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얼레빗 = 이한꽃 기자] 1919년 고종황제의 국상 때 나는 17살 소녀였다. 그날 나는 대한문 앞에서 큰 갓에 거적을 깔고 통곡하는 동포들 틈에 끼어 나라 없는 설움과 일인들에 대한 분노가 북 받혀 올라 목숨이라도 바칠 각오로 목이 터져라 대한독립 만세를 외쳤다. 그러나 이날 대한문 앞에서 만세운동을 한 사실이 학교 측에 발각돼 다음날 직원실로 끌려갔다. 담임선생과 훈육 선생은 나에게 무릎을 꿇게 하고 의자를 들고 서있도록 하는 엄한 벌을 주었다. 일인교사들은 펄쩍 뛰면서 이후 덕수궁 쪽에는 얼씬도 하지 못하도록 꾸짖었다. 내나라 임금이 돌아가셨는데도 마음 놓고 울지도 못하는 가련한 백성! 이날의 사건은 어린 나에게 애국심을 불러일으키는 다시없는 밑거름이 되었다. -제남일보, 최정숙 증언 내가 걸어온 길 가운데서 1973.9.17 - 1902년 제주 삼도리에서 태어난 최정숙 (崔貞淑,1902. 2.10 ~ 1977. 2.22)애국지사는 제주 신성여학교(현, 신성여자고등학교, 교장 남승택)를 1회로 졸업한 뒤 당시로는 쉽지 않은 서울 진명여학교로 유학을 왔다. 당시 제주도에서 서울유학이란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지만 어린 정숙은 법조인이었던 아버지
[그린경제/얼레빗= 이한꽃 기자] 가슴에 육혈포, 탄환, 다이너마이트를 품고 뛴 '조신성' 이윤옥 일본 유학까지 마친 엘리트 일제에 아부하면 환영받았을 몸 박차고 스스로 가시밭길 내디딘 운명 폐교 위기 진명 여학교 맡아 머리에 돌이고 져 나르며 가꾼 억척 교장 선생님 여자도 배워야 산다 일본말을 배워야 원수를 갚는다 나라 있고 내가 있다 심은 민족혼 만주벌 관전현 맹산 독립단 키워 몸으로 육혈포, 탄환, 다이너마이트를 품고 뛰어든 항일 별조차 숨어 버린 살 에이는 서간도의 밤 살아 이름 구걸치 않고 죽어 이름을 남기리라 각오한 길 살쾡이처럼 서슬 퍼런 왜놈 순사도 두려워 떨던 대륙을 포효하던 암사자 조 신 성 이름 석 자를 두고 남아의 기상을 묻는 이 그 누구더냐. *육혈포(六穴砲): 탄알을 재는 구멍이 여섯 개 있는 권총. ▲ 그림 한국화가 이무성 조신성(趙信聖, 1873 ~1953.5.5) 1934년 9월 20일 가을바람 잔잔하게 불던 날 구름 한 점 없는 평양 모란봉 앞 대동강변에서는 조신성의 회갑연이 열렸다. 회갑연 자리에는 만국기가 펄럭였고 많은 이들이 참석하여 축하해주었다. 선생은 선지자요, 신진자요, 선각자이십니다. 남이 모를 때 아셨
[그린경제/얼레빗 = 이한꽃 기자] 댕기머리 소녀 항일의 함성 김나열 이윤옥 항구의 바람이 짜다고 탓하지 마라 빼앗긴 나라를 훔치고 지나가는 바람이 야속하다고 투정하지 마라 어린 댕기머리 처녀들 줄지어 쇠창살에 갇혔다고 슬퍼하지도 마라 봄 되면 항구로 불어올 따스한 바람타고 외로운 기러기들 서로 등 기대어 날아오듯 정명의 어린 천사들 항구의 등불을 밝힐 것이니 크고 환하게 밝힐 것이니. ▲ 목포정명학교 만세사건 기사(1922.1.23 동아일보) 김나열(1907-2004) 애국지사의 자료를 찾다가 후손인 장경희 따님과 연락이 닿았다. 마침 장경희 여사께서는 미국 여행을 앞두고 있어 직접 만나지는 못했는데 필자의 여성독립운동가를 알리는 일에 흔쾌히 어머님이신 김나열 애국지사의 삶을 서면으로 알려왔다. 다음과 같이 저희 어머님에 대한 자료를 보내드립니다.로 시작되는 편지를 그대로 가감 없이 소개한다. 1) 어머님이 지금까지 독립유공자 수상을 신청하시지 않은 이유 어머님은 늘 당시의 기미년 3.1. 운동 만세운동 때의 공적을 신청하시지 않은 이유에 대해 말씀하시길 나와 똑 같은 처지에 있었던 조선 사람이라면 누구나 만세운동에 주동자로서 참석하지 않을 조선 사
[그린경제/얼레빗 = 이윤옥 기자] 열여섯 여자 광복군 용인의 딸 오희영 이윤옥 화탄계 냇물에 비친 하늘 먹구름 걷히어 맑고 맑구나 물 건너 신한촌 옹기종기 모인 동포들 콩 한쪽도 나누며 나라 사랑으로 살아갔지 이역만리 고향땅 기약 없이 떠나온 의병장 명포수 할아버지 뒤를 이어 아버지 어머니 남편 여동생까지 독립의 끈으로 묶인 나날들 유주 부양 중경으로 터 바꾸며 열여섯 소녀 광복군 되어 굴곡과 고난의 가시밭길 걸어간 자리 해마다 잊지 않고 피어나는 챠우쉔화 꽃향기 속에 살아나던 독립의지 하늘에 닿았으리. *화탄계: 임시정부요인들의 가족이 살았던 중국 중경 근처 토교의 신한촌 앞을 흐르는 냇물 *챠우쉔화(朝鮮花): 조선의 독립을 보지 못하고 중국땅에서 죽어간 사람들의 무덤에 핀 노오란 들국화를 현지인들이 애처로워 부른 이름 ▲ 대한민국임시정부 환국기념(1945. 11. 3), 뒷줄 ◯표한 이가 오희영 애국지사(사진제공 오희옥 여사) 오희영 (吳熙英, 1924.4.23 - 1969.2.17) 오희영 애국지사가 태어난 곳은 중국 길림성 액목현으로 이곳은 서로군정서 본부가 1920년 일제 토벌군을 피해 이동한 이
[그린경제/얼레빗 = 이윤옥 기자] 김구의 한인애국단 핵심 윤봉길 이봉창과 이화림 이 윤 옥 화려한 불빛 속 상하이의 밤서러운 이방인 삼삼오오 모여 이룬 숲서둘러 국권회복의 길 암중모색이었네일본 사쿠라다몽으로 떠나는이봉창 가슴에 안겨 준 폭탄불발로 품은 뜻 이루지 못했어도혼비백산한 히로히토 화들짝 놀라그날 밤 이불에 오줌 지렸을 게다석 달 뒤 상하이홍구 공원물샐틈없는 수비 뚫고단번에 날린 윤봉길의 도시락 폭탄도여장부 이화림이 도운 거사였어라태항산 거친 삼림 속 마다치 않고조선의용대 끌어안고 부르던 노래아리랑 피 끓는 함성 속에절절이 묻어나던 조국해방의 염원돌미나리 민들레 수양버들 잎사귀로배 채우며 쟁취한 광복고국은 그 이름 잊었어도그 이름 천추에 길이길이 남으리. ▲ 이화림 애국지사가 나온 중산대학은 수많은 독립투사가 다녔다. 이화림 (李華林, 1905.1.6 - 미상)한인 애국단의 핵심 멤버 3인으로는 이봉창, 윤봉길, 이화림이며 이화림은 1905년 1월 6일 평양에서 출생하여 31운동 참가 후 평양 일대의 독립운동가를 후원하다가 1930년 상해로 건너가 사격, 무술을 배웠고 일본군 밀사들을 유인 살해하는 등 맹활약을 했다. 이봉창 이 동경에서 던진
[그린경제/얼레빗 = 이윤옥 기자] 충남 공주 만세운동 주동자 혹부리집 딸 김현경 이윤옥 기마 왜병 말발굽 양반 고을 공주 땅에 휘몰아치매 열아홉 처녀 선생 목숨 걸고 나선 몸 총칼도 두렵지 않네 관순 오라버니 동무해서 부른 만세 휘두른 총칼에 몇 번이고 혼절해도 꺾이지 않는 조선 처녀의 기개 헛되지 않아 되찾은 광복의 기쁨도 잠시 화려한 애국지사 훈장도 없이 홍성의 구멍가게 쓸쓸한 주인 되어 외로이 숨져간 공주의 독립투사 뒤늦은 이승의 빛난 훈장 저승에서 알고 계실까? ▲ 1919.8.29.공주지방법원 김현경 판결문 김현경(金賢敬,1897. 6.20 ~ 1986.8.15) 목이 터져라 만세를 외치며 장터를 달리다가 기마왜경이 휘두르는 칼에 유관순의 오빠와 함께 맞았어요. 머리에서 흘러내리는 피가 옥양목에 뚝뚝 떨어진다고 느끼는 순간 기절을 한 거예요. 얼마 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일본 순사가 어디 한 번 더 불러보라고 하기에 힘차게 대한독립만세를 한 번 더 불렀지요. 1974년 동아일보 3월 1일치에는 구국의 별 지금은 구멍가게 노파라는 기사로 김현경 애국지사 이야기가 소개되고 있다. 당시 김 애국지사는 78살이었다. 구한말 무관이던 아버지는
[그린경제/얼레빗 = 이윤옥 기자] 광주학생독립운동의 도화선 댕기머리 소녀 이광춘 이윤옥 애비 놈들 남의 나라 삼키더니 그 자식들 통학하며 싸가지 없이 조선인 여학생 댕기를 잡아 당겼것다 아야야야 아야야야 그 광경보다 못해 조선 남학생들 왜놈 학생 멱살 잡고 한 대 날렸것다 아무렴 가만있을 수 없지 땅 뺏기고 말 뺏기고 자유 뺏기길 십수년 나주 광주 목포 서울 평양 학생들 분노 소리 땅을 가를 때 어린 학생 잡아다가 고문하던 왜놈 순사들 머리채 잡아끈 후쿠다(福田修三)는 놔두고 힘없는 나주의 딸 이광춘만 머리끄댕이 잡히고도 퇴학당했다지 제 자식 혼 안내고 남의 자식만 혼내는 것 조선에선 후레자식이라 하지 후레자식들! 후레자식들! ▲ 그림 한국화가 이무성 이광춘 (李光春, 1914.9.8~2010. 4.12) 통학길의 조선 여학생 머리끄댕이를 잡아당긴 사건 그때는 개찰구 쪽으로 먼저 나가는 쪽이 힘이 세다고 생각하여 한일 간에 서로 먼저 나가려고 했어요. 우리 한국학생들 수는 적었지만 더 야물었지요. 기차 속에서 즈그들 수가 더 많은 게 까불까불해도 한국학생들이 눈을 크게 뜨면 야코가 팩 죽어 말도 못하지라우. 이광춘 여사는 잡지 예향, 1984년
[그린경제/얼레빗= 이윤옥 기자] 빗창으로 다구찌 도지사 혼쭐낸 제주 해녀 부춘화 이윤옥 ▲ 부춘화 시화 (그림 이무성 화백) 물질하던 옷 벗어 말리며 가슴 저 밑바닥 속 한 줌 한을 꺼내 말리던 불턱에 겨울바람이 일고 있오 비바람 눈보라 치는 날 무자맥질 숨비소리 내뱉으며 거친 바닷속 헤매며 따 올린 처녀의 꿈 짓밟고 착취하며 검은 마수의 손 뻗치려던 도지사 다구찌 놈 보란 듯이 빗창으로 혼쭐내던 세화리 장터의 억척 여인이여! 그대의 분노로 저들의 야수는 꺾이었고 그대의 피흘림으로 조국 광복은 한발 앞서 이뤄졌나니 평화의 섬 제주를 찾는 이들이여! 세화민속오일장 한 접시 회 마주하고 부디 말해주소 해녀 부춘화의 간담 서늘한 애국 이야기를! *불턱: 해녀들이 물 밖으로 나와서 모닥불을 지피고 젖은 옷을 말리는 곳 *숨비소리: 해녀들이 작업하다 물 위로 고개를 내밀고 호오이하며 길게 내쉬는 숨소리 *빗창: 전복채취 때 쓰는 쇠갈고리(아래 사진) 부춘화(夫春花, 1908.4.6-1995. 2.24) 일제 강점기에 한반도에서 전개되었던 항일운동 가운데 여성운동과 어민투쟁의 측면에서 독보적인 지위를 차지했던 해녀 항일운동사건의 주동자인 부춘화 여사는 19
[그린경제/얼레빗 = 이윤옥 기자] 총칼이 두렵지 않던 전주 기전의 딸 김공순 이윤옥 황후를 시해하고 고종을 독살한 검은 마수 더 이상 참지 못해 남문 밖서 성난 파도처럼 흰 소복에 머리띠 질끈 동여매고 뛰쳐나온 기전의 어린 처녀들 총칼의 무단 조치 굴하지 않고 피로써 만든 태극기 목숨 걸고 흔들며 저항할 때 비수에 맞은 심장 솟구치는 붉은 피에 널뛰던 가슴 가슴 최후의 1인까지 광복의 그날 위해 뭉치리라 외치던 기전 어린 처녀의 절규 비사벌 너른 들에 울려 퍼졌네. ▲ 전주 기전여학교 후배들의 3.1절 독립만세재현 모습 김공순(金恭順, 1901. 8. 5 ~ 1988. 2. 4) 전북 정읍에서 태어나 전주 기전여학교(紀全女學校) 재학 중 1919년 3월 13일 전주면(全州面) 남문 밖 시장부근에서 수백 명의 군중과 함께 태극기를 흔들며 항일시위운동을 전개하였다. 서울에서의 만세운동 소식이 전주에 전해진 것은 3월 1일 오전 천도교 교구실에 독립선언서 1천여 장이 전달되면서였다. 그리하여 천도교 전주교구에서는 기독교 쪽과 연락하여 만세운동의 계획을 추진해 가던 중 선언서의 배포가 일경에 사전 탐지되는 일이 있었으나, 이러한 상황임에도 만세운동의
[그린경제/얼레빗=이윤옥 기자] 장강에 도도히 흐르는 물결 거스름 없이 기강 토교 중경 발길 닿아 머무르는 곳 따스한 봄바람 되어 이웃을 감싸주던 님 조국을 되찾는 일에 쟁쟁한 독립투사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단상에 서서 독립을 염원하던 그 자태 그 씩씩함 겨레의 든든한 맏누님 되신 이여! 어루만진 동포의 쓰라린 가슴이 몇몇이며 따뜻하게 감싸주던 고독한 독립투사 또 몇몇이랴 사나이 태어나 이루지 못할 대업 여장부 몸으로 당당히 살아낸 세월 그 늠름하고 당찬 모습 조국이여 오래도록 잊지 마소서. ▲ 한국혁명여성동맹창립총회 회장 방순희 애국지사 (1940.6.17), 앞줄 가운데 (○)한 이 (사진제공 오희옥 여사) 방순희(方順熙, 方順伊, 1904.1.30-1979.5.4)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임시의정원이라면 오늘날의 국회의원이다. 하지만 나라 잃은 임시정부 하에서의 의정활동은 많은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1940년 9월 중경 이전 당시 임시의정원의 전열을 가다듬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아래 표에서 우리는 짐작할 수 있다. 임 시 의 정 원 의장 김붕준 부의장 최동오 의원 이시영김구조성환조소앙조완구차이석송병조엄항섭양묵신공제 문일민민병길홍진이청천조경한신환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