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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나들이

[화보] 개화기 건축물이 즐비한 오늘의 목포를 찾아서

 

 

 

 

 

 

 

 

 

 

 

 

 

 

 

 

[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전라남도 서남부 해안에 위치한 목포는 바다와 육지를 잇는 항구도시다.  육지에서 바다로 나가려면 거쳐야하고, 바다에서 육지로 가기 위해서도 거쳐야 하는 것이 항구이지만 목포는 먼 옛날부터 항구도시였던 것은 아니고,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의 필요에 의하여 항구도시로 개발되었다. 옛날 우리선조들이 바다로 나갈 때 타던 배들은 배의 바닥이 평평한 평저선으로 이런 배들은 바닷가나 강가의 평평한 땅위에 내려앉을 수 있는 배였기에, 현재의 배들과는 배의 모양이 달랐다. 평저선이 정박할 수 있는 포구는 항상 물이 차있는 항구가 아니라,  모래나 뻘처럼 땅이 있는 곳으로 배들은 밀물에 들어와 내려앉아 사람과 물건을 내렸다가, 다시 밀물이 들어오면 사람과 물건을 태우고 밀물을 타고 바다로 나가는 것이 한국의 전통배였던 것이다.

 

그런데 개화기를 거쳐서 일제강점기에 들어선 이래 한국의 평저선이 차츰 사라지고 서양의 배들이 들어오면서 배의 바닥이 뾰족한 배는 늘 물이 차있는 곳에 접안할 수있는 시설을 갖춘 항구를 만들어야 했다. 그런 항구는 해안가라도 배의 바닥이 땅에 닿지 않는 수심이 깊은 곳이어야 했기에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은 한반도에 새로운 항구들을 만들었는데, 목포는 그렇게 만들어진 새로운 항구도시였다. 목포가 새로운 항구도시로 개발된 이유는 호남평야에서 생산된 쌀들을 일본으로 반출하기 위하여 만들어졌는데, 이렇게 만들어진 호남지방 큰 항구들은 목포 외에도 군산과, 여수가 있다.

 

일제강점기에는 한국의 해안가마다 항구들이 개발되었는데, 1940년대에는 동해안에는 원산항, 서해에는 인천항, 경상도에는 부산항, 호남지역에는 목포항으로  목포항은 조선의 4대항구였으며, 광복이후 1950년대에도 인구면에서는 남한의 6대도시로 대도시였다. 이런 목포는 육로로 호남평야를 관통하여 서울로 연결하는 육로와 철로로 연결되어 산업화 이전에는 한국의 어항, 여객선과 화물선이 붐비는 도시였으나, 산업화 이후 인천과 부산으로 집중되면서 성장을 멈추고 쇠퇴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한국의 현대사를 간직한 목포는 일제강점기 이후 개발된 항구와 시가지를 중심으로 한 구도시에 개항기 일본인들이 지은 건축물이 많이 남아있는데, 이 건물들은 목포항과 바로 닿아있는데, 광복과 산업화를 거치면서 급변하는 한국의 다른 도시들에 비하여 매우 뒤쳐진 듯 보인다.  목포의 인구는 2000년 쯤 25만명 정도 였을 때가 가장 많았고, 이후로는 조금씩 줄어들어 현재는 22만명 정도이다. 목포는 이러한 상태로 한국의 다른 도시들에 비하여 경제활동이 활성화 되지 못한 까닭에, 개항기의 건물들이 다른 항구도시들 보다 오히려 많이 남아있다. 이곳에도 개발의 바람이 불었다면 대부분 사라졌을 자취들이 지금도 목포항 주변에는 가득하다. 

 

이러한 목포항과 옛 시가지를 돌아보니, 개발이 안되어 정감이 있지만, 급변하는 한국의 다른 도시들에 비하여 낙후된 현실이 안타깝기도 하다. 오늘의 목포를 돌아보며 또 다시 개발과 보존의 갈등도 다시 느껴본다.  옛시가지의 퇴락한 건물들이지만, 최근에는 개화기 근대역사에 대한 관심과 중요성의 재평가로 시민과 학자들의 요구로 부족하지만 정비되고 있어 다행이라 생각한다..

 

 

기자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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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성 기자

최우성 (건축사.문화재수리기술자. 한겨레건축사사무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