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오늘은 24절기의 열여덟째 “상강”입니다. “상강(霜降)”은 말 그대로 수증기가 땅 위에서 엉겨 서리가 내리는 때며, 온도가 더 낮아지면 첫 얼음이 얼기도 하지요. 벌써 하루해 길이는 노루꼬리처럼 뭉텅 짧아졌습니다. 어느 날 아침 일어나 보면 하룻밤 새 들판 풍경은 완연히 다른데 된서리 한방에 푸르던 잎들이 수채색 물감으로 범벅을 만든 듯 누렇고 빨갛게 바뀌었지요. 옛 사람들의 말에 “한로불산냉(寒露不算冷),상강변료천(霜降變了天)”이란 말이 있는데 이는 “한로 때엔 차가움을 별로 느끼지 못하지만 상강 때엔 날씨가 급변한다.”는 뜻입니다. 이즈음 농가에서는 가을걷이로 한창 바쁘지요. 〈농가월령가〉에 보면 “들에는 조, 피더미, 집 근처 콩, 팥가리, 벼 타작 마친 후에 틈나거든 두드리세……”라는 구절이 보이는데 가을걷이할 곡식들이 사방에 널려 있어 일손을 기다리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속담에 "가을에는 부지깽이도 덤빈다.", "가을 들판에는 대부인(大夫人) 마님이 나막신짝 들고 나선다."라는 말이 있는데, 쓸모없는 부지깽이도 요긴하고, 바쁘고 존귀하신 대부인까지 나서야 할 만큼 곡식 갈무리로 바쁨을 나타낸 말들이지요. 갑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전남 구례군 마산면의 화엄사 각황전 앞에는 국보 제12호 “구례 화엄사 각황전 앞 석등(求禮 華嚴寺 覺皇殿 앞 石燈)”이 있습니다. 석등은 부처의 광명을 상징한다고 하여 ‘광명등(光明燈)’이라고도 부르는데, 대개 절 대웅전이나 탑과 같은 중요한 가람 앞에 자리 잡습니다. 불을 밝혀두는 화사석(火舍石)을 중심으로, 아래로는 3단의 받침돌을 두고, 위로는 지붕돌을 올린 뒤 꼭대기에 머리장식을 얹어 마무리합니다. 아래 받침돌에는 엎어놓은 연꽃무늬를 큼직하게 새겨놓았고, 그 위로는 장구 모양의 기둥을 세워두었습니다. 장고 모양의 이 특이한 기둥형태는 남북국시대(통일신라) 후기에 유행했던 가장 전형적인 형태라고 합니다. 기둥 위로는 솟은 연꽃무늬를 조각한 윗받침돌을 두어 화사석을 받치도록 하였지요. 8각으로 이루어진 화사석은 불빛이 퍼져 나오도록 4개의 창을 뚫어 놓았습니다. 이 석등은 통일신라 헌안왕 4년(860)에서 경문왕 13년(873) 사이에 세워졌을 것으로 짐작되며, 석등 뒤에 세워진 각황전의 위용과 잘 어울린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또 이 석등은 국내에 남아있는 석등 가운데 6.4m로 가장 큰데 세부의 조각 수법이 정교하여 신라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K문화독립군<랑코리아>는 오는 10월 20일 KT올레스퀘어 드림홀에서 토크콘서트 <K-톡톡人콘서트 “독립군의 대부 최재형”>를 진행한다. 최재형(1860~1920)은 안중근의 하얼빈 거사를 이끌어낸 배후인물이지만, 아직까지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다. 함경도 경원에서 노비의 자식으로 태어나 혹독한 기근으로 국경을 넘어 시베리아에 갈 수밖에 없었지만, 나라와 겨레를 위해 그림자로 헌신한 지도자이다. 그는 전 재산을 연해주에 모인 의병들을 양성하고, 한인 후손들을 위한 32개의 학교를 세우고 구국언론사를 운영하면서 연해주의 어려운 고려인 동포들을 따뜻하게 품어준 디아스포라의 대부로 일명 <최 페치카>라고도 불리었다. 또한, 러시아 정부가 유일하게 공식적으로 추모하는 항일투쟁의 영웅이기도 하다. 이번 토크콘서트는 (사)최재형기념사업회(이사장 김수필)와 K문화독립군 <랑코리아>(대표 주세페 김)가 주최하고 국가보훈처가 후원하는 K-Value 콘텐츠 제작 첫 번째 프로젝트로 2020년 순국 100주기를 맞이하는 독립운동가 최재형 선생 선양을 위한 문화사업 업무협약(MOU)를 체결하고 제작 중인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하늘을 대리하여 지상세계를 다스린다는 생각을 했던 절대권력자 임금은 관상수시(觀象授時) 곧 하늘의 현상을 관찰하여 정확한 시각을 알아내고 이것을 백성들에게 알려주었습니다. 따라서 시간을 안다는 것은 바로 권력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시간을 독점한 것이 아니라 백성들에게 나눠준 임금이 있으니 곧 세종대왕이었지요. 세종은 세종 16년(1434년) 오목해시계(앙부일구, 仰釜日晷)를 궁궐 안이 아니라 백성이 많이 지나다니는 혜정교(惠政橋, 지금 교보문고 부근에 혜정교 표지판이 있음)와 종묘(宗廟) 앞에 설치해 임금을 위한 시계가 아니라 백성을 위한 시계로 설치한 것입니다. 또 글을 모르는 백성이 쉽게 시간을 알 수 있도록 12간지 한자 대신, 12개의 동물 그림으로 시각을 표시했지요. 따라서 오목해시계는 백성에게 시간을 나눠준 백성사랑의 결과물이었던 셈입니다. 그러나 세종 때에 만들어진 이 오목해시계들은 임진왜란 때 모두 없어졌다가 17세기 후반 현종~숙종 때 다시 만들게 됩니다. 하지만 이때 만든 것은 세종 때 만든 오목해시계와는 다릅니다. 세종 때 해시계가 백성들을 위한 공중용 시계였다면, 이때의 해시계는 궁궐이나 대갓집에 설치하기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이번에 새로 만들어진 정부부처인 중소벤처기업부는 신문에 “전통시장 가을축제” 광고를 내면서 우리말을 여지없이 짓밟고 있다. “시장愛 가을”이라며, 엉터리 한자를 쓴 것이다. 분명히 “에”라고 써야할 자리에 맞지 않는 “애” 소리가 나는 한자 “愛”를 쓴 것은 무슨 까닭인가요? 그런가 하면 문화재청은 지난 10월 17일 치 “국민의 관심으로 다시 태어나는 문화재”란 제목의 보도자료에서 「生生 보존처리 Day」라고 써 놓았다. “생생”이라 한글로 써도 될 곳에 “生生”이란 한자를 쓰고 “~의 날”이라고 쓰면 좋을 자리에 버젓이 영어로 “Day”라 쓴 것이다. 국어기본법 제14조 제1호에 보면 “공공기관 등의 공문서는 어문규범에 맞추어 한글로 작성하여야 한다. ”라고 되어 있다. 광고나 보도자료도 물론 공문서의 법주에 든다고 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이 중소벤처기업부의 광고나 문화재청의 보도자료는 국어기본법을 어겼다고 보아야만 할 것이다. 이렇게 잘못된 한자를 쓰고 영어를 남발하는 것이 유식한 모습이라 생각하는 것인가? 정부기관이 나서서 우리말을 헤살하는 모습은 참으로 기가 막히다. 그렇지 않아도 민간들이 우리말을 헤살하는 것을 곳곳에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충남 부여군 은산면 은산리 마을 사당인 별신당에서는 3년에 한 번씩 국가무형문화재 제9호 “은산별신제(恩山別神祭)”가 열립니다. 이 별신제는 보통 보름동안 약 100여 명의 인원이 참가하지요. 제사에 앞서 마을 어른들은 제사를 준비하는 대장, 중군, 패장, 사령 등의 임원을 뽑습니다. 이렇게 임원의 이름이 군대조직의 이름으로 불리는 것은 은산별신제가 장군제(將軍祭)의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입니다. 옛날 은산 마을에 큰 병이 돌아 젊은 사람들이 많이 죽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마을 어른의 꿈에 백제를 지키다 억울하게 죽은 장군이 나타나 자신과 부하들을 양지바른 곳에 묻어주면 병을 없애준다고 했지요. 꿈에서 깨어 장군이 말한 곳에 가 보니 오래된 뼈가 잔뜩 널려 있었습니다. 마을사람들은 뼈들을 잘 묻고 그들을 위로하는 굿을 하자 병이 사라졌고, 마을이 평온해졌지요. 이렇게 해서 마을사람들은 장군과 병사들을 위로하는 은산별신제를 지내온 것입니다. 당굿을 할 때에는 기(旗) 끝에 방울을 매달아 두는데 무녀가 가무를 해서 방울이 울리면 신의 뜻을 얻은 것이지만 그렇지 못하면 임원 가운데 부정한 사람이 있다는 뜻이어서 이때에는 추운 밤이어도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조선시대 여성들의 옷을 보면 저고리와 치마가 그 중심에 있습니다. 그러나 남성들은 저고리와 바지가 아니라 덧입는 큰 옷, 곧 포(袍)가 중시되는 삶이었습니다. 그 포는 지금 두루마기만 남아있지만, 조선시대에는 남성들의 중심 옷답게 종류가 참 많았지요. 먼저 벼슬아치들이 입는 단령(團領)과 단령 안에 받침옷으로 입거나 따로 겉옷으로 입었던 직령(直領), 옆트임이 있는 반소매 포인 답호(褡護), 소매가 넓은데, 무가 없고 양옆이 트여 있는 중치막(中致莫), 소매가 넓고 뒤 솔기가 갈라져 있는 창의(氅衣)가 있으며 그밖에 철릭, 도포, 액주름, 소창의 따위도 있습니다. 그 가운데 특히 철릭은 종아리까지 내려오는 기다란 옷인데, 저고리 아래에 주름을 많이 잡은 치마를 붙여놓은 것입니다. 곧은 옷깃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교차시켜서 앞을 여미었고, 단령 밑에 입는 받침옷으로 늘 입었습니다. 철릭은 융복(戎服)이라 하여 주로 무신이 입었지만 문신도 다른 나라에 사신으로 파견될 때나 전쟁이 나서 임금을 궁궐 밖으로 따라갈 때에는 입었는데, 당상관(堂上官)은 푸른빛 당하관 (堂下官)은 붉은빛을 입었지요. 철릭의 웃옷은 몸에 맞게 만드는 대신 치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국립중앙박물관에는 국보 제60호 “청자 사자형뚜껑 향로(靑磁 獅子形蓋 香爐)”가 있습니다. 이 고려청자는 높이 21.2㎝, 지름 16.3㎝인데 짐승모양을 한 3개의 다리가 떠받치고 있는 몸체와 사자 모양의 뚜껑으로 되어 있지요. 또 몸체에는 구름무늬가 가늘게 전면으로 오목새김 되어있고 위쪽의 벌어진 턱에도 세 곳에 구름무늬가 보입니다. 사자는 입을 벌린 채 한쪽 무릎을 구부린 상태에서 앞을 보고 있으며, 두 눈에는 자토(赭土 : 산화철이 포함된 붉은색의 흙)로 점을 찍어 눈동자를 표현했지요. 또 목 뒤쪽과 엉덩이 부분에는 구불구불한 소용돌이 모양의 털이 있고, 꼬리는 위로 치켜 올려 등에 붙인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엷은 녹청색의 유약으로 광택이 은은한 이 향로는 몸체 안에서 피운 향의 연기가 사자의 벌려진 입으로 내뿜도록 된 구조입니다. 12세기 전반기에 비취색의 청자가 절정에 달하였을 때 이와 같이 상서로운 동물이나 식물을 본뜬 상형청자가 많이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고려 인종 1년(1123)에 고려에 왔던 송(宋)나라 서긍(徐兢)은 《고려도경(高麗圖經)》 「도로조(陶爐條)」에서 가장 뛰어난 것으로 극찬한 바 있습니다.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산중에는 숨은 선비가 많고 無求名求利 명예와 이익을 구함이 없고, 可節衣節食 옷과 음식을 절제함이 좋다. 山中多幽士 산중에는 숨은 선비가 많고, 林下有好風 수풀 아래는 좋은 바람 일도다 고 운암(雲庵)곽영민(郭永敏)선생은 일본,미국,중국 등에서 수십 차례의 전시회를 열었으며,대한민국 동양미술대전 심사위원장을 역임한 서예계의 원로 작가였다.그뿐만 아니라2000년 이화문화출판사를 통해서《갑골문집(甲骨文集)》을 펴낸 바 있는 갑골문(甲骨文)의 대가다.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무슨 사연 그리 많아 아홉마디 아픈 전설 달았나 흰빛도 아닌 것이 보랏빛도 아닌 너도 아닌 것이 나도 아닌 선도 아닌 것이 악도 아닌 .... 그리 살라 함인가 그리 살라 함인가“ 이한꽃 시인의 “'구절초꽃” 시입니다. 구절초(九節草)는 지금 한창인 꽃으로 온나라 구석구석에서 구절초를 볼 수가 있습니다. 정읍 옥정호 구절초축제, 세종시 영평사 구절초축제, 공주 구룡사 구절초축제, 임실 오봉산 구절초축제 같은 잔치들이 있지요. 구절초라는 이름은 아홉 번 꺾이는 풀, 또는 음력 9월 9일에 꺾는 풀이라는 뜻에서 유래하였다고 합니다. "구절초"는 구일초(九日草)ㆍ선모초(仙母草)라고도 부르는데 그 종류에는 바위구절초, 두메구절초, 포천구절초, 가는실구절초 따위가 있습니다. 구절초는 9∼11월에 담홍색 또는 흰빛으로 자태가 예뻐 관상용으로 가치가 높으며, 예로부터 월경 불순ㆍ자궁냉증ㆍ불임증 등의 부인병에 약으로 써왔지요. 그런데 우리는 이 구절초도 들국화의 하나로 봅니다. 우리가 흔히 쓰는 들국화란 말은 산과 들에 야생으로 피어 있는 국화 무리를 통틀어 일컫는 말이지요. 들국화라고 부르는 것들에는 구절초 말고도 쑥부쟁이와 벌개미취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