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얼레빗 = 이윤옥 기자]어제 도쿄 고려박물관 조선여성사연구회 회원들이 한국을 찾았다. 바쁜 일정 가운데 경동시장을 보고 싶어해서 함께 다녀왔다. 시장 안에 들어서니 수북하게 쌓인 인삼이 눈에 들어온다. 일본에 있을 때 지인에게 삼계탕을 만들어 주려고 인삼 한 뿌리를 사기 위해 동경 시내를 다 뒤지던 일이 떠오른다. 그러고도 결국 사지 못하고 요코하마까지 가서 말라비틀어진 인삼 한 뿌리를 사고 감격했던 기억이 새롭다. 사정이 그러하니 산처럼 쌓아놓고 파는 인삼이 일본인 눈에 신기하기도 할 것이다. 인삼만 흔한 게 아니다. 가게마다 수북한 생삼과 산마, 칡뿌리를 비롯하여 구기자, 오미자, 하수오, 민들레, 옥수수수염 따위는 물론이고 말린 지네 묶음까지 그야말로 없는 게 없는 시장을 둘러본 와타나베 씨 일행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허준의 후손들이라 그럴까? 한방의료나 한약이 발달하지 않은 일본과 달리 한국인은 별의별 것을 다 약재로 쓴다. 약재뿐만이 아니라 차만 해도 그렇다. 뽕나무 잎이나 감나무 같은 과일나무의 잎사귀는 물론이고 대추차, 생강차, 둥굴레 차 등 셀 수 없는 재료를 차로 만들어 마신다. 와타나베 씨 일행은 이 가게 저 가게
[그린경제/얼레빗 = 이윤옥 기자] 손바닥만 한 가게에서 만드는 양갱이 일본인들을 사로잡고 있다. 한국에는 별로 양갱이 인기가 없지만 일본 동경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키치죠지에는 양갱 하나를 사먹기 위해 전국에서 몰려드는 사람들로 연일 북적인다. 키치죠지라고 하면 100개가 넘는 크고 작은 상점들이 줄지어선 곳으로 상점들 대부분이 규모가 작다. 우리로 치면 전통시장이라고나 할까? 통로도 좁은 이 상점가가 생긴 것은 패전 이후다. 하지만 이곳도 서서히 재개발 붐이 일어 하나둘씩 산뜻한 모습으로 탈바꿈해가고 있다. 이 상점가 한 꼭지에는 일본 화과자(和菓子) 가게 고자나(小ざさ)가 있는데 1평 크기다. 그런데 이 가게의 양갱을 사기 위해서 보통 새벽 4시부터 줄을 선다니 보통 인기가 아니다. 그런데도 하루 150개 한정품으로 팔고 있다. 이렇게 가게가 잘되면 흔히 가게를 늘리고 현대식 설비로 대량 생산을 할 법도 한데 고자나는 다르다. 절대 가게를 늘리지 않을뿐더러 하루 만들어 내는 량도 예전 그대로 150개다. 사먹는 사람들은 좀 감질이 나겠지만 그 까닭은 양갱의 주재료인 팥에 있다. 이 가게에서 쓰는 팥은 한 알 한 알 고르다 시피 해서 선별된 것만을 쓴다
[그린경제/얼레빗 = 이윤옥 기자] 한국의 절집 체험 곧 템플스테이라는 것이 있는데 일본에도 이와 비슷한 문화가 있다. 슈쿠보우(宿房)가 그것이다. 슈쿠보우는 원래 절에서 스님이나 참배자들을 위해 만든 시설로 스님만을 위한 시설은 따로 소보우(僧房)라고 한다. ▲ 나라현 요시노산 죽림원 숙박 시설인 쇼쿠보우(宿房) 슈쿠보우는 한국의 템플스테이와 조금 성질을 달리하는데 한국의 템플스테이가 절집에 머물면서 사찰 체험을 하는데 치중한 반면 일본의 슈코보우는 원래 절을 순례하는 참배자들이 묵는 곳으로 출발했다. 역사를 보면 헤이안시대 (平安時代,794-1192)에 절과 신사(寺社) 순례객들을 위한 숙박시설로 출발한다. 에도시대(江戶時代,1603-1868)에 들어서면 이세신궁(伊勢神宮)이나 선광사(善光寺) 같은 유명한 곳에 참배하는 대중들이 늘어나 각지의 큰 절이나 신사 안에는 슈쿠보우를 두게 된다. 처음에는 참배객들을 위한 숙박시설이 나중에는 관광객들도 받아들이게 되어 이제는 관광사업의 하나로 까지 발전한 느낌이다. 최근에 고야산 슈큐보우(高野山 宿坊)등에는 고품격의 숙박은 물론이고 음식 또한 우리네 사찰음식처럼 일본 사찰음식인 쇼진료리(精進料理)가 정갈하게 나
[그린경제/얼레빗 = 이윤옥 기자] 이것은 지난 3월 8일 필자가 도쿄 고려박물관에서 특강을 했던 항일여성독립운동가를 말한다에 참석한 일본인이 한말이다. 이날 특강 뒤에 고려박물관에서는 설문지를 돌렸는데 설문에 응한 사람들의 글은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내용들이 많았다. ▲ 고려박물관 항일여성독립운동가 시화전을 관심있게 관람하는 일본인들 이날 특강이 있기 전인 1월 29일부터 이 박물관에서는 여명을 찾아서라는 제목으로 한국의 항일여성독립운동가를 그린 시화전을 열고 있었다. 이날 그림은 날마다 쓰는 한국문화편지 얼레빗에 오랫동안 한국화를 그려오고 있는 이무성화백이 그린 그림으로 그 바탕은 필자의 여성독립운동가를 기리는 헌시 30점을 그린 것이다. 도쿄 고려박물관(관장 히구치이치요우)은 일제의 침략역사를 깊이 반성하는 양심적인 시민들이 만든 박물관으로 올해 23년 째 운영 중이다. 이들은 아베 정권을 비롯한 우익화 되어 가는 일본 사회 속에서 일본의 양심이 되어 꾸준한 한일간의 우호 증진을 위해 애쓰는 단체이다. 일본 최초로 열린 한국의 항일여성독립운동가를 알리는 시화전은 3월 30일로 60일 간의 장정을 마쳤다. 특히 전시기간 중에 열린 3월 8일
[그린경제/얼레빗 = 이윤옥 기자] 이등박문(伊藤博文,1841-1909)의 고택이 있는 야마구치현 하기시(山口縣 萩市)는 일찍이 죠카마치(城下町)로 번성하던 곳이지만 지금은 인구 5만의 조용한 소도시다. 몇 해 전 들른 이 도시는 조용하다 못해 유령도시처럼 사람 그림자도 찾기 힘들 만큼 고요했다. 조선침략의 원흉 이등박문은 14살 때 이곳으로 옮겨와 살았고 28살에 신정부인 명치정부에 관리로 나갈 때까지 이곳에 머무는 날이 많았으니 제 2고향인 셈이다. 그래서 인지 이곳에는 이등박문이 살았던 집을 복원하여 기념관을 만들고 밀랍인형과 동상까지 세워 놓았다. 신정부의 요인으로 발탁된 이등박문에 대한 일본의 관심은 영화 10편, 텔레비전 드라마가 16편, 이등박문 전집 전 36권을 만들 정도로큰 편이다. 그러나 막상 이등박문 기념관에 써놓은 해적이(연보)에는 그가 하얼빈에서 죽은 것으로만 되어 있을 뿐 누구에 의해 왜 죽었는지를 밝히고 있지 않다. 그의 죄과가 드러날까 숨긴 것일까? ▲ 이등박문(伊藤博文)이 살던 야마구치현 하기시 집을 복원하여 만든 이등박문기념관 1909년 하얼빈 역에서 이등박문을 저격한 안중근 의사는 러시아 검찰관의예비심문과 재판과정에서 자
[우리문화신문 = 이윤옥 기자] 4월 16일 “변호사 후세 다츠지 영화 상영”이라는 큼지막한 전단지를 만든 곳은 양심 있는 일본 시민들이 꾸려가는 고려박물관이다. 고려박물관은 1회 90분짜리 영화를 4월 16일부터 4일간 상영 할뿐 아니라 4월 2일부터 6월 1일까지 일본의 양심인 인권변호사 후세 다츠지 (布施辰治 1880 ~ 1953)에 대한 전시회를 열 계획이다. (1월 29일부터 3월 30일 까지는 항일여성독립운동가 시화전 전시 중. 시 이윤옥, 한국화 이무성) 후세 다츠지 변호사는 한평생을 사회적 약자 편에 서서 소외된 이들의 벗이 되어 그들의 손을 잡아주고 법률 변호를 맡아준 사람으로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특히 일제강점기 일본땅에서 유학생들이 2.8독립선언을 부르짖었을 때 이들의 변론을 맡아 주었을 뿐만 아니라 3·1운동 때는 “조선독립운동에 경의를 표한다”는 글을 발표할 정도로 조선과 조선인에 대한 깊은 사랑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한 공로를 높이 사서 한국정부에서는 2004년 후세 변호사에게 일본인 최초의 한국건국훈장 애족장(2004)을 추서했다. 후세변호사는 1923년 이후 세 차례에 걸쳐 한국을 방문해 의열단원 김시현(金始顯)의 조선총독부 요
[그린경제/얼레빗 = 이윤옥 기자] 책향기에 빠져 사는 것만큼 행복한 일도 없을 것이다. 오래된 책과 헌책방은 그 개념이 다르다. 쉽게 말하면 오래된 책은 비싼 책이 많고 헌책이란 교과서 같은 일반 단행본류를 떠 올리게 한다. 일본 도쿄에는 이 둘을 다 겸비한 오래된 서점가가 있는데 간다진보쵸(神田神保町)에 있는 고서점가가 그곳이다. 흔히 간다(神田) 서점가라고도 부르는 이곳을 동경 유학시절 글쓴이는 시간 날 때마다 들르곤 했다. 하루 종일 책 구경을 하며 지내도 질리지 않는 곳이다.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은 사람이라도 싼 책은 10 엔짜리부터 좀 비싸다고 해도 1천 엔 정도면 사고 싶었던 책을 손에 쥘 수 있어 부담이 적다. 책이란 비싸다고 해서 반드시 좋은 것이 아니라 자기가 필요로 하는 책을 만났을 때 기쁜 것이기에 나는 쓸쓸할 때나 우울할 때, 기쁠 때나 심심할 때 등 틈만 나면 이곳 서점가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좋은 책을 발견하고는 밤새도록 독서 삼매경에 빠지곤 했다. ▲ 도쿄 간다(神田) 고서점가 모습 우리나라에도 청계천일대에 헌책방가가 있긴 하나 일본 간다의 고서적 거리와는 좀 다르다. 우리의 청계천은 교과서나 철지난 소설, 기타류가 많고 오
[우리문화신문 = 이윤옥 기자] 흔히 일본전통 과자를 화과자(和菓子, 와가시)라고 하는데 이는 양과자(洋菓子, 요가시)라고 부르는 서양과자에 대한 차별을 하기 위해 생긴 말이다. 한국 같으면 모든 과자는 그냥 ‘과자’라 하고 특히 우리전통 과자만을 한과(韓菓)라고 하는 것과 같다. 일본의 와가시(화과자, 和菓子)는 나마가시, 히가시, 아메가시로 나뉘는데 나마가시는 찰떡류를 말하며 수분이 많아 보존이 어려워 바로 먹어야 한다. 반면 히가시는 딱딱하게 틀에 찍어서 만든 과자로 한국에 알려진 센베이 같은 것을 말하며 아메가시는 엿종류를 말한다. ▲ 3월 3일은 히나인형(왼쪽)을 선물하고, 화과자 히나아라레를 먹는 날 특히 다도(茶道)가 발달한 일본에서 화과자는 차를 대접하는 자리에 빼놓을 수 없는 과자다. 화과자는 모양과 색이 다양하여 거의 예술작품에 가까운 과자도 수두룩하다. 대개 기름지지 않고 담백하지만 설탕을 많이 써서 단편이다. 설탕이 흔치 않던 시절에는 주로 감이나 화삼분(和三盆, 와삼봉)이라고 해서 사탕수수로 만든 정제되지 않은 흑설탕 덩어리를 사용했는데 특유한 향이 있어 지금도 고급 화과자의 재료로 사용된다. 화과자의 으뜸은 뭐니 뭐니 해도 경과자
[그린경제/얼레빗 = 이윤옥 기자] 나의 사후 200년 이내에 한 사람의 성황(聖皇)이 여기에 수도를 만들 것이다. 그곳은 일찍이 없는 장대한 수도로 전란을 10회 이상 겪지만 그것을 뛰어 넘어 천 년간 번영할 것이다. 그러나 천년 뒤에는 구로부네(黑船, 서양의 도전)가 오기 때문에 수도는 동쪽으로 이전하게 된다. 위는 일본의 운세 종합사이트 하피즘에서 일본의 성자(聖者)인 성덕태자가 25살 때 한 예언이라고 소개하면서 그 말이 지금 적중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태자의 예언을 예언서로 만들어 내놓은 책이《성덕태자비문, 미래기개봉(聖德太子秘文, 未來記開封)》이란 책인데 이 누리집에서는 성덕태자의 예언대로 서기 794년 간무왕(桓武天皇)이 교토로 수도를 천도한 이래 1000년간 유지하다가 태자의 예언대로 구로부네(黑船)가 일본에 들어오면서 명치유신이 일어나고 이어 교토(京都)에서 도쿄(東京)로 수도가 옮겨갈 것이라는 예언이 들어맞았다고 설명한다. ▲ 《성덕태자비문, 미래기개봉(聖德太子秘文, 未來記開封)》 책 표지 그뿐만이 아니다. 이 책에는 도쿄 수도 이전 후 200년이 될 무렵에는 쿠한다(クハンダ) 가 오는데 쿠한다란 불교 용어로 말세에 나타나는 악귀라
[그린경제/얼레빗 = 이윤옥 기자] 3월 3일은 일본의 히나마츠리(ひな祭り) 날이다. 히나마츠리는 여자아이가 있는 집안에서 장차 딸에게 닥칠 나쁜 액운을 덜기 위해 시작한 인형 장식 풍습으로 이때 쓰는 인형을 히나인형(ひな人形)이라 한다. 히나마츠리를 모모노셋쿠(桃の節句) 곧 복숭아꽃 잔치라고도 부르는데 이는 복숭아꽃이 필 무렵의 행사를 뜻하는 것으로 예전에 음력으로 3월 3일 날을 잔치로 잡을 때 유래한 말이다. 그러나 명치시대 이후부터는 양력으로 지낸다. 히나인형은 3월 3일 이전에 장식해 두었다가 3월 3일을 넘기지 않고 치우는 게 보통이다. 따라서 히나인형 판매의 절정은 2월 한 달이다. 이때 일본을 여행하는 사람들은 일본 전국에 걸쳐 크고 작은 히나인형 판매 경쟁을 보게 된다.아무래도 예쁘고 앙증맞은 히나인형을 볼 때 딸 가진 엄마라면 자꾸 사주고 싶을 게다. 원래 집안에 손녀가 태어나면 할머니들이 히나인형을 선물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하나씩은 가지고 있지만 그래도 새것을 사주고 싶은 엄마들의 마음을 생각해서인지 히나마츠리 날이 다가오면 일본 열도는 히나인형으로 넘쳐난다. ▲ 일왕부부를 상징하는 히나인형 히나인형은 가지고 노는 인형이 아니라 집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