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중종 때 영의정을 지낸 성희안(成希顔)은 청백리 정붕(鄭鵬, 1467 ~ 1512)의 오랜 벗이었습니다. 정붕은 성희안의 천거로 청송부사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성희안은 정붕에게 심부름꾼을 보내 부탁을 합니다. “그대 고을은 잣과 꿀이 특산물이라니 나를 위해 그것을 좀 보내주면 어떤가?”라고 말입니다. 성희안이 오랜 벗이면서 어쩌면 자신에게 벼슬을 하게 해준 은인이기에 이런 부탁쯤은 쉽게 들어줄 줄 알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정붕은 당시 권세를 휘두르던 자신의 외종사촌 유자광에게 한 번도 찾아가지 않을 정도로 벼슬을 마다했을 뿐 아니라 세상에 나아감을 분명히 했던 꼿꼿한 선비였습니다. 그런 그에게는 성희안이 가까운 벗이면서 벼슬도 하게 해준 사람이었지만 그런 부탁이 달가울 리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잣은 높은 산꼭대기에 있고, 꿀은 백성 집 벌통 안에 있으니 부사된 내 재주로는 잣과 꿀을 구할 수 없네.”라고 정중히 거절합니다. 그런 청백리 정붕 집 뒤주는 바닥나기 일쑤였습니다. 그러자 한번은 그의 부인이 계집종을 유자광의 집에 보내 양식을 구해오기도 합니다. 그러자 이를 안 정붕은 자신이 가까운 벗에게 사정을 말하고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경북 문경에 있는 문경옛길박물관에 가면 국가민속문화재 제259호 “문경 최진일가묘 출토복식”이 있습니다. 지난 2006년 경북 문경시 영순면에 있는 전주최씨 무덤을 이장하는 과정에서 발견된 유물입니다. 최진(崔縝)과 그 부인, 그리고 후손으로 추정되는 3기의 무덤에서 발견된 유물은 중치막, 액주름(겨드랑이 아래 주름이 잡혀 있는 곧은 깃의 옷), 족두리형 여모, 저고리, 바지 등 모두 65점이지요. 특히 “중치막(中致莫)”과 “족두리형 여모(女帽)”는 지금까지 발굴된 출토복식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보입니다. 중치막은 사대부가 사람들이 나들이할 때 입던 옆트임이 있는 곧은 깃의 도포(袍)로, 현재까지 발견된 것은 대부분 임진왜란 이후의 것이었으나 이 중치막은 임진왜란 전 것이라는 점에서 이 시기 복식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고 하지요. 또한 족두리형 여모는 정수리 부분에 원형조각이 있어 족두리 초기의 형태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문경 최진 일가묘 출토복식’은 16세기 중후반기 남녀복식사 연구의 귀중한 자료로서, 이미 지정된 '문경 평산 신씨묘 출토복식(국가민속문화재 제254호)'과 함께 당시 지역의 사회문화상을 엿볼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국가무형문화재 가운데는 제115호 염색장(染色匠)이 있는데 천연물감으로 옷감을 물들이는 장인을 말합니다. 조선시대 궁중에서는 염색만 담당하는 장인이 있었을 정도로 염색은 전문적인 기술이 필요하지요. 옷감을 물들이는데 쓰는 천연염료는 식물, 광물, 동물 따위에서 얻은 원료를 그대로 쓰거나 조금 가공을 해서 물감을 만들어 쓰기도 합니다. 염색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 가운데 쪽염색은 ‘쪽’이라는 풀에서 거둔 물감으로 옷감 따위를 물들이는 것이지요. 쪽염색을 많이 하는 나주지역의 쪽염색 작업과정을 살펴보면 팔월 초순경 60~70㎝정도 자란 쪽을 베어 항아리에 넣고 삭힙니다. 이틀 뒤 쪽물에 굴껍질을 구워 만든 석회를 넣으면 색소 앙금이 가라앉으면서 침전쪽이 생기지요. 침전쪽에 잿물을 넣고 다시 7~10일 동안 발효시키면 색소와 석회가 나눠지면서 거품이 생기는데, 이 과정을 '꽃물 만들기'라고 하고 이것으로 옷감을 염색하는데 쓰게됩니다. 천연 염색은 근대화 이후 급속한 화학염색의 도입으로 전통이 끊겼으나 1970년대 이후 일부 장인들의 노력으로 그 맥을 살릴 수 있었습니다. 특히 쪽염색의 경우 초대 기능보유자였던 윤병운(尹炳沄,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어제(1월 6일) 저녁 5시 서울 고척 스카이돔에서는 FM커뮤니케이션(대표 황희왕)이 주최하고, 블루몽뜨(회장 이병휘)가 주관하며, (사)경기도문화콘텐츠진흥원(이사장 서정돈)과 현성바이탈(대표 신지윤)이 후원하는 “28 골든나인 힙합 페스티벌(Golden Nine Hiphop Festival)”이 화려하게 열렸다. 이 축제는 힙합의 모든 요소가 담겨있는 겨울철에 보기 드문 축제였다. 축제 출연진으로는 `Oui`의 주인공 제레마이(Jeremih), `Dilemma`라는 곡으로 빌보드 10주 연속 1위를 하면서 대중들에게 잘 알려진 넬리(Nelly(), 국내 음악인들이 사랑하는 `love`의 원곡가수 R&B 여왕 키샤콜(Keyshia Cole(), 세계턴테이블 대회 우승자로 알려진 프로듀싱 디렉터 DJ 락키락(Rocky Rock(), 레드불 DJ 쓰리스타일 US챔피언 디제이 트레이즈(TRAYZE) 등이 함께 했다. 이날 차거운 한파 속에서 고척스카이돔을 찾은 젊은이들은 무대에 오른 음악인들을 향해 환호하며 춤을 추고 즐기기에 푹 빠졌다. 주관사인 블루몽뜨 이병휘 회장은 “이번 골든나인페스티벌은 국내 최대의 힙합축제로 키우는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오늘은 24절기 가운데 스물셋째인 소한(小寒)이다. 원래 절기상으로 보면 대한(大寒)이 가장 추운 때지만 실제는 소한이 한해 가운데 가장 추운데 절기의 기준이 중국 화북지방에 맞춰졌기 다른 것이다. 그래서 이때 전해지는 속담을 보면 “대한이 소한 집에 가서 얼어 죽는다.”, “소한 추위는 꾸어다가도 한다.”, “소한에 얼어 죽은 사람은 있어도 대한에 얼어 죽은 사람은 없다.” 같은 것들이 있다. 이때쯤이면 추위가 절정에 달했다. 아침에 세수하고 방에 들어가려고 문고리를 당기면 손에 문고리가 짝 달라붙어 손이 찢어지는 듯 했던 기억이 새롭다. 그뿐만 아니다. 저녁에 구들장이 설설 끓을 정도로 아궁이에 불을 때두었지만 새벽이면 구들장이 싸늘하게 식는다. 그러면 문틈으로 들어오는 황소바람에 몸을 새우처럼 웅크리고 자게 된다. 이때 일어나 보면 자리끼로 떠다 놓은 물사발이 꽁꽁 얼어있고 윗목에 있던 걸레는 돌덩이처럼 굳어있었다. 그렇게 추운 겨울. 지금이야 난방이 잘돼 어려움이 적지만 예전 사람들은 어떻게 견뎠을까? 조선시대 선비들은 동지가 되면 <구구소한도>를 그린다. <구구소한도(九九消寒圖)>에서 구구(九九)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푸른색 자기 술잔을 구워내 열에서 하나를 얻었네 선명하게 푸른 옥 빛나니 몇 번이나 짙은 연기 속에 묻혔었나 영롱하기 맑은 물을 닮고 단단하기 바위와 맞먹네 이제 알겠네 술잔 만든 솜씨는 하늘의 조화를 빌었나 보구려 가늘게 꽃 무늬를 점 찍었는데 묘하게 정성스런 그림 같다네 이는 고려 중기 대표적인 문인인 이규보가 청자잔에 대해 찬사를 한 시입니다. 그 청자 가운데 하나가 서울 용산의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는 국보 제116호 <청자 상감모란문 표주박모양 주전자>입니다. 높이 34.4㎝, 입지름 2㎝, 배지름 16㎝, 밑지름 9.7㎝ 크기로 표주박 모양의 병에 물 따르는 부리와 손잡이를 갖춘 주전자지요. 목 윗부분에는 구름과 학무늬를 흑백상감으로 아름답게 그려 넣었습니다. 골이 지게 패인 잘록한 목은 사람의 허리를 연상하게 하는데 주름이 잡혀 있으며, 아래 부분 몸통에는 활짝 핀 모란과 봉오리, 잎들이 조화롭게 가득 채워져 있지요. 부안 유천리요에서 만든 것으로 추정되며, 맑은 비색은 물론 운학과 모란 무늬가 잘 어울리는 작품으로 전성기를 대표하는 작품의 하나라고 평가됩니다. 원래 표주박모양의 주전자는 중국의 당송(唐宋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2018년 1월 3일 현재 <우리문화신문>에 793건의 기사를 올린 기자가 있다. 바로 <우리문화신문> 사진부장인 최우성 기자가 그다. 신문이 창간된 지 4년 7개월 만에 이런 기사 건수를 올린 것은 거의 4~5일 만에 한 건씩 올렸다는 이야기다. 그것도 보도자료를 토대로 약간의 수정을 거친다거나 하는 것이 아닌 직접 발로 뛰어 사진을 찍고 글을 쓴 어마어마한 작업을 한 것이다. 더더구나 전문적인 사진 솜씨에 불교와 전통건축에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는 터라 더욱 의미가 크다. 그 최우성 작가가 최근 《사진으로 본 한국의 108산사》 1권을 도서출판 얼레빗을 통해 출간했다. 이번에 펴낸 《사진으로 본 한국의 108산사》는 한국의 대표적인 절 108산사의 불상과 가람, 승탑 등을 전4권의 사진집에 담아내는 거대한 작업의 첫 번째 결실이다. 제1권에는 금산사, 낙산사, 대흥사, 백담사, 불국사, 선운사, 운주사, 통도사 등 한국의 고찰을 비롯하여 무학대사 전설이 어린 서산 ‘간월암’, 붉은 배롱나무꽃이 아름다운 화순 ‘만연사’, 6시간 산행 그 자체가 수행인 설악산 ‘봉정암’, 백제 불교 도래지로 유서 깊은 영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찌는듯한 무더운 어느 여름날 아침, 골목마다 밀려드는 사람들의 경이롭고 놀라운 시선을 뒤로 하고 서울의 동대문을 나섰다. 눈부시게 하얀 옷과 검은 갓을 쓴 사람들로 가득한 서울 거리는 이상하게 환상적이고 이국적인 느낌을 더해 주었다. 중국이나 일본 이 세상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조선 본연의 모습이었다.” 이는 대한제국 말에 독일 쾰른신문 베이징특파원 신분으로 조선에 와 반년에 걸쳐 있으면서 조선여행기를 쓴 독일인 ‘지그프리드 겐테(Sigfried Genthe)의 글 내용입니다. ▲ 《Korea》, 지그프리트 겐테, Berlin Allgemeiner Berein fur Deutfche Literatur((출처 Corea Libris), 1905년(왼쪽) / 《독일인 겐테가 본 신선한 나라 조선, 1901》, 뒤친이 권영경, 책과함께, 2007 그는 《Korea》라는 책에 이런 내용들을 담아 두었습니다. 당시는 표류기와 기독교인 학살 등을 통해 조선인들은 야수와 다름없다고 알려진 터였지요. 그러나 겐테는 조선인들의 삶 속에 들어가 실제로 겪어보고 경험한 조선인들이 호기심 많고 정이 있으며 결코 남을 해치지 않는 우수한 민족이라고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조선왕조실록》에는 “호랑이”라는 말이 무려 727 차례나 등장합니다. 《태조실록》 1년(1392) 윤12월 20일 “성안에 들어온 호랑이를 흥국리 사람이 쏘아 죽였다.”로 시작하여 태종실록 5년(1405) 7월 25일 “밤에 호랑이가 근정전 뜰에 들어왔다.”, 세종실록 7년(1425) 8월 7일 “삼군 진무와 호랑이 잡는 갑사(甲士) 10명을 보내어 잡게 하였다.”, 성종실록 13년(1482) 8월 4일 “가혹한 정사는 호랑이보다도 더 무섭다.”, 연산군일기 10년(1504) 6월 28일 "범의 이빨을 각도(各道)로 하여금 바치게 하라." 따위가 있습니다. 이 예문의 조선왕조실록 원문을 보면 모두 한자 ‘호(虎)’로 표기 되어 있는 것을 현대에 와서 국역하면서 호랑이와 범으로 혼용하였습니다. 그러면 이 “범”과 호랑이는 같은 것일까요? 먼저 국어사전에서 “범”을 찾아보면 “같은 말=호랑이”라면서 ‘관련 규범 해설’에 ‘범’과 ‘호랑이’는 모두 널리 쓰이므로 둘 다 표준어로 삼는다.”라고 나옵니다. 그러나 1459년에 펴낸 월인석보에 보면 ‘호(虎)’와 ‘랑(狼)’은 각각 범과 이리를 말한 것이지 지금처럼 호랑이를 말하는 것이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647년 신라 진덕여왕을 반대하는 비담(毘曇)과 염종(廉宗) 등 일부 대신이 반란을 일으켜 김유신(金庾信)이 토벌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 때 성안에 별똥이 떨어져 군사들이 두려워하고 사기가 떨어졌다. 이에 김유신이 꾀를 내어 불을 붙인 허수아비를 연에 달아 하늘로 띄웠다. 그리고 군사들에게 '어제 저녁에 떨어진 별이 하늘로 다시 올라갔으니 진덕여왕이 전쟁에서 승리할 것'이라고 소문을 내어 싸움에서 이겼다." 이는 《삼국사기(三國史記)》 권41 김유신전(金庾信傳)에 나오는 기록입니다. 이 기록으로 보아 연은 이미 삼국시대에 사용되었고, 놀이 도구뿐만 아니라 전쟁의 도구로도 쓰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연은 또 액(厄)을 쫓는 주술적인 도구로도 쓰였는데 정월보름이 되면 연에 ‘송액영복(送厄迎福)’이라는 글들을 써서 해질 무렵 연실을 끊어 멀리 날려 보내는 풍속이 전해옵니다. 우리나라 전국의 연날리기 잔치를 보면 부산 ’다대포 국제연날리기축제’, ‘의성 세계연날리기축제’를 비롯하여 경주 ’전국연날리기대회(황룡사터)’, 포항 ’연날리기한마당(해도공원)’, 사천 ‘대한민국연날리기대회(사천공설운동장)’, 서산 ‘해미읍성전국연날리기대회’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