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신문 = 최미현 기자] 장승은 마을입구나 길가에 세워 그 마을의 수문신수호신 등의 구실을 하는 민간신앙의 한 형태이다. 도동리 당산거리에 자리하고 있는 이 2기의 장승은 당산나무 밑의 할아버지와 할머니로 불리는데, 3m 거리를 두고 각각 북쪽과 남쪽으로 등을 돌린 채 서 있다. 북쪽을 바라보는 할아버지 장생은 대강 다듬은 자연석을 사용하였으며 전체적으로 우직한 인상을 풍기고 있다. 동그란 안경을 쓴 듯한 눈, 동그란 코, 초승달 같은 입술, 턱 아래 두줄의 수염 등 소박한 시골 할아버지의 얼굴 모습이다. 앞면에는 동방대장이라는 글씨를 새겨 넣었다. 할머니 장생은 남쪽을 향하고 있으며 몸통이 사다리꼴로 올라가다가 머리부분에 와서 사각꼴로 깎였다. 두께 18m의 널돌을 사용하여, 두터운 할아버지 장생에 비해 날씬한 모습이다. 눈과 코는 둥글고 입은 기형적으로 크며, 이빨은 요철(凹凸) 모양으로 파놓아 찡그리고 있는 표정이다. 서방대장도광 12년이라 새긴 것으로 보아 조선 순조 32년(1832)에 세운 것임을 알 수 있다. 할아버지 장생과 할머니 장생 사이에는 거칠게 다듬은 원통형 돌이 서 있는데 마을 사람들은 이를
[한국문화신문= 최미현 기자] 다대포 후리소리는 해변가에서 멸치잡이 후리질을 하면서 부르는 노동요로서 작업의 순서에 따라 그 동작이 함께 곁들여진다. 토속민요의 하나로 개인 또는 집단적으로 부르며, 지방에 따라서 노래가 달라질 수도 있다. 다대포 후리소리는 한 사람이 노래를 부르면 다른 여러 사람이 그 노래를 받아 부르는 선후창(先後唱)형식이다. 내용은 그물을 어장으로 옮겨 배에 실으면서 부르는 그물을 배에 싣는 소리, 용왕고사(제사)를 지내며 풍어를 기원하는 용왕제, 고깃배의 노를 저으면서 부르는 노젓는 소리, 어부들이 양쪽에서 벼릿줄(그물)을 당기면서 부르는 후리소리, 후리질을 하며 그물을 쪼으면서 부르는 그물터는소리, 멸치를 저장통에 옮기면서 부르는 가래소리, 가래질을 마친 후 쾌지나칭칭나네를 부르며 즐기는 풍어소리로 구성되어 있다. 다대포 후리소리는 이 지역의 특성을 지닌 민요로서 멸치잡이에 소요되는 어구와 작업의 방법을 재현보존하고 있어 민속적음악적문화적 가치가 높다. 현재 다대포후리소리보존회에서 전승보급에 힘쓰고 있다. 1987.07.02 무형문화재 지정일 자료: 문화재청
[한국문화신문= 최미현 기자] 국립중앙도서관(관장 임원선)은 오는 28일(수) 국민 문화 향유권 확대를 위한 문화가 있는 날을 맞아 2015년 제1회 저자와의 만남을 연다. 이번 행사는 로쟈의 인문학 서재, 로쟈의 세계문학 다시 읽기, 아주 사적인 독서, 로쟈의 러시아 문학강의등을 저술한 이현우 작가를 초청하여, 독서와 서평쓰기를 주제로 강연을 진행한다. 러시아 문학을 전공한 문학박사이자 본명보다 필명 로쟈로 더 잘 알려진 서평가인 저자는 좋은 서평쓰기도 기본적으로는 독서력에서 나온다. 라고 말하며, 이번 강연을 통해 서평쓰기의 목적 및 방법 외에 기본적인 독서법에 대해서도 전할 예정이다. 이번 강연이 독서와 글쓰기 활동에 동기를 부여하여 새해맞이 새로운 독서계획을 세울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강연 신청은 오는 19일(월) 오전 9시부터 국립중앙도서관 홈페이지(www.nl.go.kr, 도서관소식행사안내)에서 할 수 있다. 접수는 선착순 마감이며, 참가비는 무료이다. 강연 후에는 추첨을 통하여 참가자에게 저자의 사인이 담긴 저서 1권씩 증정할 예정이다. 이 행사를 기획한 국립중앙도서관 관계자는 앞으로도 문화가 있는 날을 맞아 인문학
[한국문화신문 = 최미현 기자] 조선장(造船匠) 이라 함은 우리 전통 배인 한선(韓船)을 만드는 장인(匠人)을 말한다. 근대 한선이라고 하면 한일병합 전후로 하여 강이나 바다에 떠다니던 배를 말하는데 거룻배·나룻배·야거리배·당두리 등이 있었다. 그 중 야거리배는 돛대가 하나 달린 나룻배로 배 밑이 편평하기 때문에 한강을 거슬러 올라 다녔으며 한강의 모래밭에 그대로 올라 앉을 수도 있었다. 당두리는 당도리선(唐道里船)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원래는 바닷배이나 한강을 거슬러 올라다녔다. ▲ 8대째 이어 오는 나룻배 장인 김귀성 선생 현재 만드는 배는 주로 황포돛배·놀이배·기관선·메생이(그물배나 낚시배) 등이다. 배를 만들 때는 대개 마을사람들이 동원되어 함께 일하며, 큰 배는 2∼3명, 작은 배는 1∼2명이 배의 종류에 따라 일주일에서 한달 걸려 제작한다. 조선배의 특징은 물 깊이가 무릎밖에 안되는 강 상류를 오르내릴 수 있도록 배 바닥이 편평하고 탄력있게 만들어야 한다는 점이다. 기능보유자 김용운씨 사후, 그의 장남 김귀성씨가 대를 이어 기능보유자로 인정되었다. 그의 집안은 한강 나루에서 8대를 이어오면서 사람이나 짐 등을 실어 강을 건너주는 일을 하거나 나룻배,
[한국문화신문 = 최미현 기자] 장말손초상(張末孫肖像)은 조선시대 문신인 장말손을 그린 초상화로, 크기는 가로 107㎝, 세로 171㎝이다. 장말손(14311486)은 세조성종 때의 문신으로, 이시애의 난(1467)을 평정하는데 공을 세워 적개공신(敵愾功臣,조선 세조 13년(1467)에 이시애의 난을 평정한 공신에게 준 훈호(勳號). 귀성군, 조석문 등 45명을 세 등급으로 나누어 포상하였다.)이 되었는데 이 그림은 그 후에 그려진 것으로 보인다. 그림은 3폭으로 연결되었는데, 얼굴부위가 들어있는 가운데 폭과 양어깨를 표현한 2개의 폭이 이어져 있다. 의자에 앉은 전신상으로, 얼굴을 살색으로 칠한 후 갈색으로 윤곽을 잡았으나 선의 짙음과 흐림이 없는 옛 기법을 사용하였다. 입술은 붉은 기가 돌고 눈매의 표정이 살아있으며, 전체적으로 가라앉은 느낌을 준다. 목 위로 바짝 올라간 관복, 팔뚝 아래에 있는 의자의 손잡이, 가지런한 두 발, 각진 옷의 윤곽선, 금실로 공작을 수 놓은 흉배에서는 조선 전기의 화풍을 엿볼 수 있다. 또한 머리에 쓴 사모의 꼬리가 잠자리 날개 모양에 수평으로 퍼져 있고, 오른쪽을 바라보고 있는 자세, 몸의 풍채가 과장되지 않고 옷자
[한국문화신문 = 최미현 기자] 신증동국여지승람 건치연혁조에 보면 정산(定山)은 백제시대에는 열기현(일명 두릉윤성), 통일신라 때에는 열성(경덕왕, 부여군 속현)으로 불렀으며 고려 때에 와서 정산(定山)으로 불렀다고 적고 있다. 옛 정산현(현재 충남 청양군 정산면)은 칠갑산(七甲山))현 서쪽 16리에 있으며, 이곳에는 자비성(慈悲城)이라 부르는 옛 성터가 있었다고 전한다. 불교가 흥륭한 시절에는 산수가 수려한 곳이면 어김없이 명찰(名刹)이 들어섰음을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이곳 정산 지역에는 백제 때 절(통일신라 설도 있음)로 계봉사(鷄鳳寺)가 있었는데 조선 헌종 때 불타버린 것을 옛 이름을 따서 작은 규모로 새로이 짓고 정원을 꾸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태종실록태종 14권, 7년(1407) 12월 2일 기록에는 천태종 절로 충주(忠州)의 엄정사(嚴正寺), 초계(草溪)의 백암사(白巖寺)와 함께 정산(定山)의 계봉사(鷄鳳寺)라는 이름이 나오는데 이는 당시의 대가람이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천여 년이 넘은 역사를 지닌 계봉사 5층탑은 2층 기단(基壇) 위에 5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이다. 위층 기단의 앞면에는 탑의 이름을 새기고, 탑신의 각층 몸돌에는
[한국문화신문 = 최미현 기자] 성남시 분당구 구미도서관 안에 실버 카페 돌치가 마련돼 어르신 바리스타 10명이 인생 2막을 열게 됐다. 성남시는 1월 16일 오후 2시 지역주민 100명이 참석한 가운데 구미도서관 돌치 카페 개소식을 했다. 돌치는 성남시 공공도서관 안에 설치된 실버 카페 4호이다. 중원어린이도서관의 책 마루(2013.10.11), 중앙도서관의 애노쉬(2014.7.21), 분당도서관의 뜨랑슈아(2015.1.5) 등 앞서 문 연 실버 카페와 마찬가지로 도서관의 자투리 공간을 리모델링했다. 시는 구미도서관 돌치 카페 설치에 4,800만원을 투입했다.57.3㎡ 규모에 커피머신 등 기자재를 갖춘 주방과 도서관 이용자들이 쉴 수 있는 테이블의자 8개 세트의 담소 공간을 마련했다. 영업신고와 사업자등록 등 영업에 필요한 제반 행정절차도 마쳤다. 여느 성남시 공공도서관 안 실버 카페처럼 65세 이상 어르신 10명이 바리스타로, 매니저로 근무한다. 동서울대학교 등 3개 기관에서 4개월 과정의 바리스타 교육을 받아 자격증을 딴 어르신들이다. 카페모카, 카푸치노, 아메리카노 등 커피를 직접 만들어 시중가보다 20~30% 저렴하게 판다. 카페 운영은 수정
[한국문화신문= 최미현 기자] 구석찬씨 댁에 소장된 『승청명록, 勝聰明錄』은 월봉 구상덕(月峯 仇相德, 1706-1761)이 쓴 일기로서, 그가 20세가 되던 1725년부터 56세로 별세한 1761년까지 37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기록하였다. 승총명록의 가치는 18세기 농촌사회의 구체적인 삶과 그 변화과정을 여실하게 파악해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자신이 살던 고성지역을 중심으로 벼농사와 보리농사의 파종과 이앙시기, 춘궁기의 생활문제, 물가의 등귀, 도둑, 전염병, 기근, 자녀교육, 마을의 관혼상제, 관가와의 관계, 여러 가지 奇기행록 등 일상생활에서 부딪히는 온갖 사건들이 여과 없이 기술되어 있다. 따라서 이 일기는 앞으로 조선 후기 농업사, 민속사, 사회사, 경제사, 교육사 등 여러 각도에서 이용될 수 있는 중요한 사료라고 생각된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그가 여러 번 과거에 응시하기 위해 시험장소가 있는 성주, 의령, 진주 등 여러 곳으로 갔다가 돌아오면서 남긴 기행일기 속에서 당시 지방 사족들의 생활행태를 구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는 점과, 또 영조 4년(1728) 술신난(戊申亂)이 일어났을 때 고성지역과 인근 고을의 사족들은 어떤 움직임을 보이는가
[한국문화신문 = 최미현 기자] 운구대(雲衢臺)는 고려말에 소윤(少尹)을 역임한 만은(晩隱) 홍재(洪載)의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절개를 지키기 위해 개성에서 남하하여 은둔한 곳이라고 한다. 만은(晩隱) 홍재(洪載) 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1709년의 풍산홍씨족보(豊山洪氏族譜)에서의 기록이다. 여기에는 홍재(洪載)가 문과에 급제하여 좌산기(左散騎) 직제학(直提學)을 역임한 홍보(洪保)의 아들로 되어 있고, 자신은 문과에 급제하여 소윤(少尹)군사(郡事)를 역임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 다음으로 보이는 기록은 좌의정 맹사성(孟思誠:1360-1438)이 1424년 4월에 찬 술했다는 행록(行錄)이 있다. 1786년에 주변 유림의 건의에 의하여 운구대 곁에 운구서원(雲衢書院)을 창건하기 시작하여 1796년에 만은(晩隱) 홍재(洪載), 모은(茅隱) 이오(李午), 금은(琴隱) 조열(趙悅)을 봉안하였다. 1833년에 한 차례 중수를 하였으나, 1868년 조정의 서원 훼철령에 의하여 서원이 훼철된 뒤, 근래 그 자리에 운구서당 이라는 이름으로 건물을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운구대는 두심리 마을 높은 곳에 선박의 형태를 하고 있는 바위로, 그 위에
[한국문화신문 = 최미현 기자] 거문고는 5세기 이전 고구려에서 만든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현악기로, 3옥타브 정도를 오르내리는데 우리나라 악기 중 가장 넓은 음역을 자랑한다. 이 거문고는 유중교((柳重敎), 1821-1893)가 연주하던 칠현(七絃)의 거문고로서 그의 후손인 유성균이 소장하고 있던 것을 기증받아 제천의병 전시관에서 전시 관리하고 있으며 1800년대 중반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현존하는 거문고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거문고의 재질은 질좋은 오동나무로 괘는 14개, 현은 7개로 악기의 윗면에는 5행 34자 뒷면에는 4행 76자(악기의 유래 등으로 유중교의 기록으로 보여진다)가 음각되어 있으며 보존상태가 매우 양호하나 현은 부식되어 1995년도에 보수하였다. 1994.12.30 충청북도제천시문화관광과043-641-513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