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얼레빗 = 양승국 변호사] 4월 2일은 유엔이 정한 세계 자폐인의 날입니다. 원래 자폐인의 날은 1989년 9월 9일부터 시작되었는데, 유엔은 2008년에 정식으로 매년 4월 2일을 자폐인의 날로 정하였습니다. 혹시 유엔에서 굳이 그런 날까지 지정하냐고 의아해 하실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나라 자폐인은 등록 자폐인 수만도 2000년도 1,514명에서 2012년에 16,906명으로 급증하고 있으며, 자폐인 등록이 늦게 시작된 관계로 이미 다른 장애로 등록되어 있는 숫자와 자폐 등록을 꺼려서 등록하지 않은 숫자까지 합하면 대략 4만 명의 자폐인이 있다고 합니다. 제 주위에도 꽤 많은 분들이 자폐인을 자녀로 두고 있습니다. 더구나 미국 오티즘 스피크스(Autism Speaks)의 연구에 의하면 미국 기준으로 할 때에 전 세계 평균 아동 100명중 1명이 자폐성 장애로 출현한다는데, 이런 점이 유엔에서 자폐인의 날을 정식으로 지정하게 된 계기가 된 모양입니다. 자폐인의 날을 맞이하여 남산N타워에서는 기념식이 있었습니다. 남산 꼭대기에서 기념식을 한다는 것에 또 의아해 하실 분들이 있겠지요? 남산N타워에서 푸른등 점등식이 있기 때문이지요
[그린경제/얼레빗 = 양승국 변호사] 고양시 덕양구에 효자동이라고 있지요? 북한산 백운대에 오르면 북쪽 산사면으로 내려다보이는 지역이 효자동입니다. 동네 이름이 효자동이니, 뭔가 효자와 관련이 있는 동네라는 것은 짐작하실 테고... 그런데 전국에 효자가 들어간 동네 이름이 많지만, 이곳 효자동은 다른 곳과는 또 다른 흥미 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바로 효자 박태성과 호랑이의 우정 이야기입니다. 조선 시대에 한양에 사는 효자 박태성이 있었습니다. 박태성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이곳 효자동에 모신 아버지 박세걸의 묘를 찾아와 문안을 드렸다고 합니다. 그런데 박태성이 아버지 묘를 찾아오려면 무악재를 넘어야 합니다. 어느 날도 여느 날과 다르지 않게 박태성은 무악재를 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때! 호랑이 한 마리가 불쑥 박태성 앞에 나타났습니다. 박태성이 얼마나 혼비백산 했을지는 안 봐도 뻔한 사실. 심장 약한 사람이라면 그 자리에서 바지에 오줌을 줄줄 쌀 상황입니다. 그런데 호랑이의 행동이 이상합니다. 박태성을 향하여 커다란 이빨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등을 내보입니다. 그리고 자기 등에 타라고 몸짓을 합니다. 순간 무척이나 곤혹스러웠을 박태성의
[그린경제/얼레빗 = 양승국 변호사] 춘천시 서면 박사마을에 갔었다가 마침 박사마을에는 신숭겸 장군의 묘도 있어, 이곳도 둘러보았습니다. 신숭겸은 후삼국 시대인 918년 배현경, 복지겸, 홍유 등과 힘을 합쳐 궁예를 몰아내고 왕건을 추대하여 고려를 열게 한 충신입니다. 그런데 신숭겸은 여기에 더하여 왕건을 위해 대구 팔공산에서 목숨까지 바쳤습니다. ▲ 무덤이 3개인 신숭겸의 묘 팔공산이라면 당시는 신라의 영역인데, 어떻게 신숭겸이 여기서 목숨을 잃었을까요? 927년(태조 10) 견훤이 신라로 쳐들어가 포석정에서 경애왕을 생포하여 강압적으로 자결하게 하였는데, 이 소식을 들은 왕건은 즉시 군사를 이끌고 경주로 향했지요. 그런데 왕건의 군대는 대구 팔공산 근처에서 도리어 후백제의 군대에 포위되어 태조 왕건의 목숨까지 위태로운 상황에 빠지게 됩니다. 이때 신숭겸이 나서서 태조를 피신하게 한 후 자신이 태조의 갑옷으로 갈아입고 태조의 마차에 올라 타 후백제 군대와 접전을 벌이다 목숨을 잃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고려의 왕으로 오인한 후백제 군사가 전리품으로 목을 잘라 가지고 가는 바람에 머리 없는 시신으로 남구요. 전투가 끝나고 신숭겸의 시신을 수습하여 돌아간 왕
[그린경제/얼레빗 = 양승국 변호사] 3월 26일이 무슨 날인지 아시겠습니까? 대부분 아시겠지만 안중근 의사 순국 104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그래서 이날 10시에 남산의 안중근 의사 기념관에서 추모식이 있었습니다. 기념관 강당으로 들어가니 벌써 많은 분들이 오셔서 빈 자리를 찾을 수 없더군요. 강당 단상 전면에는 안의사가 하얀 한복을 입고 앉아 계십니다.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가 정성들여 만들어 보낸 한복을 입고 계신 사진이지요. 바로 사형당하는 날 입으셨던 것이니, 조마리아 여사는 아들의 수의를 짓는 심정으로 이 한복을 만드셨을 것입니다. 식은 이혜균 기념관 사무차장의 사회로 시작되었습니다. 곧바로 애국가를 부르는 순서입니다. 보통 다른 행사에서는 애국가 1절만 부르는데, 여기서는 4절까지 다 부릅니다. 4절까지 부르는 것도 의미가 있네요. 애국가는 늘 우리 곁에 있다고 생각하면서 보통 1절만 부르니까 나머지 가사는 잊기 쉬운데, 그래도 이렇게 4절까지 부르니 다시 한 번 애국가 전체를 음미할 수 있었습니다. 기념관측에서 나눠준 행사 순서지에는 애국가 가사가 4절까지 다 적혀있더군요. 혹시 사람들이 2절 이하 가사를 잊어버렸을까봐 친절하게 넣어준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