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국립한글박물관(관장 박영국)은 문화가 있는 날 등 다양한 4월 <한박공감> 문화행사를 연다. 문화가 있는 날 공연 <청사초롱> 4월 문화가 있는 날에는 한국문학을 공연으로 만나보는 무대가 열린다. 김유정 작가의 단편소설 <동백꽃>, <봄봄>을 연극으로 재구성한 이번 공연은 원작 소설에 나오는 해학적이고 향토적인 언어를 최대한 살린 대사로 바꾸어 한글 표현의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작품 속에는 나오지 않는 <동백꽃>과 <봄봄> 주인공들의 결혼에 대한 이야기를 상상력으로 풀어내 순수한 사랑과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를 전달할 예정이다. 소설을 읽지 않은 사람도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이번 공연은 오는 4월 24일(수) 낮 2시, 4시에 강당에서 진행되며 8살 이상 관람 가능하다. 토요 문화행사 <버드나무를 타고 올라간 용궁> 4월 둘째 토요일에는 부모에 대한 효, 형제의 우애가 담긴 인형극을 공연한다. 이번 공연은 여덟 개의 한국화를 배경으로 진행되는 테이블 인형극으로, 두 형제가 돌아가신 아버지의 유언을 실행하는 이야기를 통해 부모님에 대한 효와 형제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광주광역시 남구 대촌동 칠석마을에는 국가무형문화재 제33호 “광주칠석고싸움놀이”가 전승되고 있습니다. 고싸움놀이는 주로 전라남도 일대에서 정월 대보름 전후에 행해지는 격렬한 남성집단놀이입니다. 고싸움의 고란 옷고름, 고맺음, 고풀이에서 보듯이 노끈의 한 가닥을 길게 늘여 둥그런 모양으로 맺은 것을 말하며, 2개의 고가 서로 맞붙어 싸움을 벌인다 해서 고싸움이라 부르는 것이지요. 고몸체는 단단해야 하므로 큰 통나무를 속에 넣고 동아줄로 감아 곧은 줄을 만듭니다. 고머리나 고몸체 줄은 사람이 걸터앉아도 두 다리가 땅에 닿지 않을 정도로 크지요. 고가 만들어지면 윗마을과 아랫마을이 공동으로 마을 앞에서 간단한 고사를 지내고 집집마다 돌며 마당밟이굿을 합니다. 고를 메고 고싸움 하러 나가기 전에 마을을 돌며 풍물굿으로 흥을 돋우지요. 양쪽의 고가 서로 가까이 다가서면 고를 높이 들었다 내렸다 하며 기세를 올립니다. 놀이꾼은 줄패장, 고를 메는 몰꾼, 고의 몸과 꼬리를 잡는 꼬리줄잡이, 치배(풍물굿에서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 등으로 구성됩니다. 우두머리인 줄패장은 고 위에 앉아 싸움을 이끌고, 부장들은 깃발을 휘둘러 기세를 북돋웁니다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지난 2월 18일 대구신문에는 “미국을 사로잡은 ‘영주대장간 호미’”라는 제목의 기사가 올랐습니다. 경북도가 지정하는 ‘향토뿌리기업’과 ‘산업유산’에 동시 지정된 <영주대장간>에서 만든 농기구 ‘호미(YongjuDaejanggan ho-mi)’가 지난해 미국 온라인 쇼핑 사이트 ‘아마존’에서 대박을 쳤던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4천 원가량 하는 호미가 14.95~25달러(1만6천원~2만8천원)로 비싸게 나왔지만 ‘원예’ 부분 인기품목(탑)10에 오르며 2천 개 이상 팔렸다고 하지요. ㄱ자로 꺾어진 ’호미‘는 손삽만 쓰던 외국인들에게는 ’혁명적 원예용품‘이라는 평가를 받았고, “호미 쓰기 전에는 정원을 어찌 가꿨는지 의문이다.”, “덤불 베는데 최고”라는 따위의 구매평이 쏟아졌습니다. 영주대장간 주인 석노기 선생은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매형 대장간에 들어가 대장 기술을 배우기 시작한지 52년째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데 이제 국제적으로 명장임을 인정받고 있는 것입니다. 호미를 만들 때도 도라지 캐는 용, 밭 매는 용, 안동에서 쓰는 호미 등 쓰임새별ㆍ지역별로 종류를 다양화했는데 지금 영주대장간에서는 5가지의 호미를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지난 3월 24일 KBS1 텔레비전 <진품명품> 프로그램엔 일제강점기 일본인이 한국 호랑이를 사냥한 이야기를 기록한 호랑이 연구의 귀중한 사료인 책 《정호기(征虎記)》가 출품되었습니다. 《정호기》는 일본인 사업가 야마모토 다다사부로가 1917년 당시 조선의 호랑이를 사냥하기 위해 도쿄를 출발, 약 한 달간 머무르며 벌인 호랑이 사냥기록입니다. 이날 방송은 아픈 역사가 담긴 유물이라며 감정가를 내놓지 않았습니다. 야마모토는 1917년 11월 10일 사냥에 출발해 20일 만에 경성으로 돌아왔는데 호랑이 두 마리, 표범 한 마리, 수호(水虎·호랑이와 표범의 혼혈) 한 마리, 곰 한 마리 등 포획물이 기차 한 칸을 가득 채웠습니다. 그리고 그해 12월 20일 도쿄 제국호텔에서 잔인하게도 호랑이 박제를 만들어 놓고 '호랑이 고기 시식회'를 열었습니다. 이 시식회는 야만인 같은 행위였다는 평가를 받지요. 물론 1915부터 1916년까지 2년 동안 호랑이ㆍ표범 같은 맹수의 공격으로 사상자 351명이 발생했고, 가축 피해도 1만3,830마리에 달했다는 기록을 보면서 해로운 동물을 잡는 일이 잘못됐다고만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또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109년 전인 1910년 오늘(3월 26일)은 한국 침략의 원흉이며 동양평화의 파괴자인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안중근 의사가 여순감옥에서 순국한 날입니다. 안중근 의사는 일제 강점기 독립투쟁사에서 가장 빛나는 독립투사로 안중근 의사 뒤에는 위대한 어머니 조마리아 지사가 있습니다. 조마리아 애국지사는 일제가 안중근 의사에게 사형을 언도하자 “이토가 많은 한국인을 죽였는데, 이토 한 사람을 죽인 것이 무슨 죄냐?”며 일제를 강하게 질타하였지요. 또 사형 직전의 안중근 의사에게 “네가 항소를 한다면 그것은 일제에게 목숨을 구걸하는 짓이다. 네가 나라를 위해 이에 이른즉 다른 마음먹지 말고 죽으라. 옳은 일을 하고 받는 형(刑)이니, 비겁하게 삶을 구하지 말고 대의에 죽는 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다”라고 당부하였다고 합니다. 그런 위대한 어머니의 아들 안중근 의사에 대해 일본 검사는 "일본인으로서 이런 말을 하게 된 것은 가슴 아픈 일이지만, 안중근은 내가 만난 사람들 가운데 가장 위대한 사람이었다."라고 했으며, 중국의 석학 '장타이옌'은 "안중근은 조선의 안중근, 아시아의 안중근이 아니라, 세계의 안중근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또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1919년 3월 1일 낮 2시 태화관에서 손병희 선생을 비롯한 29명의 민족대표들은 태극기에 경례를 한 다음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대한독립만세 3창을 합니다. 그 직후 민족대표들은 경무총감부로 압송되었으며, 징역 1년 6개월에서 3년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습니다. 그런데 민족대표 가운데 이승훈 선생은 누구보다도 강경한 독립정신 탓에 가장 오래 옥고를 치러 3년이 넘은 1922년 7월 22일에야 출옥하였지요. 그 이전 이승훈 선생은 1907년 민족운동의 요람이 된 오산학교를 세우고 교장이 되어 교육운동에 매진했습니다. 또 1910년 말 안중근의 4촌 동생 안명근이 독립 군자금을 모금한 일로 ‘안악사건’이 발생하자, 선생은 이에 연루되어 제주도로 유배되었습니다. 그리고 1911년 9월 일제는 ‘테라우치 총독 암살 음모 사건’을 조작하여 민족운동가들을 대거 체포한 ‘105인 사건’을 일으켰는데 일제는 제주도에 유배되어 있던 선생을 이 사건 주모자로 몰아 온갖 고초를 겪게 하였지요. 그 결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6년을 선고 받고 옥고를 치르다가 1915년 2월에야 가출옥하였습니다. 3.1만세운동 뒤 옥고를 치르다 풀려난 선생은 고향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국립한글박물관(관장 박영국)은 주한 헝가리 대사관(대사 초머 모세Csoma Mózes)로부터 헝가리 첫 한글사전 ‘웽조사전’을 기증받고, 2019년 3월 21일 기증식을 열었다. ‘웽조사전’은 헝가리 학술원에서 1957년 펴낸 헝가리어-한국어 사전으로 2만 3천개의 낱말이 올려 있다. 사전은 헝가리 최초의 한국학자 쇠베니 얼러다르(Dr Sövény Aladár, 1914~1980) 박사의 주도로 만들어 졌으며, 이름은 러시아어로 헝가리를 뜻하는 ‘웽그리아(Vengrija)’의 ‘웽’과 조선의 ‘조’를 조합한 것이다. 쇠베니 얼러다르 박사는 1951년 헝가리가 한국 전쟁 중 공산주의 국가 사이 연대 차원에서 초청한 북한 전쟁고아에게 헝가리어를 가르치면서 한국과 인연을 맺었다. 1952년 헝가리 교육부로부터 사전편찬사업을 제안 받았으며, 1954년~1956년 헝가리 대사관의 문화관으로 평양에 주재하면서 사전 펴냄을 이끌었다. 1953년에 완성된 초판은 1957년 정식 출판된 ‘웽조사전’의 바탕이 되었으며, 초판에서 한글 낱말들은 필사(손글씨)로, 헝가리어는 타자기로 제작 되었다. 헝가리 학술원 출판사는 사전의 정식 펴냄을 위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나는 특별한 학식이 없어 나라를 별달리 보국할 방책이 없으나 언제든지 우리나라가 일본을 대하여 독립전쟁을 개시하는 날에는 나는 반드시 칼을 차고 총을 메어 떨어지는 날 가을 풀에 말머리 행오(行伍) 앞에서 나의 한 창자 더욱 피를 솟을 뿐이다.” 이는 일제 한국침략의 앞잡이로 광분하던 미국인 스티븐스를 저격한 장인환 의사가 한 말입니다. 장인환 의사는 111년 전인 1908년 3월 23일 전명운 의사와 함께 스티븐스를 총으로 응징했습니다. “한국에는 이완용같은 충신이 있고 이토 같은 통감이 있으니 한국에 큰 행복이요 동양에 다행이다. 내가 한국 형편을 보니 광무황제께서 실덕(失德)이 태심(太甚)하고 완고당들이 백성의 재산을 강도질하고 백성이 어리석어 독립할 자격이 없으니 일본서 빼앗지 아니하면 벌써 아라사에 빼앗겼을 터이라고 일본 정책을 도와 말하며 신문에 낸 것이 사실이니 다시 정오할 것이 없다.” 이렇게 말하는 스티븐스를 장인환ㆍ전명운 의사는 그냥 내버려 둘 수가 없었습니다. 스티븐스가 일본 정부와 한국 통감부의 특별 밀명을 띠고 워싱턴으로 가기 위해 페리 정거장에 도착, 승용차에서 내려 페리빌딩에 들어서려는 순간 육혈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오늘은 24절기의 넷째 춘분(春分)입니다. 이날 해가 남쪽에서 북쪽으로 향하여 적도를 통과하는 점, 곧 황도(黃道)와 적도(赤道)가 교차하는 점인 춘분점(春分點)에 이르렀을 때여서 낮과 밤의 길이가 같다고 합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해가 진 뒤에도 얼마간은 빛이 남아 있기 때문에 낮이 좀 더 길게 느껴집니다. 춘분 무렵엔 논밭에 뿌릴 씨앗을 골라 씨 뿌릴 준비를 서두르고, 천둥지기 곧 천수답(天水畓)에서는 귀한 물을 받으려고 물꼬를 손질하지요. 옛말에 ‘춘분 즈음에 하루 논밭을 갈지 않으면 한해 내내 배가 고프다.’고 하였습니다. 또 춘분은 겨우내 밥을 두 끼만 먹던 것을 세 끼를 먹기 시작하는 때입니다. 지금이야 대부분 사람들이 하루 삼시세끼를 먹지만 예전엔 일을 하지 않는 농한기 겨울엔 세 끼를 먹는 것이 부끄러워 점심은 건너뛰었지요. 여기서 “점심(點心)”이란 말은 아침에서 저녁에 이르기까지의 중간에 먹는 곧 허기가 져 정신이 흐트러졌을 때 마음(心)에 점(點)을 찍듯이 그야말로 가볍게 먹는 것을 뜻했습니다. 하지만, 농사를 새롭게 시작하는 때, 일꾼들의 배를 주릴 수 없었기에 세 끼를 먹기 시작했을 것입니다. 그밖에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吹花擘柳半江風(취화벽류반강풍) 꽃 날리고 버들가지 날리며 강바람 부는데 檣影搖搖背暮鴻(장영요요배모홍) 돛대 그림자 흔들리는 저녁배 위에 기러기 등져 있네 一片鄕心空倚柱(일편향심공의주) 한 조각 고향 생각에 부질없이 기둥에 기대서니 白雲飛度酒船中(백운비도주선중) 흰 구름은 날아서 술 실은 배를 지나네 이 시는 제천정에서 중추부사 송처관의 운(韻)에 차운(次韻)한 홍겸선의 시에 화답한 김종직의 한시입니다. 강바람이 거세어 꽃이 날리고 버들가지가 이리저리 날리는데, 저 멀리 돛대가 흔들거리는 배가 떠 있습니다. 빨리 고향으로 돌아가고픈 생각이 간절해 기둥에 기대서 있으니, 술을 실은 배 위로 흰 구름이 부질없이 지나갑니다. 수채화를 보는 듯 아름다운 한 편의 꿈같은 시입니다. 김종직은 조선전기 병조참판, 홍문관제학, 공조참판 등을 지낸 문신이며 학자였습니다. 정몽주와 길재의 학통을 계승하여 김굉필, 조광조로 이어지는 조선시대 도학 정통의 중추적 역할을 한 사람입니다. 그가 생전에 지은 <조의제문(弔義帝文)>은 조선 성종 때 세조의 왕위찬탈을 풍자해 쓴 글로 무오사화가 일어나 많은 유신들이 죽임을 당하고 김종직은 부관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