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한영 기자] 어제 3월 26일 늦은 두시에 경남 거창군 북상면 갈계리 임씨고가에서는 꽃샘바람이 쌀쌀한 가운데 연구공간 파랗게날 주최의 고택에서 듣는 인문학 강좌 쉰한 번째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 김영조 소장의 “한국의 명문종가, 그 사회적 책임”이란 주제의 강좌가 있었다.
참석자는 그리 많지 않았지만 고택에서 인문학 강좌를 들으려는 사람들의 열기는 하늘을 찔렀다. 김영조 소장의 “추임새를 잘 해줘야 강의가 잘 된다.”는 주문에 적극적인 답변은 물론 강의 중간 중간 여기저기 맞장구를 치는 모습에서 김 소장은 흐뭇한 표정으로 2시간의 강좌와 1시간의 질의응답 시간을 이어나갔다. 고택 마당에서의 강좌로 갑자기 부는 쌀쌀한 바람에 옷깃을 여미면서도 참석자들은 자리를 뜨는 사람이 없었음은 이 강좌가 성공적이었음을 증명해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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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택에서 듣는 인문학 강좌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 김영조 소장의 “한국의 명문종가, 그 사회적 책임”이란 주제의 강좌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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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좌를 하는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 김영조 소장 |
“실로 명문종가라면 외형의 고색창연한 기와 부잣집이 아니라 다음 한 가지라도 해당하는가이다. ‘재물을 나눠 배고픈 이웃을 구휼했는가? 재물을 쏟아 교육으로 베풀었는가? 모든 것을 나라의 독립을 위해 바쳤는가?’ 곧 ‘나눔과 베풂’이 그 잣대다. 더 훌륭한 것은 이를 자랑삼지 않고 당연한 일로 여겼다는 점이다.
목소리 높여 자기 몫 챙기려는 천박한 자본주의가 판치는 요즘 같은 좌표 잃은 사회에서 그것은 혼탁한 정신을 씻어내는 청량한 바람이다. 사회적 책임과 절도 있는 부를 함께 살아가고자 하는 데 쏟았던 명문종가는 의기소침한 시기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희망과 따뜻함이다. 오늘날에도 새로운 명문 종가들이 속속 나오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김 소장은 이렇게 강조하면서 명문종가 몇 군데를 소개하며 왜 그들이 명문종가란 평가를 들어야 하는지 분명하게 짚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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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좌를 듣는 청중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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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좌 중 질문을 하기 위해 손을 든 한 청중 |
그는 명문종가들의 공통적인 특징 가운데는 낮은 굴뚝들이 있었다며, 명문종가들은 밥 짓는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속상해 할 헐벗은 이들을 위해 섬돌 아래에 굴뚝을 내거나 사람보다 키가 작은 낮은 굴뚝을 내었다고 강조했다. 또 운조루처럼 아무나 쌀을 퍼갈 수 있는 쌀뒤주 얘기도 곁들였다. 이어서 으리으리한 기와집이 아닌 초가종택에서 살면서 교육사업을 베풀었던 서천 이하복 종가에 꼭 가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그뿐만이 아니라 온 재산을 독립운동에 쏟아 붓기 위해 “파락호” 소리를 감수했던 안동 학봉종가의 김용환 선생과 재산 400억 원과 온몸을 다 바친 대한민국임시정부 초대국무령 석주 이항증 종가를 소개하면서 진정한 명문종가의 나라 사랑이 어땠는지도 얘기했다. 그것은 종가들뿐 아니라 이 시대를 사는 우리들의 마음가짐이 어때야 하는지를 짚어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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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휴식시간에 청중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김영조 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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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조 소장에게 저서 《한국의 명문종가》 서명을 받기위해 줄을 선 참석자들 |
이날 강좌에 참석한 함양 서상중학교 교사 배은미(57) 씨는 “그동안 한글에 대한 자부심은 가지고 살았지만 다른 우리문화나 전통에 대한 것엔 좀 소홀한 면이 있었는데 오늘 강좌를 듣고 큰 감동을 받았다. 특히 우리나라에도 이웃과 나라 헌신한 지배계층 있었다는 것이 자랑스럽게 느껴졌다. 앞으로 우리문화나 전통에 대해 더 많은 공부를 하고 많은 이들에게 알려나가도록 노력하겠다.”라고 다짐했다.
고택에서 듣는 인문학 강좌를 50회가 넘게 이어온 연구공간 파랗게날 이이화 선생은 “이곳 거창은 덕유산 가야산 지리산에 에둘러져 곳곳에 누각, 정자, 고택이 산재해 있습니다. 그런 오랜 공간들이 먼지만 쌓이는 것이 안타깝기도 하여 매달 마지막 토요일 오후 2시, 그 고택들을 찾아 먼지를 털어내고 대청마루에서 마당에서 흐르는 바람을 느끼며 '고택에서 듣는 인문학 강좌'란 이름으로 공부자리를 마련하고 있습니다.”라고 강좌를 마련한 뜻을 얘기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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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사와 참석자들이 함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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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씨고가 대문에 인문학 강좌 펼침막이 걸려있다. |
이 인문학 강좌를 아는 사람들은 도시에서도 이어가기 어려운 인문학 강좌를 조그마한 농촌도시에서 오랫동안 끊이지 않도록 열며 고군분투하는 이이화 선생에 대한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그동안 이 강좌에 강사로 와주신 분들은 윤구병, 염무웅, 강만길, 함세웅, 도법, 서중석, 강우방 등 누구나 알만한 이 시대 존경받은 이들이 망라되어 있다. 또 앞으로 이어질 강좌에는 다산연구소 박석무 이사장과 역사학자 이이화 선생은 물론 《서간도에 들꽃 피다》 지은이 이윤옥 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장도 기다리고 있다.
조금은 멀 수도 있는, 한 번도 가보지 못했을 수도 있는 거창 그곳에선 그 어디서도 듣기 어려운 귀중한 울림이 있었다. 그리고 그 울림은 소박하고 아름다운 고택의 향기와 더불어 참으로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어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