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이웃나라 일본의 연말은 대표공영방송인 NHK의 홍백가합전이란 프로그램으로 떠들석하다. 1953년 NHK-TV가 개국하면서 시작돼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이어져 온 대형 호화 프로그램으로 남녀 가수들이 홍팀(여성)과 백팀(남성)으로 나누어 경연하는, 가수들의 편 먹기 가요대항전이다. 일본인 가수들이 여기에 출연하기 위해 서로 경쟁을 벌였다는 이 프로그램의 연속 출전기록은 엔카 가수 이츠키 히로시(五木ひろし)로 50회다. 여성 가수들이 속한 홍팀에서는 엔카의 여왕이며 일본의 국민가수로 존경을 받는 미소라 히바리(美空ひばり)가 13회 연속출장 기록을 세웠다. 그런데 이 전설적인 미소라 히바리의 기록을 뛰어넘어 20회 연속 출연한 여성 가수가 있으니 바로 미야코 하루미(都 はるみ)다. 미소라를 능가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만큼의 오랜 인기를 누렸던 이 여성가수는 1948년 생으로 미소라보다도 11살이 아래이기에 올해로 77살인데 이 여성가수 아버지가 한국인, 곧 그녀도 한국인이란 사실을 우리는 잘 모르고 있다. 일본 언론에 공개된 그의 부친은 이종택(李鐘澤 1904~1987)으로 경상남도 진주에서 태어나 일본 비단의 직포공장에서 기술을
[우리문화신문=이나미 기자] 도산서원 창건 450돌을 기리는 특별 서예전 〈퇴계(退溪)〉가 오는 9월 18일부터 27일까지 경상북도청 동락관 제1ㆍ2 전시실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는 지난 8월 대구에서 성황리에 열린 전시의 뒤를 이어, 퇴계의 본향 안동에서 열리는 만큼 더욱 깊고 상징적인 의미를 담는다. 단순히 전시의 연속선상에 있는 행사가 아니라, 퇴계가 몸소 숨 쉬었던 공간과 맞닿아 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배가된다. 관람객은 전시장을 찾는 순간, 퇴계의 삶과 도산서원의 풍광이 함께 살아나는 듯한 현장감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서예전은 퇴계 이황(1501~1570)의 도학정신과 시심(詩心)을 서예라는 예술 형식으로 되살려내는 자리다. 퇴계가 직접 남긴 친필 작품 20여 점을 비롯해, 퇴계의 자작시와 도산을 노래한 제자ㆍ후학, 그리고 조선의 명사들이 남긴 시 100여 편을 한국서예협회 소속 작가 51명이 현대 서예 작품으로 재탄생시켰다. 단순히 과거의 글을 베껴 쓰는 것이 아니라, 각 작가가 퇴계의 정신을 현대적 감각으로 해석하고 묵향에 담아냈다는 점에서 작품들은 특별한 울림을 준다. 모두 120여 점의 작품은 하나하나가 작은 역사적 기록이자 동시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도산서원 창건 450돌을 맞아 퇴계 이황의 도학정신과 시심(詩心)을 서예 작품으로 되살리는 특별 전시 <퇴계(退溪)>가 마련되었다. ‘도산서원’ 창건 450돌을 기려 퇴계의 삶과 정신을 계승하고자 한국을 대표하는 서예작가 51명이 퇴계의 자작시와 도산을 노래한 후학들의 시를 현대 서예로 재구성했다. 이번 전시는 도산서원 창건 450돌을 기려 진행되는 일련의 문화행사의 서막이다. 앞으로 고유제, 학술대회, 다큐멘터리 제작 등 다양한 인문예술 프로젝트가 이어질 예정인 가운데, 그 첫 문을 여는 것이 바로 대구에서의 서예전이다. 도산서원 창건과 함께 걸린 편액의 정신을 계승하고자 기획된 이번 전시는 그 글씨의 유산을 이어가는 이들이 퇴계의 학문과 문학을 서예로 되살리는 자리다. 경상북도(도지사 이철우)와 안동시(시장 권기창)가 주최하고, 한국국학진흥원(원장 정종섭), 도산서원(원장 김병일), 한국서예협회 대구광역시지회(지회장 이종호)가 공동 주관하는 서예전 <퇴계(退溪)>는 8월 12일부터 17일까지 대구문화예술회관 6~10전시실에서, 9월 18일부터 27일까지 경상북도청 동락관 1, 2전시실에서 열린다. 도산서원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우리는 교사를 일상적으로 높여 부르는 말로 ‘선생(先生)’이라는 표현을 씁니다. 물론 스승을 칭할 때도 사용하지요. 현대에는 의사 선생처럼 사람에 따라서 2인칭 대명사로 쓰기도 하지만 그래도 존경의 의미가 상당히 남아있습니다. 곧 순수하게 남을 가르치는 직업으로써 교사를 일컫는 단어라기보다는 전문 지식과 인생의 비법을 겸비한 존경 하고 따를 만한 사람을 일컫는 개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전문가의 상담이나 자문받을 때 상담 전문가를 선생이라고 부르니까요. 선생(先生)은 먼저 태어났다는 의미이니 본래 관직에 있는 손윗사람을 부르는 호칭이었습니다. 그것이 "가르침을 주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바뀌게 되었지요.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선생(先生)이란 표현은 학식과 덕이 높은 자에게만 붙이는 칭호였습니다. 요즘 아무나 ‘김 선생’, ‘이 선생’처럼 부르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퇴계 이황은 대학자임에도 '선생'이라고 불리는 것을 꺼렸으니까요. 어떤 직업이든지 직업병이 없을까마는 교사도 직업병이 있습니다. 첫째는 심부름을 시키려는 경향이 높고 둘째는 조금 어려운 낱말을 말하면 설명하려 하고 셋째는 아무한테나 대놓고 가르치려 든다는 것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한국국학진흥원(원장 정종섭)은 퇴계 이황 선생의 건강 체조법으로 알려진 ‘활인심방’의 대중화와 세계화를 위한 콘텐츠 고도화 사업을 오는 5월부터 추진한다고 밝혔다. 이 사업은 올해로 4년째를 맞는 ‘안동시 관광 거점도시 육성 사업’의 하나로 추진된다. 활인심방, 디지털 영상으로 재구성되다 지난해에는 ‘활인심방’ 원본 자료를 토대로 전문가 중심의 면밀한 고증 작업을 거쳐 활인심방을 영상으로 복원ㆍ재구성했다. 현재 완성된 영상은 한국국학진흥원 유튜브 채널(https://www.youtube.com/@TheKoreanStudiesInstitute/)에 업로드되어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올해에는 활인심방을 나라 밖을 위한 한류 콘텐츠로 제작할 예정이다. 나라 밖을 위한 영상은 실내 스튜디오에서 촬영한 기존의 국내용과 달리 도산서원 앞에 자리한 시사단(영남 선비들이 과거시험을 치른 장소)을 배경으로 제작해 한국의 아름다운 자연풍경을 생생하게 접할 수 있도록 기획하였다. 또 외국인들이 활인심방 동작을 쉽게 따라 할 수 있도록 자막과 내레이션을 주요 3개 국어(영어ㆍ프랑스어ㆍ독일어)로 번역해 제공한다. 활인심방을 활용한 한류 콘텐츠 제작에 박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이황이 고향에 돌아가 누차 상소하여 나이가 들었으므로 벼슬에서 물러날 것을 빌었으나 허락하지 않았다. 이때 병이 들었는데 아들 준(寯)에게 경계하기를, ‘내가 죽으면 예조가 틀림없이 관례에 따라 예식에 따라 장례를 치르도록 할 것인데, 너는 모름지기 내가 죽으며 남긴 뜻이라 말하고 상소를 올려 끝까지 사양하라. 그리고 묘도(墓道)에도 비갈(碑碣, 사적을 후세에 전하기 위하여 글자를 새겨 세우는 것)을 세우지 말라.‘ 하였다.(가운데 줄임) 그로부터 며칠 뒤 죽었는데 준이 두 번이나 상소하여 예장을 사양하였으나, 허락하지 않았다.” 위는 《선조수정실록》 4권, 선조 3년(1570년) 12월 1일 기록으로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죽음에 관한 얘기입니다. 조선조 중기 명종과 선조 때 살았던 퇴계 이황(1501~1570)은 평생 올바른 인간의 도리를 추구하며 학문과 수양, 교육을 게을리하지 않아 마침내 최고의 유학자로 추앙받았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나이가 들자, 상소를 여러 차례 올려 벼슬을 사양하려 했고, 죽기 전 아들에게 나라에서 조의금이나 장례용품 주면 사양하고 받지 말라고 유언을 남겼을 정도였지요. 요즘 정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p.10) 옛집 새로 옮겨 이 물가에 지으니 그대 허술한 집 찾아와 어찌 견디냐 묻네 만 권 책의 훈기를 내가 경모하니 한 바가지의 물로 사는 삶에도 진정한 기쁨을 느끼네 스물여섯 해 전 마음먹었던 것을 오늘 되새겨 보매 근심은 동해물로 달려와 측량할 수가 없구나 퇴계 이황이 풍기군수를 끝으로 공직생활을 일단락짓고, 자기 고향에 ‘계상서당(溪上書堂)’을 짓고 읊은 시다. 20대 후반부터 꿈꿔 왔던 소망이 이제야 실현된 것을 기뻐하며, ‘만 권 책의 훈기’와 ‘한 바가지의 물’에도 감사하는 마음을 노래했다. 이황은 대학자이자, 문과에 급제하고 ‘직장생활’을 오래 한 관료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마음은 항상 학문 쪽에 더 있었던 것 같다. 마침내 온전히 학문에 집중하려 정계 은퇴를 결심하고 지은 서당이 계상서당이었다. 이 책, 《퇴계 이황》은 2,500년 유교 역사를 소설로 그려낸 최인호 작가의 《유림》을 청소년용으로 각색한 책이다. 동화작가 표시정이 쉽게 풀어쓰고 최인호가 머리말을 붙였다. 조광조, 공자, 이이 등 유교 사상계의 걸출한 인물을 다룬 최인호의 《유림》 6부작 가운데 여섯 번째 책이다. 이황이 정계 은퇴를 결심한 데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동천(洞天)’이란 말이 있다. 동(洞)이란 글자는 골짜기를 뜻한다. 동천(洞天)은 신선이 사는 세계, 또는 산에 싸이고 물이 흐르는 내가 있는, 경치 좋은 곳을 말한다. 멋진 산으로 둘러싸인 경치 좋은 곳으로, 그런 산수경관이 연속으로 펼쳐지는 곳을 동천이라고 한단다. 본래 도교에서 쓰던 말인데 유학자들도 학문의 근본 목적인 본래 심성을 되찾아 안심과 평안을 얻을 수 있는 장소, 요즘 말로 하면 치유를 위한 으뜸 공간으로 생각하고 이곳을 찾는 즐거움을 추구하곤 했다. 이 세상에서 이른바 신선(神仙)이라고 하는 자를 본 사람이 누가 있기야 하겠는가. 그러나 신선이 사는 곳이야말로 그지없이 즐거울 것으로 생각하면서 그곳의 정경을 극구 묘사하곤 하는데, 가령 안개와 노을에 잠겨 아스라이 떠 있는 바다속의 삼신산(三神山)이라든가 궁실이 영롱(玲瓏)하게 솟아 있는 땅 위의 각종 동천(洞天 신선이 사는 곳)에 대한 기록을 접하노라면, 자신도 모르게 탄식하면서 부러워하지 않을 수가 없다. ... 최립 「징영당(澄映堂) 십영(十詠)에 대한 서문(序文)」 《간이집》 제3권 / 서(序) 산이 높고 골이 깊으면 이러한 동천은 어디에나 있을 것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黃卷中間對聖賢 옛 책을 펴서 읽어 성현을 마주하고 虛明一室坐超然 밝고 빈방 안에 초연히 앉아 梅窓又見春消息 매화 핀 창가에 봄소식 보게 되니 莫向瑤琴嘆絶絃 거문고 줄 끊어졌다 탄식하지 않으리 어제 1월 26일 제주방송에서는 “추위 이겨낸 '봄의 전령' 매화 만발.. 평년보다 46일 빨라”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다. 제주지방기상청에 따르면 지난 15일 꽃이 피기 시작한 매화가 이날 활짝 피었다는 소식이다. 그런가 하면 전국적으로 강추위가 찾아온 22일에도 경남 창원 한 아파트 단지에 매화가 피었다고 연합뉴스는 보도해 눈길을 끌었다. 매화는 눈 속에 핀다고 하여 설중매(雪中梅), 설중화(雪中花)라 하고, 한겨울에 핀다고 하여 동매(冬梅)라고도 불린다. 맨 먼저 봄소식을 전하는 매화는 긴 겨울을 보내고 꽃이 피듯 시련기를 이겨낸 끝에 좋은 소식이 있음을 암시한다. 찬 서리를 이겨내는 강인한 성정이 고난과 역경을 극복해 가는 선비의 의연한 자세와 닮았다고 하여 군자의 꽃으로 추앙받는다. 그와 함께 꽃말은 고결한 마음, 기품, 결백, 인내라고 한다. 조선 전기 성균관대사성, 대제학을 지낸 조선시대 으뜸 성리학자 퇴계 이황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퇴계 이황 선생은 그 학문의 깊이에 비하여 여복이 참으로 없었던 사람입니다. 첫째 부인은 21살에 얻은 김해 허씨인데 27살에 병으로 사별합니다. 퇴계가 30살이 될 무렵, 퇴계가 사는 안동으로 문신 권질(權礩)이 유배되어 옵니다. 홀로 사는 퇴계에게 그는 이런 부탁을 하지요. “자네 말일세. 나한테 딸아이가 하나 있네. 그 애가 본디는 괜찮았으나, 사화(士禍)로 인해 정신 줄을 놓아 좀 부족한 아이일세 가장 믿을 만한 이는 자네뿐이니, 제발 거두어 주게.” 그리하여 퇴계는 좀 모자란 권 씨를 두 번째 부인으로 맞이합니다. 어느 날 퇴계는 할아버지의 제사를 치르기 위해 큰형님 집으로 갑니다. 제사상을 차리는 데 갑자기 배 하나가 방바닥으로 굴러떨어졌습니다. 퇴계의 부인 권 씨가 떨어진 배를 얼른 치마 속에 감춥니다. 권 씨는 큰 동서에게 혼나지만, 퇴계는 개의치 않았습니다. 퇴계는 부인 권 씨를 불러 "왜 그러셨소."라고 묻습니다. "먹고 싶어서요." 조선 예법의 대가였지만 퇴계는 배를 손수 깎아 부인에게 먹여 주었다고 합니다. 또 하루는 권 씨가 흰 두루마기를 다림질하다가 조금 태우고서는, 하필 붉은 옷감을 대고 기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