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신문 = 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의 나이는 약45억 살쯤 되었을 것이라고 과학자들은 추정한다. 우리 인간의 시간개념으로는 무척 긴 시간처럼 느껴지는데, 그건 인간의 수명이 지구 나이에 비해선 상대적으로 매우 짧기 때문일 것이다. 지구는 생성 후 8억년 정도가 흐른 후 원시박테리아에 의해 최초의 생명활동을 시작한다. 그 몇 억년 후 광합성을 하는 단세포생물인 남조류가 출현하여 산소를 만들어 내면서 동식물이 살기 좋은 환경으로 변화해갔다. 하지만 그렇게 되기까지는 30억년 가까운 긴 시간이 필요했다. 지금으로부터 6억 년 전쯤 다세포생물의 등장으로 지구는 녹색혁명과 함께 다양한 동식물이 진화하는데, 지질학에선 이때까지 40억년 가까운 기간을 은생누대, 그 이후를 현생누대로 구분 짓는다. 그 기나긴 지구의 역사에서 우리 인류의 출현은 극히 최근의 일로, 오스트랄로피테쿠스에게인류의 조상 지위를 부여한다 하더라도 고작 300 만년에 불과하다. 그 가운데서도 현생인류가 나타나 문명생활을 시작한 것은 채 일만 년을 넘지 못한다. 그 기간에 인류는 지구의 자원을 거의 고갈시켰다. 구체적으로는 산업혁명 이후, 200년이라는 찰나와도 같은 짧디짧
[한국문화신문 = 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어슴푸레 윤곽만 보였다. 출입문이 선자령을 마주보는 까닭에, 하오의 역광을 받은 그의 모습은 커다란 곰 한 마리가 어슬렁거리며 들어오는 것 같았다. 아직 개점준비가 덜된 터라 되돌려 보내려 했으나, 벽면을 빼곡히 채운 음반을 보고 경탄하며 행복해하는 그의 모습에 얼설픈 청소를 마치고 그를 맞았다. 그는 엉덩이를 채 붙이기도 전에 영화를 만나라는 노래가 있느냐고 물었다. 목이 무척 타는 것 같았다. 수분부족에서 오는 갈증이 아니라 영화를 만나에 대한 목마름인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짐짓 아끼는 음악일수록 호흡을 가다듬고 들어야지 감동이 배가됩니다. 무슨 불문율이라도 되는 양 목소리를 깔며 그에게 맥주부터 한 잔 권했다. 그는 그동안 강릉은 여러 차례 다녀가서 웬만한 곳은 다 둘러보았기에 이제는 강릉의 속살을 보고 싶다하였다. 택시를 몇 번씩 갈아타가며 마음에 드는 곳을 찾아 헤매다 천신만고 끝에 이곳을 발견하여 행운이라며 흡족해했다. 그의 호흡이 진정되는 것 같고, 약간의 알코올기도 도는 것 같아 나는 예고 없이 사월과 오월의 영화를 만나를 턴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노래가 시작되자 그는 말문을 닫더니 첫 소절이 끝나
[한국문화신문 = 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소풍을 가면 요즘 학생들이야 슬기전화(스마트폰)을 주머니에 넣고 가겠지만, 소위 70,80세대들은 한 반에 두 세 명 정도는 휴대용 전축(야외전축)을 들고 소풍을 갔다. 소풍장소에 도착하면 선생님의 눈을 피해 적당히 으슥한 곳에 자리를 잡고 그걸 틀어놓고는 트위스트며 고고 춤을 신나게 춰댔다. 교복바지에 천을 잇대어 나팔바지를 만들어 입고 엘비스 프레슬리 흉내도 내보고, 다이아몬드 스텝을 밟으며 톰 존스를 베끼기도 했다. 흩날릴 머리카락도 없는 빡빡머리를 정신없이 흔들며 소울 춤도 추고 개다리 춤도 추며 억눌린 젊음의 욕구를 발산해냈다.그 당시 통기타, 청바지, 생맥주를 청년문화의 3대요소라 불렀지만 그건 유감천만의 말씀이다. 어느 통기타가수가 야간업소에서 별 뜻 없이 던진 한마디가 유행어가 되고 말았는데, 야외전축을 뺀다는 것이 어디 말이나 될 법한 일인가?기억해 보라! 프라우드 메리, 버닝 러브, 슈가 슈가, 디지, 필링 소 굿, 인디언 보호구역.기억만으로도 마음이 아련해오고 기분 좋아지는 노래제목이 아닌가. 그 시절 야외전축은 청년문화의 최우선 순위의 필수품이었다. 그 야외전축 나비효과가 음악다방의 전성기를 불러왔
[한국문화신문 = 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그 때도 사월이었다. 강가의 조약돌 같이 옹골차게 생긴 그녀가 내게 처음 오던 날이. 세상은 어지러웠다. 철옹성 같던 유신체제가 무너진 자리에 더 단단한 성을 쌓으려는 세력들의 이름이 연일 매스미디어를 장식하던 때였다. 나는 그 시절 서울의 한 음악 감상실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유채 밭이 노란 물결로 출렁인다는 소식이 들려오는 날, 근무를 마치고 휴게실에서 쉬고 있는데 솔깃한 속삭임이 들려왔다. 형, 제가 여자 소개해 드릴까요? 형 하고 잘 통할 것 같은 친구예요. 나는 그때 그 후배의 소개로 한 여성과 평생 지울 수 없는 인연을 맺게 된다. 그녀를 처음 볼 때부터 왠지 낯설지가 않았고, 그녀 역시 어디서 나를 많이 본 듯하다며 친근감을 나타냈다. 첫 만남부터 마음이 통한 우리는 머잖아 금병산으로 봄맞이 산행에 나섰다. 진달래꽃이 무더기로 피어난 산풍경은 동화책 삽화 같았다. 그녀는 세상에서 봄이 가장 아름다운 산이라며 찬탄을 아끼지 않았다. 김유정이 이런 곳에서 태어났으니 봄봄 같은 가작들이 나오지 않았겠느냐며 환히 웃었다. 그녀는 음악도 많이 알고 있었지만 문학에 대한 식견도 대단했다. 이상(李想)을 논하더니 소월
[한국문화신문 = 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언제부터인가 봄이 좋아졌다. 청년시절엔 낙엽마저 다 떨어진 11월의 쓸쓸함이 그렇게 좋더니. 오늘은 원조 비바리가수 백난아의 찔레꽃을 감상하며 고향의 오솔길을 거닐어 본다. 찔레꽃 붉게 피는 남쪽 나라 내 고향 언덕 우에 초가삼간 그립습니다 자주고름 입에 물고 눈물 젖어 이별가를 불러주던 못 잊을 동무야 달뜨는 저녁이면 노래하던 세 동무 천리객창 북두성이 서럽습니다. 삼년 전에 모여 앉아 백인 사진 하염없이 바라보니 즐거운 시절아 연분홍 봄바람이 돌아드는 북간도 아름다운 찔레꽃이 피었습니다. 꾀꼬리는 중천에 떠 슬피 울고 호랑나비 춤을 춥니다. 그리운 고향아 백난아는 1925년 제주에서 오금숙이란 이름으로 태어났다. 그 후 함경도 청진으로 이주해 그곳에서 성장 하였고 서울양재고등여숙을 졸업하였다. 1940년에 개최된 제1회 레코드 예술상이란 신인가수 선발대회에서 2위로 입상하며 가요계에 입문하였다. 당시 심사위원장이었던 김교성의 눈에 들어 진방남과 함께 태평 레코드의 전성기를 이끌게 된다. 김교성은 콩쿠르를 통해 신인가수를 많이 발굴해내 콩쿨대왕이란 별명이 붙은 인물이다. 백난아라는 이름은 선배가수 백년설이 지어 줬으
[한국문화신문 = 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오늘 날 전 세계의 대중음악은 대부분 미국의 영향을 받은 음악들이다. 문화는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속성을 지니는데, 여기서 높은 곳과 낮은 곳은 문화의 우수성 외에도 국력을 포함하기도 한다. 고대 로마인들은 무력으로 그리스를 지배했지만, 우수한 그리스 문화만큼은 흠모하여 앞 다투어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제국 전역에 전파하여 찬란한 꽃을 피우게 했다. 그리스문화의 우수성과 로마제국의 국력이 이루어낸 합작품이다. 한편 동아시아에서는 중국문화가 높은 곳 역할을 했다. 한자문화권을 포함한 동아시아 여러 나라가 중국문화의 짙은 영향을 받았다. 그런데 국력이 막강했음에도 자기네 문화를 전파하지 못한 나라가 있다. 몽골제국은 인류역사상 가장 광대한 대제국을 건설하였지만 변변한 문화를 지니지 못해 전파는 고사하고 오히려 지배지의 문화에 흡수되어 버리고 말았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별로 뛰어 나지는 못하지만 국력 덕택에 세계를 휩쓸고 있는 문화가 있으니 바로 미국문화이다. 특히, 영화와 대중음악이 본보기로 그 위력은 실로 대단하다. 대중음악 분야에서는 로큰롤이 기폭제 역할을 하였는데, 일부를 제외한 거개
[한국문화신문 = 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봄의 전령사 얼음새꽃이 피었는가 싶더니 어느새 매화가 만발이다. 멀리 청옥산은 아직 하얀 솜두루마기를 걸치고 웅크리고 있는데 삼화벌판엔 벌써 청보리가 한 뼘이다. 온갖 멧새 때 소리에 아침이 앞당겨져 양달 쪽 목련은 나발을 불고, 복사꽃 망울 속엔 연지가 가득하다. 여기저기서 먼저 피려고 꽃잎들이 다투는 소리에 밤마다 들뜬 잠을 잔다. 이미 남녘에선 벚꽃 개화소식이 들려오니 머잖아 상춘객들이 구름떼처럼 몰려다닐 것이다. 누구나 꽃을 보면 기분이 좋아져 얼굴이 환해지지만, 꽃잎을 보면 떠나간 연인이 생각나 슬퍼진다고 노래하는 여인이 있어 소개한다. 나는 그룹 에드 포의 운영에 한계를 느껴 해산을 하고 미8군 무대 복귀를 결정 하였다. 새로운 밴드 결성에 있어 실력자들을 쉽게 영입할 수 있었으나 여성 보컬이 필요했다. 마땅한 적임자를 구하지 못해 애태우던 중 우연히 한 신인여가수가 무대를 보게 되었다. 나는 그녀의 실력에 반해 즉석에서 발탁하여 팀에 합류 시켰다. 그 여가수가 바로 이정화이다. 그때가 1966년으로 팀 이름은 덩키스였다. 우리는 8군 무대에서 실력을 인정받아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이정화의 노래
[한국문화신문 = 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며칠 전 음악선배 한 사람이 이 칠칠치 못한 후배를 보기 위해 먼 길을 달려왔다. 그는 개인적으로는 지명도가 낮지만 한 때는 내로라하는 유명밴드를 두루 거친 보컬리스트였다. 걷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그의 습성을 알고 있는 터라 자동차로 묵호등대를 찾았다. 등대 앞 광장에서 내려다보면 탁 트인 동해바다가 보는 이의 마음을 후련하게 해준다. 선배 역시 가슴을 활짝 펴고 심호흡을 하면서 흡족해했다. 뒤이어 우리는 동해 조망의 백미라 할 수 있는 등대전망대에 올랐다. 파도는 암전하여 간간이 밀려오는 잔물결은 학의 깃털이 날리는 양 평화로웠다. 동해항으로 들어가는 대형화물선도 장난감처럼 작아 보이고 울릉도에서 돌아오는 여객선 꽁무니를 갈매기들이 떼 지어 따라오고 있었다. 한 폭의 수채화일까. 영화의 한 장면일까. 아름다운 풍경에 취해 있다가 그 선배의 표정을 살피니 의외로 그의 얼굴이 창백했다. 몸이 어디 안 좋은가 싶어 서둘러 내려오기로 하였다. 하지만 그는 나선형 계단에 접어들자 식은땀을 소나기처럼 흘리기 시작했다. 내가 부축하여 한참 만에 내려오니 그는 땅에 발을 디디자마자 언제 그랬냐는 듯 안도의 숨을 내쉬며 얼굴
[한국문화신문 = 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금당산이 숨을 크게 한 번 내뱉으니 청량함이 골 안 구석구석을 휘돌고 나간다. 머리 위에선 구름들이 소곤거리고 계곡 바위에선 물이끼 돋는 소리가 사르륵 사르륵 들려온다. 산수유 봉오리가 즐탁하여 병아리 떼가 나뭇가지에서 삐악거리고 떼죽나무 잎은 벌써 회돌이모양으로 삐치고 나왔다. 산사의 아침은 늦게 시작되지만 낮은 빨리 시작된다. 부지런히 설거지를 마치고 요사 채 앞마당에 빨래를 널었다. 화사한 봄볕에 승복이 하얗게 보인다. 햇살이 가닥가닥 빨래에 부딪쳐 입자로 튕겨져 나가기도 하고 알갱이가 우수수 쏟아지기도 한다. 노 주지는 오수에 빠져 이미 삼사라를 떠나 코고는 소리가 대고 거죽을 어르고 운판을 치더니 범종 속을 맴돈다. 낚시 줄에 알밤을 꿰어 다람쥐와 꾀를 겨루는 장 처사 입에선 능글맞은 웃음이 새어 나오고, 그렇게 고즈넉한 오전이 지나가고 있을 때였다. 저 멀리 산 아래서 알록달록한 꽃잎 몇 장이 올라오고 있었다. 서울 이 사장 네구나 당구풍월이라더니 장처사도 신통력이 생겼는지 어떻게 저 멀리 있는 사람들을 알아볼까? 저, 매 바위로 가는 길이 험하다고 하던데 안내 좀 해주실래요? 점심공양 후 뻐근한 허리를 펴
[한국문화신문 = 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눈이 부시다. 안과에서 동공촬영 한 만큼이나 눈이 부시다. 내 눈이 부신 건 눈(雪) 때문만은 아니다. 이 눈부심은 마음의 눈부심이다. 기다리던 님이 기척 없이 다가와 등 뒤에서 껴안듯 짜릿한 눈부심이다. 슬그머니 빠져 나가려던 겨울이 봄에게 꼬리를 밟혔기 때문이다. 좔좔좔 눈 녹은 물이 얼음을 이고 시내를 흥건히 적신다. 겨우내 물 한 방울 없던 수중보에도 시냇물이 넘쳐 북평 앞바다에서 올라온 황어들이 용솟음친다. 왜가리 날개 짓에도 힘이 실렸다. 기록적인 폭설이라고는 하지만 눈이 그친지 열흘이나 지났는데도 전천 산책로에는 무릎을 넘는 눈이 그대로이다. 상류 쪽은 사람은 커녕 짐승조차 지나간 흔적 없이 설원을 이루고 있다. 시(市) 당국의 무관심 덕택에 처녀설을 밟는 우수리까지 챙기는 운 좋은 날이다. 나는 어릿광대가 되어 새끼노루처럼 겅중겅중 뛰어본다. 중년 나이에 이렇게 촐싹거린다고 벌금 매기는 것도 아닐 테고 설령 매긴들 어떠랴! 취병산 너머로 남풍이 불어오는 오늘, 허식의 허물을 벗어던지고 이렇게 첫 봄을 맞는다. 눈은 마음의 창이요, 얼굴은 인품이란 말처럼 박인희처럼 외모와 행동거지가 일치되는 사람도 흔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