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방영기 명창의 국악입문 50돌을 기념하여 영상으로 제작된 공연 내용을 소개하였다. <산타령>의 <놀량>을 독창으로 불러 선소리꾼으로의 공력을 여지없이 보여주었다는 이야기, 성남의 명창들과 함께 경, 서도민요를 흐드러지게 불러 주었다는 이야기, 지경다지기 소리는 방영기 명창이 발굴한 작품으로 경기 중부지역의 음악적 토리와 특색있는 선율로 짜여져 있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방영기의 고향은 경기도 성남, 분당구 이매동이다. 5대째 200여 년을 한자리에서 살아온 뿌리 깊은 집안의 2남 8녀 가운데 장남이다. 10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나 부모님의 사랑을 한 몸에 받으며 자랐는데, 어린 시절을 그는 이렇게 회상한다. “지금과는 달리 이때만 해도 아들로 태어난 것은 집안의 경사로 여겼던 시절이었습니다. 부모님의 사랑은 말할 것도 없었고, 성장과정에서 조부, 조모님의 사랑도 하늘만큼 높았고 바다처럼 깊었지요. 그런데 저는 어려서부터 춤추고 노래 부르는 것이 너무도 좋았습니다. 그래서 초등학교 3학년이 되면서 춤과 소리를 배우겠다고 하자, 가문의 종손이 춤꾼이 되려고 하고, 소리꾼이 무슨 말이냐라며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12가사의 연행 형태와 장단 및 반주형태 이야기, 12가사가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기는 하나 그 전승이 활발치 못하다는 이야기, 선율구조는 아름다우나, 그 노랫말의 뜻을 이해하기 어렵고, 박자가 느리고 반복이 심해 확산의 제한을 받는다는 이야기, 활발한 전승활동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발표기회나 경연대회, 대학의 전공 확대 방안 등을 위해 관련 기관과 단체, 그리고 문화재청은 특별한 대책을 마련해 주기 바란다고 이야기하였다. 이번 주에는 방영기 명창의 국악입문 50돌을 기리는 발표공연 이야기를 해 보기로 한다. 방영기의 공연은 지난해 몹시도 춥고 바람이 세차게 불던 겨울에 ‘성남아트쎈터 콘써트 홀’에서 열렸다. 정확하게는 12월 15일이었다. 국가무형문화재 19호 선소리 산타령 전수조교로 활동하고 있는 방영기 명창이 국악 입문 50돌을 기리는 큰 공연, <2020, 우리소리를 찾아서>라는 공연이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불청객 코로나19가 극성을 부려 객석은 거의 비어 있었고, 영상을 통해 공연을 관람한 숫자가 상상을 초월했다고 한다. 비대면 공연이어서 객석으로부터의 추임새는 기대할 수 없었지만,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가사 음악의 노랫말과 지은이, 실려있는 악보를 소개하고, 1920년대 이후 하규일과 임기준이 아악부 악생들에게 전해 주었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그들에게 배운 이병성, 이주환, 김기수, 홍원기 등은 국립국악원이나 국악학교 학생들을 지도해 오면서 전승이 이루어졌다는 이야기, 가사 음악만을 공개적으로 발표하는 기회는 그리 흔치 않은 가운데, 1981년 세종문화회관에서 정농악회 회원들이 12가사 가운데 6곡을 공개발표 하였다는 이야기도 했다. 이번 주에는 가사음악의 연창형태를 비롯하여 장단, 반주형태, 확산의 문제에 관한 이야기를 이어가기로 한다. 가사는 부르는 사람이 직접 장단을 치면서 혼자 부르거나, 또는 반주자의 장단에 맞추어 부르는 형태이다. 가락이 복잡하고 창법상의 특성으로 인해 여럿이 함께 부르는 경우는 거의 없다. 가사의 장단 형태는 6박형 느린 도드리장단이 대부분이다. 예외로 <상사별곡>이나 <양양가>, <처사가> 등은 5박형 장단으로 부르며 <매화타령>은 빠른 6박형, <권주가>는 일정한 장단형 없이 노래에 따라 조절함으로 가사창의 장단형은 노래에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미추홀 정가원>이 평소 어린 학생들이나 어머니반 회원들에게 시조와 민요를 중심으로 하는 공연이나 강좌를 열어왔다는 이야기, 지난겨울 “렉쳐 콘서트 시리즈 1, ‘박금례의 정인가담(情人歌談)’을 기획, 코로나 정국에서도 가사, 평시조, 지름시조, 송서(誦書), 경기좌창과 민요, 전통무용을 중심으로 하는 비대면 공연으로 성공을 거두었다는 이야기, 평균수명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여성들의 중년기가 길어지고, 갈등과 스트레스, 우울감 등을 해결하는 방법으로 정가원에서는 전통음악과 무용을 선택해 왔기에 이곳은 학교의 기능을 지닌 동네의 배움터라는 이야기를 하였다. 지난주에 언급한 바 있던 수양산가, 곧 가사(歌詞)음악에 관한 이야기를 소개하였는데, 독자들의 질문과 소개의 요청이 있어 이에 관한 이야기를 해 보기로 한다. 가사(歌詞)란 가곡, 시조와 함께 정가에 속해 있는 노래이다. 그러나 그 노랫말의 형태는 구별된다. 가곡이나 시조는 초장, 중장, 종장의 3장 형식을 취하고 있는 시조(時調) 시(詩)를 노랫말로 하지만, 가사는 비교적 장가(長歌)에 속하는 노랫말을 취하는 성악이다. 그런데 가사의 노랫말은 작자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박금례 원장이 시조창, 경기 민요, 송서와 율창, 전통춤을 하나로 아우르는 소통의 장으로 정가원을 세웠다고 이야기하였다. 그는 묵계월을 위시하여 여러 명인 명창에게 노래와 춤을 배웠는데, 특히 이동규의 정가는 그의 부친 이병성의 노래를 기본으로 하고, 그 위에 이주환 명인의 가락을 이어받은 국립국악원 정통의 가곡이어서 정가원 회원들이 부르고 있는 정가는 정통의 소리제라는 점을 이야기하였다. 박 원장은 인천시 부평구에 <미추홀 정가원>을 세우고, 시청이나 구청에서 지원하는 마을 공통체 사업이라든가, 또는 인천문화재단에서 지원하는 사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오고 있다. 특히 마을 공통체 사업의 하나로 시조와 민요를 중심으로 하는 “소리 밥상”이라고 하는 프로그램은 마을 주민들을 위한 봉사적 성격을 띠고 있는 공연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지역의 유치원이나 초등학생들에게 시조나 민요 강좌를 꾸준히 열어 오면서 활성화를 꾀하여 왔고, 어머니 회원들의 경우는 그들 가슴속에 잠재된 여인의 아름다움을 끌어내는 동기를 제공해 줌으로 해서 더더욱 정가원 공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계기를 만들어 왔다는 것이다. 작년 겨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인천 부평구 소재의 <미추홀 정가원>이야기를 하였다. 그곳은 나를 살리는 공간이며, 자기를 찾아가는 길목이라는 의미를 짚어보았다. 정가는 마치 우리가 매일 먹고 마시는 <밥>이나 <물>에 비교될 수 있다는 이야기, 음(音)은 사람의 마음으로부터 나오며, 사람의 마음이 움직이는 것은 세상만물에 느껴 그렇게 된다는 이야기, 나의 기분은 상대의 따라 좌우되기 때문에 자주 만나는 사람들끼리의 언행은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우리의 마음은 수시로 변한다. 내 마음의 상태를 변화시키는 요인은 스스로가 아닌, 또 다른 대상의 영향을 받기에 변화하는 것이다. 내 마음이 좋은 상태로 변화하를 바란다면 주위의 좋은 사람들과 진심이 담긴 대화를 나누고, 마음을 나누어야 할 필요가 있다. 내가 그러한 상대를 바라고 원하는 것처럼, 상대도 나와 꼭 같은 대상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 좋은 감정을 유지하며 함께 살아갈 대상을 기다리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인천 정가원>을 찾는 회원들이나 국악 애호가들이 인간 본연의 선(善)한 감정을 되살리는 공간이기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오늘은 24절기의 여섯째로 봄비[雨]가 내려 백곡[穀]을 기름지게 한다는 <곡우(穀雨)>입니다. 이 무렵부터 못자리를 마련하는 일부터 본격적으로 농사철이 시작되지요. 그래서 “곡우에 모든 곡물이 잠을 깬다.”, “곡우에 가물면 땅이 석자가 마른다.”, “곡우에 비가 오면 농사에 좋지 않다.”, “곡우가 넘어야 조기가 운다.” 같은 농사와 관련한 다양한 속담이 전합니다. 그리고 이때가 되면 햇차가 나오는데 《조선왕조실록》에 다례라는 말이 무려 2,062번이나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조선시대엔 차를 즐겼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다만 당시는 녹차(綠茶)라 부르지 않고 차(茶) 또는 참새 혀와 닮은 찻잎으로 만들었다는 뜻으로 작설차(雀舌茶)라고 불렀습니다. 녹차는 우리가 일본에 전해준 뒤 오랫동안 일본에 뿌리내려 그쪽 기후와 땅에 맞는 품종으로 바뀐 것이며, 이를 가공하는 방법도 다릅니다. 녹차는 원래 찻잎을 쪄서 가공하는 찐차이고, 우리 차는 무쇠솥에 불을 때면서 손으로 비비듯이 가공하는 덖음차입니다. 그래서 차맛에 민감한 이들은 녹차와 우리 전통차의 맛이 다르다고 하며, 색깔도 다릅니다. 또 한 가지 더 알아야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까지는 UCLA 한국음악과와 감동석 교수에 관한 이야기를 하였다. 2014년 학과의 폐과 위기에도 한국 정부는 무관심이어서 소중한 전통문화의 전진기지를 잃게 되었다는 점, L.A 교육국은 <한국음악> 수업을 세계음악 강좌(world music classes)의 하나로 인정을 해 주어 대학진학에 도움을 주었다는 점, <한국음악무용예술단>의 초ㆍ중ㆍ고교의 순회공연도 연 100회였다는 점, LA <한국문화원>이나 대학이 주최하는 한국문화 세미나와 zoom을 통한 음악 동호인, 교사들을 위한 특별강좌를 해 왔다는 점, 최근 세계인명사전출판협회로부터 <평생공로상>에 선정되었다는 점, 등을 이야기하였다. 이번주 에는 국내 이야기로 돌아와 인천 부평구 소재 <미추홀 정가원(正歌院)> 관련 이야기를 해 보고자 한다. 2년 전 겨울, 나는 인천 부평구 소재 미추홀 정가원 정례발표회에 초대되어 그들의 발표내용을 관심있게 지켜볼 기회가 있었다. 박금례(한양대 미래교육원 교수) 원장은 인사말을 통해 정가원은 “살리는 공간, 자기를 찾아가는 길목”이라고 설명했다. 살리는 공간이란 무엇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소를 잃고도 외양간 고치지 않는 부끄러운 문화정책이라는 제목의 글을 실었다. 명문대학 UCLA의 한국음악과가 2004년부터 폐과 위기에 놓이게 되어 교수, 졸업생, 학생, 교포들이 백방의 노력을 기울였지만 끝내 그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는 이야기를 했다. 당시 한국일보 L.A 지사의 사설란에는 UCLA <한국음악과>의 지속적 유지를 위해서는 한국정부의 역할이 주목되니 영사관, 문화원이 본국 정부에 알려 긴급대책을 강구하라는 주문을 하고 있었다는 이야기, 그러나 한국정부는 이를 외면했고, 결국 2014년, 10위권 경제대국 대한민국의 문화자존심은 여지없이 무너져 부끄럽게도 문을 닫게 되었고, 김동석 교수는 후임자 없이 학교를 떠나게 되었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이번 주에는 학교를 떠난 이후, 그가 어떠한 활동을 해 왔는가 하는 이야기를 해 보기로 한다. 그의 말이다. “어려서부터 한 눈 파지 말고 한 우물만 파라”는 말을 들었지요, 각자의 삶이 한 우물만 파고 살기에 충족한 삶인지, 아니면 잘못된 길인지는 지나 봐야 그 결과를 알게 됩니다. 나의 삶은 내가 좋아서 택했든, 아니면 어쩔 수 없는 환경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오늘은 24절기의 다섯째 청명(淸明)이고, 내일은 전통 4대명절의 하나였던 한식이다. 이렇게 청명과 한식이 같은 날이거나 하루 차이여서 “한식에 죽으나 청명에 죽으나”라는 속담이 생겼다. 이날 성묘를 한다. 옛날에는 한 해에 네 번, 곧 봄에는 청명, 여름에는 중원(中元, 음력 7월 15일), 가을에는 한가위, 겨울에는 동지에 성묘했다. 《동국세시기》의 기록에 따르면 청명날 버드나무와 느릅나무를 비벼 새 불을 일으켜 임금에게 바친다. 임금은 이 불을 정승, 판서, 문무백관 3백60 고을 수령에게 나누어준다. 이를 사화(賜火)라 했다. 수령들은 한식(寒食)날에 다시 이 불을 백성에게 나누어주는데 묵은 불을 끄고 새 불을 기다리는 동안 밥을 지을 수 없어 찬밥을 먹는다고 해서 ‘한식(寒食)’이라고 한다. 이렇게 하여 온 백성이 한 불을 씀으로써 같은 운명체로서 국가 의식을 다졌다. 꺼지기 쉬운 불이어서 습기나 바람에 강한 불씨통(藏火筒)에 담아 팔도로 불을 보냈는데 그 불씨통은 뱀이나 닭껍질로 만든 주머니로 보온력이 강한 은행이나 목화씨앗 태운 재에 묻어 운반했다. 농사력으로는 청명 무렵에 논밭의 흙을 고르는 가래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