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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안 하의도서 만난 ‘일본인 변호사 불망비’

[맛있는 일본이야기 618]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김대중 대통령의 출신지가 신안군 하의도라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서울살이 속에서 ‘하의도’는 머나먼 땅으로만 여겨왔다. 막연히 언젠가는 가봐야지 하면서 말이다. 지난 9월 12일, 한가위 연휴를 맞이하여 마침내 그 땅에 발을 디뎠다. 서울에서 목포까지 승용자로 간 뒤 목포연안여객선터미널에서 신의도행에 배에 승용차를 싣고 2시간 달려 도착한 곳은 신의도(신의여객선터미널)였다. 이곳에서 다시 승용차를 30여분 달려 하의도에 도착했다.

 

신안을 흔히 천사섬이라고 해서 솔직히 ‘신안에 왠 천사?’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알고 보니 1004개의 섬이 있어서 이를 한글로 천사(1004) = 천사(天使)가 된 것이란다. 오호라! 하의도는 어촌이라기보다는 농촌에 가까운 섬이었다. 누렇게 익어가는 황금들판이 이를 말해준다.

 

 

맨 먼저 찾아 간 곳이 ‘하의3도농민운동기념관(이하 농민운동기념관)’이다. 농민운동기념관 입구에서부터 천사상이 기자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농민운동기념관에는 조선후기부터 광복까지 무려 360년 동안 하의 3도(하의도, 상태도, 하태도) 주민들의 빼앗긴 토지를 탈환하기 위해 흘린 ‘피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360년 동안 토지 탈환 역사가? 기자는 무지하게도 일제강점기 그들에 의한 토지 강탈과 이를 탈환하기 위한 조선인들의 투쟁의 역사는 대강 알고 있었지만 그 역사가 조선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 ‘하의3도 농민투쟁’은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사건의 발단은, 임진왜란 후 가진 것이 없는 섬사람들이 바닷물을 막고 목숨을 걸고 가꾼 논밭을 조선왕실에서 토지소유권을 빼앗은 데서부터 시작된다. 당시 조정에서는 농민으로부터 토지 소유권을 빼앗아 왕실 사람들에게 하사하는 사패(賜牌)제도가 있었는데 ​하의3도는 선조(1552~1608)의 딸인 정명공주에 하사되었으며 이때 소유권은 풍산 홍씨 홍우록의 수중에 들어갔다. 이 일로 이전에 국가에 내던 토지세보다 월등히 높은 세를 감당 못하게 된 농민은 이 억울한 일을 수차례 조정에 건의했다.

 

이 과정에서 장시간에 걸친 소송전이 있었다. 힘도 없고 법률 지식도 없던 농민들을 대신해 이들의 땅을 찾는데 힘을 실어준 사람이 바로 일본인 변호사 고노오 토라노스케(木尾虎之助,このお とらのすけ、1879~1956, 섬주민들이 세운 불망비에는 고노 부쓰노스케라고 표기) 였다. 농민운동기념관 뜰에는 고노오 토라노스케 불망비(不忘碑 : 어떠한 사실을 후세 사람들이 잊지 않도록 기록하여 세우는 비석)가 서있었다. 비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1908년 풍산 홍씨 홍우록의 부당한 소작료 강제징수에 반발하여 하의3도민들은 부당이득반환청구소송을 제기하였으나 1심에서 패소하여 낙심해 있을 때 일본인 변호사 고노 부쓰노케 씨가 상고심 변론을 맡아 3년간 각고의 노력 끝에 승소하여 하의3도민들은 소유권을 되찾았다. 이같은 고노 변호사의 은덕을 기리기 위하여 하의3도민들의 성금을 모아 1912년 6월 비를 건립하게 되었다.”

 

하의도 주민들의 '한(恨)과 정의'에 손을 들어준 일본인 변호사 고오노 토라노스케(木尾虎之助)씨의 불망비는 훼손되지 않고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다.

 

고노오 토라노스케 변호사는 가고시마현 사쓰마군 이리키무라(현재의 사쓰마가와치시) 출신 으로 1902년, 일본 법률학교(현, 일본대학)를 졸업하고 변호사시험에 합격하여 1907년 도쿄시내에서 변호사 사무소를 열었다. 이듬해 조선으로 건너와 경성부(서울)에 변호사 사무소를 열었고, 1922년에는 경성내지인(일본인)변호사회 회장으로 선출되기도 했다.

 

 

고노오 토라노스케 변호사는 하의3도 농민들의 토지탈환 소송 뿐 아니라 1919년 3·1운동 때에는 하나이 타쿠조, 오쿠보 마사히코 등과 함께 손병희 등 독립운동가의 변호를 맡기도 했다. 천사의 섬, 신안군 하의도에 가면 ‘하의3도농민운동기념관’에 들러 당시 농민들의 토지 탈환에 대한 투쟁의 역사와 더불어 뜰에 세워져 있는 일본인 고오노 테라노스케 비석도 함께 살펴볼 일이다.

 

 

 【섬주민들의 토지 소유권을 찾아준 일본인 변호사 ‘木尾虎之助’의 바른 한글 이름은?】

 

1)하의도 ‘하의3도농민운동기념관’ 불망비(不忘碑)에는 (도노 부쓰노스케)

2)<일본위키> 사전의 일본발음은 고노오 토라소스케(このお とらのすけ)

3)일본 중의원 명부의 일본발음은 기오 도라노스케(きお とらのすけ)

 

이러한 일은 일본 한자 읽기의 다양성에서 유래한 것이며 기자가 보기에는 <일본위키>의 ‘고노오 토라노스케’로 부르는 것이 타당하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