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경복궁관리소(소장 우경준)는 경복궁과 서촌 지역 방문 관람객들의 편의를 높이고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하여 경복궁의 서문 영추문(迎秋門)을 오는 12월 6일부터 활짝 연다. ‘경복궁 영추문’은 조선 시대 문무백관들이 주로 출입했던 문으로, 1592년 임진왜란 당시 경복궁이 불 탄 뒤 고종 때 흥선대원군에 의해 재건되었다. 일제강점기인 1926년에 전차 노선이 부설된 후 주변 석축이 무너지면서 같이 철거되는 아픔을 겪기도 했으나, 1975년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현재 경복궁 출입문은 남쪽의 광화문, 북쪽의 신무문, 동쪽의 국립민속박물관 출입문 등 총 세 곳이다. 서쪽의 영추문을 개방하면 동ㆍ서ㆍ남ㆍ북 모든 곳에서 출입할 수 있어 시민들의 경복궁 접근성이 높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영추문은 경복궁의 다른 출입문의 출입시간과 입장료(3000원)를 똑같이 적용한다. 개방일인 12월 6일 오전 11시에는 ‘영추문 개방 기념행사’가 진행된다. 식전공연을 시작으로 영추문 주변 지역 주민이 참여하는 개문의식과 축하 공연 등이 진행될 예정이며, 행사 당일 경복궁 입장은 무료다. 우리문화신문은 그동안 이 영추문 개방에 대한 관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대한문(大漢門)은 고종이 새로 건축한 덕수궁의 정문이니 이름을 처음에는 대안문(大安門)으로 하얏다가 대안이란 안(安)자가 계집녀 자에 갓씨운 글자이고 그 대궐 짓자 양장하고 모자 쓴 녀자 배정자의 출입이 빈번하야 상서롭지 못하다는 말쟁이의 말로 인연하야 대한문으로 고치엇다. 이 문이야 말이지 여러 대궐문중에 제일 나어리고 팔자 사나운 문이다. 이 문이 비린 바람 피부속에서 건축하기 시작하얏스니 말하자면 나흘대부터 병신으로 생긴셈이다. 준공되며부터 조선의 국운은 점점 서산에 떨어지려는 해와 가트며 벌별 무서운 꼴 우수운 꼴을 꼴을 다보고 격것다.” 이는 일제강점기 잡지 《별건곤》 제65호(1933년 07월 01일 발행)에 실린 “팔자(八字) 곳친 경성시내(京城市內), 육대문(六大門) 신세타령(身勢打鈴)”이란 제목의 기사입니다. 대한문은 서울 중구 정동에 있는 덕수궁의 정문(正門)을 이르는데 원래의 이름은 대안문이었습니다. 1899년 3월부터 1906년 4월 25일까지는 가로 347㎝, 세로 124㎝ 크기의 “大安門”이란 현판이 걸려 있었지요. 대한제국 시기에 대신을 지낸 민병석이 '크게 편안하다'는 의미로 썼다고 합니다. 이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바람은 지동치듯 불고 구진비는 붓듯이 온다 눈정에 거룬님을 오늘밤에 서로 만나자 허고 판첩처서 맹서 받았더니 / 이 풍우 중에 제어이 오리 진실로 오기 곧 오랑이면 연분인가 하노라 어제(11월 24일) 종로 부암동 무계원에서는 여창가곡 “우락”이 청아하게 울려 퍼졌다. 위 노래 주인공은 아마도 기생인 듯한데 임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심정이 잘 드러난다. 주인공은 “아무리 맹세하고 약속했지만 이 폭풍우 중에 과연 올까?”라고 의심스러워한다. 그래도 한 자락 바람은 만일 온다면 우리는 진정 인연일 것이라는 가냘픈 기다림이다. 이 노래를 하는 기생은 과연 그날 밤 임과 꿈같은 만남을 이루었을까? 우리나라 고유의 정형시인 시조시에 곡을 붙여서 관현악 반주에 맞추어 부르는 우리나라 전통음악 “가곡”, 국가 중요 무형 문화재 제30호로 지정된 것은 물론, 2010년 유네스코 무형 유산에도 올랐다. 가곡은 ‘삭대엽(數大葉)’ 또는 ‘노래’라고도 하며, ‘느리고 유장하게 부른다.’하여 ‘만년장환지곡(萬年長歡之曲)’이라고도 부른다. 이날 우락을 부른 이는 국가무형문화재 제30호 가곡이수자이며, KBS국악대상 기악상 수상자 황숙경 명창이다.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국립한글박물관(관장 박영국)은 우리말 사전의 발자취를 소개하는 기획특별전 <사전의 재발견>의 연계 강연으로 국어사전의 역사와 변화, 말광(사전)에 담긴 문화 인식을 살펴보는 강연을 두 차례 연다. 국어사전 그 가치와 역사, 그리고 활용 방안(홍윤표 교수) 11월 26일(월) 낮 3시에는 국립한글박물관 개관위원장이자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한 홍윤표 교수에게 말광(사전)의 역사와 활용 방법에 대해 들을 수 있다. 인류는 의사소통을 통해 삶꽃(문화)를 창조하고 축적시켜서 오늘날과 같은 문명 생활을 이룩하였다. 삶꽃 발전의 원동력인 의사소통은 주로 말글과 글자를 통해서 이루어지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말글의 어휘가 그 중심에 있으므로 사람은 어휘의 총집합체인 말광을 꾸준히 만들고 보완해왔다. 새로운 삶꽃이 등장하면 새로운 어휘가 생기고 말광에 담기게 되는데, 이를 통해 삶꽃은 쌓이고, 재생산되며 발전하게 된다. 이 강연에서는 말모이 원고에서 종이사전, 전자사전, 인터넷사전으로 사전의 형태가 변화하고, 의성의태어, 속담, 전문어 등 특수사전으로 말광 내용이 넓어지기까지 말광의 역사와 변화에 대해 들어본다. 또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오는 12월 10~11일 문경시 주최, 문경문화원ㆍ한겨레아리랑연합회 공동주관으로 “디아스포라 아리랑, 제11회 문경새재아리랑제”가 열린다. 특히 11일에는 러ㆍ일ㆍ중ㆍ남ㆍ북 동포가 함께 만든 특별한 아리랑이 공연될 예정이어서 관심을 끌고 있다. 북한 출신 러시아 유학생이 작사하고, 사할린 동포 2세가 작곡했으며, 중국 연변 동포가 편곡한 노래 ‘카레이츠아리랑’를 부르고, 역시 사할린 동포 2세가 작곡했으며, 중국 연변 동포가 편곡한 노래 ‘아리랑나라’를 모든 출연자의 합창으로 대단원을 마무리한다. 어제(11월 22일) 낮 11시 30분 서울 광화문 에스타워에서는 이 “카레이츠아리랑”의 작곡자와 편곡자가 “디아스포라 아리랑, 제11회 문경새재아리랑제” 관계자와 간담회를 가졌다. 작곡자 김세르게이 선생은 아버지가 1941년 경북 김천에서 강제징용으로 러시아에 끌려와 탄광으로 내몰렸고, 이듬해인 1943년 사할린에서 태어난 사할린 동포 2세로 유즈노사할린스크음악전문학교를 나와서 하바롭스크에서 음악활동을 했다. 그야말로 디아스포라 동포인 셈이다. “오랫동안 많은 노래를 만들었지만 그것이 결국은 러시아 음악이었다. 따라서 민족음악을 만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국립중앙박물관은 손창근(孫昌根) 선생으로부터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1786 ~ 1856)의 걸작 <불이선란도(不二禪蘭圖)>를 기증받았다고 밝혔습니다. 이 그림은 “불이선란도(不二禪蘭圖)” 또는 “부작란도(不作蘭圖)”라고 부르는데 그림 윗부분과 왼쪽 부분에 쓴 김정희의 제시(題詩)에 따른 것입니다. 종이 바탕에 수묵으로 그렸고, 크기는 세로 54.9㎝, 가로 30.6㎝인데 김정희의 묵란도(墨蘭圖, 난초를 그린 먹그림)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그림이지요. 또 그림 왼쪽에 쓴 제시를 보면 “처음에는 달준(達俊)을 위하여 거침없이 붓을 놀려 그렸다. 단지 하나는 있을 수 있으나 둘은 있을 수 없다. 그런데 오소산(吳小山)이 보고는 이를 빼앗듯이 가져가니 우습다.”라고 썼습니다. 이를 보면 추사는 마음 내키는 대로 그림을 그렸는데 그의 벗들은 이런 그림을 빼앗듯이 가져갈 정도로 좋아했음을 알 수 있지요. 제시 가운데는 “초서(草書)와 예서(隷書)의 이상한 글씨체로 난을 그렸으니 세상 사람들이 어찌 이를 이해하고 어찌 이를 좋아할 수 있으랴.”라는 내용도 있습니다. 추사체 글씨를 언뜻 보아 괴기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오늘은 24절기 가운데 스무째인 소설입니다. 절기 이름이 작은 눈이 내린다는 뜻으로 소설(小雪)인데 추위가 시작되기 때문에 겨울 채비를 하는 때입니다. 그러나 한겨울에 든 것은 아니고 아직 따뜻한 햇살이 비추므로 작은 봄 곧 소춘(小春)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이때는 평균 기온이 5도 아래로 내려가면서 첫 추위가 옵니다. 그래서 “초순의 홑바지가 하순의 솜바지로 바뀐다.”라는 속담이 전할 정도지요. 그런가 하면 “소설 추위는 빚을 내서라도 한다.”라는 속담이 있으며, 소설에 날씨가 추워야 보리농사가 잘 된다고 믿었습니다. 또 사람들은 소설 전에 김장을 하기 위해 서두르고, 여러 가지 월동 준비를 위한 일들에 분주합니다. 시래기를 엮어 달고 무말랭이나 호박을 썰어 말리고, 목화를 따서 손을 보기도 하며, 겨우내 소먹이로 쓸 볏짚을 모아두기도 하지요. 그리고 소설 무렵엔 첫눈이 오기도 합니다. 24절기의 여덟째인 소만(小滿) 무렵 손톱에 봉숭아를 물들이고 첫눈 올 때까지 봉숭아물이 빠지지 않으면 첫사랑을 다시 만난다고 믿기도 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만이 첫눈을 기다린다 / 첫눈을 기다리는 사람들만이 첫눈 같은 세상이 오기를 기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한갈(김영조)은 배달겨레 문화인들을 만납니다. 올곧게 얼넋을 다하여 우리 겨레문화와 함께 살아가는 문화인들의 마음을 열어볼까 합니다. 그 첫 번 순서로 중국 연변 동포 석화 시인을 만납니다. 석화 시인은 연변에서 대학 때부터 문학활동을 해온 문학인으로 널리 알려졌고, 방송인과 출판인으로서도 큰 일을 해왔습니다. 석화 시인의 시에는 민족이 고스란히 담겼으며, 따뜻한 마음이 함께 하고 있음은 물론 늘 새로운 방향을 찾아나가려는 시도를 합니다. - 연변은 우리 동포들이 민족주체성을 지키고 살아온 어쩌면 나라밖 유일한 곳이다. 남의 땅에 발을 붙이며 사는 것만으로도 힘들었을 텐데 연변 우리 동포들이 이렇게 해올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세상의 모든 것은 자기의 이름으로 존재한다. 그 이름은 내가 원해서 가져지는 것이 아니고 원치 않다고 버려지는 것도 아니다. 우리의 이름은 “중국조선족”이다. 이는 우리가 원해서 불리는 것이 아니라 그런 이름으로 태어났기 때문이다. 거슬러 올라가면 우리는 그저 조선사람일 수 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경계를 넘어서게 되자 다시 말해 지금으로부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진주(晋州) 지방에 전해 내려오고 있는 교방(조선 시대 기녀들을 중심으로 하여 가무-歌舞를 관장하던 기관)계통의 무용극에 경상남도 시도무형문화재 제3호 “한량무(閑良舞)”라는 것이 있습니다. 원래 한량이란 양반 출신으로 무과(武科)에 급제하지 못한 사람, 또는 노상 놀고먹는 사람을 이르지요. 한량무는 한량과 승려가 한 여성을 유혹하는 내용을 춤으로 표현한 무언무용극으로 원래 이 춤은 조선 중기 이후 남사당패(南寺黨牌) 가운데 무동들에 의해 놀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온 나라 곳곳에서 이 한량무와 비슷한 춤들을 추었는데 거의 없어지고 오직 진주에서만 1979년도에 재연되어 지방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습니다. 이 춤은 한량을 비롯해서 승려(僧侶)ㆍ상좌(上座)ㆍ별감(別監)ㆍ색시(또는 기생)ㆍ주모ㆍ마당쇠가 등장합니다. 주인공 한량이 한 기생을 데리고 즐겁게 놀고 있을 때 승려가 나타나 이 광경을 보고 멋진 춤으로 기생의 환심을 끌자 기생은 한량을 배신하고 승려에게 간다는 남녀의 애정관계를 그린 춤입니다. 기생은 몽두리(조선 시대 기생이나 무당이 입던 옷)에 색 한삼을 끼고 족도리를 쓰지요. 승려는 진회색 장삼에 홍가사를 입고 머리에는 방갓(상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전라북도 고창군 고수면 은사리 산에 가면 천연기념물 제463호 “고창 문수사 단풍나무 숲”이 있습니다. 고창 문수사 단풍나무숲은 문수산 입구에서부터 중턱에 자리한 문수사 들머리까지 들어가는 길 약 80m 좌우 쪽 일대에 나이 100살에서 400살로 짐작되는 단풍나무 500여 그루가 자생하고 있는 숲이지요. 이 숲의 단풍나무들의 크기는 지름 30~80㎝, 나무 높이 10~15m정도이며, 특히 가슴 부분 둘레가 2m정도부터 2.96m에 이르는 늙은 단풍나무가 여럿 있는 것이 큰 특징입니다. 그런데 문화재 구역 120,065㎡ 안에는 단풍나무 말고도 고로쇠나무, 졸참나무, 개서어나무, 상수리나무, 팽나무, 느티나무 등이 섞여 있으며, 그밖에 사람주나무, 산딸나무, 물푸레나무, 쪽동백, 쇠물푸레나무, 박쥐나무, 작살나무, 초피나무, 고추나무, 쥐똥나무 들도 보입니다. 아울러 조릿대 무리가 넓게 자라고 있습니다. 이 곳 단풍나무숲은 백제 의자왕 4년(644년)에 지은 문수사의 사찰림으로 보호되는 곳입니다. 또 이 곳 단풍나무숲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그 가치가 뛰어나다는 평가입니다. 우리나라 민속에 경칩날 단풍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