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청중이 모인 판에서 부채를 든 한 명의 소리꾼이 북 반주를 하는 고수의 장단에 맞추어 창(소리), 아니리(말), 발림(몸짓)을 섞어가며 서사적인 이야기를 엮어내는 공연예술 ‘판소리’는 2013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 목록에 올랐습니다. 판소리는 시대를 거쳐 전승되면서 지역적 특성과 전승 계보에 따른 유파가 생겼는데 19세기 전반, 곧 전기 팔명창시대에는 대체로 서편제, 동편제, 중고제가 먼저 떠오릅니다. 여기서 ‘서편제’란 광주ㆍ나주ㆍ보성 등의 서쪽지방을 기반으로 한 유파인데 철종 때의 명창 박유전(朴裕全)으로부터 시작되었으며, 비교적 감상적이며 슬픈 느낌이 드는 계면조(界面調)를 많이 쓰고 발성을 가볍게 하며, 소리의 꼬리를 길게 늘이고 정교한 시김새로 짜여 있습니다. 또 동편제는 운봉ㆍ구례ㆍ순창ㆍ흥덕 등 전라도 동북지역에 전승되어 오는 소리제로 순조 때의 명창 송흥록(宋興祿)으로부터 시작되었으며, 비교적 장중하고 꿋꿋한 느낌을 주는 우조(羽調)를 많이 쓰고 발성을 무겁게 하며 소리의 꼬리를 짧게 끊고 굵고 웅장한 시김새로 짜여 있지요. 그밖에 중고제는 ‘비동비서(非東非西)’라 하여 동쪽도 서쪽도 아닌 것이라고 말하며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구한말 가장 앞장서 일본에 맞서 싸운 을미의병장 척암 김도화(金道和, 1825~1912)의 문집 책판이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돌을 맞아 고국으로 돌아왔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1895년 을미사변과 단발령을 계기로 전국의 유생들이 일으킨 을미의병 당시 경북 안동 지역 의병장으로 활약한 척암 김도화의 문집 책판 1장을 지난달 독일 경매에서 낙찰 받아 국내로 들여왔다고 11일 밝혔다.” 이는 지난 4월 11일 밝혀진 나라밖에 있던 우리 문화재의 귀환 소식입니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사장 지건길)에 따르면 나라밖으로 빠져나간 한국문화재는 확인된 것만으로도 올해 4월 기준 21개 나라에 182,080점이 있다고 합니다. 그 가운데는 일본 76,382점, 미국 50,532점, 독일 12,052점, 중국 10,991점 등이 있습니다. 특히 세종의 셋째 아들 안평대군의 꿈을 천재 화백 안견이 화폭에 옮겨 담은 그림으로 일본 덴리대학교 중앙도서관에 있는 “몽유도원도”, 독일 《구텐베르크 성서》보다 78년 앞서 찍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 활자로 인쇄된 책으로 현재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있는 《직지심체요절(直指心體要節)》 등이 대표적입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조선민중아! 우리의 철천지원수는 자본제국주의의 일본이다. 2천만 동포야! 죽음을 각오하고 싸우자! 만세, 만세, 조선독립만세!” 이는 93년 전인 1926년 오늘(6월 10일) 순종의 장례일[인산일(因山日)]을 기해 일어났던 만세시위 때 뿌려진 격문 내용입니다. 이날 5,000장의 격문을 만든 사람은 ‘6ㆍ10만세운동’의 중심에 섰던 학생들입니다. '6ㆍ10만세운동’은 1919년 3ㆍ1운동을 계기로 나라밖 곳곳에서 움텄던 독립운동이 일제의 교묘한 술책과 탄압에 점차 힘을 잃어가고 있던 때여서 그 의미가 더 큽니다. 1926년 6월 10일 아침 순종의 대여(임금의 상여)가 서울 종로3가 단성사를 지날 무렵 중앙고보생인 이선호가 격문을 뿌리며 “조선독립 만세!”를 외쳤습니다. 이후 종로 관수교와 동대문 일대에서 모여 있던 연희전문학교와 중동고보 학생들도 함께 만세를 불렀습니다. 이로써 시작된 6ㆍ10만세운동은 전라도 순창ㆍ고창과 충청도 홍성ㆍ공주, 평안도 정주, 경상도 울산 등으로 퍼져 나갔지요. 만세운동은 학생들뿐만이 아니라 군중들도 합세하여 제2의 3ㆍ1운동처럼 펼쳐졌지만 군대까지 동원한 일제에 저지당하고 말았습니다. 6ㆍ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사진작가 손묵광이 의욕적으로 펼쳐 보이는 「한국 석탑의 기억록 전」이 6월 12일부터 25일까지 롯데백화점 마산점 「더 갤러리」에서 열린다. 손묵광 작가는 나라 안 곳곳에 있는 석탑 가운데 국보 29기, 보물 165기 전체를 대상으로 1년 6개월 동안 지구 한 바퀴를 도는 거리의 대장정을 소화했는데, 현재 수리 발굴 작업 중인 10여기를 제외한 모두를 카메라에 담았다. 그 가운데서 엄선한 30편을 선보인다. 석탑은 우리 민족의 역사이며 혼이다. 아득히 왕조의 흥망을 지켜본 증거일 뿐만 아니고, 전쟁의 참상을 지나왔으며 화마와 풍상을 견디며 오늘에 이른 건축물이다. 지리산, 월출산, 설악산 등등 탑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찾아다닌 소중한 사진들을 선보이는 자리다. 손묵광은 이번 전시를 앞두고 이렇게 소회를 밝혔다. “한국의 석탑을 저만 찍은 것은 아닙니다. 중앙일보, 박경식(단국대 교수), 전계형(경상대 교수) 등이 저서를 통해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안내 도판사진이 아니라 작가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예술사진을 찍어 차별화를 시도하려는 노력을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빛의 예술인 한 컷의 사진을 위해 차 안에서 선잠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99년 전인 1920년 6월 7일이었습니다. 독립군은 홍범도 장군의 지휘 아래 마을 주민을 모두 대피시키고, 봉오동의 서산에 홍범도의 지휘부가, 동산에 최진동의 부대가, 남산에 신민단의 부대가 각각 숨어 있었습니다. 오후 1시경 독립군 부대는 일본군을 봉오동 골짜기로 끌어들여 기습적으로 공격했지요. 좁은 골짜기에 갇힌 신세가 된 일본군은 커다란 피해를 입고 도망쳤습니다.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발표에 따르면 이 싸움에서 죽은 일본군은157명, 다친 사람은 200여 명에 달했지요. 반면 독립군은 4명이 죽고 다친 사람이 몇명 생기는 데 그쳤습니다. 3.1만세운동이 일어난 다음 해인 1920년 중국 지린성 왕칭현 봉오동에서 한국 독립군 연합부대가 일본군 제19사단의 월강추격대대를 무찌르고 크게 승리한 싸움이 바로 봉오동전투였습니다. 홍범도(洪範圖, 1868~1943) 장군은 자신이 이끈 대한독립군(大韓獨立軍)과 안무(安武, 1883~1924)가 이끈 국민회군(國民會軍), 최진동(崔振東, ?~1945)이 이끈 군무도독부(軍務都督府)가 연합하여 결성된 대한북로독군부(大韓北路督軍府)와 한경세(韓景世)가 이끈 대한신민단(大韓新民團)의 독립군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국립국어원(원장: 소강춘)은 ‘전문용어 표준화 민관 합동 총괄 지원단(이하, 총괄 지원단)’을 올해 6월부터 새롭게 발족한다. 민간인과 각 부처 정책 전문가, 용어 전문가들로 구성된 총괄 지원단은 발굴조와 분석조로 나누어 각 부처 소관 전문 분야에서 일부 전문가들만 사용해 오던 전문용어를 발굴하고, 이렇게 찾아낸 전문용어를 분석하여 일반인도 이해할 수 있는 말로 다듬어 나간다. 세계화, 4차 산업혁명 등 국가 간 과학 기술 교류와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는 시대에 기술과 더불어 이를 가리키는 외국어 전문용어의 유입도 점점 거세지고 있다. 또한, 어려운 한자어와 일본어식 용어들이 많이 쓰여 일부 전문가들만 소통할 수 있는 분야도 적지 않다. ․유병인구(有病人口): 병에 걸린 사람 수 또는 ‘환자 수’ ․권현망(權現網): 멸치를 잡기 위한 촘촘한 그물망 ․설치도(設置渡): 건설 계약 용어 중 하나로, 납품 업체가 자재 납품뿐만 아니라 설치까지 완료하는 조건을 뜻함. ․자재양중(資材揚重): 자재 운반 ․사게후리/사게부리(下げ振り): 수직 추 ․코킹(caulking): 틈새 메우기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오늘은 24절기 가운데 아홉째 망종입니다. 망종(芒種)이란 벼, 보리 같이 수염이 있는 까끄라기 곡식의 씨앗을 뿌려야 할 적당한 때라는 뜻이지요. “보리는 익어서 먹게 되고, 볏모는 자라서 심게 되니 망종이요.”라는 속담이 있는데 망종 무렵은 보리를 베고 논에 모를 심느라 눈코 뜰 새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때는 “발등에 오줌 싼다.”라고 할 만큼 한해 가운데 가장 바쁜 때입니다. 제주도에서는 망종날 풋보리 이삭을 뜯어서 손으로 비벼 보리알을 모은 뒤 솥에 볶아서 맷돌에 갈아 체로 쳐 그 보릿가루로 죽을 끓여 먹으면 여름에 보리밥을 먹고 배탈이 나지 않는다고 믿었습니다. 또 전남 지방에서는 이날 ‘보리그스름(보리그을음)’이라 하여 풋보리를 베어다 그을음을 해서 먹으면 이듬해 보리농사가 풍년이 든다고 합니다. 또한, 이날 보리를 밤이슬에 맞혔다가 그 다음날 먹는 곳도 있는데 허리 아픈 데가 좋아지며, 그해에 병이 없이 지낼 수 있다고 믿었지요. 그런데 보리 베기 전에는 "보릿고개 “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일제강점기인 1931년 6월 7일 자 동아일보에도 ”300여 호 화전민 보리고개를 못 넘어 죽을 지경"이라는 기사가 있었던 것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세상에 이름처럼 중요한 것이 없다. 우리 천년의 역사 속에서 우리의 몸에 맞는 음악을 우리의 옷처럼 입고 키워왔으나 어느 날 갑자기 밖에서 들어온 옷이 우리 옷이 되어 원래 부르던 이름이 바뀌었다. 어느새 우리 음악은 국악이니 전통음악이니 하는 특수 분야로 불리면서 제대로 된 자식이 아닌 의붓자식 취급을 받는 상황이 계속되어 왔다.“ 이는 <우리음악 정명(正名)찾기> 모임 발기 취지문에 있는 말이다. 어제 저녁 4시 서울 세종대로 광화문빌딩 20층에서는 국악계를 중심으로 전통문화예술 전문가와 학자, 언론인들이 모인 가운데 김연갑 아리랑학교 교장의 사회로 “우리음악 정명(正名)찾기 추진위원회> 창립기념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토론회 시작에서 <우리음악 정명찾기> 모임 추진위원장을 맡은 김종규 문화유산국민신탁 이사장은 “평소 문화예술을 사랑하는 모임을 통해 우리 전통음악에 붙여진 ‘국악’이라는 이름이 어쩌면 시대에 맞지 않을 수 있다는 의견이 있었고, 그 점을 다시 점검한다는 모임이 결성된다고 해서 우리 음악도 소중한 문화유산이기에 이 유산이 잘 되기를 마음으로 어려운 직책을 맡았다. 어떤 이름이 되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지금부터 약 1,150여 년 전 승언 장군에게는 ‘미도’라는 아름다운 부인이 있었다. 장군과 부인은 서로 무척이나 사랑해 정이 나날이 깊어만 갔다. 그러던 어느 날 나라의 명령을 받고 출정하기 위해 장군은 부인과 헤어졌다. 부인 미도는 날마다 견승포 바위에 올라가 속을 태우며 남편이 돌아오길 눈이 빠지도록 기다리며 애를 태웠다. 이렇게 수년을 기다리다 부인 미도는 바위 위에서 죽고 말았다. 그러자 그 바위가 남편이 돌아오길 기다리며 서 있는 부인의 모습으로 변해 버렸고, 그 옆에 커다란 바위 하나가 또 솟아올랐는데 세상 사람들은 그 두 바위를 ‘할미할아비바위’라 불렀다.” 이는 충남 태안군 안면도의 명승 제69호 “꽃지 할미ㆍ할아비 바위”에 서린 가슴 아픈 전설입니다. 이 꽃지 할미ㆍ할아비 바위는 “할방ㆍ할망 바위”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밀물 때에는 바다 위의 섬이 되고 썰물 때에는 뭍(육지)과와 연결되어 하루에도 몇 번씩 변하는 변화무쌍하고 다양한 경관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해수욕장의 모래 언덕, 바다 등과 어우러져 바위 뒤로 넘어가는 해넘이 경관이 뛰어나 우리나라 서해안 해넘이 감상의 대표적 명소입니다. 이곳 명소에는 특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나는 착한 사람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솔직히 공감 능력이 제로였다. 어떻게 하면 살아남을까, 어떻게 하면 돈을 더 벌까? 사람을 보지 않고 모든 것을 일로 봤다. 그러다보니 내 가슴이 텅 빈 것 같았다. 그때 나와 아주 반대인 사람을 만났다. 돈 같은 것에는 전혀 관심도 없고 오직 사람만을 향하는 사람이었다. 그 사람을 관찰해보니 내가 잘못 살아온 것 같았고 그때부터 새로운 생각을 했다. 나의 분석력을 가지고 공감능력을 배워서 사람에게 다가가는 방법을 고민했고 사회적 기업을 배우기 시작했고, 영리 기업도 사회적 가치를 꼭 실현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이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제안한 사회적 가치 민간축제인 ‘소셜밸류커넥트 2019(Social Value Connect 2019·SOVAC)’에서 최 회장이 한 말입니다. 재벌기업 회장의 입에서 나왔을까 의심스러운 얘기였습니다. ‘소셜밸류 커넥트 2019’는 '사회적 가치'에 관한 모든 것을 한 자리에서 체험할 수 있는 대규모 민간축제로 SK그룹 최태원 회장 제안으로 사회적 가치에 관심이 있는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협력과 교류 마당이 될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국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