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일본 영화를 국내에서 무료로 볼 수 있는 곳이 있다. 일본국제교류기금 서울문화센터가 인천미림극장과 공동주최로 4월부터 9월까지 매월 마지막 토요일에 한 작품씩 선보이는 것이다. 이번에 공개하는 <시즌3>은 지난번에 상영한 <시즌1>, <시즌2>의 관객설문을 통해 추천된 상영 후보작 가운데서 6명의 미림극장 관객 진행자가 한 편씩을 최종 선정하여 매월 한국독립영화감독 초대 및 관객과의 대화 형식으로 진행한다. 7월 31일(토)에 상영하는 영화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ジョゼと虎と魚たち)’로 감독은 이누도 잇신(犬童 一心)이다. 이 영화는 그가 2003년에 만든 영화로 117분짜리 멜로영화다. 이누도 잇신은 고등학교 시절 스스로 영화를 제작하기 시작했으며, 1979년 피아영화제(Pia Film Festival)에 입선을 계기로 영화에 발을 들여놓았다. 올해 61살인 이누도 잇신은 1994년, 선댄스 영화제 도쿄 그랑프리 ‘두 사람이 말한다’, 2000년 제11회 유바리국제판타스틱영화제 영판타스틱대상 ‘금발의 초원’, 2003년 일본 아카데미상 각본상 ‘환생’, 2005년 제18회 닛칸스포츠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선생님! 어제 비보를 들었습니다. 그 어떤 직함보다도 “최구현 항일의병장의 손자”임을 자랑스러워하시던 선생님! 언제까지나 우리 곁에 계실 줄 알았는데, 의병장 할아버지를 만나러 서둘러 떠나가신 것인지요? “의병장 할아버지에 대해서는 제 나이 70이 다되도록 그 행적을 알지 못했습니다. 구한말에 무과에 급제하여 군부참서관(軍部參書官)을 하던 할아버지께서 을사늑약 이후 벼슬을 사임하고 낙향한 것까지는 알았지만 이후 종적을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선생님과 ‘할아버지 최구현 의병장’에 관한 대담을 한 지도 꽤 시간이 흘렀습니다. 지금으로부터 5년 전, 2016년 12월 26일, 그날은 토요일이었고, 제7차 광화문 촛불집회가 열리던 날로 선생님은 불편한 몸이면서도 광화문 촛불집회에 참가하기 좋은 서울역 식당으로 대담 장소를 잡으셨지요. 최구현 할아버지 무덤을 이장하는 과정에서 나온 묘지석을 통해 할아버지께서 충남 당진 소난지도 의병항쟁의 의병장이었고, 순국 98년만인 2004년 국가로부터 건국훈장 애국장을 받으셨다고 하시면서 훈장증을 내보이며 눈시울을 붉히던 모습이 선합니다. 존경하는 할아버지 최구현 의병장은 40세의 나이로 순
[우리문화신문= 이윤옥 기자] 고양시 일산호수공원은 사계절 꽃들이 만발하고 시원하게 펼쳐진 호수가 있어 고양시민은 물론 서울 근교에서도 많은 사람이 찾아와 휴식과 산책으로 사랑받고 있는 곳이다. 일산호수공원은 1992년, 일산신도시 택지개발사업 때 조성한 공원으로 국내 최대의 인공호수와 최대한 자연생태계를 살린 공원으로 시민들로부터 사랑받고 있는 공원이다. 공원 한가운데 호수를 둘러싸고 만든 4.7킬로미터의 자전거도로와 메타세콰이어길 9.1킬로미터 등이 있어 산책에도 최고의 환경이다. 이러한 아름다운 환경의 일산호수공원에선 해마다 고양국제꽃박람회, 가을꽃축제는 물론이고 5월의 장미공원 또한 매혹적인 꽃향기와 수십종을 헤아리는 장미꽃의 향연으로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눈을 사로잡고 있다. 그런가 하면 선인장 전시관, 자연학습원 등이 있어 평소 흔하게 보지 못한 꽃과 식물들을 가까이서 볼 수 있다. 문제는 이곳 '자연학습원'이다. 어찌 된 영문인지 이곳은 해마다 눈여겨보아도 잡초만 무성하여 관리가 전혀 안 되고 있다. 범부채라는 팻말에는 원추리가 자라고 있고 섬백리향 자리는 풀만 자라고 있다. 그뿐이랴! 해국, 쑥부쟁이, 섬백리향, 자주달개비, 민트, 산국, 족두
[우리문화신문= 이윤옥 기자] 칠월의 정원은 화려하지 않다. 수수하지만 품위가 있다. 어느새 칠월! 울산바위가 저 만치 자리하고 그 위를 흰구름이 두둥실 지나가는 곳, 설악산책(雪嶽山冊), 이름도 잘 지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정원과 책과 그리고 설악을 조망할 수 있는 곳, 부러움 가득하다고 이곳을 방문한 블로거들은 한 목소리한다. 속초문화재단이 '속초시 관광로 439'에 만든 '설악산책'은 책도 보고 커피도 마시고, 밥도 먹는...그리고 여유를 덤으로 즐기는 그런 곳이다. (033-638-4002)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국가보훈처(처장 황기철)는 광복회, 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손일봉ㆍ최철호ㆍ박철동ㆍ이정순 선생을 ‘2021년 7월의 독립운동가’로 꼽았다고 밝혔다. 네 명의 선생은 1938년에 창설된 조선의용대에 참가하여, 1941년 12월 호가장 전투에서 용감히 싸우고 장렬히 전사한 열사들이다. 손일봉 선생은 평안북도 의주 출생으로 3·1운동에 참여한 아버지를 보며 독립운동의 꿈을 키웠다. 선생은 의주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중국으로 건너가 1934년 일본군 사령관 폭살 계획에 참여했으나 실패했다. 이후 육군군관학교에 입교하여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조선의용대 화북지대 무장선전대 제2분대장이 되어 용감히 싸웠다. 최철호 선생은 대전에서 출생했으며, 대전 제2공립고등학교(현재 대전 삼성초등학교)를 졸업했다. 선생 역시 육군군관학교에서 군사역량을 키웠고, 조선의용대 창설 일원으로 참가하여 활동했다. 박철동 선생은 충청북도 출신으로 강직한 성품을 타고났고, 공립보통학교시절 만세운동에 참여했다. 선생은 민족혁명당의 명령을 받고 임무를 수행하던 중 체포되어 3년 동안 징역을 살았고, 출옥 뒤 중국으로 건너가 조선의용대 1지대에 입대하여 활동했다. 이정순 선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전쟁은 무섭다. 전쟁은 목숨을 앗아간다. 전쟁은 비극이다. 그리고 전쟁은 아픔이다. 이런 말 말고 전쟁을 달리 표현할 길이 있을까? 전쟁을 일으킨 나라 곧 가해국도, 전쟁을 당한 나라 피해국도 결국은 그 ‘무서운 전쟁’의 피해에서 벗어날 길은 없다. 물론 피해국 국민이 더 큰 피해를 보는 것은 당연지사다. 문제는 일본처럼 가해국민이 자신들이 ‘피해국 국민인지, 아니면 가해국 국민인지 모른다는 사실’이다. 어제(29일) 그것을 잘 말해주는 추도회가 일본 오카야마시청에서 열렸다. 추도식장에는 ‘오카야마시 전사자, 전몰자를 위한 추도’ 문구를 세로로 길게 써 놓은 안내판이 서 있고 주변은 국화꽃으로 장식하여 참배객들이 추도할 수 있게 만들어 놓았다. 이러한 추도식 모습을 방영한 텔레비전 화면에는 ‘오카야마 공습으로부터 76년, 유족들 전몰자를 추도’라는 자막을 텔레비전 화면 오른쪽에 크게 새겨 놓았다. 언뜻 보면 ‘주어’가 빠져 있어서 오카야마가 누구로부터 공습을 받았는가 고개가 갸우뚱해질 문구다. 그러자 아나운서가 이날 추도식 행사 상황을 설명한다. “추도식에는 유족회 대표와 중학생 등 약 25명이 참석했습니다. 코로나19로 2년 연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한국국학진흥원(원장 정종섭)과 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관장 정진영)은 만주망명 110돌을 맞이하여 모두 12회에 걸친 기획 보도를 진행하고 있다. 제7편에서는 만주지역과 서ㆍ북간도에서 독립군단을 조직하여 항일무장투쟁에 나섰던 당시의 상황을 소개한다. 3.1만세운동 이후 만주지역, 곧 서ㆍ북간도에서는 다수의 독립군단이 조직되었다. 서간도지역에는 서로군정서를 비롯하여 대한독립단, 대한독립군비단, 대한광복군사령부 등이 결성되었고, 북간도지역에는 북로군정서, 대한독립군, 대한군무도독부, 대한국민회국민군 등이 조직되었다. 이 단체들은 국내진공작전, 독립군 및 군자금 모집 등의 활동을 펼치며 항일무장투쟁을 이끌었다. 서로군정서는 독판 이상룡, 법무사장 김응섭(풍산김씨 오미마을 출신), 학무사장 김형식(백하 김대락의 차남), 참모부장 김동삼 등 경북 출신이 중심이 되어 운영되었다. 특히 서로군정서는 북로군정서 사령관 김좌진의 교관 파견 요청에 긴밀히 협조하는 등 독립군 단체 간의 연대에도 힘을 쏟았는데, 당시 김좌진이 서로군정서 측에 교관 파견을 요청했고, 이에 대해 석주 이상룡이 파견을 허락하는 내용의 답신이 《석주유고》에 실려 있다. 당시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일본 오키나와, 그 평화롭던 땅이 전쟁으로 얼룩져 수많은 민간인이 희생되었던 사건 이름하여 ‘오키나와전투(沖縄戦, Battle of Okinawa)’도 시간이 흐름에 따라 많은 사람의 기억에서 점차 사라지고 있다. 하지만 현지에서는 이날의 참상을 잊지 않고 기억하기 위한 추도제를 해마다 6월 23일에 열어 억울하게 희생된 사람들의 영령을 위로하고 있다. 오키나와전투는 태평양전쟁이 막바지던 1945년 4월 1일부터 6월 23일까지 83일 동안 일본군이 본토를 지키기 위해 오키나와 본섬 등에서 미군을 상대로 벌인 전쟁이다. 당시 일본군이 방패막이로 내세운 오키나와 주민과 미군 병사 등을 포함해 약 20만 명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 가운데는 조선인과 대만인 희생자도 다수 포함되어 있다. 특히 희생된 주민들 가운데는 미군의 공습 때 주민들을 동굴 등으로 대피시킨 뒤 미군에게 잡히면 즉사하니까 절대 나오지 말라고 하면서 주민들에게 할복 자결을 명해 수많은 주민이 수류탄으로 자결하거나 가족끼리 서로 목 졸라 죽이는 참상도 비일비재하게 벌어졌다. 희생자 가운데는 오키나와 육군병원의 간호요원으로 동원된 오키나와 사범학교와 오키나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한국국학진흥원(원장 정종섭)과 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관장 정진영)은 만주망명 110돌을 맞이하여 모두 12회에 걸친 기획 보도를 진행하고 있다. 제5편은 일제의 감시를 피해 압록강을 건넌 독립운동가들이 척박한 만주땅에 정착해가는 과정을 다뤘다. 음력 1월 27일, 석주 이상룡 선생의 일행은 압록강을 건너 단동에 도착한 뒤 마차 두 대를 마련하여 서너 사람씩 나눠 타고 만주지역 안쪽으로 이동해갔다. 《서정록》을 보면 당시 간혹 추위가 풀리면 흙바닥이 진흙탕이 되어 수레바퀴가 빠져 곤욕을 치렀고, 또 객점을 지나며 허기를 달래기 위해 사 먹은 음식도 입에 맞지 않거나 아이들은 아예 삼키지 못해 병이 생기거나 했다고 한다. 단동에서부터 힘겹게 이동한 석주 선생 일행은 8일 뒤인 2월 7일에 횡도천이라 불리는 항도촌에 도착했다. 이들의 최종 목적지는 유하현 삼원포였지만, 혹독한 추위와 산모들 때문에 이곳에서 잠시 머물기로 했다. 그러면서 석주 선생은 이곳에 미리 와 있던 백하 김대락 등을 만났다. 항도촌에 머무는 동안 백하 선생은 손자를 얻는 경사도 있었지만, 늘 불안에 떠는 나날을 보내야 했다. 특히 청나라 관리가 망명 한인들에게 변발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평생 배달말 사랑에 몸바쳐온 으뜸학자 김수업 선생이 세상을 뜬지 3년이 되어가는 날(2018년 6월 23일)을 앞두고 오는 6월 19일(토) 낮 2시, 진주교육지원청 대강당에서는 ‘빗방울 김수업 기림 강좌’를 연다. 이번 기림 강좌는 김수업 선생 기림 강좌 운영위원회(위원장 : 김태기)와 진주문화연구소가 함께 열며 안동대 민속학과 임재해 명예교수를 초청하여 강의를 듣는다. 이번 강좌에서 김수업 선생이 힘을 기울인 ‘이야기 교육’의 중요성을 다시금 되새기고, 이 시대에‘이야기 교육을 왜 해야 하는지, 이야기 교육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그 방향을 짚어보는 소중한 시간을 가질 예정이다. 또한 임재해 교수의 강연을 통해 우리 조상들이 즐겼던 이야기의 전통을 왜 살려야 하는지, 이야기 교육을 일으켜 미래 사회를 이끌어 갈 일꾼을 어떻게 키울 것인지 함께 생각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믿는다. 2014년부터 <겨레말살리는모임>의 인연으로 김수업 선생과 함께 ‘우리말 사랑’의 길을 찾던 필자는 선생의 추모일이 다가올 때면 늘 가슴이 아리다. 선생의 유지를 받들어 하던 일을 계속 이어가야하는데 ‘위대한 선장을 잃은 선원’들은 여전히 선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