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달균 시인] 저런저런! 양반님들 떼로 몰려 나왔구려 명색이 양반인데 탈바가지 덮어쓰고 꼴깝을 떠는 양이 한심도 하다마는 귀엽기도 하네그려. 모름지기 양반이면 육법전서 읽은 대로 세상주름 살펴주고, 가슴에 나라 국(國)자 붙였으면 국가대사 바로 읽어 옳은 처신 바랐더니, 남의 집 곳간 털어 지져먹고 볶아먹고 하나당 두나당 너거당 우리당 짝짜궁 궁합 제대로 맞춰 돌고 도는 모양을 그냥 두고 볼 순 없어 소인놈 대들보 들어 올려 호박에 말뚝 박고 똥 싸는 놈 까뭉개는 저 잘난 놈들을 향해, 메방을 놓아나 줄까 똥침을 콱 찔러나 줄까 <해설> 어떻소? 오늘 말뚝이의 눈으로 보니 양반들 그 속셈과 허풍이 잘 드러나 보이지 않소? 양반탈 속에 감춘 허세와 거드름, 뒷짐 지고 걷는 팔자걸음도 우리가 불쌍히 여겨 줌세. 하도 내세울 게 없다 보니 떠는 꼴값이 아니겠는가, 그리 보면 또 한편 귀엽기도 한 것이지. 우리가 가슴에 나라 국(國)자 붙여줬으면 국가 대사 바로 읽어 옳은 처신 흉내라도 내야 할 것인데, “남의 집 곳간 털어 지져먹고 볶아먹고 하나당 두나당 너거당 우리당 짝짜궁 궁합 제대로 맞춰 돌고 도는” 당리당략이 참 볼만하다. 벼슬 준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답사 날짜> 2021년 11월 4일 목요일 <답사 참가자> 이상훈, 박인기, 오종실, 우명길, 이규석, 원영환, 최돈형, 홍종배, 모두 8명 <답사기 작성일> 2021년 11월 6일 토요일 평창강 제14구간은 영월읍 하송리 오솔길에서 출발하여 영월읍 덕포리 드론전용비행시험장에 이르는 4.3km 이다. 이번 구간은 거리가 짧아서 걷는 데 두 시간이 채 안 걸릴 것이다. 그래서 나는 답사 뒤 종점에서 약 24km 떨어진 김삿갓문학관을 방문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우리는 낮 1시에 하송리 오솔길 끝에 있는 ‘야생동물 피해 예방시설’ 앞에서 출발하였다. 철조망이 처져 있는 이 시설은 아마도 유기견들을 보관하는 시설처럼 보였다. 하송리(下松里)라는 지명의 유래는 영월전매서와 경찰서 부근의 송정개(큰 소나무 숲) 밑에 있어서 붙여진 이름으로 보인다. 동ㆍ서강이 합치는 지역이므로 대장개, 돌석개 같은 큰 갯벌이 있었으며 아기 장수가 태어났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는 곳이다. 이날 날씨는 전형적인 가을 날씨였다. 기온은 걷기에 적당하여 쌀쌀하지도 않고 덥지도 않았다. 가을 햇살이 약간 따사롭게 느껴졌다.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장자(莊子)가 길을 가다가 물이 말라버린 연못을 지나게 되었다. 메마른 연못 바닥에는 물을 잃은 물고기들이 퍼덕거리며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장자는 문득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아마도 물이 빠지는 연못에 있다가 같이 곤경에 처한 것인데 물고기들이 죽어가는 와중에도 입으로 거품을 내뿜어 서로의 피부를 촉촉이 적셔주며 그때까지 살아있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상유이말(相濡以沫)’이란 말이 나왔다. (濡유=적시다. 沫말= 물방울, 거품) 죽음에 이를 어려운 상황에서도 먼저 남을 생각하고 있는 힘을 다해서 그를 위한다는 뜻이다. 줄여서 濡沫(유말)이라고도 한다. 《장자莊子》 대종사(大宗師) 편에 나오는 이야기다. 「어부가」라는 시조로 잘 알려진 중종 때의 문신 농암 이현보(李賢輔 1467~1555)]는 조선조의 수많은 문신(文臣) 가운데 가장 성공적인 삶을 산 분으로 유명한데, 고향 안동 낙동강 가 분천(汾川)에 내려와 살면서, 관직이라는 것이 늘 사람들의 기를 빼앗고 결국엔 삶까지 뺏어가는 것이 장자가 말한 물고기 신세와 다를 것이 없다는 생각에 이를 분어행(盆魚行)이라는 자유시로 그 심회를 펴낸다. 어항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p.152) 향안에게 나 지금 들어왔어요. 아까까지 먹었던 것이 금방 또 배가 고파요. 아이스박스를 열어보니 (이 아이스박스는 아주 조그만데 참 실속이 있어. 우리 이런 거라도 서울서 하나 가졌더라면) 핑크빛 포도 한 송이가 남아 있어요. 참, 포도를 보면 포도를 먹으면, 우리들의 파리가 생각나요. 1963년 11월 13일 1944년, 두 사람은 혼인했다. ‘곱게 살자’는 약속과 함께. 그렇게 김환기와 김향안은 부부가 되었다. 장차 한국 현대미술사에 길이 남을 대화가와 그를 세계적인 화가로 키워낸 문인의 결합이었다. 이 두 사람의 여정을 담아낸 책, 《우리들의 파리가 생각나요》는 두 사람의 만남부터 이별, 그리고 남겨진 향안의 행보를 서정적으로 그려낸다. 책에는 수화 김환기가 아내 김향안에게 썼던 다정한 편지와 그림, 그리고 지은이가 시적으로 풀어낸 두 사람의 서사가 차곡히 담겨 애잔한 정취를 자아낸다. 지은이는 이들이 남긴 흔적을 찾아 파리로 떠났다. 이들이 3년 동안 파리에 살며 걸었던 공원, 첫 전시를 했던 화랑, 함께 보러 다녔던 미술관을 찾아다닌 그녀의 발걸음을 따라가다 보면 이들의 행복한 파리 생활이 손에 잡힐 듯 그
[우리문화신문=유용우 한의사] 앞선 글에서 코의 구조에 대해 말할 때 코의 위치는 얼굴의 중심이 되면서 생리적으로 가장 위에 놓여있다고 했다. 이 때문에 아래로는 발끝과 서로 대칭적인 위치에 있다. 조직적인 관점으로는 뼈와 연골의 절대적인 공간 속에서 점막에 둘러싸여 있다. 이러한 바탕 속에 코 내부 구조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공간을 넓힘과 동시에 좌우 균형을 이루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 성인은 점막의 부종을 가라앉혀서 공간을 넓히는 것이 현실적인 목표가 되고, 성장기 어린이나 청소년은 코의 뼈와 연골을 성장시켜 내부 공간을 넓히고 좌우 균형을 이루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러기 위해서 한의학적 치료와 생활관리, 운동을 통하여 뼈를 바꾸는 환골탈태(換骨奪胎)의 과정이 필요하다. 1. 자생력(自生力)을 살리기 어린이들이 성장이 부진하거나 구조적인 비염인 경우, 치료의 최종 목표 가운데 하나가 뼈의 기운을 살리는 것이다. 뼈의 기운이라는 말은 막연하지만 몇 가지를 기준으로 살펴보면 실제로 뼈의 기운이 살아났는지 그대로인지를 확인할 수 있어서 객관성을 가지고 치료하고 관리할 수 있다. ◈ 한의학적 관점에서 뼈의 기운을 알 수 있는 단서 ① 강골(强骨)과 통
[우리문화신문=이달균 시인] 여보시오 소인놈 말뚝이 아뢰오 들에 가면 나무말뚝, 옥에 가면 강철말뚝, 과수집엔 공이말뚝, 고런 말뚝이 아니오라, 언 가슴 녹이는 민심의 어사또 말뚝이라 불러주오. 상전 잘 못 만나 분하고 억울하여 미치고 환장할 땐 지체 없이 기별하소. 내 이놈을 득달같이 쫓아가서 묵사발 만든 후에 자빠뜨리고 깔고 앉아 석달 열흘 삭이고 썩힌 지독한 방귀 한 방을 콧구멍에 정조준하여 피시시식! 푸하아아....통쾌하고 고소하다. 갓끈도 풀어버리고 반상 굴레 벗겨놓고 고쳐야 할 법(法) 있거든 버꾸 들고 버꾸 치고 버꾸 치다 꼴리거든 벗고 치고 벗고 치고 냇갱변 포강배미 허물 벗듯 활씬 벗고 놀아보세 <해설> 하이고, 우리 양반님들, 잘나고 잘났구려! 그렇다면 이놈 말뚝이는 어떤 놈인지 한 번 들어나 보실라우? 세상에는 참 쓰임새 있는 말뚝이가 많다오. 들에 가면 나무말뚝, 옥에 가면 강철말뚝, 과수집엔 공이말뚝이 있는데, 다 요모조모 필요한 말뚝들이오. 하지만 인간 세상, 아니 오광대 마당엔 이보다 더 중요하고 요긴한 말뚝이 필요한 법, 바로 이름도 거룩한, 오늘의 주인공 말뚝이 되시겠소. 이래저래 할 말 못 할 말 많은 세월 살다 보
[우리문화신문=김광옥 수원대학교 명예교수] 세종 시대의 인물을 살피고 있는데 이번 하경복(1377~1438)을 통해 세종의 마음을 읽는 경우다. 곧 상대가 절실히 걱정하는 마음을 함께 나누는 세종을 만나게 된다. 하경복과 그 형제들이 걱정하는 바[마음]를 세종은 평소에 함께 나눈 것이다. 하경복의 본관은 진주이며, 임오년 태종 2년 1402에 무거(武擧) 급제하여 여러 차례 벼슬을 옮겨 상호군(上護軍)에 이르고, 경인년 태종 10년(1410)에 다시 중시무거(重試武擧, 10년에 한 번 보던 무과 과거시험)에 합격 첨총제(僉摠制, 무과 정3품 벼슬)에 발탁되었으며, 얼마 안 되어 경원진(慶源鎭)으로 나갔다. 태종 14년(1414)에 동지총제로 승진, 이어 함길도 도절제사로 나갔다. 초기 하경복은 천성이 호탕한데 태종 10년 길주로 발령이 난다. 그동안은 한양에서 잘 지내고 있다가 4군 6진이 있는 한반도 최북단이며, 최전방 동북면에 발령이 난 것이다. 하지만 길주 발령은 시작에 불과했다. 그때부터 하경복의 최일선 인생이 시작되는데, 길주로 갔다가 경원으로 갔다가 한반도 맨 위 경성으로 발령이 난다. 그러다 아예 함길도병마절제사에 임명된다. 최전방 두메 전역을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단종은 1457년 10월에 관풍헌에서 사약을 받고 죽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단종의 죽음에 대해서 여러 가지 설이 있어서 나는 혼란스럽다. 단종의 죽음에 대해서 《세조실록》 세조3년 10월 21일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노산군(魯山君)이 이를 듣고 또한 스스로 목매어서 졸(卒)하니, 예(禮)로써 장사지냈다. (필자 주: 세조는 단종의 장인인 송현수가 금성대군과 함께 단종 복위를 꾀했다는 혐의로 교수형에 처하라는 명을 내렸다. 이 소식을 듣고 단종이 스스로 목매어 죽었다는 것이다.) 《세조실록》에는 단종이 자살했다고 기록되어 있지만, 이것은 사실이 아닌 듯하다. 단종을 호송했던 금부도사 왕방연이 단종에게 사약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정작 《세조실록》에는 왕방연의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왕방연이 언급된 것은 《숙종실록》 숙종 25년 1월 2일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임금이 말하기를, "군신(君臣)의 대의(大義)는 천지 사이에서 피할 수 없는 것이다. 단종 대왕(端宗大王)이 영월(寧越)에 피하여 계실 적에 금부도사(禁府都事) 왕방연(王邦衍)이 고을에 도착하여 머뭇거리면서 감히 들어가지 못하였고,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계절이 봄을 지나 초여름으로 접어든 요즈음에 우리의 산하는 푸르기 그지없다. 온갖 봄꽃을 피워 사람들의 눈과 코, 그리고 마음까지 상쾌해진 지 언제인지 모를 정도로 나뭇잎은 갈수록 짙어져 저마다 생명력을 뽐낸다. 나무 사이 숲에 사는 동물들도 생명의 기운이 다시 살아난 기쁨을 신나게 노래하고 있다. 필자가 매일 가는 집 뒤의 북한산 둘레길도 예외일 수 없고, 어떤 면에서는 다른 숲의 모범이라고 할 정도로 수풀이 우거지고 뻐꾸기와 찌르레기, 까치와 까마귀, 그리고 가슴의 체증을 내려주는 딱따구리의 부리가 내는 연발총 소리가 녹음 사이에서 들여오고 있어 산책길은 그야말로 눈과 귀와 마음의 복을 잔뜩 누리게 하는 원천이다. 지난가을 길가 비탈에 비스듬히 엎어져 있던 작은 석물이 동네에 사시는 분에 의해 문인석으로 벌떡 일어나서 둘레길을 도는 사람들에게 밝은 미소를 늘 보여주고 있다는 소식을 전한 바 있는데, 그 문인석도 이 둘레길 8구간의 명물로서 점차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일반 문인석에서는 거의 볼 수 없는 밝고 천진스러운 미소가 이 돌을 다듬은 우리 어느 선조의 마음처럼, 밝고 포근한 민초들의 마음을 잘 드러내 주었기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북촌한옥마을. 오다가다 한 번쯤 지나쳐 본 적이 있을 이곳은 일제에 나라를 빼앗겼던 시절, 일본인이 경성에 몰려와 살며 조선인들은 점점 외곽 변두리로 내몰리는 것을 염려한 건축왕 정세권이 한 평 두 평, 땅을 사들여 조선인들의 보금자리를 지켜낸 곳이다. 오늘날 보는 북촌한옥마을의 풍경은 거의 이 건축왕, 기농 정세권이 만들어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건양사’라는 건설회사를 운영하며 살기 편하고 값싼 ‘조선집’, 곧 한옥을 대거 지어 보급했고, 덕분에 조선인들은 일본인들이 잠식해 오는 가운데 자리를 지킬 수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정세권을 알고 있는 이들은 별로 없다. 큰 사업을 일군 자본가로 안락한 삶을 누릴 수 있었음에도 독립운동을 하다 1942년 일제에 체포, 갖은 고문을 받고 건축 면허와 재산을 모조리 빼앗겼기 때문이다. 이 책 《일제에 맞서 북촌 한옥 마을을 만든 건축왕 정세권》의 지은이는 정세권이 지은 북촌과 익선동, 창신동과 같은 한옥마을이 오늘날 많은 이들이 즐겨 찾는 명소가 되었지만, 아무도 일제에 맞서 조선집을 지켜내던 정세권은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을 안타까이 여겨 그의 삶을 동화로 쓰기 시작했다. 이야기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