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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지원의 우리문화책방

생고생(生古生)하려다 생고생(生苦生), 옛 삶의 현장

《LET’S G古 시간탐험대 / 렛츠고 시간탐험대 제작팀(자음과 모음)》
[우지원의 우리문화책방]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흔히, 우리가 사극 속에서 보는 옛 삶의 모습은 상당히 아름답다. 한복은 고운 빛을 발하고 모든 것이 질서정연하며, 선비는 유배를 가서도 용모단정하다. 성균관 유생들은 막힘없이 문장을 외우고 임금을 수행하는 내시도 그렇게 힘들어 보이지 않는다.

 

이런 사극을 보노라면, 한 번쯤 과거로 돌아가서 사는 것도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오늘부터 진짜 과거로 돌아간다면? 그때부터는 무슨 일이 벌어질까? 돌아가자마자, 내가 여기를 왜 왔나 싶을 법한 고단한 삶의 현장이 기다리고 있다.

 

이 책 《LET’S G古 시간탐험대》는 실제로 연예인들이 과거로 돌아가 그 시대의 삶을 그대로 살아보는, tvN의 역사 예능 프로그램 <LET’S G古 시간탐험대>의 내용을 재구성해 만든 책이다. 이 프로그램은 2013년 첫 방영된 이후 참신한 기획과 구성으로 시청자들의 큰 관심을 받았고, 시즌 3까지 제작되며 역사 예능의 한 획을 그었다.

 

 

출연진은 ‘우리 조상들이 살았던 생생한 과거로의 여행! 영혼까지 탈탈 털리는 생고생(生古生) 프로그램’이라는 제작의도에 걸맞게 완전히 옛날로 돌아가 양반과 노비, 성균관 유생과 반인, 임금과 내시의 삶을 체험했다. 거기에 사극에서 흔히 보는 장밋빛 일상은 없었다. 노비의 삶이 힘든 것은 물론이거니와, 임금이나 양반이라고 해서 인생이 편한 것도 아니었다. 신분이 높으면 높은 대로, 낮으면 낮은 대로 짊어져야 할 삶의 무게가 상당했다.

 

제1부 ‘유배 편’에서는 유배길에 오른 양반과 노비가 되어 온갖 수모를 겪었고, 제2부 ‘성균관 편’에서는 성균관에서 공부하는 유생과 그들의 살림을 책임지는 노비 ‘반인’이 되어 성균관에서의 고된 일상을 견뎠다. 제3부 ‘왕과 내시 편’에서는 온종일 고된 일에 시달리는 임금과 그를 빈틈없이 보좌하는 내시의 일상을 담아냈다. 이들이 겪었던 일들을 필자가 일기 형식으로 재구성해보았다.

 

#1. 유배길에 오른 양반과 노비

“여봐라, 죄인들에게 칼을 채우고 외딴 섬에 안치시키도록 하라!”

큰일 났다. 완도로 유배를 보낸단다. 유배길 자체도 고생이지만, 유배 가면서 탈 말이나 먹을 것, 심지어 압송관의 출장경비(?)까지 내가 마련해야 한다. 이건 뭐, 유배 한번 가면 가산이 거덜 나는 것 아닌가? 고문받고 몸도 성치 않은데 말도 마련할 형편이 안 되니 그 먼 길을 걸어가야 한다. 게다가 맨몸으로 가는 것도 아니고 9kg이나 되는 칼까지 목에 차고, 가는 동안 압송관이 계속 죄를 읊으며 면박을 주니 수치스럽고 괴롭다.

 

주인이 유배를 가면 노비도 따라가야 해서, 노비와 나는 겨우 나룻배를 저어 완도로 들어왔다. 도착하면 고을 수령을 찾아 보고해야 한다. 내 붕당을 묻길래 ‘소북파’라 했더니 자기 선친이 옛날에 소북 놈들에게 모함을 당한 적이 있다며 펄펄 뛴다. 이번 유배, 정말 쉽지 않을 듯하다.

내가 묵을 숙소를 배정받아 보수주인을 만났다. 보수주인은 유배인의 의식주를 해결해주는 사람으로 현지인 중에서 배정된다. 보수주인을 잘 만나야 유배생활이 그나마 평안하다. 내 삶의 질을 가장 좌지우지할 사람이 바로 보수주인인 것이다.

 

 

보수주인도 유배인의 숙식을 책임져준다고 해서 나라에서 따로 경비를 받는 것이 아니므로, 나와 노비는 말하자면 군식구인 셈이다. 그래서 밥값 하려면 온갖 노동을 해야 한다. 그리고 한 달에 두 번씩 ‘점고’가 있는데, 유배인이 도망가지 않고 잘 있는지 보수주인과 죄인을 관아로 불러 불시에 확인하는 것이다. 불러내기만 하면 다행인데, 불러서 온갖 수모와 모욕을 주니 점고가 정말 싫다.

 

관아에서 시키는 군역도 꼬박꼬박 해야 한다. 포구에 놓인 군량미를 관아로 옮긴다든지, 궁중에 진상할 미역을 채취한다든지 하는 일이다. 양반으로 태어나 군역을 해본 적이 없으니 이 모든 상황이 더 힘들고 괴롭다. 그래도 보수주인에게 밥이라도 얻어먹으려면 별수가 없다.

 

 

#2. 성균관 유생과 반인의 나날

휴, ‘소과’, 곧 ‘생원진사시’에 합격해 마침내 성균관에 입성했다. 그런데 꼭 생원과 진사가 아니더라도 성균관에 들어가는 방법이 있긴 하다. 생원진사시 합격자인 ‘상재생’으로 정원이 채워지지 않으면 ‘하재생’을 뽑아 인원을 충원한다.

 

하재생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뉘는데, 사회 고위층 자녀들이 돈을 내고 입학하는 ‘사량기재생’, 공신이나 3품 이상의 관리들 자제가 <소학>을 떼면 입학하는 ‘문음기재생’, 15세 이상의 사학 생도이면서 <소학>과 사서오경 중 하나를 뗀 사람이 승보시험을 통해 입학하는 ‘승보기재생’이 있다.

 

일단 나는 상재생으로 들어왔고, 동기 한 명은 재력이 출중해 사량기재생으로 들어왔다. 별로 공부에 뜻이 없던 다른 이들은 성균관 근처 반촌(泮村)에 살며 성균관 유생의 의식주와 잡일을 도맡아 하던 노비인 ‘반인’의 삶을 선택했다.

 

 

이제, 대망의 입학일이다. 성균관의 총장이라 할 수 있는 정3품 대사성이 신입생들을 불러 모아 동재와 서재를 배정해준다. 동재와 서재는 성균관 기숙사인데, 조선 초기에는 생원 합격자는 동재에, 진사 합격자는 서재에 살았지만 조선 후기에는 소론이 동재에, 노론이 서재에 살며 서로 경쟁했다.

 

동재와 서재, 각 동은 두 칸 크기의 방 28개로 되어 있다. 동재의 첫 방은 약방으로 약이 보관되어 있고, 각 끝 방에는 ‘사량칸’이라는 공간이 있다. 하재생 가운데 ‘사량기재생’으로 들어온 학생이 맨 끝 방 사량칸을 썼다. 나는 당당히 시험을 치고 들어왔으니까 기숙사의 중심부인 맨 앞방을 차지했다.

 

그런데 사실, 생각보다 성균관 기숙사가 좋지는 않다. 온돌이 없어 겨울에는 화로를 끼고 살거나 이불을 몇 겹씩 덮어야 한다. 그래서 성균관 근처 반촌에서 하숙하는 유생들도 많다. 대신, 식사와 학용품이 공짜니 돈은 무척 절약되는 편이다.

 

선후배 관계도 빡빡하다. 성균관 총학생회장을 ‘장의’라 하는데, 성균관의 자치기구인 재회의 임원이다. 신입 유생을 맞이하는 의식으로는 공식적인 환영회인 상읍례(相揖禮)과 비공식 행사인 신방례(新榜禮)가 있다. 상읍례는 말 그대로 신입 유생과 선배 유생이 서로 허리를 숙여 읍하는 자리이고, 장의가 진행하는 신방례는 신입 유생들을 골탕 먹이는 일종의 신고식이다. 장의가 시킨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먹으로 얼굴에 낙서하기(!)와 같은 벌을 받는다.

 

본격적으로 수업이 시작되면 하루하루가 고달프다. 예법에 조금이라도 어긋나는 행동을 하면 회초리를 맞는다. 그 정도가 얼마나 심했는지 성종 때 유생들이 체벌에 불만을 품고 권당(시위)을 하는 일도 있었다. 원점제도가 있어 꾸준히 점수도 모아야 한다. 과거시험 응시 자격 요건이기 때문이다. 아침, 저녁 식사 때 출석 도장을 두 번 다 찍으면 1점을 얻는다.

 

늦게까지 수업이 계속되고, 배강도 해야한다. 배강은 그날 배운 내용을 등을 돌린 채 스승에게 외워 보이는 것이다. 다 못 외우면 또 체벌이 있다. 식사도 썩 마음이 편치 않다. 우리나라 최초의 식당이라 할 수 있는 ‘진사식당’에서 단체 급식을 하는데, 예법에 따라 엄격히 순서를 지켜야 하고 절대 먹는 소리를 내서도 안 된다. 반인들이 부럽다. 반인들은 우리가 먹고 남긴 것을 먹지만, 어쨌든 맘 편하게 소리도 맘껏 내면서 먹으니 말이다.

 

반인이 하는 일은 주로 아침 기상, 수업 시작, 식사시간을 알리는 북 치기, 식사 준비와 설거지, 유생들의 심부름, 목욕, 빨래 등이다. 반인도 참 고생이 많지만, 우리도 날마다 두 명을 골라 그날 배운 내용을 외우고 뜻을 풀게 하는 ‘일고’, 열흘마다 보는 작문시험인 ‘순고’, 달마다 보는 ‘월고’, 일년에 두 번 보는 ‘연고’까지 시험의 연속이니 너무 피곤하다. 게다가 대과에 합격해서 가문을 빛내야 하는 의무까지 짊어지고 있으니. 반인으로 살면 그런 부담은 없을 게 아닌가?

 

#임금과 내시

내시의 길은 멀고도 험하다. 일단 고환을 잘라내고, 신체검사를 받은 뒤 수련과 교육과정을 거친다. 그런 다음 입궁해 내시부에 들어간다고 해도 10년이 지나야 정식 내시가 될 수 있다. 그 전에 또 신체검사를 하고, 수염이 나거나 신체적 결함이 생기면 탈락이다. 거세까지 했는데 내시가 되지 못하면 큰일이다.

 

내시의 관직은 종2품 상선에서 종9품의 상원까지 있다. 내시부의 정원은 140명으로, 그 가운데 59명만 관직이 있고 나머지 81명은 관직이 없다. 이 59명 안에 드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견습 내시의 수가 90명에 달하는 데다, 10년을 견뎌내고 신체검사까지 통과해야 정식 내시가 될 수 있으니 말이다.

 

 

내시가 되면 궁 밖에 집을 두고 출퇴근할 수 있고, 부인을 얻고 양자를 들일 수 있다. 월급도 많아서 꽤 윤택한 생활을 할 수 있으므로 내시 생활이 힘들어도 어느 정도 견딜 만하다. 내시가 지켜야 할 행동거지는 대략 아래와 같다. 그 가운데 입냄새는 특히 신경을 써야 할 사항이다. 입냄새가 심해서 귀양까지 간 내시도 있었다고 한다.

 

(p.218)

‧ 임금이 거동할 때에 즉각 나와서 전후좌우로 모신다.

‧ 허리를 굽힌 상태에서 말할 때도 고개를 들지 않는다.

‧ 임금께 고할 때 입 냄새가 나지 않도록 마늘을 절대 먹지 않으며, 항상 박하환이나 정향을 입에 머금는다.

‧ 임금이 거동이 불편할 때 업어서 이동시킨다.

 

당연히, 모든 게 임금 위주다. 임금이 팔자걸음을 걸을 때 내시는 제대로 고개도 들지 못한다. 임금이 지켜야 할 법도는 대략 이런 것들이 있다.

 

(p.219)

‧ 걸음은 팔자로 걷고 급한 일이 있어도 뛰지 않는다.

‧ 말은 느리게 하되 실행은 민첩하게 한다.

‧ 한가로이 있을 때도 기대어 앉지 않는다.

‧ 자신의 분노를 남에게 옮기면 안 된다.

 

사실, 임금이라고 썩 편하게 사는 것만은 아니다. 새벽 5시에 깨어 취침 시간인 11시 전후까지 꼬박 18시간을 공부와 정무에 매달려야 한다. 조선 임금들의 평균수명이 47살인 것도 지나치게 고된 일에 시달려서 그런 게 아닌가 싶다. 게다가 틈틈이 운동을 위해 내시의 지도하에 장작도 패야 하고, 15미터에 이르는 길이의 상소문에 답도 내려야 한다. 정조 16년에는 무려 96.6미터 길이의 상소문도 올라온 적이 있는데, 사도세자 추존 만인소로 유생 1만 94명이 서명해서 그리 길어졌다고 한다.

 

생고생(生古生) 한번 해보려다 생고생(生苦生)의 늪에 빠진 출연진은 심지어 전원이 프로그램의 폐지를 원할 정도로 힘들어했다. 하지만 그 덕분에 시청자들은 알게 됐다. 지금 누리고 있는 현대문명이 얼마나 축복받은 것인지를. 그리고 현대와 다를 바 없이, 조선시대에도 신분의 고하와 관계없이 저마다 무거운 삶의 무게를 짊어지고 있었다는 것을.

 

지금도 그렇지만, 옛날에도 인생은 녹록지 않았다. 노비는 말할 것도 없고, 양반으로 태어났어도 성리학 공부에 도통 흥미가 없다면 과거를 보는 것 외에 그다지 다른 대안이 없는 상황에서 인생이 힘들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오늘날에는 법적인 신분 구별이 없고, 직업 선택도 다양해서 굳이 성리학 공부를 하지 않아도 되니 이런 세상에 태어난 것이 퍽 다행이다. 게다가 불씨를 얻으려고, 물을 길어오려고 출연진이 겪었던 온갖 고초를 보노라면 지금 누리는 전기, 수도, 가스 등의 현대문명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다시금 깨닫게 된다.

 

다만,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프로그램 이름에 “LET’S G古”처럼 영어와 한자를 섞어 써서 우리말을 훼손하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것은 무척 아쉬운 대목이다.

 

그런 흠이 있음에도 이 책은 평소에 역사에 관심이 없었던 사람이라도 아주 재밌게 읽을 수 있는 데다, 유튜브에서 실제 예능도 찾아볼 수 있어 일석이조다. 사극 속 세계를 동경했던 사람이라면 로망과 현실을 비교하는 재미도 쏠쏠할 것 같다. 어쨌든 이 기나긴 시간 탐험의 끝은, 지금의 일상에 대한 감사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