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시장과 고분군 ▲ 전시장 내부 ▲ 전시장 동산에서 내려다본 고분군들 ▲ 전시장 윗 동산에서 본 고분군들 [그린경제/얼레빗=최우성 기자] 가야는 경상남도 김해의 금관가야가 기원 전 42년 김수로왕을 왕으로 세우면서 여러개의 가야연맹국가로 존재하였으며, 백제와 신라 사이에서 가야만의 독특한 토기와 철기를 발전시켜 500여년을 생존하다가 562년 신라 진흥왕에 의하여 멸망당할 때까지 신라와 백제 그리고 왜의 사이에서번성했던 고대국가였다. 가야는 반도의 동남쪽의 내륙에 위치하여 바다도 그리 멀지 않지만, 내륙의 산간지방으로 쉽게 접근할 수도 없는 곳에 위치하여 치열한 각축속에서도살아남았지만, 그 역사적인 기록이 많지 않아 잊혀진 왕국이었다. 근래 가야시대의 고분발굴을 통하여 차츰 그 모습을 보여주고는 있지만, 그래도 본 모습을 알기에는 너무도 부족한 실정이다. 고대사를 연구하는 학자들 중에는 가야는 고구려 백제 신라 부여와 함께 5국이 존재했던 한국 고대국가의 당당한 일원이었다고 하여, 보통 한국의고대국가를 고구려 백제 신라 3국으로 한정하는 것에 반하여 고대 한민족은 고조선의 후계 국가로 크게 5국이 각축을 벌이던 시대였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 홍제천가의 물레방아 ▲ 홍제천가의 갈대숲 ▲ 안산에서 본 북한산 ▲ 안산의 맨위에 있는 봉화대 ▲ 안산에서 본 서울성곽 ▲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을 굽어보고 ▲ 63빌딩이 보이는 한강 ▲ 메타세콰이어 숲속에서 [그린경제/얼레빗=최우성 기자] 안산은 서대문구의 중심이 되는 산이다. 산 높이 해발 295m로 그리 높은 산은 아니지만, 한양도성의 서쪽을 감싸고 있으며, 한양에서 중국으로 가는 길은 안산과 인왕산을 이어주는 재를 넘어야 했다. 이 재의 생김새는 짐을진 소의 등과 비슷하다하여 질마재라 부르기도 했지만 산의 모양이 어머니처럼 넉넉하고포근한 산이라하여 안산을 모악산이라 부르기도 했으며, 그 모악산에 있는 재라 하여 무악재(모악의 변음)로 더 알려져 있다. 안산의 최고 높은 봉우리에는 봉화대(최근 복원)가 있어 서해에서 접근해 오는 외적의 침입 시에 이 봉수대를 통하여 임금이 있는 한양성에 변고가 전해졌다. 이 산의 주변으로는 연세대, 이화여대, 홍익대 서강대 등이 있으며, 산 자락에는 오래된 봉원사가 자리잡고 있다. 안산의 동측면에는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이 있으며 일제강점기에는 우리의 독립투사들이갖은 고초를 당하고 목숨을 잃은
▲ 가을이 물들기 시작한 산사 ▲ 석탑과 국화꽃이 어우러진 산사 ▲ 코스모스가 핀 석등 옆을 지나는 스님모습 [그린경제/얼레빗=최우성 기자] 가 을 산 사 - 이고야 가을이 물든다 마음도 물든다 고운 붉은 빛깔로 노을처럼 그렇게 물들어 간다 고즈넉하게. 가을색이 물들기 시작한 도심산사의 정경을 담아보았다. 최우성(건축사.문화재수리기술자. 한겨레건축사사무소 대표) 문화재수리기술자로 한국인의 삶을 담아온 전통건축의 소중한 가치를 찾아 기록하고 보존하는 일을 하고 있다. 북촌한옥마을 가옥 보수설계, 혜화동주민센타 개보수설계, 파주 화석정, 파산서원 등과 영주 소수서원의 정밀실측설계, 불국사 일주문, 안동하회마을, 제주성읍마을, 영주 무섬마을 등 문화재보수설계 일을 맡아했다. 포천시민의 종 종각설계, 용마산 고구려정, 도피안사 대웅전, 봉선사 종각 등을 설계하였다. 현재 한국불교사진협회 회원, 문화재청 문화유산사진작가, 불혹의 포토클럽 회원
▲ 선잠단터 주변에는누에가 먹고 자라던 뽕나무들이 잘 자라고 있다. ▲ 선잠단터 표지석 ▲ 선잠단터 표지석 [그린경제/얼레빗=최우성 기자] 서울 성북구 성북동에는 '선잠단(先蠶壇)'이 있었다. '선잠단'이란 비단실을 뽑아내는 '누에'신인 '서릉(西陵)'씨를 모셔두고 1년에 한차례씩 제사를 지내면서 뽕나무잎을 잘 먹고 누에들이 잘 자라서 좋은 비단실을 잘 뽑아낼 수 있게 되길 바라는 염원을 빌었던 곳이다. 선잠단의 제사는 왕비가 주관하였는데 왕비가 친히 납시어 누에치는 것을 모법을 보이고 대궐 밖에 사는 모든 사람들도 왕비처럼열심히 누에농사를 잘 짓도록 권하는 행사였으나, 이곳 선잠단은 1908년 선농단과 함께 사직단으로 그 제단과신위를 옮겨서 행사를 하게 되었다. 누에는 열심히 뽕나무 잎을 먹고자라, 다 자란 애벌레가 나방이 되기까지 머물러 있을 누에집을자기 입에서 뽑아낸 실로 누에고치를 짓는데, 그 고치가 바로 비단실이 되는 것이다. 그 가늘고 고운 비단으로 가득한 누에고치를 사람들은 뜨거운 물에 풀어서 누에가 입에서 처음 뽑아낸 실마리를 찾아내서 이를 실패에 감은 뒤에, 실패에 감긴 실들을 베틀에서날줄과 씨줄로 엮어짜서 비단옷감을 만들고, 그
▲ 길상사 관세음보살 ▲ 길상사 관세음보살 ▲ 관세음보살 근접촬영 [그린경제/얼레빗=최우성 기자] 동양의 불교와 서양의 천주교는인간의 행복한 삶을 추구한다는 같은 목표으로 생겨난 종교이지만,우주와 인간의 근본존재와에 대한 설정이 서로 달라다른 길을 걷고 있다. 다만, 그 수행의 여정중에는서로 통하는 바도 많다. 불교가 '일체유심조'를 내세우며 자신 안에 있는 불성을 깨우치려는 자각의 종교라면, 천주교는 미약한 인간은 절대자인 하나님의 피조물로 창조자에의지함으로써만 구원을 얻을수 있다는 것이니 많은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두 종교의 성직자들은 종교인으로써 생활하는 방식에 있어서는 많은 유사점이 있고, 서로가 통하는바도 많다. 그중에는 신앙의 대상이 되는 성스러운 상으로 조성하는 조각상에 있어서도 비슷한 점도 많다. 불교에서는 깨달으면 누구나 부처가 될수 있다고한다.그래서 불교의 경전에는 수를 헤아릴 수 없는많은 부처님이 등장하고 이에 따라 다양한 이름을 가진 부처상들을 만들어 깨달음을 얻은 부처의 모습으로 형상화 하고 있으며, 또 깨달은 부처와 중생인 인간 사이에는 그 중간에서 부처와 중생 사이에서 소통의 역할을 하는 보살이 있다. 이
백담사에서 영시암으로 오르는 계곡에 놓여있는 다리를 건너가는 사람들 ▲ 백담계곡의 초가을단풍, 주변에는 저마다의 소원을 담은 돌탑들이 가득하다. 백담계곡에 비친 돌탑들 ▲ 영시암 근처 단풍이 물든 백담계곡 ▲ 단풍드는 영시암 [그린경제/얼레빗=최우성 기자] 가을이 물들어가는 설악의 서쪽에는 백담사가 안겨있다. 백담사는 본시 신라때 자장율사가 창건한 절이라 알려지고 있는데, 그 창건시기는 봉정암과도 관련이 있다. 그 동안 많은 스님들이 거쳐갔던 백담사는만해 한용운 스님이 머물렀던 절로도 유명한데만해 스님은일제의 총칼에 당당히 맞서서 붓으로 항거했으며 당시 왜색에 물들어가는불교계의 잘못됨도 서슴지 않고 지적했던 스님이다. 또 백담사는 1980년 5월 18일 광주 시민의 민주화항쟁을 탄압한전전두환 대통령이 사법부의 판결에 따라 한동안 감옥대신귀양(?)왔던 곳이다. 이런저런사연으로 작은 암자로알려졌던백담사가이제는 전국민이 찾는명소가 되었다. 백담사 일원에는 만해마을이 들어서고,해마다 만해 한용운 스님의 독립정신을 기리는 문학축제가 열리고 있다. 또한 불자들의 기도처로 이름난내설악 봉정암으로 가기 위한 가장 무난한 산길이 바로 백담계곡을 거쳐가는
▲ 비가 내리는 가운데 부처님 사리탑을 향해서 기도하는 모습. 오르기도 힘든데 비가 온다고 기도를 하지 않으면 올라온 의미가 없어서 일까? 우산을 쓴채 기도하는 모습. ▲ 부처님 사리탑을 향해 기원하는 모습. 새벽에 산안개가 드리운 가운데 절하는 모습이 인상 깊다. ▲ 적멸보궁(부처님의 사리가 있는 경우 부처님 모습의 상을 만들지 않고 사리가 있는 곳을 향하여 창을 냄)의 법당 내부 ▲ 대웅전 위에 부처님 모습을 한 바위 ▲ 봉정암 전경 ▲ 적멸보궁 위에는 깎아지른 절벽 위에 부처님형상의 바위가 솟아있다.무릇 형상에 매이지 말고 그 본성을 보라고 부처님은 늘 가르쳤지만, 미약한 중생은 어디서나 형상을 찾아 의미를 부여하고, 그 속에서 소원을 빌고 기쁨을 구한다. [그린경제/알레빗=최우성 기자] 가을이 깊어가는 10월 초. 남한에서 가장 먼저 가을 소식을 전하는 설악산 속 깊이 자리한 해발 1244m(사리탑이 위치한 곳의 높이)봉정암에 올라보았다. 봉정암은 신라시대 644년자장율사가 중국 청량산에서 구해온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받아온 뒤 그 사리를 5곳에 나누어 봉안했는데, 그 5곳 중 한 곳이 바로 이곳 설악산 봉정암의 부처님 진신사리탑이
▲ 안개낀 소청산장 [그린경제/얼레빗=최우성 기자] 어김없이 변하는 산천초목의 생명시계 들판의 벼이삭만 노랗게 변하고 사과 배 감 밤만 익어가는 게 아니라 산과들의 풀과 나무도 찬 이슬을 맞고 서서히 겨울맞이 준비를 서두르고 있다. 봄은 남풍을 따라 보지만 가을은 반대로 찬 이슬이 알게 해주니 북에서 부터 내려온다. 이제 설악의 봉우리에는 찬 이슬을 맞고서 대청봉 공룡능선부터 울긋불긋 단풍이 서서히 내려오고 있다. 여름내 푸른 잎을 볼 때는 언제쯤 지려나 싶었는데 찬바람 찬이슬에 풀과 나무는 당연한 듯 제 모습을 바꾸어주니 이제 농부들 일손만 더욱 바빠지고 있다. 여름내 햇볕과 병충해와 싸운 결과를 이제 알찬 수확으로 마무리 짓고 풍년에 두둑한 소득으로 보답받길 빌어본다. 남한에서 한라산(1,950m)지리산(1,915m)에 이어 세 번째로 높은 산이 설악산, 그 설악 소청봉 봉정암에 올라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31호로 지정된 봉정암석가사리탑까지 가슴에 담아본다.
▲ 국민들이 외면하지 말길 바라는 세월호 유가족 모임 현장 ▲ 광화문 광장의 흰천막 ▲ 할머니의 하소연! ▲ 어렵고 힘들어도 포기할 수도 없네.. ▲ 할 수 있는 일이 이것뿐이지만,, 이것이라도 할 수 있으니 부지런히 노란 리본을 접고 있다. ▲ 잊을 수 없다는 유족들의 맹세 ▲ 힘들다 국민단식장 ▲ 끝없는 벽 [그린경제/얼레빗=최우성 기자] 어느 덧 애절하고 황당한 사건이 발생한지 6개월이 되어간다. 그런데 지금도 생사를 알 수 없는 사람이 10명에 이르고, 거대한 배의 몸체는 물속에 가라앉은 채, 소식도 없다. 불의의 객이 되어버린 가족들을 잃고, 유가족들은 하루 한시도 마음을 놓고 쉬지 못하고, 도대체 왜 이런 사태가 벌어졌는지 그 원인이라도 제대로 알고, 잘못된 그 원인에 대한 처방이라도 제대로 나와야 하지 않겠느냐고 하소연한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사건이 발생한지 6개월이 되어가는 오늘까지 원인도 명확하지 않고, 책임지는 사람도 별로 없어보인다. 다만 세월호로 돈을 벌어보겠다고 나섰던 유병언과 그의 일가들만 천인공로할 죄인이 되었고( 그들이 죄가 없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 배를 잘못 운행했던 선장과 선원들만이 재판
▲ 서울전망대(서울타워) 수많은 사람들이 오르내리면서 서울을 관조한다. ▲ 남산 전망대에서 본 서울의 일몰경 ▲ 사랑은 좋은 것이여 !!!모두가 한번쯤 사진을 찍어놓고 싶어하는 사랑탑 ▲ 사랑의 맹세로 꽁꽁 묶인 전망대 계단난간 ▲ 서울전망대의 북쪽에는 서울의 옛 도심과 남산공원이 있다. ▲ 남산의 등성이에는 서울성곽이 이어져 있고뒤로는 멀리 한강이 감싸고 돌고 있다. [그린경제/얼레빗=최우성 기자] 500년 조선의 도성이었던 한양성 외곽으로는 조선초부터 숙종때까지 석성을 쌓아서 관리한 한양성이 둘러있다. 일제를 거치는 동안 길을 내고 건물을 짓는다고,많은 부분들이 훼손되어서 더러는 그 형체도 알 수 없이 파괴되었지만, 근년에 들어 문화재청과 서울시에서 서울성곽복원공사를 꾸준히 진행하여 많은 부분들이 제모습을 되찾았다. 한양성의 중심은 경복궁이었고, 그 앞으로는 관아와 사대부 세도가들이 모여사는 양반가옥들이 있었고, 외곽으로는 시장과,크고 작은 민가들이 비탈진 곳까지가득했으며, 그 외곽으로는 한양성이 둘러쳐있어, 새벽이면 종을치고, 또 야간에도 종을 쳐서 들고 나는 것을 관리하였기에,한양도성은아무때나 또 누구나마음대로드나들지 못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