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등록문화재 제661호로 등록된 <의병장 유인석 심의>는 조선 후기의 학자이자 의병장으로 활약했던 유인석(1842∼1915)이 평소 착용하였던 심의(深衣, 조선 시대 유학자들이 입던 겉옷)이다.
유인석은 1876년 강화도조약 체결 시 개항을 반대하는 상소를 올렸다. 아울러 1894년 갑오개혁 뒤 김홍집의 친일내각이 성립되자 1896년 의병대장으로 취임하여 의병을 일으켰으나 관군에게 패전하고 만주로 망명하여 활동하였으며, 국권을 빼앗긴 뒤에도 연해주에서 독립운동을 펼치는 등 한국근대사와 독립운동사에서 중요한 인물이다.
유인석이 평상복으로 입었던 이 옷은 심의(深衣) 1점, 머리에 쓰는 복건(幅巾) 1점, 허리띠 역할을 하는 대대(大帶) 1점으로 구성된다. 심의는 염색하지 않은 백세포(白細布)로 만들어졌으며 목 부분의 깃이 네모난 방령심의(方領深衣)이다. 상의(衣)ㆍ하의(裳)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고, 깃과 소매 끝, 밑단 등에는 검은색 비단으로 가선(옷 가장자리 끝을 다른 헝겊으로 감아 돌린 선)을 둘렀다.
대대는 심의와 같은 재질로 제작되었으며 좌우 양 끝 가장자리의 일부분을 검은색 비단으로 감쌌다. 그리고 심의를 입을 때 함께 썼던 복건은 검은색 비단으로 만들었다.
이처럼 유인석 심의는 조선 시대 말(1870년대 이후) 통용된 심의로서 복식사적 가치뿐만 아니라, 착용자인 유인석의 역사적‧인물사적 중요성 등이 인정되어 문화재로 등록되었다.
한편, 이번에 등록 예고된 국립소록도병원 소장 <고흥 소록도 한센인 생활 유품>은 한센인들이 치료와 생활을 위하여 스스로 만든 개인 치료용 칼과 생활 도구인 단추 끼우개, 공동 도구인 국자, 냄비, 솥들개(솥 드는 도구) 등을 비롯하여 강제노역 현장에서 사용된 시멘트 블록 형틀, 기와틀 등 모두 8종 14점이다.
한센인들의 고난과 한이 서려 있는 이 유품들은 한센인 환자들의 열악한 치료시설, 부족한 물자, 강제노역 등 당시의 고립되고 처절했던 생활상이 담겨 있다. 또한, 생존하기 위한 그들만의 방식으로 만들어낸 슬기로움이 모인 도구들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고흥 소록도 한센인 생활 유품>은 시대적 변화와 극한 상황 속에서 한센인들이 삶을 위한 슬기로움과 의지를 엿볼 수 있는 특수한 사회적‧문화적 상황을 반영한 역사성을 지니고 있어 문화재로 등록할 가치가 높다.
문화재청은 이번에 등록 예고된 <고흥 소록도 한센인 생활 유품>을 30일간의 등록 예고 기간 중 의견을 수렴하고,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문화재로 등록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