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서산 보원사지 오층석탑 - 이 달 균 임 떠난다고 울지 마라 봄 간다고 아쉬워 마라 절집에 남은 것은 탑 하나와 당간지주 돌 하나 바다에 던져 그 깊이를 잰다 보원사지 당간지주(보물 제103호) 앞에 서면 그 중심에 삼층석탑이 보인다. 탑신에 자세히 눈길을 주면 노련한 석공의 솜씨가 잘 드러난다. 아래 기단 옆면에는 12마리의 사자상을 새겼고, 위 기단 옆면에는 팔부중상(八部衆像)을 2구씩 새겼다. 절터의 규모는 상당해 보이는데 대웅전을 비롯한 건물들은 사라지고 없다. 빈 절터엔 4t가량의 물을 저장할 수 있는 석조(보물 제120호) 하나가 있는데 많은 스님이 기거했음을 짐작게 한다. 잘생긴 석탑 하나와 미려하게 지탱해 온 당간지주만 있어도 융성했던 절의 모습은 그려볼 수 있다. 기러기 한 마리로 천리 하늘의 길이를 잰다고 하지 않던가. 마음의 눈을 말하지 않아도 남아 있는 몇 개의 유물로 당시를 상상해 볼밖에. 작은 키로 어찌 바다를 잴 것인가. 그저 돌 하나 던져 그 깊이를 가늠해 보는 것이다.(시인 이달균)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물질하던 옷 벗어 말리며 / 가슴 속 저 밑바닥 속 / 한 줌 한도 꺼내 말린다 / 비바람 치는 날 / 바닷속 헤매며 떠올리던 꿈 / 누구에게 주려 했는가 / 오늘도 불턱에 지핀 장작불에 / 무명옷 말리며 / 바람 잦길 비는 해녀 순이" - 김승기 ‘불턱’- “여기서 불 초멍 속말도 허구, 세상 돌아가는 말도 듣고 했쥬.” 제주 해녀는 ‘붙턱’에 대해서 그렇게 말합니다. 불턱은 해녀들이 물질하기 위해서 옷을 갈아입거나 무자맥질해서 작업하다가 언 몸을 녹이기 위하여 불을 피워 몸을 녹이기 위해서 바닷가에 돌을 둥그렇거나 네모나게 쌓아 만든 공간을 말합니다. 이곳 불턱에서 해녀들은 불을 쬐면서 속에 있는 말들도 하고, 세상 돌아가는 말들도 얻어듣곤 했습니다. 보통은 제주에 많은 돌로 담을 쌓아 밖에서 보이지 않도록 한 것으로 쉽게 말하면 바닷가에 설치한 해녀들의 탈의장이었지요. 예전 해녀들은 물소중이 또는 ‘잠수옷ㆍ잠녀옷ㆍ물옷’ 따위로 불렸던 옷을 입고 바닷속에서 일을 했습니다. 하지만, 입고 벗기가 편하게 만들었던 이 물소중이는 자주 물 밖으로 나와 불을 쬐어 체온을 높여야 했지요. 그런 까닭으로 제주에는 바닷가 마을마다 여러 개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조선에서도 박사가 되랴면 전과 가티 성균관 가튼 데만 다녀서는 안된다. 적어도 관립전문학교나 또는 경성대학 가튼 곳을 졸업한 다음에 무엇을 또 연구하야 론문을 제출하고 그것이 입격이 되여야 명색 박사가 될 것이다. (중략) 그것도 년수가 너무 멀어서 각갑하거던 남에게 구걸을 하야서라도 돈을 몃 백원만 주선하야 손쉽게 박사 운동을 하여라. 그러면 그럿케 실패는 하지 안을 것이다. (중략) 현재 조선에도 법학통론(法通) 한 권 못 사본 사람도 법학사가 되고 우주관(宇宙觀)이니 인생관(人生觀)이니 하는 문자 한아를 몰나도 철학박사된 일이 만치 안으냐.” 위는 일제강점기 잡지 <별건곤> 제47호(1932년 01월 01일 발행)에 나온 “대풍자! 대희학, 현대 조선 10대 발명품 신제조법” 가운데 “제4 박사 제조법”이란 글입니다. 당시에도 법학통론 한 권 안 본 사람이 법학박사가 되고, 우주관이란 글자 하나 몰라도 철학박사가 되었다니 박사학위의 허술함이 엿보입니다. 최근엔 한 대학 총장이 가짜 박사학위를 명함에 찍어서 다녀 말썽이 나기도 했지요. 박사(博士)는 원래 고대에 전문 학자나 기술자에게 주던 벼슬 이름이었습니다. 백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며칠 전 국립공원공단에서 보내온 보도자료에는 “국립공원 봄꽃…복수초 시작으로 작년보다 보름 빨라”라는 제목이 보였습니다. 지금 온 나라는 코로나19로 온통 난리입니다만 자연은 태연하게 봄을 맞이합니다. 여기서 복수초라는 꽃 이름을 처음 듣는 사람들은 “꽃이 복수를 하나?”라면서 고개를 갸우뚱할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여기서 ‘복수’는 원한을 갚는 복수(復讐)가 아니라 복수(福壽) 곧 복과 목숨을 뜻하는 것으로 일본 사람들이 부르는 이름을 그대로 따라 부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복수초’ 대신 ‘얼음새꽃’으로 부르는 이들이 늘어납니다. 예쁜 우리말 이름을 놔두고 일본식을 따라 부르는 것은 큰개불알꽃, 개불알꽃, 며느리밑씻개, 도둑놈의 갈고리 따위도 있습니다. 《창씨개명된 우리 풀꽃(인물과사상사)》을 펴낸 이윤옥 작가는 “푸른 꽃잎이 4장 달린 ‘큰개불알꽃’은 유럽이 원산지로 아시아, 북아메리카, 오세니아 등에 귀화식물로 자리 잡고 있으며 일본에 최초로 정착이 확인된 것은 1887년 명치 때 일이다. 열매가 개의 음낭을 닮았다고 해서 “일본 식물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마키노 토미타로우(牧野 富太郎 1862~1957)가 이누노후구리(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문화체육관광부(장관 박양우, 이하 문체부)와 국립국어원(원장 소강춘, 이하 국어원)은 ‘빅텐트’와 ‘폴리널리스트’를 대체할 쉬운 우리말로 ‘초당파 연합’, ‘포괄 정당’과 ‘정치 참여 언론인’을 꼽았다. ‘빅텐트’는 특정 이념이나 정치적 견해에 한하지 않고 여러 세력을 아우르는 연합체를 가리키는 말이며, ‘폴리널리스트’는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전ㆍ현직 언론인을 이르는 말이다. 문체부와 국어원은 지난 2월 17일부터 19일까지 열린 새말모임*을 통해 ▲ ‘빅텐트’의 대체어로 ‘초당파 연합’, ‘포괄 정당’을, ▲ ‘폴리널리스트’의 대체어로 ‘정치 참여 언론인’을 꼽았다. * 새말모임: 어려운 외국어 새말이 널리 퍼지기 전에 일반 국민이 이해하기 쉬운 우리말 대체어를 제공하기 위해 국어 전문가 외에 외국어, 교육, 홍보‧출판, 정보통신, 언론 등 다양한 분야 사람들로 구성된 위원회로서, 누리소통망(SNS)을 통해 진행됨. 문체부와 국어원은 ‘빅텐트’와 ‘폴리널리스트’처럼 어려운 용어 때문에 국민이 정보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이러한 용어들을 ‘초당파 연합’, ‘정치참여 언론인’과 같은 쉬운 말로 발 빠르게 다듬고 있으며 앞으로도 정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얼음이 얼어붙는 추운 날에 거동하면 몸을 상하게 할 염려가 이미 적지 않고, 더군다나 지금은 전염병이 갈수록 심해지니, 모시고 따라가는 문무백관들이 모두 재소(齋所, 제사 지내는 곳)에서 밤을 지낼 수가 없고, 빽빽하게 따르는 군졸들 또한 어찌 모두가 아무렇지 않을 수 있겠으며, 길을 가득 메우고 임금의 행렬을 구경하는 사람들 또한 병에 전염되지 않는 사람이 없지 않을 것이며, 수레가 지나가는 길 좌우에 또한 반드시 바야흐로 병든 사람들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이는 《숙종실록》 숙종 24년(1698년) 12월 12일 기록으로 돌림병(전염병)이 심해지니 임금이 거동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말리고 있는 내용입니다. 지금 온 나라에 코로나19가 퍼져가고 있음 사람들 모두 전전긍긍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조선시대는 어땠을까요? 검색어로 살펴보니 전염병 702건, 여역(癘疫) 418건, 염병(染病, 장티푸스) 154건, 천연두 74건, 여기(癘氣) 47건, 역병(疫病) 27건, 홍역 17건 등이 나왔습니다. 특히 《영조실록》 영조 19년(1743년) 12월 29일 기록에는 “이 해에 여러 도에 여기(癘氣)가 크게 번져 사망자가 6, 7만 명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국립국어원(원장 소강춘)은 국민이 어떤 공공용어*를 어려워하는지 알아보기 위하여 실시한 <공공용어 대국민 인식 조사> 결과를 발표하였다. 이번 조사는 일반 국민 1,000명과 공무원 102명을 대상으로 2019년 10월부터 11월까지 진행하였으며, 설문 목록은 2016년에서 2018년까지의 중앙행정기관의 보도자료와 정부 업무보고 자료 등에서 추출한 공공용어*로 구성하였다. * 공공용어: 공문서 등에서 사용되는 행정용어, 정책용어 등 조사 대상 140개 용어 중 공무원이 모르는 용어 50% 넘어 조사 대상인 140개의 공공용어 중 일반 국민이 잘 모르겠다고 응답한 용어는 97개에 이르며, 공무원 스스로도 잘 모르는 말이라고 응답한 용어도 81개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사실은 공공언어 개선을 위해서는 중앙행정기관을 비롯한 공공기관의 적극적인 인식 개선이 시급하다는 점을 시사한다. 공무원도 모르는 말로 표현된 정책에서 좋은 성과를 기대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한자어는 오래전부터 쓰였지만, 일상생활에서는 자주 접할 수 없는 용어를, 외래어는 최근 들어 쓰이기 시작한 용어들을 대체로 어려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강세황이 태어난 지 300해가 되던 때인 지난 2013년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조선시대 위대한 화원 강세황전”이 열린 적이 있었습니다. 강세황은 보통 물러나 쉴 나이인 61살에 노인과거에 장원급제한 뒤 왕릉을 지키는 벼슬인 능참봉으로 시작하여 6년 만에 정2품 한성부판윤에 오르는 초고속 승진을 했지요. 그러나 이 초고속 승진은 누가 뒤를 보아준 덕이 아니라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을 때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의 능력을 스스로 인정하여 갈고닦아 드디어 사람들의 인정을 받은 것입니다. 그런 강세황에게는 자신이 직접 그린 국립부여박물관 소장의 강세황 자화상을 비롯한 몇 점의 초상화가 전해옵니다. 특히 개인 소장인 보물 590-2호 ‘강세황상’은 정조 임금이 아끼던 신하 강세황이 71살이 되어 기로소(조선시대 고위 퇴임관리들의 예우를 목적으로 설치한 기구)에 들어간 것을 기려 궁중화가인 이명기에게 명하여 그린 것입니다. 그래서 그림 오른쪽 위에는 정조가 짓고, 문신 조윤형이 쓴 제문이 적혀있습니다. 이 작품은 조선 초 이후 왕실에 공헌한 신하들을 위해 궁중화가를 시켜 그리던 공신초상의 형식을 따르고 있지요. 다만, 이 작품은 전통적인 화풍을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의성 탑리리 오층석탑 - 이달균 마을보다 탑이 먼저 있었는지도 모른다 덜 자란 두 그루 소나무를 굽어보는 의젓한 탑신의 무게 하늘이 낮게 드리웠다 추사의 세한도보다 석탑은 더 오래 풍장의 겨울을 온몸으로 견뎌왔다 어느새 눈발 그쳤지만 새들은 가고 없다 절묘하다. 사진작가의 렌즈는 추사의 세한도를 그대로 찍어낸다. 우리가 찾은 날, 눈발은 그쳤으나 조금씩 바람에 쌓인 눈이 이따금씩 날리고 있었다. 진입로는 잘 닦여져 있고 화장실도 잘 갖춰져 있다. ‘탑리리’라는 이름을 보면 어쩌면 마을보다 먼저 탑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작은 언덕 위에 오롯이 선 탑은 연륜에 견주어 보존 상태가 좋다. 석탑이지만 목조건축의 모양을 띠고 있는데, 단층의 지붕돌 귀퉁이가 살짝 들린 것이 그런 특징을 잘 나타내준다.(시인 이달균)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서재필 박사는 남 먼저 자전차를 타고 다니엿다. 그는 갑신년 김옥균 정변 때 멀니 미국에 망명하야 그 나라에 입적까지 하엿다가 그후 13년만에 정부의 초빙에 의하야 귀국함에 미국에서 타던 자전차를 가지고 와서 타고 다니엿는데 그때에 윤치호 씨는 그에게 자전차 타는 법을 배워가지고 또 미국에 주문을 하야다가 타고 다니엿다. 우에 말한 것과 가티 그 때만 하야도 아즉 일반의 지식이 몽매한 까닭에 그들의 자전타 차고 다니는 것을 보고 퍽 신기하게 생각하야 별별 말을 다 하되 서 씨는 서양에 가서 양인의 축지법을 배워가지고 하루에 몃 백리 몃 천리를 마음대로 다니더니 윤 씨는 대데가전의 차력약(借力藥)이 잇서서 남대문을 마음대로 훌훌 뛰여 넘어 다니녀니하고 또 자전차를 안경차니 쌍륜차니 하는 별명까지 지여섯다.” 위는 일제강점기 잡지 《별건곤 제16~17호(1928년 12월 1일 발행)》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것을 보고 축지법을 써서 하루 몇백 리 몇천 리를 마음대로 다닌다고 합니다. 그런데 구한말 조선에 온 선교사이며 의사였던 알렌이 1908년 펴낸 책 《조선견문기》에도 선교사들이 자전거를 처음 탄 이야기가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