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 이윤옥 기자 ] 일본의 역사서 가운데 720년에 완성된 《일본서기(니혼쇼키, 日本書紀)》가 있는데 662년 4월 기록에 고구려승 도현(道顯)에 관한 아주 흥미로운 기사가 실려 있다. 기사 내용인즉 쥐 한마리가 말꼬리에 새끼를 낳는 사건이 발생하여 조정이 발칵 뒤집혔고 이 해괴한 일을 풀어낼 사람으로 고구려승 도현이 발탁 된 것이었다. 도현의 점괘는 “북국의 사람들이 장차 남국에 의지할 것이다. 아마 고구려가 망하고 일본에 속할 것인지 모른다.”는 것으로 나왔는데 도현의 점괘대로 고구려는 668년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만다. 승려이면서 용한 점쟁이였던 도현은 고구려 보장왕(660) 때 일본으로 건너갔으며 당대 권력의 실권자인 후지와라카마타리(614~669)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나라조(奈良朝)의 정치무대에서 활약하게 된다. 한편 해박한 지식의 소유자였던 도현은 《일본서기》의 중요한 근거자료가 된 《일본세기》를 펴낸 인물이다. 도현은 7세기 백제의 멸망을 시작으로 조국인 고구려의 멸망을 포함한 요동치는 한반도 정세를 온몸으로 느낀 지식인이요, 승려 출신 사가(史家)이기도 하다. 《일본서기》에서 고구려승 도현의 책 《일본세기》를 인용하는 유형은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나라시대(710-794)의 염직공예품으로 유명한 것 가운데 하나가 “천수국수장(天壽國繡帳)”이다. 국보로 지정된 천수국수장은 일본의 성덕태자가 622년에 죽은 뒤 명복을 빌기 위해 그의 비(妃)가 남편의 극락왕생을 염원하여 만든 것으로 성덕태자가 천수국(天壽國)에 있는 모습을 수장(繡帳, 수를 놓은 휘장)에 새긴 것이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천수국수장의 밑그림을 그린 이들이 거의 고구려계 화가들이었다는 점이다. 7세기 무렵 고구려 출신 화가들은 일본에서 눈부신 활동을 펼치게 되는데 이는 본국의 세련된 불교미술의 영향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 승려이면서 법륭사 금당벽화를 그린 것으로 알려진 고구려 승려 담징 못지않은 인물로 꼽히는 사람이 바로 가서일(加西溢)이다. 가서일은 성덕태자가 사망하자 극락왕생을 위한 천수국수장 제작 시에 밑그림을 그리는 화가 역할을 해냈다. 이러한 사실은 천수국수장 명문(銘文)에 이름이 남아 있어 당시의 정황을 알 수 있는데 당시 밑그림 작업에 참여한 화가들은 동한말현(東漢末賢), 고려가서일(高麗加西溢), 차한노가이기(叉漢奴加己利), 영자략부태구마(令者掠部秦久麻)와 같은 인물들인데 이 가운데 “고려가서일"은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6월 19일은 일본의 아버지날(父の日)이다. 한국은 아버지와 어머니를 한데 묶어 어버이날로 기리고 있지만 일본은 5월 8일을 어머니날로, 6월 19일을 아버지날로 기리고 있다. 어머니날은 카네이션꽃을 선물하며 아버지날은 노란 장미를 선물한다. 아버지날의 유래는 1909년 미국 워싱턴주에 사는 소노라 스마트돗트라는 여성이 교회 목사인 자기 아버지 생일인 6월에 예배를 드린 것이 시작이라고 한다. 이러한 미국의 아버지날이 일본에 알려진 것은 1950년대지만 일반인들이 아버지날로 기리게 된 것은 1980년대이다. 일본 “미니상식프레스(豆知識 PRESS)”에 따르면 일반인들 사이에 아버지날을 인식시키게 된 계기를 백화점의 판매 전략으로 보고 있다. 어머니 못지않게 아버지들이 가정을 위해 한 평생을 수고하는데 이날만이라도 아버지께 선물을 드리고 맛있는 식사라도 함께 하자는 취지가 먹혀들어 간 것이다. 한국의 빼빼로데이 같은 ‘~데이’가 상술로 비롯되었다는 이야기처럼 일본의 ‘아버지날’도 말하자면 백화점 판매 전략의 한 고리로 볼 수 있다. 그래서 인지 6월 19일 아버지날을 앞둔 일본에서는 유달리 음식점 광고가 많다. 또한 인터넷상에서도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한국보다 장마가 한 달 빠른 일본은 지금 장마철로 접어들었다. 장마철이 되면 유달리 눈에 띄는 꽃이 수국이다. 일본말로는 아지사이라고 하는데 일본인들은 이 꽃을 한국인 보다 즐기는 것 같다. 이맘때만 되면 형형색색의 수국을 잔뜩 심어 놓은 공원을 소개하는 뉴스가 심심치 않게 나온다. ▲ 수국 천지가 된 삿테시의 곤겐도공원(權現堂公園) 사이타마현 삿테시(幸手市)도 그런 곳 가운데 하나이다. 벚꽃의 명소로도 알려진 삿테시의 곤겐도공원(權現堂公園)에는 100종류의 수국 16,000 그루를 심어 놓았는데 무려 500미터에 이르는 꽃길이 장관이라고 한다. 이 꽃은 삿테곤겐도벚꽃 보존회 회원들이 벚꽃 계절이 지난 뒤에 감상할 꽃을 물색하다가 수국을 심기 시작하여 올해로 20년째 수국공원을 가꾸고 있다. 이 공원에서는 6월 4일부터 삿테 수국잔치를 열고 있는데 7월 3일까지 아름다운 수국을 볼 수 있다. 마지막 날에는 수국을 꺾어 선물로 줄 계획이라고 한다. 수국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곳은 또 있다. 봄에는 철쭉, 여름에는 수국이 활짝 펴 일본 최고의 꽃절로 알려진 천년고도 교토 이웃도시 우지시(宇治市)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당신은 큰 지진을 대비해서 (건물의 내진설계, 비상식품 준비 등) 얼만큼의 준비를 하고 있습니까? 야후제팬에서는 5월 18일부터 28일까지 지진대비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응답자 57,999명 가운데 4.3%인 2,518명만 충분히 하고 있다고 답 했을 뿐 필요성을 느끼지만 준비는 하고 있지 않다(45%), 다소 준비를 하고 있지만 충분치 않다(47%)를 합하면 무려 92%에 이른다. 지진과 화산이 빈번한 일본에서 뜻밖에 지진 대비를 철저히 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 놀랍다. 하긴 건물의 내진 설계야 건축가들이 해야 하는 것이라 일반 시민이 철저히 내진 설계를 하고 있다로 답을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또한 식료품 준비라는 것도 언제 발생할지 모르는 지진을 위해 구비해 놓기가 쉽지 않을 것이란 생각도 들기는 한다. 하지만 한국보다 지진이 많은 일본임에 견주어 지진대비 자세가 약간 느슨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 야후재팬의 지진대비 설문조사 도표, 충분히 준비를 하고 있다는 사람은 4.3%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이 설문을 한국에 적용한다면 거의 무방비 상태일 지도 모른다. 과거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무더운 여름에 에어컨이나 선풍기가 있지만 부채 역시 빼놓을 수 없는 더위 쫓는 도구이다.일본의 부채에는 센스(扇子)와 우치와(團扇)의 두 종류가 있는데 형태상으로 보면 센스는 쥘부채 모습이고 우치와는 접이식이 아닌 둥근부채라고 생각하면 된다. 물론 이런 모양새의 차이도 있지만 그 쓰임새에도 과거에 보면 구별이 있었다. 보통 우치와(團扇)는 승려나 문인, 은둔자들이 썼고 센스(扇子)는 귀족이나 고급 관리들을 중심으로 썼다. 센스가 의례용(儀禮用)으로 쓰였다면 우치와는 신분 구별이 없이 쓰던 부채였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과거의 이야기일 뿐 요즈음 사람들은 거의 구분 없이 쓴다. 아무래도 센스(쥘부채)의 경우는 여성들이 선호하는 부채라고 할 수 있다. 접이식이라 부피도 많이 차지하지 않아 핸드백에 넣어 다니기도 편하고 비단이나 헝겊으로 멋을 부린 고급 부채도 제법 많이 나와 있어 여성들에게 선물용으로도 인기 만점이다. 관광객들도 센스(쥘부채)를 좋아해서인지 교토의 청수사(기요미즈데라) 앞 기념품 거리 등 관광지에는 거의 센스(쥘부채)만 눈에 띌 정도이다. ▲ 우치와(왼쪽), 센스(쥘부채)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비구니 법명(法明)은 백제 사람이다. 제명왕(齊明天皇) 2년(656)에 대신 가마타리(鎌子)가 병을 앓았는데 온갖 처방에도 낫지 않았다. 이에 법명이 아뢰길, 유마힐경은 아주 좋은 경전이니 이를 독송해보는 게 좋겠다고 하자 왕이 허락하여 독송하였는데 채 독송이 끝나기도 전에 병이 나았다. 왕과 신하들이 아주 기뻐하였다. 찬하여 이르길, 중국에는 도형이라는 비구니가 있어서 유마경을 강설하면 듣는 이들이 구름처럼 모였다고 한다. 법명이 한 번 더 독송하자 다 읽기도 전에 고질병이 다 나았으니 그 효험이 어찌 도형보다 못하겠는가? 그로부터 담해공(淡海公)은 흥복사에서 유마회를 열었고 백제 비구니의 발자취는 참으로 아름답다. 이는 14세기 일본의 불교책인 《원형석서(元亨釋書)》에 나오는 백제 비구니 법명의 이야기다. 법명은 조정의 권력자인 가마타리의 병을 유마경으로 씻은 듯이 낫게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인물이다. 그런가 하면 백제의 법명에 버금가는 비구니가 있는데 그 이름은 이원(理願)이다. 이원은 714년 11월 11일 김원정(金元靜)등의 신라 사신 20명과 함께 일본으로 건너가 불법(佛法)을 널리 전하다가 귀국하지 않은 채 일본에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가모신사유래기》교토의 3대 마츠리라고 하면 5월 15일 아오이마츠리, 7월17일 기온마츠리, 10월 22일 지다이마츠리를 꼽는다. 초록이 눈부신 5월 15일의 아오이마츠리(葵祭)는 고대 한반도와 관련이 있는 하타씨 일족과 관계가 깊은 가모씨(賀茂氏)와 조정(朝廷)의 행사로 당시 이를 보러 오는 사람들의 주류는 귀족들이라 귀족 마츠리라고도 불렸으며 한편으로는 가모신사의 마츠리라해서 가모마츠리(賀茂祭)로도 불렀다. 《가모신사유래기》에 기록된 아오이마츠리 유래를 보면 6세기 무렵 긴메이왕 시절에 일본 전역에 풍수해가 심각하여 점쟁이에게 점을 쳐보니 가모대신(賀茂大神)이 노한 것으로 나왔다. 점괘가 나오면 해결 방법도 나오는 법으로 점쟁이인 우라베(卜部伊吉若日子)의 해결 방법은 튼실한 말을 골라 방울을 잔뜩 달고 기수는 얼굴에 동물 가면을 쓰고 가모신사 주변을 돌면서 성대한 제사(마츠리)의식을 행하면 풍수해를 잠재울 수 있다고 해서 시작되었다. ▲ 교토 아오이마츠리의 이모저모 일본의 마츠리는 대부분이 고대에 기원을 둔 것으로 풍수재해 예방, 전염병 확산 금지, 국태민안, 풍년 등의 기원을 담고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천평(天平, 729-749) 조각의 작가는 대개가 이름이 알려져 있지 않지만 그러나 큰 절에는 반드시 뛰어난 조각가 또는 조각가군(群)이 있었다고 본다. 그것을 담당한 사람들은 어쩜 승려였을지도 모른다. 삼월당(三月堂)의 양변(良弁, 689-774)이 뛰어난 조각가였다는 전설 등은 배척하기 어려울 것이다. 삼월당의 건축이라 함은 당내의 조각을 말하며 양변과 관련 있는 것은 대부분이 일류 걸작품이다. 이는 적어도 양변이 뛰어난 예술가이거나 아니면 매우 뛰어난 예술가를 곁에 두었다는 증거이다. 만일 그 양변상(良弁像)이 자작품이라면 양변은 초일류 조각가이다. 하지만 아니라 해도 그의 곁에 있는 조각가 또는 그 제자가 조각을 했다면 양변은 천하제일의 조각가를 양성한 셈이 된다. 이 글은 사찰순례기의 바이블이라는 《고사순례(古寺巡禮)》를 쓴 일본의 철학자이자 문화사가인 와츠지데츠로(和辻哲郎, 1889~1960)가 쓴 백제스님 양변에 관한 글이다. 나라(奈良) 동대사의 첫 주지였던 백제스님 양변이 조각가였을 것이라는 주장은 어쩌면 생소한 이야기일지 모른다. ▲ 어린 양변을 독수리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금당은 동쪽 입구로부터 들어가게 되어 있다. 우리는 그곳(벽화)으로 가기 위해 먼저 본존 앞에서 왼쪽으로 꺾었다. 약사삼존불 앞에 왔을 때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서쪽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깜짝 놀라 걸음을 멈추었다. 일렬로 나란히 줄지어져 있는 오래된 불상과 검은 기둥 사이의 서쪽 벽에 아미타불이 밝은 모습으로 합장한 손의 모습까지 확실히 보이는 것이었다. 동쪽 입구에서 조금 먼 거리에 있는 아미타불이 이렇게 확실히 보일 거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이 정도의 거리를 두고 바라다본 벽화의 조각적인 아름다움이 선명하게 눈에 새겨지는 것 또한 예기치 못한 일이었다. 벽화에 이르는 길목의 본존불과 좌우 조각에는 눈도 주지 않고 우리는 아미타불쪽으로 내달았다. 이 그림이야말로 동양회화의 절정이다. 꽤 박리된 부분이 있었지만 그 흰 박리(剝離)면조차 벽화의 신선한 생동감으로 느껴졌다. 이 벽화 앞에 서면 아무 생각을 할 수 없다. 아무것도 보태고 더할 것이 없다. 그저 바라다보고 취할 뿐이다. 이것은 금당벽화로 유명한 나라의 고찰 법륭사 금당(대웅전)에 화재가 나기 전 금당벽화를 본 일본의 철학자이자 사상가인 와츠지데츠로(1889~1960)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