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 이윤옥 기자] 3·1운동 만세시위 중 일본 헌병이 휘두른 군도에 왼팔이 잘리는 극한상황에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친 윤형숙(1900~1950) 열사의 투쟁과 삶을 체계적으로 규명하는 학술대회가 열린다. 여수지역 출신 독립운동가를 집중 조명하는 학술세미나가 열리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의혈지사 윤형숙을 기억한다’가 주제인 이번 행사는 9월 27일 오후 2시 여수시청 여수문화홀에서 여수시 주최, 여수지역독립운동가유족회 주관으로 개최된다. 학술세미나에 이어 오후 5시 여수시 화양면 창무리 윤형숙 열사 묘소에서 추모제가 이어진다. 윤 열사 순국 69주기에열리는 이날 행사는 3·1운동 및 임시정부수립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가 후원한다.

학술세미나는 2개 주제발표로 구성돼 있다. 제1 주제발표에서는 한규무 광주대 교수가 '항일애국열사 윤형숙 관련자료 검토 및 생애와 활동 재조명'을 주제로 한 논문을 발표하고 김인덕 청암대 교수, 김병호 여수지역사회연구소 이사장이 토론에 나선다.
이어 제2 주제발표에서는 김호욱 광신대 교수가 '일제강점기 호남 기독교 선교와 윤형숙의 항일운동'에 관한 논문을 발표하고 이윤옥 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장, 윤치홍 여수지역독립운동가유족회 독립유공자발굴위원장이 토론을 벌인다.
이날 개막식에서는 권오봉 여수시장이 개회사를, 서완석 여수시의회 의장이 축사를 한다. 또 여수시립국악단 공연, 윤 열사의 모교인 광주수피아여고 고세영 교장과 김유정 총동창회장의 시 낭송, 김성천 여수제일교회 목사와 오준 여수지역독립운동가유족회 고문의 기념사, ‘의혈지사 윤형숙의 생애’ 영상상영 등 다채로운 식전행사가 펼쳐진다.
윤 열사 묘소에서 열리는 추모제에선 윤병용 목사 집례로 윤중권 여수지역독립운동가유족회 총무가 경과보고를, 윤문칠 파평윤씨여수종친회장이 추도사를 한다. 윤형숙 열사는 1900년 9월 13일 화양면 창무리에서 태어나 친척과 변요한(John Fairman Preston) 선교사의 도움으로 순천 은성학원, 광주 수피아여학교에서 수학했다. 윤 열사는 박애순 교사, 학생들과 독립선언서를 인쇄하는 등 사전준비를 한 뒤 1919년 3월 10일 광주 장날 만세시위를 결행했다.
광주교 아래에서 시위대를 형성해 태극기를 앞세우고 독립만세를 외치며 시내로 행진하던 중 일본 헌병대가 출동해 해산명령을 내렸다. 시위대가 이에 굴하지 않고 맹렬히 행진하자 헌병들은 공포를 쏘며 무자비한 진압에 나섰다. 일본 헌병은 시위군중 맨앞에서 태극기를 높이 들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던 윤 열사의 왼팔을 군도로 내리쳤다. 쓰러진 열사는 유혈이 낭자한 땅에서 태극기를 다시 주워들고 일어나 만세를 더 크게 외쳤다. 의롭고 장한 이 광경을 본 군중은 비분강개하여 격렬하게 시위를 계속했다.
윤 열사는 왼팔이 잘리고 오른쪽 눈이 크게 다친 채 체포돼 광주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4월형을 선고받고, 수년간 군병원으로 추정되는 장소에 유폐되었다. 이후 장애의 몸으로 항일투쟁, 문맹퇴치 운동을 계속하며 전도사로서 선교활동을 벌이다 6·25전쟁 중 서울 수복일인 1950년 9월 28일 퇴각하는 인민군에게 붙잡혀 여수 둔덕동 과수원에서 손양원 목사 등과 함께 학살당했다. 정부는 2004년 윤 열사에게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여수지역에서는 1960년 묘소 이장 및 묘비 제막식, 2013년 묘역 정비에 이어 몇 차례 추모행사가 열렸으나 윤 열사의 항일투쟁과 고난에 찬 삶에 관한 현창사업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담당: 여수시 사회복지과 팀장 김은주(061-659-3657)
여수지역독립운동가유족회장 오룡(010-4223-80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