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곡 이야기를 하다가 잠시 시조 이야기로 흘렀다. 향제시조의 한 갈래인 충청 지방의 내포제시조이야기도 했고, 이어서 시조에 명창없다는 말이 무슨 뜻인가를 설명하면서 시조의 일반적 이야기도 잠시 하였다. 이번 주에는 가곡, 시조와 함께 정가(正歌)에 포함시키고 있는 가사(歌詞)이야기를 잠시 해 보기로 한다. 남창 가곡의 예능보유자인 김경배 명인의 아호가 소하(韶荷)이다. 그가 이번에 가곡이 아닌 12가사 전곡을 한 장 음반으로 담아냈다고 해서 화제가 되고 있다. 그래서 필자는 축하의 의미를 담아 축사를 보내면서 그 일부를 여기에 소개하고자 한다. 지금은 서초구 우면동에 자리 잡고 있는 국립국악원이 1950~60년대 말까지는 종로구 운니동 비원 앞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니까 1960년대 말, 지금의 국립극장이 서 있는 장충동 남산 중턱으로 옮겨가기 전까지가 운니동 시대이다. 이 당시 국립국악원은 일반 시민들을 위한 월례국악강습회를 10~15일간 치른 다음, 반드시 국악감상회를 원내의 작은 공연장에서 열곤 하였는데, 그 공연장의 이름이 바로 춤일(佾), 풍류소(韶)의
“시조에는 명창이 없다.”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돌고 있다. 시조창이 너무 어려워서 경지에 오른 사람이 없다는 뜻일까 아니면 반대로 너무 쉬워서 모두가 명창이기 때문에 없다는 뜻일까. 시조창이라 해서 명창이 없을 리 있겠는가마는 이 말이 일반화되어 있는 것을 보면 필경 무슨 곡절이 있을 법하다. 조선조 전기부터 불리던 전문가의 노래가 가곡이라면, 이를 일반인들이 부르기 쉽도록 고쳐 만든 노래가 곧 시조창이다. 시조창을 부르기 시작한 시기를 학계에서는 대략 영조 무렵으로 보고 있다. ≪유예지≫를 비롯한 시조창의 악보는 순조 무렵부터 보이고 있는데, 이 악보를 분석한 결과 현행의 경제 평시조-京制平時調로 알려졌다. 경제란 서울 경기지방을 말함이고, 시조는 3장6구체의 시형에 가락을 얹고 장단을 붙여 부르는 노래를 말한다. 경제시조의 대칭개념이 곧 향제시조-鄕制時調이다. 향제에는 지난주 소개되었던 충청지방의 내포제를 비롯하여 경상도의 영제시조와 전라도의 완제시조가 대표적이다. 그런가 하면 이미 고인이 된 석암 정경태 명창이 완제를 바탕으로 발전시킨 시조가 전국적으로 널리 애창되고 있어 이를 석암제시조로 부르고 있다. 어느 지방의 시조가 되었든 간에 시조는
내포제 시조란 내포지방에 전해오는 노래를 말한다. 내포지방이란 충청남도 서해 바닷가와 인접해 있는 홍성, 당진, 서산, 보령, 연기, 부여, 청양, 논산, 예산, 서천 지역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리고 시조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동창이 밝았느냐” 또는 “태산이 높다하되”처럼 초장, 중장, 종장의 3장 형식을 취하고 있는 3~4조의 시형을 말한다. 그러므로 내포제 시조는 서해 바닷가에 살고 있는 충청 지역민들이 즐겨 불러온 고유한 시조가 될 것이다. 참고로 경상도 지역의 시조를 영제, 전라도 지방의 시조를 완제, 서울 경기지방의 시조를 경제라고 부르는 것처럼 지역에 전해오는 시조를 분류하는 이름으로 이해하면 될 것이다. 충청남도는 내포제 시조를 무형문화재로 지정하고 보존과 계승을 위해 심혈을 기울이고 있으며 시조인들은 《충남통합시우회》를 조직하여 해마다 강습회를 열기도 하고 전국 시조창대회를 열기도 한다. 그 중심에 김연소, 이규환, 김영숙 등과 같은 시조인들이 있다. 충남문화재로 지정할 당시에는 소동규 명인이 초대 예능보유자로 인정되었고 그 뒤로 김원실 명인이 2대 보유자가 되어 도내에 각 지부를 조직, 세를 확산해 오면서 선생의 유지를 충실하게 이
국악속풀이 이번 주 이야기는 가곡에서 잠시 벗 어나 가야금병창에 대해 얘기를 해 보도록 하겠다. 가야금병창이란 창자 스스로 가야금을 뜯으며 단가나 민요, 판소리의 눈대목 등을 부르는 연창의 형태를 말하는 것이다. 최근에는 기존의 노래뿐 아니라 새롭게 창작된 노래도 가야금을 뜯으며 부른다. 우리의 전통성악 가운데 반주악기가 반드시 들어가야 하는 성악은 가곡이 유일하다. 반주악기가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는 말은 음악의 시작을 알리는 전주 부분이나 간주 부분이 따로 존재하고 있다는 말이다. 또한, 음높이를 지정하고 유지해 주는 역할에서부터 선율의 흐름, 빠르기, 음악적 분위기를 반주진이 이끌게 마련이어서 창자가 도움을 받는 것이 사실이지만, 때로는 이러한 틀이 장애가 되어 오히려 창자의 기량을 발휘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88서울 올림픽 전야제 행사로 고 박동진 명창이 판소리 한 대목을 관현악 협연으로 부른 다음, 무대 뒤로 나와서 “ 나는 다 필요 없어, 북 제대로 치는 놈 하나만 있으면 된단 말이여~” 불평 섞인 실토를 잊을 수가 없다. 그래서 가곡을 제외한 여타의 노래들은 반주가 있으면 좋고 여의치 않으면 장고나 북을 반주 삼아 부르는 노래가 일반적이다
가곡이야기 4. “삭대엽의 순 우리말은 자진한잎이다.” 《대악후보》나 1580년대의《금합자보》에 실려있는 만대엽이 가곡의 원형임은 앞에서 언급하였다. 이러한 만대엽은 늦어도 17세기 후반까지는 화려하게 각광을 받았던 것이 확실하지만 그 이후로는 점차 중대엽에게 자리를 내 주기 시작하는 모습이 여기저기에 보이고 있다. 1680년대에 제작된《신증가령》이라는 악보에는 중대엽이나 삭대엽이 각각 1, 2. 3으로 확대 발전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러다가 18세기 초엽부터는 만대엽이라는 이름은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그런가 하면 위세를 떨치던 중대엽 역시 평조의 음계를 잃는 등, 점차 그 기세가 꺽이기 시작하면서 가곡의 중심은 가장 빠른 템포의 삭대엽으로 옮겨지는 현상을 보이기 시작한다. 삭대엽(數大葉)이란 무슨 뜻일까? 삭(數)은 자주 혹은 잦게(빠르게)라는 의미이다. 수로 읽기도 하나 그럴 경우에는 세다의 의미가 된다. 대(大)는 크다는 뜻으로 옛날에는 ‘한’으로 읽었다. 대전(大田)을 ‘한밭’이라고 했던 것처럼 크다는 뜻을 우리말로는 ‘한’이라고 했던 것이다. 그리고 엽(葉)은 잎이나 갈래 등의 뜻을 지닌 글자이기 때문에 음악용어로는 ‘악곡’이 될
《산타령》에는 경기산타령, 서도산타령, 남도산타령 등이 있다. 남도는 다르지만, 경기와 서도의 산타령은 전반적인 악곡의 구성이나 선율의 진행이 유사한 편이어서 이들 노래가 동시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어느 한 쪽의 산타령이 다른 지방의 영향을 받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1927년 이능화의 『조선해어화사』에는 경기산타령은 불규칙리듬이 많고 서도산타령은 비교적 규칙적인 점, 서도는 템포가 빠르고 요성이 격렬한데 비해 경기는 비교적 느리고 매끈하다는 점을 들면서 “서도 산타령은 경기산타령의 변형”이라고 기록하고 있는 점이 주목된다. 북한 학자들이 서도의 사거리를 주장하는 것과 대조를 보이는 대목이다. 경기나 서도 할 것 없이《산타령》은 오랜 역사와 음악적으로 다양한 특징들을 지니고 전승되어 오는 전통의 소리이다. 자칫 이에 대한 보존정책이나 전승과정을 소홀히 했다면, 우리는 또 하나의 소중한 자산을 잃을 뻔했던 종목이기도 한 것이다. 국가에서는 1969년, 《산타령》을 무형문화재 19호로 지정하면서 뚝섬패의 한인학 후계자인 김태봉, 과천패 소완준의 제자 정득만, 왕십리패 이명길의
가곡을 비롯하여 가사, 시조를 정가(正歌)라는 이름으로 통칭하고 있다. 정가란 속가(俗歌)의 대칭개념으로 창법이 점잖은 노래라는 의미인데, 정가를 ‘바른 노래’, ‘점잖은 노래’라고 부르는 일반적인 특징은 첫째 박자가 느리다는 점이고, 둘째는 부르는 사람이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절제하여 부른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가곡을 고상한 이름으로는 만년장환지곡(萬年長歡之曲)이라고도 한다. 그 뜻은 이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 모두가 오랜 시간 길게 기쁨을 누리는 노래라는 의미이다. 반면에 속가는 민요나 판소리, 좌창, 선소리, 병창, 무가 등을 아우르는 이름으로 희로애락의 감정을 최대한 들어내는 노래이기 때문에 적극적인 표현법을 쓴다. 그래서 속가를 들으며 사람들은 울고 웃고 하는 것이다. 현재까지 전해오는 가곡의 곡조는 남창이 26곡, 여창이 15곡이어서 총 41곡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곡은 모두 5장으로 나누는 형식을 취한다. 5장형식이란 시조시 초-중-종장의 노랫말을 5장으로 안배함을 말한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시조 “동창이”를 예로 든다면 다음과 같이 나눠진다. 가곡의 제1장--시조의 초장 안구[內句]--- “동창이 밝았느냐” 제2장------
본래의 고유한 이름인 옷이나, 음식, 집이란 이름을 내주고 한복이니 한식이니 한옥이니 하는 불필요한 이름을 새로 얻은 것처럼, 가곡도 새로운 서양스타일의 가곡과 구별하기 위해 전통이란 불필요한 이름을 앞에 붙여 전통가곡으로 부르기도 한다. 참고로 이 난에서도 때로는 가곡, 또는 전통가곡 등의 이름이 혼용되기도 할 것임을 양해 바란다. 일반적으로 한국의 3대(三大)성악으로는 가곡, 판소리, 범패를 꼽아 왔다. 왜 이들을 꼽아왔는가 하는 근거는 분명치 않다. 다만, 역사가 오래되었고 규모가 방대하며 예술적 가치가 상대적으로 높은 “전문인들의 노래”라는 점이 주된 이유가 아닐까 한다. 전통가곡은 조선조의 선비들이나 유명 학자, 상류계층의 인사들이 애호하던 점잖은 노래이며, 판소리는 일반대중들이 즐기던 남도 지방의 극적인 긴 노래이고, 범패는 사찰에서 크고 작은 의식이 있을 때 승려들이 부르는 장엄한 불교의 성악이다. 이 중 판소리는 미(美)적 가치도 높을 뿐 아니라, 재미도 있어서 판소리가 있는 공연장이나 판소리를 기본으로 만든 창극은 언제나 많은 청중으로 성황을 이루고
독자 여러분의 질문 중에 ‘봉선화’나, ‘바위고개’, 또는 ‘금강산’이나 ‘비목’과 같은 노래들을 가곡으로 알고 있는데, 국악방송을 들어보면 이름부터 생소한 ‘초수대엽’이나 ‘언락’, ‘편락’과 같은 긴 노래를 가곡으로 소개하기 때문에 혼란스럽고 어리둥절할 때가 많다는 것이다. 가곡이 어떤 노래인가? 미적 특징이 무엇인가? 하는 점을 이해하기 위해 오늘부터는 가곡에 관한 이야기를 쉽게 풀어서 소개할 예정이다. 관심있는 분들의 애독과 질문을 포함한 많은 의견을 보내 주시기 바란다. 일반적으로 가곡(歌曲)이라 하면 아름다운 시(詩) 위에 곡조를 얹어 부르는 노래를 지칭한다. 독일에서는 리트, 불란서에서는 샹송, 이태리에서는 깐쪼네로 부르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가곡으로 정의하고 있는 노래는 몇 가지 특징적인 요소들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다른 노래와는 차별성을 갖고 있다. 특징적인 요소란 다음과 같다. 1. 조선조 전기에 생성된 노래로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는 점 2.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초장, 중장, 종장으로 구성되어 있는 3장 형식의 시조시를 노랫말로 삼는다는 점 3. 16박자, 혹은 10박자의 길고 느린 장단에 맞추어 부르고 있다는 점 4. 반
이달 24일(화) 오후 3시:30분,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산타령의 예능보유자 황용주(黃龍周)사범이 예악 생활 55주년을 기념하여 발표공연을 펼친다고 한다. 축하의 글과 함께 산타령이란 어떤 음악인가 하는 점을 2회에 걸쳐 소개해 보기로 하겠다. 사람이 태어나서 한 길을 걷는다는 일이 말처럼 쉽지 않은 터에 10년, 20년도 아닌 55년을 오직 경기소리, 그 중에서도《산타령》을 부르며 외길을 살아온 황용주 사범은 후학들로부터 존경과 축하를 받아 마땅한 일이다. 그의 기념공연 무대는 경기소리 전반이지만, 그 중심은 역시 경기 지방에 전승되어 오는《산타령》이 될 것이다. 입창(立唱)형식, 즉 서서 부르는 이 노래는 좌창의 12잡가와 함께 경기소리의 대표적인 노래로 꼽고 있다. 구성악곡은 ‘놀량’ ‘앞산타령’ ‘뒷산타령’ ‘잦은 산타령’을 차례로 부르는 것을 기본 틀로 하는 연창형식의 노래이다. 《산타령》은 예로부터 예인집단에 의해 전승되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 불가(佛家)에서는 주로 사찰의 의식이 끝난 후, 산타령과 민요로 일반 대중을 위로하였고, 도시와 농촌에서는 넓은 마당에서 불을 밝히며 참가자들과 함께 즐겼던 노래가 바로 산타령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