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슬옹 교수] 서울시 종로구 내수동, 세종문화회관 뒤쪽에 있는 주시경 마당에서 가까운 곳에 주시경 선생과 그 제자들이 세운 조선어학회 곧지금의 한글학회(회장 권재일, 이사장 김종택)가 있다. 조선어학회는 원래 3호선 안국역 근처에 있었는데 광복 뒤 이곳으로 이사 왔다. 원래는 허름한 집이었지만 조선어학회 33인 가운데 한 분이신 애산 이인 선생이 많은 돈을 기증하고 국민 모금과 정부 후원으로 1977년에 지금 건물을 지은 것이다. 학회 앞에는 주시경 선생의 가슴상과 이 학회의 정신을 잘 드러내는 얼말글 새김돌이 학회의 뿌리와 정신을 보여 주고 있다. 바로 한글학회는 어렵고 힘든 시기에 한글을 지키고 가꿔온 사람들이 세운 곳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학회이기도 하다. 1908년 8월 31일 주시경 선생과 그 제자들이 지금의 연세대 옆 안산에 자리 잡고 있는 봉원사에 모여 우리 말글 연구를 통해 우리 말글을 지키고 가꾸자고 ‘국어연구학회(회장, 김정진)’를 만들었는데 이것이 한글학회의 뿌리다. 무려 100년이 넘은 가장 오래된 학회로 봉원사에 가면 그것을 기념하는 새김돌을 세워놓았다. 안타깝게도 주시경 선생은 1914년 39세의 젊은 나이로
[우리문화신문=김슬옹 교수] 서울시 도봉구 방학로 17길 46호 132-8541476(성종 7)∼1506(중종 1). 조선의 제10대 왕./재위 1494∼1506.◓ 장소 서울 창동역에서 우이동쪽으로 버스를 타고 가다 채 10분도 안 돼 방학로 쪽으로 들어서면 ‘연산군 묘’라는 교통표지판 글씨가 보인다. 바로 방학로 17길 옆 야산에 조선시대 10대왕으로 가장 포악했던 비운의 임금, 한글 탄압의 악명을 떨친 연산군 무덤이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아버지 세종대왕의 한글 연구를 도왔던 한글 공로자인 정의공주 무덤에서 1킬로미터쯤 떨어진 곳에 있어 한 지역에 한글 공로자와 탄압자가 같이 있는 셈이다.또한 도봉구는 훈민정음 해례본을 일제 말기에 기적적으로 소장하여 고이 보관해 온 간송 전형필 선생의 무덤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무덤이 있는 야산 옆은 원당 공원으로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지만 비운의 왕, 포악스런 왕의 무덤이라 그런지 무덤 자체는 쓸쓸해 보인다.왕족의 무덤은 크게 능과 원과 묘로 구분한다. 능은 왕과 왕후의 무덤이며 원은 세자, 세지빈 또는 왕을 낳은 친아버지, 친어머니가 묻힌 곳을 가리킨다. 묘는 그 외의 왕족의 무덤을 말하는데 연산군은 쫓겨난 임금
[우리문화신문=김슬옹 교수] 옛날 사람들은 어떻게 말하고 어떻게 썼을까요. 말은 오래 전부터 하고 살았지만 책을 읽고 쓰는 글자생활은 신분에 따라 달랐지요. 양반들만이 주로 글자생활을 했는데 그것도 우리말과 전혀 맞지 않는 한자를 빌어다 썼어요. 한자는 이웃나라인 중국 글자지요. 글자로 쓴 글을 한문이라 불러요. 세종 임금이 우리 글자를 만들기 전까지는 한자와 한문을 주로 썼어요. 세종대왕은 조선시대 네 번째 임금이셨지요. 세종 임금 전까지는 우리 글자가 없었으니 중국글자인 한자를 빌어다 썼습니다. 얼마나 불편한지 상상해 보세요. 말로는 “엄마 저 배고파요.”라고 말하고는 쓰기는 중국 사람들처럼 “母 我饑”라고 썼지요. “난 너를 사랑해”라고 말하고는 “我愛你(나-사랑해-너)”라고 썼어요. 말 차례도 다르지요. ‘사랑해’라는 말이 우리말에서는 끝에 왔는데 중국어는 가운데 있지요. 중국말은 영어 차례와 비슷합니다. 영어로는 “I love you"라고 하니 사랑한다 love 가 중국말처럼 가운데 있지요. 그나마 이런 한자는 양반들만 맘껏 쓰고 중인들은 이런 한자를 쉽게 뜯어 고친 이두라는 글자를 썼답니다. 일반 평민이나 천민들은 글자(한자)를 쓸 생각도 못
[우리문화신문=김슬옹 교수] 울산 중구 병영12길 15 ‘외솔최현배선생기념관’ 울산 중구에는 2009년에 외솔 최현배 선생 기념관이 생겼다. 물론 생가터는 기념관 옆에 있다. 그 주변은 한글마을로 지정이 돼 기념관의 위상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다른 지역에서 온다면 울산 시외버스를 이용하거나 울산역에서 내리면 5003번 리무진 버스를 타고 기념관이 있는 병영사거리까지 30여분을 달리면 된다. 버스를 내려서 골목길을 천여 미터 올라가면 한글마을답게 한글 관련 각종 글맵시와 현수막이 눈에 띈다. 울산은 대표적인 공업 도시이지만 많은 문화와 역사를 간직한 곳이기도 하다. 빼어난 국어학자이자 올곧은 겨레 얼을 지키고 가꿔온 외솔 최현배 선생이 이곳에서 태어나 울산의 역사를 새로운 모습으로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이 지역이 한글 마을로 지정된 건 2014년이다. 현재까지 한글 마을 조성을 위해 여러 시도를 하고 있다. 더욱이 한글 마을 가까운 곳에 2015년 8월에 시작한 한옥 마을이 조성될 예정이어서 한글 마을은 더욱 다함께 즐기는 마을이 될 것이다. 외솔 기념관은 지상 1층, 지하 1층으로 저서, 유품 등을 전시하는 전시관과 다목적 강당, 한글교실, 영상실
[우리문화신문=김슬옹 교수] 보한재 신숙주(申叔舟, 1417년 8월 2일(음력 6월 20일) ~ 1475년 7월 23일(음력 6월 21일) 태어난 곳: 전라남도 나주 한글마을 무덤이 있는 곳: 경기도 의정부 고산동 산 53-7 올해는 보한재 신숙주 선생 탄신 600돌이 되는 해다. 훈민정음 반포와 보급, 국방, 외교 등 그가 남긴 업적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을 정도다. 그러나 세조 집권을 도왔다는 이유만으로 그의 빛나는 업적이 제대로 조명 받지 못했다. ◆장소 ------------------------------------------------------------------ 신숙주는 훈민정음 반포와 보급에 절대적인 업적을 남긴 조선 전기의 학자요 관리였다. 43번 국도를 따라 의정부에서 남양주 방향으로 가다 교도소 입구 건너편 고산동으로 들어가는 진입로로 들어서면 ‘신숙주 선생묘’라는 길안내 교통표지판이 보인다. 여기서 조금 더 가다 고산초등학교를 지나면 삼거리가 나오고 그 왼쪽 산 중턱에 바로 보한재 신숙주 무덤과 한글 공적비가 있다. 이 묘소는 신숙주의 무덤과 신도비, 사적비가 있는 곳으로 고령 신씨 문중공파 종중에서 소유하고 관리하고 있다. 무덤
[우리문화신문=김슬옹 교수] 지난 1월 21일. 한파가 몰아친, 눈발이 날린 토요일, 전국독서새물결모임 독서아카데미 초중고 학생들 37명을 데리고 한글가온길 답사를 했다. 마지막 답사지인 세종로공원의 한글글자마당에서 한글가온길의 의미를 되새기며 모두들 한글만세를 외쳤다. 세종대왕 동상을 뒤로 세종문화회관 쪽으로 길 건너 정부종합청사 쪽으로 오게 되면 세종로 공원이 있다. 여기에는 2011년도에 먼저 조성된 글자 마당과 2013년도에 조성된 조선어학회 한말글 수호탑이 있다. 글자마당은 한글의 과학성과 우수성을 세계에 널리 알리고, 대한민국 국민에게 자긍심을 높이기 위하여 한글 첫소리(19자), 가운뎃소리(21자), 끝소리(27자) 글자로 조합 가능한 11,172자를 재외동포, 다문화가정, 국내거주 외국인, 새터민 등을 포한 전국민을 대상으로 공모하여 11,172명이 각각 한 글자씩 직접 쓴 글씨를 돌에 새겼다. 마침 이때 공모하여 자신의 글씨가 뽑힌 박정애 세종연수원 대표가 참가하여 공모 경위와 글맵시를 설명해 참석자들의 손뼉을 받았다. ‘릱’이란 글자인데 ‘ㄹ’자를 태극 모양으로 하여 천지자연의 조화를 담은 한글의 가치를 표현했다는 것이다. 11,17
[우리문화신문=김슬옹 교수] 세종은 47살 때인 음력 1443년 12월에 훈민정음 28자를 창제하고 50살 때인 1446년 9월 상한(1일-10일)에 《훈민정음》이란 책을 통해 새 문자를 백성들에게 알렸다. 1443년 음력 12월은 훈민정음 28자가 세상에 공개된, 그야말로 훈민정음 28자의 기적이 일어난 달이다. 그 기적은 세상에 57자의 단출한 기록으로 드러났다. “是月, 上親制諺文二十八字, 其字倣古篆, 分爲初中終聲, 合之然後乃成字, 凡干文字及本國俚語, 皆可得而書, 字雖簡要, 轉換無窮, 是謂 《訓民正音》” 세종 25년(1443년) 12월 30일자(세종실록 온라인판 영인본에 의함) (번역) 이달에 임금이 친히 언문 28자를 지었는데, 그 글자가 옛 전자를 본뜨고, 초성・중성・종성으로 나누어 합한 연후에야 글자를 이루었다. 무릇 한자에 관한 것과 우리말에 관한 것을 모두 쓸 수 있고, 글자는 비록 간단하고 간결하지마는 전환하는 것이 무궁하니, 이것을 훈민정음이라고 일렀다. 공교롭게도 북한은 창제한 날을 남한은 반포한 날을 기념일로 삼고 있다. 분단의 아이러니이지만 이제는 남북이 연계하여 창제한 날과 반포한 날을 함께 기려야 한다. 필자는 창제한 날은 문자
[우리문화신문=김슬옹 교수] 장소 조선 성종 임금이 다스리던 1485년(성종 16년)에 한글 관련 큰 사건이 벌어졌다. 종로 시장 상인들 가운데 한글을 아는 이들이 오늘날 장관격인 호조 판서 이덕량의 동생 집에 한글로 그들을 비판하는 투서를 몰래 전달했다. 영의정부터 판서까지 고위 관리들이 종로의 도로 정비 사업을 한다며 제 잇속을 챙기느라 백성들을 괴롭힌다는 내용이었다. 이덕량은 그것을 읽고 곧바로 성종에게 보고를 올렸다. 이에 성종은 판내시부사 안중경과 한성부 평시서 제조 등을 보내 상인들의 요구 사항을 듣게 했지만 끝내 한글을 아는 자들을 처벌하고 말았다. 이 사건으로 당시 하층민에 속한 상인들도 쉽게 한글을 배울 수 있었으며, 한글이 널리 보급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금의 종로는 1호선인 종로 2가역, 3가역이 있는 서울의 중심지다. 종로 3가는 3호선과 5호선도 서는 명실상부한 중심지로 조선 시대 때도 전국에서 가장 번화한 시장이 있었던 자리다. 서울시는 옛날 시장터에 시전행랑을 복원해 놓았다. 사건 연보 1485/07/17(성종 16) : 호조 판서 이덕량 등이 시장 사람들의 언문 투서(익명서) 두 장을 바치다 1485/08/02(성종 16)
[우리문화신문=김슬옹 교수] 한글날은 2013년 공휴일로 지정된 뒤 그야말로 큰잔치로 자리 잡았다. 주요 행사가 열리는 광화문 광장은 하루종일 북새통을 이룬다. 서울뿐만 아니라 여주시, 세종시, 울산시 등 전국 주요 도시에서도 관련 행사가 꼬리를 문다. 2013년부터 이러한 한글날을 기리면서 온 국민이 한글날의 의미와 가치를 알게 하는 소책자(14.9*20.9cm)를 문화체육관광부 국어정책과에서 펴내 해마다 인기를 끌고 있다. 해마다 다른 방식으로 2016년까지 다음과 같이 네 번 펴냈다. 주요 특징과 더불어 필자가 대표 집필하게 된 배경을 밝혀 보고자 한다. 이 책자를 펴내기에는 이제는 고인이 된 김혜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국어정책과장이 한글을 위해 몸 바쳐 일한 눈물겨운 사연이 담겨 있어 고인을 기리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쓴다. ◐ 누구나 알아야 할 한글 이야기, 국어단체연합 국어문화원(2013). 10+9. 문화체육관광부. 66쪽. ◐ 누구나 알아야 할 한글 이야기, 국어단체연합 국어문화원(2014). 3+5(12단 접이형). 문화체육관광부. ◐ 누구나 알아야 할 한글 이야기(8단 접이형). 국어단체연합 국어문화원(2015), 문화체육관광부. ◐ 누구나
[우리문화신문=김슬옹 교수] 1. 역사의 상상 18세기 후기 정조(재위 1776~1800) 시절 박지원(1737~1805), 박제가(1750~1815), 정약용(1762~1836) 등 많은 실학자들이 세검정에서 회합을 갖고 몇 가지 조정에 건의할 강령을 채택하고 정조에게 상소문을 올렸다. 정조의 개혁 정치가 더욱 힘을 받지 못하고 오히려 서인의 보수 정치에 주춤하자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 행동에 난선 것이다. 실학의 진정한 학문적 가치를 실천하기 위한 거대한 역사의 발걸음이었다. 일부 평민들도 동참했다. 상소문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하나. 중종 때 어숙권이 건의했다가 실패한 책방 설치를 전국 주요 도마다 최소 하나씩 설치한다. 둘. 지식과 정보를 쉬운 문자와 책으로 보급하고 나누고자 했던 세종 정신을 시대정신으로 삼는다. 셋. 한글을 주류 문자로 채택하고 단계적으로 실록도 한글로 적고 모든 공문서도 단계적으로 한글로 적는다. 넷. 공공 교육 기관에서 다루지 않은 한글 교육을 서당과 향교부터 단계적으로 정규 교과로 다룬다. 다섯. 한글 문학을 장려하고 기존 한문 문학을 한글로 번역한다. 정조도 익히 마음에 둔 정책들이라 이를 채택하기에 이른다.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