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얼레빗=이윤옥 기자] 1978년 10월 필자는 다이토쿠지로부터 특별히 1시간동안 어떤 그림이든 마음대로 사진을 찍어도 좋다는 특별 허락을 받았다. 나는 그때 고려왕이 등장하는 양유관세음도를 골라 찍었다. 그 사진이 1978년 코리아저널 표지에 실린 것이다. 그림이 너무 높이 걸려 있어 바닥에서 찍을 수 없어 삐꺼덕 거리는 사다리를 여섯 번이나 오르락 거리며 촬영한 것이다. 위는 존 카터 코벨(Jon Carter Covel, 1910-96)이 지은 《일본에 남은 한국미술》이라는 책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그녀는 미국출신의 동양미술사학자로 일본 교토의 다이토쿠지(大德寺)에서 오랫동안 불교미술을 공부하여 15세기 일본의 선화가 셋슈 연구로 컬럼비아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러나 그는 일본문화의 원류가 한국문화라는 확신을 갖고 1978년부터 86년까지 서울에 머물면서 한국이 일본문화에 미친 영향을 비롯한 한국문화와 관련한 수많은 논문과 저서를 집필했다. 일본에 보존되어 있는 한국미술에 관한 한 필자가 다른 누구보다도 이 분야에 대해 많이 알고 있으리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한국의 문화재가 일본에 많이 가 있지만 그것은 일본작품 내지는 대부분 중국 것으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아침 9시 반 차를 몰아 마이즈루를 향했다. 해마다 아내랑 둘이서 추도식이 열리기 이삼 일 전에 가서 추도비 주변을 깨끗이 치우고 향을 사른 뒤 가져간 꽃과 과일 그리고 곡주를 올리면서 희생된 조선인들을 기렸으나 올해는 아내가 일이 있어 혼자 다녀왔다. 올해도 어김없이 추도비 주변의 무궁화는 탐스런 꽃을 피웠고 원한의 바다는 잠잠했다. 요즘 건강이 안 좋아 장거리 운전이 몹시 피곤하여 집으로 돌아오는 도중 몇 번이나 쉬면서 왔다. 하지만 목숨이 붙어 있는 한 우키시마호 폭침의 비극을 알리는 추도비에는 꼭 다녀 올 생각이다. 요에(余江勝彦) 회장을 비롯하여 많은 지역민들이 조선인 희생자 추도비를 지켜주는 고마움이 이곳에 올 때마다 든다.” 이는 교토에서 우리 토박이말로 시를 쓰는 재일동포 시인 김리박 선생이 우키시마호 폭침 조선인 희생자 추도비에 다녀와서 쓴 글의 일부다. 일본표기로는 “우키시마호침몰순난자비(浮島丸沈殉難者の碑)”라고 부르는 이 추도비의 유래는 눈물 없이는 들을 수없는 가슴 아픈 이야기로 점철되어 있다. ▲ 1978년 8월 24일 세운 우키시마호 폭침 희생자 추모비 일제강점기 일본의 탄광에서, 군수공장에서 힘
[그린경제/얼레빗=이윤옥 기자] 미신의 폐해는 이처럼 매우 심각하지만 그 뿌리는 더더욱 널리 뻗어만 가고 있으니 오늘날 위생상의 관점에서 보면 완연한 하나의 적국(敵國)의 모습이기 때문에 결코 두고 볼 수 없다. 이에 마땅히 예의 주시하고 힘을 다하여 이러한 관행을 과감히 고치고 미신을 각성시켜 경계하지 않으면 감히 어찌 위생을 거론할 수 있겠는가 이는 1915년 6월 조선총독부 경무총감부 위생과에서 펴낸 《조선위생풍습록, 朝鮮衛生風習錄》의 머리말 끝부분이다. 이 책은 격언편, 속언편, 민간치료편, 미신요법편, 관행편으로 나뉜다. 그런데 조선인의 생활을 예의 주시하겠다라는 말도 우습지만 이 책의 머리말처럼 조선인의 위생이 장말 심각했을까 의문이다. 책 내용을 보면 오줌으로 눈을 씻으면 눈병이 낫는다., 이가 아플 때 아이의 오줌으로 양치하면 통증이 그친다., 부스럼에 똥을 바르면 낫는다. 같은 위생상 문제가 있는 것도 보이지만, 실제 그런 풍습이 있는 것이 아니라 악의적으로 왜곡했을 가능성도 엿보인다. ▲ 조선총독부에서 펴낸 《조선위생풍습록(朝鮮衛生風習錄)》네 나오는 눈병 부적 그림 또 이 책을 보면 그렇게 위생이 나빠 조선인에게 문제가 있다고 할 만큼
[그린경제/얼레빗=이윤옥 기자] 일본 도쿄 신오쿠보에 있는 고려박물관(관장 히구치 유이치)에서는 9월 3일부터 조선한국의 여성들 전시회를 일본 최초로 연다. 고려박물관은 일본과 코리아(남한과 북한을 함께 부르는 말)의 역사와 문화를 배우고 이해하며 풍신수길의 두 번에 걸친 침략과 근대식민지 지배의 과오를 반성하기 위해 설립했다. 그들은 순수한 시민회원들의 호주머니를 털어 이 박물관을 운영하고 있으며 재일코리언의 생활과 권리 확립 및 재일코리언의 고유한 역사와 문화를 일본에 널리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고려박물관에서는 지난 1월 29일부터 3월 30일까지 60일간 항일여성독립운동가들을 일본 최초로 소개하는 전시회를 열어 국내외의 큰 관심을 불러일으킨바 있다. 이번 9월 3일부터 11월 30일까지 열리는 조선한국의 여성들:朝鮮韓國の女性たち 전시회는 고려박물관의 조선여성사연구회가 중심이 되어 한국여성들이 살아온 지난 100여년의 역사를 소개하는 전시회로 특히 일제침략 시절 식민지배 하에서의 여성들의 독립운동 활동 등을 조명한다. 또한 재일조선인으로 남아 살아가고 있는 여성들에 대해서도 소개할 예정이다. ▲ 조선한국의 여성들 전시회 전단, 고려박물관 주로
[그린경제/얼레빗=이윤옥 기자] 섭씨 35도를 오르내리는 도쿄의 무더위 속에서 긴자에 나간 김에 납량특집 가부키 1막을 보았다. 가부키(歌舞伎)는 전체 공연 가운데 1막씩만도 볼 수 있는 것이 특징인데 자기가 좋아하는 배우가 나온다든지, 전부 소화하기 어려운 외국인들에게 특히 1막짜리는 인기가 있다. 가부키는 전체를 다 보려면 보통 3~4시간 공연에 1만 5천 엔부터 2만 엔 정도 하지만 1막의 경우는 1천 엔~2천 엔 정도다. 가부키(歌舞伎)는 말 그대로 노래와 춤으로 이뤄진 일종의 연극인데 그 역사는 40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무사들의 피비린내 나는 권력투쟁의 시대가 가고 1603년 도쿠가와 막부가 들어선 이래 사람들은 지긋지긋한 전쟁놀음에서 해방구를 찾기 시작했고 때마침 귀여운 꼬마 아가씨 둘이 춤과 노래로 사람들을 즐겁게 한데서 유래한다는 기록이 있다. ▲ 도쿄 긴자거리의 가부키 전용극장 《다문원일기(多聞院日記, 1582)》에 따르면 가가(加賀)는 8살, 쿠니(國)는 11살 먹은 아동으로 춤 잘 추는 이 두 신동 구경에 사람들이 구름떼처럼 몰려들었다. 그러나 또 한 전승에 따르면 이즈모(出雲) 출신의 무녀(巫女) 오쿠니(阿國)가 이즈모
[그린경제/얼레빗= 도쿄 이윤옥 기자] 싸고, 맛있고, 빨리 나오는 음식점을 일본에서 꼽는다면 당연히 덮밥 집을 들 수 있다.일본말로는 돈부리라고 하는데 원래 돈부리(井)란 것은 덮밥을 담는 그릇을 말한다. 그런데 지금은 이 그릇에 밥이나 국수를 담고 그 위에 불고기를 얹거나 새우튀김을 얹거나 김치를 얹어 먹는 음식 그 자체가 되어 버렸다. 불고기를 얹은 요리는 규동(牛井), 김치를 얹으면 기무치동(キムチ井)이라고 한다. 이러한 돈부리 집에는 스키야, 요시노야, 마츠노야 같은 체인점이 있는데 이들 음식점은 주로 역전 가까이에 있거나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길목에 자리한다. 음식 값도 300엔부터 비싸야 600엔을 넘지 않아 샐러리맨들에게는 인기 음식점이다. 그런데 최근 이런 곳에서 근무할 일손이 부족하다는 뉴스가 심심치 않게 들린다. 식당 뿐 아니라 건설현장 같은 곳에서 일할 사람이 딸린다고 아우성인 것이다. 식당 같은 곳은 거의 알바생이 주류를 이루는데 식당의 경우 임금은 대개 시간당 900엔 전후이다. ▲ 싸고 맛있고 빨리 나오는 일본의 덧밥집 스키야, 일손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솔직히 말하자면 노동환경이 너무 열악하다. 사원전원이 평등하게 주 2
[그린경제/얼레빗=이윤옥 기자] 경진(庚辰) 25일 황태자가 성인식(원복-元服-이라함)을 했다. 14살이며 성무왕(聖武天皇)이다. 이날 조정에서는 대사면을 했다. 죄의 경중을 가리지 않고 사면이 이뤄졌으며 신분도 묻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조정에서는 이날을 기해 100살이 넘은 사람에게는 곡식 5말을, 90살 이상인 자에게는 3말, 80살 이상인 자에게는 1말을 하사했으며 효자와 절부(節婦)는 마을 입구에 비를 세우고 종신토록 조세를 면제했다. 또한 과부나 홀아비, 독거노인, 중병환자들에게는 각각의 상황에 맞게 필요한 물건을 하사했다.고 《속일본기, 續日本紀》는 전하고 있다. 이 이야기는 원명왕 (재위 707~715)때의 일이다. 《속일본기》에는 주로 정치적인 이야기가 많이 나오지만 위와 같은 특별한 날에는 요즈음처럼 이른바 특별사면을 했다는 기록이 종종 보인다. 뿐만 아니라 699년 11월에는 야마토 가츠라기노가미 마을에 사는 가모 씨가 1남 2녀의 세쌍둥이를 낳았다. 조정에서는 포와 면 그리고 쌀을 산모에게 하사했다.라는 기록이 보인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 세쌍둥이는 희귀한 일이라 국가가 신경을 쓴 기색이 역력하다. 《속일본기》에는 세쌍둥이 또는 쌍둥
[그린경제/얼레빗=이윤옥 기자] 도쿄 시부야 거리는 언제나 사람들로 바글거린다. 그 복작대는 시부야 역 앞 작은 공원에 충견 하치의 동상이 서있다. 시부야 역의 하치 동상은 사람들의 만남의 장소로 널리 알려져 있는 곳으로 어제 찾은 하치동상 앞에는 여전히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초만원이었다. 그 가운데는 하치의 모습을 찍으려는 사람들로 붐볐고 이 날도 하치는 카메라 세례를 받고 있었다. 충견 하치는 1923년 일본 북부 아키타현에서 태어났다. 이른바 아키타견(秋田犬)으로 한국의 진돗개만큼이나 뼈대 있는 족보 출신이다. 태어난 이듬해 충견 하치는 개를 좋아하는 동경제국대학 농학부 교수인 우에노 씨 집으로 오게 된다. 우에노 교수는 하치에게 꼬리표를 달아 화물열차 편으로 아키타에서 도쿄까지 실어 오는데 무려 20시간의 긴 여행길 이었다. 이때부터 하치는 우에노 교수 집에서 금이야 옥이야 대우 받으며 무럭무럭 크게 되는데 충견 중에 충견인 만큼 주인의 극진한 사랑을 뼈 속까지 느끼게 된다. 우에노 교수 집에는 하치 말고도 죤과 에스라는 개가 있었는데 유독 하치만은 주인의 출퇴근 시에 현관에서 배웅을 했으며 어느 날 부터인가는 주인이 이용하는 시부야 역까지 마중
[그린경제/얼레빗=이윤옥 기자] 도쿄의 한 여름은 한국의 무더위 보다 더 덥다. 그것은 일본의 습도 때문일 것이다. 한국의 더위는 나무 그늘에 가면 어느 정도 식지만 도쿄의 무더위는 그런 여유를 주지 않는다. 너무 덥다보니 자기 자신보다도 가족이나 친지가 생각나는 것일까? 그런 증거가 바로 무더운 여름날 일가친척과 지인들에게 보내는 편지다. 이름 하여 쇼츄미마이(暑中見舞い)다. 우리말로 굳이 번역한다면 무더위 안부 편지라고나 할까? 쇼츄미마이는 편지를 보내기도 하지만 직접 안부를 묻고 싶은 사람 집에 찾아가기도 한다. 편지는 대개 엽서를 보내는데 엽서에는 파도치는 그림이라든가, 시원한 계곡 그림 등이 그려져 있어 엽서를 받는 사람이 보기만 해도 시원해지게 한다. ▲ 무더위 안부 편지용 엽서 카모메메루 (かもめ~る)광고 일본우편주식회사(日本郵便株式會社)에서는 이 시기를 특별 엽서보내기 기간으로 정하여 1950년부터 쇼츄미마이용우편엽서(暑中見舞用郵便葉書)를 발행하고 있다. 또한 1986년부터는 엽서에 복권 번호처럼 번호를 새겨 넣어 당첨되면 상품을 주는 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무더위 안부를 묻는 쇼츄미마이 엽서 이름을 카모메메루 (かもめ~る)라고 하는데 이
[그린경제/얼레빗=이윤옥 기자]일본의 최고 관광지 1위는 교토 후시미이나리대사伏見稻荷大社)로 꼽혔다. 세계최대의 여행 입소문 사이트인 미국의 트립어드바이저에 따르면 외국인들에게 인기 있는 일본의 관광지는 교토 소재 후시미이나리대사로 이것은 종래 청수사나 금각사의 인기를 누른 것이다. 이는 일본 산케이신문 7월 5일자 보도다. 일본인들 사이에서는 오이나리상(お稻荷さん)이라고 알려진 교토 후시미이나리대사는 전국에 4만 개 이상 있는 이나리신사(稻荷神社)의 총본사다. 일반적으로 상업번창의 신으로 알고 있으나 실제 이나리신사에서는 오곡의 풍요를 뜻하는 농업의 신을 모신다. 일본에 있는 8만여 개의 신사 중 절반을 차지하는 이나리신사는 일본 땅 어디를 가나 쉽게 만나는 신사이며 교토의 후시미이나리대사는 이 신사의 우두머리 격이다. ▲ 우리나라 절의 기와불사처럼 도리이 기둥에는 기부자의 이름이 적혀 있다. 후시미이나리대사에 바친 크고 작은 도리이는 일만여 개에 이른다. 교토 후시미이나리대사는 면적이 27만평으로 그 크기만으로도 압도적인데다가 해발 233미터의 이나리산(稻荷山) 산 정상까지 가는 길에는 1만여 개의 붉은 도리이가 만리장성 모양 끝없이 길게 늘어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