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최근 원로 만화가 이두호 선생이 홍명희의 원작 소설을 만화로 옮긴 대하역사만화 ‘임꺽정’을 15년 만에 2,000세트 한정판으로 복간됐다는 소식이 들립니다. 1928년 오늘(11월 21일)은 벽초(碧初) 홍명희(洪命熹)가 조선일보에 소설 <임꺽정> 연재를 시작한 날이지요. 홍명희의 《임꺽정》은 백정 출신인 도적 임꺽정의 활약을 통해 조선시대 민중들의 삶을 생생하게 그린 대하(大河) 역사소설입니다. <임꺽정> 연재는 무려 10년 동안이나 연재되어 독자들의 큰 사랑을 받았고, 일제강점기 말에 단행본 초판을 펴내자 우리 근대문학의 고전이라는 평가를 받게 됩니다. 우리나라의 역사소설들은 대부분 역사의 주체를 민중이 아닌 위대한 개인으로 보는 영웅사관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이와 달리 《임꺽정》은 주인공은 물론 다양한 신분의 하층민들을 등장시켜, 당시의 민중들의 삶을 폭넓게 묘사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임꺽정만을 영웅으로 묘사하지 않고, 청석골 여러 두령들도 임꺽정 못지않게 큰 비중을 가지고 이야기를 끌어나갑니다. 아울러 임꺽정은 휘하의 두령들과 마찬가지로 남다른 능력도 있지만 인간적인 약점을 함께 지닌 인물로 그리고 있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길을 가다가 우연히 “맑은눈안과” 간판을 보았습니다. 그곳에서 눈 치료를 받으면 눈이 맑아질 것만 같습니다. 우리말로 된 그것도 안과라는 것과 잘 맞는 이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또 “안아픈세상한의원”도 있습니다. 그곳에서 침을 맞으면 아프지 않을 것 같습니다. 요즘 병의원들이우리말 이름을 짓는 곳이 많아져서 흐뭇합니다. 우리말로 이름을 지은 곳은 특히 정형외과 계열의 병원들이 많은데 힘찬병원, 튼튼병원, 바로나은병원 등이 그렇습니다. 또 그 병원에서 치료를 하면 기쁨은 저절로 따라올 것 같은 기쁨병원도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개구쟁이소아과, 속편한내과, 건강드림내과,밝은누리안과, 이좋은치과, 상쾌한이비인후과, 365열린가정의학과, 더고운의원,아침맑은한의원 같은 이름도 멋지지 않은가요? 예전에 흔하던 제일ㆍ현대 같은 보통명사 병원, 을지로ㆍ분당처럼 지역 이름 병원, 굿닥터ㆍ 월드ㆍ메디 같이 영어이름 병원, 연세ㆍ경희처럼 출신대학 이름을 붙인 의원, 의사 자신의 이름을 붙인 의원들은 이제 촌스럽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이런 병의원의 “우리말 이름 붙이기”가 유행처럼 다른 분야로도 번졌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1905년 오늘(11월 20일), 언론인 장지연(張志淵)은 황성신문(皇城新聞)에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이란 제목의 논설을 올렸습니다. 이 논설은 피를 토하듯 을사늑약(乙巳勒約)의 부당함을 전 국민에게 알리고, 일본의 흉계에 의한 조약 체결에 찬성을 하거나 적극적으로 반대하지 못한 당시의 대신(大臣)들을 크게 꾸짖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을사늑약은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기 위하여 1905년 11월 17일 대신(大臣)들을 압박, 강제로 체결한 조약입니다. 이때 을사늑약에 앞장선 을사오적에는 외부대신 박제순, 내무대신 이지용, 군부대신 이근택, 학부대신 이완용, 농상부대신 권중현입니다. 그런데 을사늑약은 고종황제가 참석하지 않은 채 열린 것은 물론 고종황제(高宗皇帝)의 재가(裁可)를 받지 않은 원인 무효의 조약이었지요. 따라서 우리는 이 조약을 을사조약이 아니라 ‘억지로 맺었다는 뜻으로 ’을사늑약(乙巳勒約)‘이라고 부릅니다. 이때 이 논설로 체포된 장지연은 90여 일간 옥살이를 한 뒤 1906년 1월 24일 석방되었습니다. 그러나 장지연은 1914년 이후 조선총독부를 긍정적으로 서술하는 논설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전남 순천시 영동 1번지에는 여덟 마리의 말을 나타내는 팔마비(八馬碑)가 서있습니다. 순천지역에서는 꽤 이름난 이 팔마비는 우리나라 역사상 지방관리의 선정(善政)과 청렴결백의 효시라는 점에서 매우 의미 있는 비석이지요.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76호로 지정된 팔마비는 고려 말의 청백리 최석(崔碩)의 송덕을 기리는 기념비입니다. 《고려사》 고려열전 권121에는 “양리(良吏), 최석”이라는 이름으로 “최석이 승평부사가 관례대로 받던 말 8필을 거부하다.”라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습니다. “최석(崔碩)은 충렬왕 때 사람이다. 과거에 급제한 후 거듭 승진하여 승평부사(昇平府使)가 되었고, 임기를 마치고 〈개경으로〉 들어와서는 비서랑(秘書郞)이 되었다. 승평부(지금의 순천)에서는 관례상 태수(太守)가 돌아갈 때면 반드시 말 8필을 주고, 부사(副使)에게는 7필, 법조(法曹)에게는 6필을 선물로 주면서 마음대로 고르게 하였다. 최석이 교체되어 돌아가게 되자 고을 사람들이 말을 바치며 좋은 것을 고르라고 하니, 최석이 웃으면서 ‘말은 개경까지만 타고 갈 수 있으면 되는데, 무엇 때문에 고르겠는가?’라고 하였다. 집에 도착한 후에 그 말을 돌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배”는 시원하고 단맛이 있어서 우리 겨레가 예부터 즐겨 먹었습니다. 《신당서(新唐書, 구양서 등이 1044년 ~ 1060년에 걸쳐 펴낸 당나라 역사서)》에는 발해의 배가 소개되어 있고, 《고려사》 식화지(食貨志)에는 배나무를 심는 내용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재배의 역사도 오래 되었음을 알 수 있지요. 허균이 쓴 책 《도문대작》에 다섯 가지 품종이 있고, 대한제국 말기에 황실배, 청실배 같은 배 이름이 알려져 있는 것으로 보아 이들 품종이 널리 재배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때의 배는 야생 돌배였고 지금 우리가 먹고 있는 품종은 일본에서 개량된 신고, 장십량, 풍수 따위입니다. 조선시대 궁중에서는 음식에 배를 많이 썼는데, 특히 “배숙”은 생강물에 배와 꿀을 넣고 끓여 만든 대표적인 궁중 음료로서 쌀쌀한 가을부터 추운 겨울까지 마시며 기관지를 보했던 음식이었습니다. 또 배는 고기요리를 할 때 갈아 넣으면 고기를 연하게 해주기 때문에 양념으로 쓰거나, 김치를 담글 때, 시원하고 달콤한 국물을 더 내고자 할 때도 쓰였지요 고종황제는 밤참으로 배를 많이 넣어 담근 배동치미에 국수를 말아 먹는 것을 즐겼는데 이 때문에 수라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設險函關壯(설험함관장) 험하게 만들어져 함곡관(函谷關)처럼 웅장하고 行難蜀道奇(행난촉도기) 험한 길은 촉도(蜀道) 같이 기이하네 顚隮由欲速(전제유욕속) 빨리 가려 욕심내면 넘어져 떨어지니 跼蹐勿言遲(국척물언지) 엉금엉금 기어가더라도 늦다고 꾸짖지는 말게 조선 태종ㆍ세종 때의 문신 어변갑(1380~1434)이 지은 “관갑잔도(串岬棧道)”라는 시입니다. 이 시는 경북 문경시 마성면 신현리에 있는 명승 제31호 “문경 토끼비리”를 묘사한 것입니다. “문경 토끼비리”는 수십 년 동안 인적이 끊어져 지금은 사람이 다니지 않는 길이지만, 예전엔 영남 사람들이 한양으로 가는 길에 꼭 넘을 수밖에 없었던 길이지요. 더구나 다음과 같이 《신증동국여지승람》 문경현 형승조에도 기록될 정도로 역사성이 있는 길입니다. “관갑천은 용연의 동쪽 벼랑을 말하며 토천이라고도 한다. 돌을 파서 만든 잔도(棧道, 험한 벼랑 같은 곳에 낸 길)가 구불구불 6, 7리나 이어진다. 전해오는 얘기에 따르면 고려 태조 왕건이 남쪽 원정 때에 이곳에 이르렀는데 길이 막혔다. 마침 토끼가 벼랑을 타고 달아나면서 길을 열어주어 진군할 수 있었으므로 토천이라 불렀다.” 고려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울산 울주군 두동면 천전리 태화강 물줄기인 내곡천 중류 기슭에 가면 국보 제147호 “울주 천전리 각석 (川前里 刻石)”이 있습니다. 1970년 12월 동국대학교박물관 학술조사팀에 의해 발견되었는데 그 크기는 너비 9.5m, 높이 2.7m입니다. 이 각석은 각종 도형과 글, 그림이 새겨진 커다란 바위인데, 아래ㆍ위 2단으로 나누어 서로 다른 내용이 다른 기법으로 표현되어 있으며, 전체적으로 조각이 가득합니다. 윗단에는 쪼아서 새기는 기법으로 기하학적 무늬와 동물, 추상화된 인물 등이 조각되어 있습니다. 가운데의 해를 상징하는 듯한 원을 중심으로, 양 옆에 네 마리의 사슴이 뛰어가는 모습과 맨 왼쪽의 반인반수(半人半獸, 머리는 사람, 몸은 동물인 형상)상이 보입니다. 표현이 소박하면서도 상징성을 갖고 있는 듯한 이 그림들은 청동기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보이지요. 아랫단은 선을 그어 새긴 그림과 글씨가 뒤섞여 있는데, 기마행렬도, 동물, 용, 배를 그린 그림 등 다양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가운데 기마행렬도는 세 군데에서 보이는데, 간략한 점과 선만으로도 그 모습이 잘 표현되어 있지요. 배그림은 당시 신라인의 바다 활동을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산악이 우뚝 솟은 것 높다할 것 없고 해와 달이 빛나는 것 밝다 할 것 없네 오직 공의 절개만이 세상의 기둥이 되니 고립된 성의 일편단심 만고의 모범 일세 노복과 첩의 충직함도 한 집안에 우뚝하고 막료인 이공도 당나라 남팔처럼 늠름하였으니 짧은 비석에 적기 어려워도 깊은 바다처럼 다하지 않으리 이는 충장공 정발(鄭撥, 1553 ~ 1592) 장군의 전망비(戰亡碑)를 쓴 통훈대부 춘추서기관 황간의 시입니다. 황간은 정발장군의 추모 시와 함께 비문도 썼는데 비문에는 “지난 임진년의 왜란 때에 부산의 첨사 정발공은 사기를 돋우며 성을 돌아다니면서 왜적을 무수히 쏘아 맞추어 하루 만에 적의 시체가 산처럼 쌓인 곳이 세 곳에 이른다. 화살이 떨어지자 부하장수들이 성을 빠져나가 구원병을 기다리자고 간청하자 공은 ‘나는 이 성의 귀신이 될 것이다. 또 다시 성을 포기하자고 하는 자는 목을 베겠다하니 군사들이 모두 흐느끼며 자리를 뜨지 않았다(뒷줄임)”고 쓰고 있습니다. 부산을 대표하는 정발 장군은 임진왜란 때 부산진첨절제사(釜山鎭僉節制使)로 부산에 상륙한 왜군을 맞아 싸우다 장렬한 전사를 하게 됩니다. 부산광역시 동구 좌천동에는 임진왜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어제 11월 11일 인천 중구 큰우물로 14-1 골목길에서는 아이들의 우렁찬 장구 소리와 노랫소리가 들렸다. 인천문화재단 지역특성화 문화예술교육의 하나로 “사랑의 국악챔버(대표 이진경)”가 주최한 <어화둥둥 둥개야> 작은 공연이 그것이다. 6살 유치원생부터 11살 초등학생까지 15명의 아이들이 쌀쌀한 바람 속에서도 앙증맞게 해낸 공연에 지나가는 사람들도 칭찬의 손뼉을 쳐주었다. <어화둥둥 둥개야> 프로그램은 모두 30차시 중 10차시를 양육자들이 참여하도록 구성하였고 10차시는 피양육자들(어린이들) 그리고 나머지 10차시를 두 대상간의 통합프로그램으로 진행하고 있다. 예술을 매개로 하여 ‘육아’라는 공동의 주제로 모인 양육자들과 피양육자들이 지역주민들과 소통을 위해 3번째 자유시장(프리마켓)에서 합창을 기획ㆍ공연한것이다. 공연은 먼저 최선훈 씨의 거문고산조로 시작하여 김은혜 씨의 장고춤이 더해졌고, 아이들이 함께 장구를 이용한 ‘별달거리 가락치기’ 공연과 ‘모두 다 꽃이야’ 합창으로 공연은 끝났다.특히 전문 공연자들과 함께 합창 공연 반주를 한 이혜리 어린이는 사람들의 칭찬을 받았다. 공연 뒤 아이들과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문화체육관광부 국립국어원(원장 송철의)은 오는 11월 10일(금) 아침 10시 서울 페럼타워 3층 페럼홀에서 2017 국어정책 학술대회를 한다. 이번 학술대회는 4차산업 혁명시대에 우리말과 글이 나아갈 길을 살펴보기 위해 학계와 산업계의 전문가를 초청하여 ‘우리말 정보화의 현황과 과제’를 주제로 열린다. 이번 학술 대회는 국립국어원에서 2018년부터 추진 예정인 국어 거대 자료(빅데이터) 구축의 구체적인 방향을 탐색함으로써 4차 산업 관련 여러 분야에 도움이 되고자 마련되었다. 국어학계와 컴퓨터공학계, 학계와 산업계의 대통합의 장 열려 4차산업 혁명시대에서는 어느 한 분야만의 발전으로 성공을 거두기 어렵다. 따라서 이번 학술 대회에는 국어학계뿐 아니라 컴퓨터공학계의 학자들과 산업계의 전문가 등 발표자 6명과 토론자 6명을 초청하여 학계 간, 학계와 산업계 간 대통합의 장을 마련하였다. 특히 발표자와 토론자의 전공과 소속 분야를 달리하여 해당 주제에 대해 다양한 관점으로 논의가 이루어지도록 구성하였다. 우리말 인공지능의 개발과 전망에 대해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자동통역인공지능연구센터의 이윤근 센터장의 발표를 듣고 국어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