 그 농염의 숨소리로 마신다 나 일찍이 음악을 구법(求法)으로 여겨 때론 도반들과 밤새워 술병을 비우며 탐닉도 하고 텅 빈 음악실에서 헤드폰을 덮어 쓰고 마지막 한 음 까지 찾아내기도 하였으나 노을 비낀 산 아래선 탁발승처럼 늘 허기에 시달렸지 반생을 땡볕 내리쬐는 자갈밭을 헤매다 기적처럼 나와 닮은 아내를 만나 온 몸과 온 마음으로 음악을 받아들이며 법(法)이 거기에 있음을 새삼 알았으니 우주의 한 귀퉁이 이 푸른 별은 가을밤에 잠기고 턴테이블은 돌고 *1 목로 : 선술집의 좁고 기다란 탁자 *2 덱스터 고든 : 재즈의 진정한 구도자로 알려진 미국의 색소폰 연주자 *3 싱글몰트 : 스카치위스키의 일종
[우리문화신문=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십이령 구빗길 기러기들 남녘으로 떠나던 동짓날 밤 행여 장닭이 깰까하여 숨 죽여 님 앞에 앉았습니다 님의 얼굴을 산호 빛으로 물들이던 이 화롯불이 사글면 이제 기약 없는 이별입니다 첫 닭이 울기도 전에 시어머니의 헛기침 소리 들려옵니다 차곡차곡 접어둔 얘기첩은 펴보지도 못 한 채 시어머니 죽으면 꼭 다시 만나자는 약속만 잿 속에 묻고 서둘러 싸리문을 나섰습니다 강물에선 얼음 째는 소리가 새벽하늘을 가르고 새파란 바람이 젖무덤을 찌릅니다 보따리 하나 품에 안고 바람보다 앞서 달렸습니다 해가 중천에 오르고 헤진 버선에 배롱 꽃이 피고서야 한 도부쟁이* 무리 앞에 서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언 밥 한 덩이 얻어먹은 연으로 맏 도부쟁이 아낙이 되어 그동안 시름 서른 단을 묶었습니다 어느 까치 떼가 유난히 시끄럽던 날 님을 닮은 청년 하나가 탕약을 달이는 내 앞에 서 있었습니다 청년과 도부쟁이가 감나무 잎이 수북하도록 얘기를 털어낸 이튼 날 아침 씨받이가 낳았다는 님의 아들을 따라 십이령 마루에 오르니 도부쟁이 영감 깊은 숨소리 예까지 들립니다 *보부상의 낮춤말
[우리문화신문=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은 어두침침했다. 전등이 켜지지 않은 것으로 미루어보아 아직 문을 열지 않았으리라 예상 하면서도 ‘공사중’이란 간판에 이끌리어 내려가고 있었다. 예상대로 출입문은 잠겨 있었으나 내부 불빛이 문에 난 쪽창으로 새어 나왔다. 호기심을 못 이겨 체면은 일단 접어두고 문을 두드렸다. 몇 번 두드리니 허름한 작업복 차림의 사내가 쪽창으로 얼굴을 내밀더니 문을 열었다. “저, 아직…” “압니다. 지나가다가 가게이름이 하도 독특해 들어와 봤습니다. 먼저 한 번 둘러보고 저녁때 오려고요.” 가게 안은 과연 공사 중이었다. 여기저기 벽돌과 블록조각들이 널브러지고 벽면도 바르다만 상태였다. 구석에는 시멘트도 몇 포대 쌓여 있었다. 그 상태로 공사를 마치고 이미 개업을 하였지만 ‘공사중’이라는 진행형에서 진지함이 읽혀져 좋았다. 조명이 밝은 무대에선 사내의 아내로 보이는 한 여인이 옷감을 펼쳐놓고 가위질을 하고 있었다. “작업복 만드시나보죠?” “아니요, 무대복 겸 평상복 겸 외출복이에요.” 그녀는 자기가 입고 있는 옷도 손수 지은 것이라 했다. 나는 그녀의 바느질 솜씨가 천의무봉(天衣無縫)이라며 너스레를 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