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얼레빗=이윤옥 기자]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용인하는 아베정권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30일, 도쿄 시부야역 주변에서 칠석 장식물을 세우고 행인들에게 평화의 소원을 적은 메시지를 단사쿠(短冊, 소원종이)에 써달라는 이벤트를 열었다. 참석자들은 북을 치면서 노래를 부르거나 손뼉을 치면서 집단적 자위권 인정은 미국의 전쟁에 참가하는 것, 그 누구도 전쟁으로 죽임을 당하고 싶지 않다 와 같은 말을 확성기를 통해 행인들에게 호소했다. 소원종이에 마음으로부터 미소를 이라고 쓴 시부야쿠에 사는 회사원 요나코 씨(古林沙子, 33살)는 미소는 평화에 이르는 길이다. 전쟁이 아닌 대화로 해결 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할 것이다. 라고 했다 이는 6월 30일치 마이니찌신문(每日新聞)이 보도한 기사다. 곧 다가올 칠석행사로 일본거리는 지금 형형색색 장식물로 물들어 가고 있다. 백화점이나 상점가는 물론이고 역전이나 동네 골목길까지 사사(笹)라고 부르는 가는 대나무 가지를 세우고 거기에 알록달록한 소원종이를 적어 매단다. 우리가 세월호 참사로 숨진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노란 리본에 위로의 말을 적어 주렁주렁 내걸듯 일본은 해마다 칠석날이면 소원종이를 쓰고 칠석행사를 다채롭게
[그린경제/얼레빗=이윤옥 기자] “문화심의회는 6월 20일 <군함도(軍艦島)>로 알려진 나가사키의 하시마(端島)를 포함한 다카지마탄광유적지 (高島炭跡) 등 9건을 사적으로 지적하도록 문부과학상에게 건의했다. 이 밖에 명승 5건, 등록기념물 6건, 중요문화적경관 1건이 포함되어 있다. 이들 유적은 내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록을 위해 정부가 추천한 ”명치일본의 산업혁명유산 큐슈· 야마구치 관련지역으로 올 여름과 가을에 걸쳐서 실시 예정인 유네스코 자문기관에 의한 현지조사 전에 사적지정으로 국가에 의한 보호체제를 정비하는 것이다.” ▲ 과거 하시마탄광이었던 <군함도(軍艦島)> 위는 일본 아사히신문 6월 20일치 기사로 여기서 말하는 <군함도>란 해저탄광지로 일제강점기 때 인구밀도가 수도 도쿄의 9배가 넘을 만큼 많은 사람들이 북적대던 곳이다. 탄광이나 금광지역이 활황기 때에는 언제나 광부와 그 가족들 그리고 돈벌이를 찾아 몰려든 사람들로 만원을 이루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군함도>가 단순한 일본인들의 돈벌이 장소였다면 오늘 우리와는 별 관계가 없는 곳이지만 그러나 이곳은 일제강점기 때 수많은 조선인들이 강제징
[그린경제/얼레빗=이윤옥 기자] 일본 종이기술은 610년 고구려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공식기록으로 확인되는 것은 《일본서기》의 고구려 승려 담징이 종이 만드는 기술을 전했으며 이 보다 앞서 513년에는 5경 박사가 백제에서 건너와 한자와 불교를 보급하면서 사경작업이 이뤄졌기에 이 무렵에 이미 종이기술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추측한다. 이는 일본 위키 사전에 나오는 일본 종이의 유래이다. 일본 종이를 와시(화지, 和紙)라고 하는데 기록상으로만 봐도 1400여년이 지났으니 상당한 기술이 축적 되었을 법하다. 그러나 《조선왕조실록》 기록을 보면 그렇지도 않다. 그 근거가 되는 것이 바로 대장경을 찍는 종이가 말해준다. 대장경에 관한 이야기는 세종 6년(1424)에 일본으로부터 조선에 건너온 사신들의 단식투쟁 기사가 보이는데 우리들이 조선에 온 것은 대장경을 얻기 위해서이며 만일 경판을 얻지 못할 경우에는 돌아갈 수 없다. 차라리 여기서 식음을 전폐하고 죽어 버리겠다. 는 기록이 그것이다. 당시 일본은 대장경을 만들 능력이 없었기에 조선의 대장경을 숱하게 얻어 갔다고 《조선왕조실록》은 전하고 있다. ▲ 일본 종이(和紙) 일본이 우리나라에 대장경을 요구하기 시작한
[그린경제/얼레빗=이윤옥 기자] 지금 일본은 장마철이다. 한국보다 한 달 정도 빠른 일본의 장마는 남북으로 긴 일본열도의 특성상 가장 아래 지방인 오키나와가 5월 5일부터 시작되고 동북 지방은 6월 6일 정도에 장마가 시작되어 무려 1달이나 장마 시작이 차이가 난다. 그에 견주면 일본의 중부지방이 장마가 끝날 무렵 한국의 남부지방이 장마가 시작된다. 장마 기간 동안에는 밖의 활동이 적어지고 집안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은데 이렇게 비가 지루하게 내릴 때 일본에서는 데루데루보우즈, てるてる坊主라는 인형을 처마 밑에 매달아 두는 풍습이 있다. 흰 천을 펴서 솜을 넣고 실로 묶으면 꼭 사람 머리통 모양인데 여기에 눈코입을 그려 넣고 처마 끝에 대롱대롱 매달아 두면 비가 그친다고 믿는 풍습인 것이다. ▲ 비가 그치길 바라는 인형을 데루데루보우즈, てるてる坊主라고 하며, 처마 밑에 매단다.(왼쪽), 비가 내리길 바라는 인형은 거꾸로 매달며 아메아메보우즈, あめあめ坊主라고 한다. 일본의 데루데루보우즈 풍습은 헤이안시대(794-1192)의 《카게로우닛키》라는 작품에 나올 정도로 오래되었지만 오늘날과 같이 일반적으로 널리 확산된 것은 에도시대(江戶時代, 1603-1868
[그린경제/얼레빗=이윤옥 기자] 2011년 3월 11일 발생한 동일본의 지진과 해일(츠나미)은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를 앗아갔다. 당시의 참상은 일본뿐 아니라 세계인들에게 커다란 충격이었다. 그러한 재난 앞에 사람들은 하나둘 모여들어 슬픔에 빠져있는 사람들 곁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기 시작했다. 재난을 당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임시 천막촌에는 각지에서 보내오는 구호품이 넘쳐나고 자원 봉사자들 또한 전국 각지에서 앞 다투어 달려와 고통을 함께 나누고 있다. 일본재단(日本財團)의 사사카와요헤이(笹川陽平) 회장은 누리집 인사말을 그렇게 시작했다. 일본재단은 50년이 넘는 자원봉사 단체로 사회 전반적으로 활동분야를 넓혀가고 있다. 고령화문제, 맞벌이시대의 육아문제를 포함하여 지구환경과 자원문제, 식량문제 등으로 고통을 받는 이웃과 사회를 위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 고려박물관의 자원봉사자 가키바타 씨 사사카와 회장은 특히 지난 2011년 동일본대진재 이후 시민들의 자원봉사활동 인식이 한층 높아가고 있다고 소개하면서 이 단체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일반 시민, 기업, 비영리단체(NPO), 공적기간 등 다양한 층에서 관여하고
[그린경제/얼레빗=이윤옥 기자] 함께 1박 2일로 떠나온 아하메드 군으로부터 배운 말은 쇼코랑이라는 말이다. 아라비아 말로 고맙다는 말이라고 한다. 아랍어를 쓰는 그가 평소에는 무척 먼 나라 사람이라고 느꼈지만 이번 여행을 통해 아주 가까워졌다. 아하메드 뿐만이 아니라 중국, 한국, 미얀마, 인도, 태국에서 온 유학생들과도 교류의 시간을 가지면서 나는 멀리 떨어져 있는 그들의 나라가 바로 내 고향집과도 같은 생각이 들었다. 이번 여행에서 얻은 가장 값진 것은 바로 그들과의 만남이라고 할 수 있다. -싱가폴 유학생 람슨메이 씨의 1박 2일 유학생 교류를 다녀와서 - 일본에는 수많은 나라에서 온 젊은이들이 싱가폴 유학생 람슨메이 씨처럼 저마다의 꿈을 갖고 유학 생활을 하고 있다. 낯설고 물선 나라에서 사는 일이 어디 한두 가지 어려움이 있겠는가만 가장 큰 어려움을 든다면 고향이 그리운 향수병일 것이다. 그러한 유학생들의 마음을 다독여주고 비록 유학생이지만 일본 내에서 당당한 한사람의 인격으로 살아 갈 수 있도록 다양한 보살핌을 아끼지 않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은 쵸후물레모임(調布ムルレの會) 사람들이다. ▲ 쵸후물레모임(調布ムルレの會) 의 한국과 교류 모습
[그린경제/얼레빗=이윤옥 기자] 일본 그림에 우키요에(浮世繪)라는 것이 있다. 우키요에는 한자말 그대로 덧없는 현세의 그림이란 뜻으로 목판화로 찍어내는 그림을 말한다. 처음에 목판화는 흑백이었으며 오늘날과 같은 다양한 색채를 쓰게 된 것은 스즈키 하루노부(1725~70)에 의해서였다. 그는 여러 장의 판목을 사용하여 10가지 이상의 색으로 그림을 표현하였다. 우키요에는 에도시대의 생활 모습이나 여성을 그린 그림이 많은데 특히 기타가와 우타마로(1753~1806)는 유곽(遊廓)의 여성들을 즐겨 그렸다. 기모노를 입고 교태를 부리는 모습의 춘화와 여성의 표정을 섬세하게 나타내는 화가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미인화의 대가로 꼽힌다. 특히 그의 그림은 명치(明治)이후에 서양으로 많이 유출되었는데 춘화의 경우 음부를 크게 부각시켜 그리는 바람에 서양에서는 그의 이름을 따 우타마로(Utamaro)라는 말로 거근(巨根)의 일본인을 나타내는 말로 쓰이기도 했다. ▲ 기타가와 우타마로 작품 우타마로와 쌍벽을 이루는 화가로는 가츠시카 호쿠사이(1760~1849)를 들 수 있다. 호쿠사이는 주로 일반서민들의 모습과 풍경을 그렸다. 유명한 그림으로는 후지산 36경으로 수 많은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일본사람들에게 아사쿠사(淺草)라는 곳에 대한 느낌을 물으면 몬젠마치(門前町)라고 말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몬젠마치란 우리말로 하면 사하촌(寺下村) 곧 절 주변에 형성된 도시라고나 할까? 아사쿠사에는 628년에 세운 천초사(淺草寺,센소지)란 절이 있는데 관동 지방에서는 유명한 고찰이다. 이 절은 백제계의 히노구마다케나리 형제와 관련이 있는 절이라 더 없이 정겨운 곳이기도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아사쿠사의 매력을 꼽으라면 나카미세(천초사 대웅전에 이르는 길 양 옆의 기념품 가게) 를 빼놓을 수 없다. ▲ 그림을 받으면서 환하게 웃고 있는 가미야 우동집 주인(왼쪽), 이무성 화백이 그린 가미야 우동 그림 음식점이라고 해야 거창한 곳은 아니고 우동집 정도인데 지난번 이곳에 들른 일행 가운데는 아직까지 이 골목에 있는 가미야라는 우동집을 잊지 못하고 자주 입에 올리는 사람들이 있다. 일본의 음식점은 대개 규모가 작은데 기껏해야 10여 명이 들어 갈만한 곳이 대부분이고 그보다 더 작은 집도 많다. 가미야도 음식을 만들어 내는 주방을 앞에 두고 빙 둘러 앉아 먹는 구조로 되어 있다. <날마다 쓰는 한국문화편지> '얼레빗'에 맛깔스런
[그린경제/얼레빗 = 이윤옥 기자] 흔히 일본을 마츠리의 나라(祭りの國)라고 할 정도로 어디를 가나 마츠리(matsuri)를 자주 만나게 된다. 그 가운데 천년 고도인 교토에도 유명한 마츠리가 많은데 특히 교토의 3대마츠리라고 하면 5월 15일 아오이마츠리, 7월17일 기온마츠리, 10월 22일 지다이마츠리를 꼽는다. 천년 고도답게 역사적인 유적지가 많은데 이들 유적지가 하드웨어와 같은 것이라면 마츠리는 살아 숨 쉬는 전승 문화유산이다. 이미 천 년 전부터 계획도시로 자리 잡은 교토는 고전과 현대를 잘 조화시킨 덕에 외국인들이 가장 가보고 싶은 일본 도시 가운데 으뜸으로 꼽는 곳이다. 그만큼 도시 구성원들이 천년 고도에 대한 경(京)의식이 강하다. 대표적인 경과자(京菓子)라든가 경요리(京料理)도 교토만의 독특한 문화라고 할 수 있다. 5월 15일의 아오이마츠리(葵祭)는 고대 한반도와 관련이 있는 하타씨 일족과 관계가 깊은 가모씨(賀茂氏)와 조정(朝廷)의 행사로 당시 이를 보러 오는 사람들의 주류는 귀족들이라 귀족 마츠리라고도 불렸으며 한편으로는 가모신사의 마츠리라해서 가모마츠리(賀茂祭)로도 불렸다. ▲ 마츠리 참여자와 행사용 소품에 쓰이는 아오이 식물
[그린경제/얼레빗 = 이윤옥 기자] 슬슬 한국은 5월 5일 어린이날이 다가온다. 올해는 세월호 참극으로 인해 크고 작은 행사들이 취소되고 있고 어린이날 행사도 마찬가지라는 소식이다. 축소되거나 취소되지 않는다 해도 딱히 한국의 어린이날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없다. 그러나 일본은 이날 잉어날리기를 한다. 살아있는 잉어를 날리는 게 아니라 비닐 따위로 만든 형형색색의 잉어를 날리는 것으로 이를 고이노보리(鯉のぼり)라고 한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하고많은 물고기 가운데 잉어모양일까? 이는 중국 후한서(後漢書)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중국 황하강으로 흘러드는 지류에 용(龍)이라 불리는 폭포가 있었는데 이 폭포를 향해 수많은 물고기가 뛰어오르려고 하지만 그 가운데서 잉어란 놈만 뛰어오르는 것을 보고 중국인들은 잉어를 입신출세의 상징으로 여겼다. 일본에서 고이노보리는 에도시대(江戶時代.1603-1868)에 무사집안에서 시작된 단오풍습으로 음력 5월 5일 무렵 사내아이의 출세를 기원하여 집안 마당에 높은 막대기를 세우고 거기에 길게 늘어뜨린 모형잉어 장식을 달아 둔 것이 그 유래다. 물론 지금은 양력 5월 5일에 이 행사를 하지만 일본에서의 입신출세란 아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