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금년도 어느듯 벌서 상반기의 최후명절인 유두가 되었다. 6월 15일을 유두라고 하야 연중명절의 하나로서 치니 이것은 달은 나라에서 볼 수 없는 조선의 독특한 것이다. 조선의 독특한 것이라고 해서 반드시 자랑할 것은 아니지마는 이 유두절의 기원과 행사에 대하야 잠깐 고구(考究, 자세히 살펴 연구함)해보면 이것이 실로 유구한 역사를 갖고 있는 동시에 또한 민중적흥미를 갖고 잇는날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유두절에 대하야”라는 제목의 동아일보 1936년 7월 2일 치 기사 일부분이다. 그런가 하면 동아일보 1924년 7월 16일 기사에도 “금일은 유월유두일”이라는 기사도 보인다. 또 같은 동아일보 1960년 7월 8일에는 “오늘 유두절, 생과일 잔칫날” 기사도 있어 60년대까지도 유두절을 명절로 여겼음을 알 수 있다. 우리 겨레가 즐겼던 4대 명절은 설날, 단오, 한식, 한가위를 말한다. 그러나 이밖에도 정월대보름, 초파일, 유두(流頭 : 음력 6월 15일), 백중(百中 : 음력 7월 15일), 동지도 명절로 지냈다. 하지만 이제 많은 사람은 유두와 백중을 잊은 지 오래다. 유두는 유두날이라고도 하는데, '동류두목욕(東流頭沐浴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서울 광화문 세종대왕 동상과 세문문화회관 주변엔 “한글가온길”이란 것이 있다. 여기서 “가온”이란 ‘가운데’, ‘중심’이란 뜻의 우리 토박이말이다. 따라서 “한글가온길”은 이 세상 중심으로 한글 관련 유적이나 발자취가 있는 길’이라는 뜻이다. 서울시는 지난 2013년 한글 우수성을 널리 알리기 위해 광화문 세종대로 주변을 한글가온길로 지정했다. 이 가온길에는 세종대왕 동상으로 시작하여 훈민정음 창제의 산실 경복궁 수정전, 한글학회, 주시경 집터 등 한글과 관련된 장소들이 모여 있다. 이 가온길 답사를 끊임없이 진행해온 사람은 바로 훈민정음 으뜸학자로 정평이 나있는 김슬옹 박사다. 그는 2013년 서울시에서 “힌글 가온길”을 지정하자 국어단체연합 국어문화원과 함께 답사모임을 제안, 직접 해설하고 이끌어 벌써 30회를 넘어서게 됐다. 서울시는 물론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답사길에 정성을 쏟은 것이다. 이에 김슬옹 박사는 답사를 바탕으로 아이들을 위한 《역사가 숨어있는 한글 가온길 한 바퀴》라는 책을 해와나무(출판사)을 통해서 펴냈다. 우리 국민 대부분은 한글에 대해서 잘 안다고 착각한다. 그러나 정작 한글에는 어떤 엄청난 비밀이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고려말, 조선초에 향나무를 바닷가 개펄에 묻어두는 매향의식(埋香儀式)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때 자주 출몰하던 왜구의 침탈에 고통을 받던 백성이나 스님이 침향을 정성으로 준비하여 자신들을 구원해줄 미륵이 오시기를 비는 뜻이었지요. 묻은 향나무가 수백 년이 지나면 침향이 되고, 침향이 된 뒤에는 ‘서해 바다에서 용이 솟아오르듯이’ 스스로 물위로 떠오른다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매향의식을 한 뒤엔 그곳에 매향비(埋香碑)를 세웠습니다. 신안 암태도 송곡리에도 전라남도기념물 제223호 “신안암태도송곡리매향비(新安巖泰島松谷里埋香碑)”가 있는데 흔히 강물과 바다가 만나는 부근에 있는 다른 매향비들과 달리 암태도 매향비는 남북한 전지역에서 현재까지 유일하게 섬에서 발견된 점이 특이하지요. 이 매향비에는 7행의 글씨가 오목새김(음각)되어 있는데 내용을 보면 매향의 주도층으로 “향도(香徒)”가 명시된 점과 “매향처(埋香處)”를 명확하게 기록한 점이 특징입니다. 매향의식의 시기와 장소 참여인물 등을 기록한 매향비 글씨는 역사적 성격은 물론 불교문화사나 향촌 사회사 연구 등에 있어 귀중한 자료라고 합니다. 신안 암태도 매향비는 1405년에 세워진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서울역사박물관(관장 송인호)은 우당 6형제의 독립운동 <민국의 길, 자유의 길> 기획전을 연다. 전시 개막식은 8월 3일(목) 낮 3시 서울역사박물관 1층 기획전시실에서 열고, 오는 10월 15(일)까지 일반인에게 전시한다. 전시 개막식에는 이회영의 손자인 이종찬 전 국정원장, 이종걸 의원과 조광 국사편찬위원장, 김호섭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 등 100여 명이 참석할 예정이다. 이번 전시는 광복 72주년을 맞아 서울의 독립운동가인 우당 이회영 6형제의 독립운동을 조명하는 전시이다. 구시대의 끝자락에서 나라의 쇄신에 노력했고, 나라가 식민지로 전락하자 나라로부터 받은 모든 것을 바쳐 그 회복에 헌신하다 마침내 목숨까지 바친 6형제의 모습을 통해 우리 시대에 애국의 길이 무엇인지 묻는 계기가 될 것이다. 전시는 모두 4부로 ‘1부 시대가 요구하는 역할을 고민하다’, ‘2부 서간도에 올린 무장독립운동의 깃발’, ‘3부 이회영, 자유의 길을 찾아서’, ‘4부 자유의 나라에 살기 위하여’로 구성되어 있다. 시대가 요구하는 역할을 고민하다 1부에서는 개항 이후 급격한 변화 속에서 6형제의 역할에 대한 고민과 개항으로 유입된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나는 3․1운동 때도 참여하였지만 그 때는 큰 효과를 내지 못하였다. 그것은 우리 국민의 단결과 힘이 미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나는 일제침략자를 놀라게 해서 그들을 섬나라로 철수시킬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가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것은 곧 무력적인 응징 – 투탄(投彈), 자살(刺殺), 사살(射殺) - 같은 일회적 효과가 크게 주요할 것으로 믿고 있다.” 이는 안경신 독립투사가 한 말로 안 지사는 3.1운동 이후 무력투쟁으로 독립운동에 참여할 것을 다짐하게 됩니다. 당시 상해 임시정부 역시 1920년을 “독립전쟁의 해”로 선포하고 이를 위한 준비를 갖추어나가기 시작하지요. 한편 남북만주 각지에 흩어져 있던 독립운동무장단체들은 통일전선을 형성해서 조직적으로 단합된 독립군부대로서 일본과 전투를 펼치기로 하고 임시정부 평북독판부, 대한청년단연합회, 대한독립단 등의 대표들이 남만주 관전현에서 첫 모임을 갖습니다. 이에 상해 임시정부는 군부를 통해 광복군 총영에 국내 폭탄 거사와 실행 명령을 내리는데 광복군 총영에서는 서울, 평양, 신의주 세 도시에서 폭탄거사를 실행하기로 결정합니다. 이때 대원 13명을 뽑아 3개 대로 나누어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명월관이나 식도원 가튼 큰 료리ㅅ집에는 가보지도 못한 나로는 알 수도 업스니 그네들을 드리는지 안 드리는지는 모르겟소마는 변변치 못한 안진술집이나 심지어 국밥ㅅ집 가튼데 웬 약장사, 과자장사, 성냥장사가 그리 만히 드러오우? 아침에 호떡 두 개로 끄니를 니으고 점도록 굼다가 점을게야 국밥ㅅ집에 가서 15전 짜리나 긔껏해야 20전 짜리 국밥 한 그릇을 먹는 동안에도 둘셋넷의 그 장사들이 들어오니 (중간줄임) 도대체 엇저잔 말인가요” 이는 1927년 12월 20일 치 잡지 <별건곤 제10호>에 나오는 글입니다. 국밥집에 앉아 15전짜리 국밥하나를 시켜 먹는 동안에 성냥장사 등 잡상인들이 물건을 팔아달라고 하는 게 안쓰럽기도 하거니와 조금은 힘이 든다는 이야기입니다. 일제강점기에도 국밥은 일반 서민들에게 인기가 있었나 봅니다. 적은 돈으로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음식이니 인기가 있었을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부산의 돼지국밥, 대구의 따로국밥, 전주의 콩나물국밥, 서울의 순대국밥, 경남의 수구레국밥 등 이름은 달라도 여전히 ‘국밥’은 대중에게 사랑받는 음식이지요. 서울ㆍ경기 지방에서는 다소 생소한 창녕의 ‘수구레국밥’은 소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온 겨레가 기쁨에 겨워 목청껏 만세를 불렀던 광복절 제72주년이 코앞에 다가왔다. 그러나 광복절을 누구보다도 반겼던 여성독립운동가들은 아직 그늘에서 나오지 못한 분들이 많다. 국가보훈처(2017년 7월 현재) 자료에는 14,651분이 서훈자로 밝혀졌으나 이 가운데 여성은 겨우 292분뿐이다. 그나마도 우리가 알고 있는 여성독립운동가는 고작 유관순 열사 등 몇 분에 그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고 여성독립운동가를 널리 알려야한다고 목청을 높여온 시인이 있다. 여성독립운동가들의 발자취를 찾아 《서간도에 들꽃 피다》라는 책 속에 그 분들의 삶을 소개하고 있는 이윤옥 시인이 그 주인공이다. 이윤옥 시인은 지난 2010년부터 여성독립운동가를 발로 뛰어 찾아내 한 권에 20분 씩 《서간도에 들꽃 피다》를 펴냈으며 지난 7월 말에 제7권을 펴냈다. 제1권에서는 안중근 의사의 어머니 조마리아 애국지사를 소개하며 쓴 시가 큰 반향을 일으켰고, 이는 팝페라 가수 듀오아임이 비장한 톤으로 노래해 유투브 등에서 큰 인기를 얻기도 했다. 들리되 보이지 않는 깊은 절망의 나락에서 고통의 바다에서 들려오는 동포의 피 끓는 심장 박동소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광주광역시 남구 제중로 47번길 20 (양림동)에는 광주광역시 기념물 제15호로 지정된 “우일선 선교사 집”이 있습니다. 이 건물은 미국 선교사 윌슨(R. M. Wilson, 1880~1963)에 의해 1920년대에 세워진 것으로 광주에 현존하는 양식 주택으로는 가장 오래된 건물입니다. 양림산 기슭에 동향으로 자리잡고 있는 고색창연한 2층 벽돌집이지요. 사람들은 우일선 선교사 집이 서양식으로 지어져 양림동을 ‘서양촌’이라 부르기도 했습니다. 선교사 윌슨의 한국이름은 우일선으로 그는 1908년 놀란(J. W. Nolan) 선교사가 설립한 광주제중원(현 광주기독병원)의 제 2대 원장으로 부임하면서 한국 땅을 처음 밟게 됩니다. 우일선 선교사는 1948년 미국으로 돌아갈 때까지 꼬박 40년 동안 광주, 전남지역의 가난한 환자들을 위해 의술을 펼쳤습니다. 특히 평생을 나병(한센병) 퇴치에 심혈을 기울이며 우리나라 한센병 치료와 선교에 헌신한 분으로 기억하고 있지요. 우일선 선교사 집 구조는 평면이 정방형으로 1층은 거실, 가족실, 다용도실, 부엌, 욕실로 구성되어 있고, 2층은 사생활공간으로서 침실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또한 지하층에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一派長天噴壑礱(일파장천분학롱) 한 줄기 긴 하늘이 골짜기에서 뿜어 나와 龍湫百仞水潨潨(용추백인수총총) 폭포수 백 길 물이 쏟아져 나오네 飛泉倒瀉疑銀漢(비천도사의은한) 나는 샘이 거꾸로 쏟아져 은하수 같고 怒瀑橫垂宛白虹(노폭횡수완백홍) 성난 폭포는 가로로 드리워 완연히 흰 무지개네 雹亂霆馳彌洞府(박란정치미동부) 어지러운 우박과 날뛰던 번개가 골짜기에 가득하고 珠舂玉碎澈晴空(주용옥쇄철청공) 부서진 구슬과 옥이 맑은 하늘에 맑네 遊人莫道廬山勝(유인막도여산승) 나그네야, 여산이 낫다고 말하지 말라 須識天磨冠海東(수식천마관해동) 모름지기 천마산이 해동에서 으뜸임을 알아야 하리 이 시는 송도삼절(松都三絶)의 하나인 “박연폭포”의 아름답고도 힘차며 깨끗함에 대해 황진이는 이렇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한 줄기 긴 하늘이 골짜기에서 뿜어 나와 백 길이나 되는 폭포수가 우렁차게 쏟아져 나옵니다. 하늘을 나는 샘물이 거꾸로 쏟아져 내리니 하늘에 뜬 은하수 같고, 성난 폭포는 가로로 물길을 드리워 완연히 흰 무지개가 뜬 것 같지요. 우박이 어지럽게 떨어지고 번개가 요란하게 쳐 대는 물벼락이 골짜기를 채우고, 옥과 구슬을 부숴 만든 듯한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전남 여수시 연등동 벅수골에 가면 국가민속문화재 제224호 “여수 연등동 벅수”가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장승을 벅수라고 부르는데, 조선시대 수군이 주둔하여 있던 좌수영 때 서문으로 통하는 길목에 자리 잡고 있는 것으로 보아 마을의 수호신 역할을 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두 벅수가 서로 마주하고 있는데 동쪽 남자 벅수는 높이 174㎝, 너비 37㎝로 “南正重(남정중)”이라 적혀있고, 머리에는 신라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과거에 급제한 사람이 쓰던 관모를 쓰고 있습니다. 치켜 올라간 눈썹, 긴 귀, 큰 코, 툭 불거진 눈망울, 그리고 드문드문 이를 드러낸 입, 턱수염이 달려있지요. 이에 견주어 서쪽의 여자 벅수는 높이 173㎝, 너비 39㎝로 남자 벅수와 크기는 비슷합니다. 또 이 벅수는 “火正黎(화정려)”라고 적혀있고, 네모난 짧은 모자를 쓰고 올라간 눈썹을 하고 있으며, 왕방울눈과 길고 복스러워 보이는 귀에 코볼이 넓은 매부리코를 하고 있습니다. 또한 벌린 입 사이로 사이가 벌어진 이빨이 보입니다. 화정려의 뒷면에는 “戊申四月二十八日午時立(무신4월28일오시립)”,“化主□主事□金□昇(화주□주사□김□승)”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어 제작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