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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대한, 희망이 잉태된 때

옛사람들, 세끼 밥을 두끼로 줄여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오늘은 24절기 가운데 마지막인 ‘대한(大寒)’이다. 소한이 지나 대한이 한 해 가운데 가장 춥다고 하지만 이는 중국 화북지방의 기준이어서 우리나라와 똑같지는 않고 오히려 소한 때가 더 추울 때가 많아 “춥지 않은 소한 없고 포근하지 않은 대한 없다.”, “소한의 얼음이 대한에 녹는다.”, “대한이 소한 집에 가서 얼어 죽는다.”라는 속담이 있다.

 

 

그런데 대한 다음에는 입춘이 기다리고 있기에 대한은 겨울을 매듭짓는 날로 보아 대한 기간의 마지막 날 곧 입춘 전날을 “절분(節分)”이라 하여 계절적인 섣달그믐날로 여겼다. 그래서 이날을 “해넘이”라 하여 콩을 방이나 마루에 뿌려 악귀를 쫓고 새해를 맞는 풍습이 있고 절분 다음날은 정월절(正月節)인 입춘으로, 이날부터 새해로 보기도 한다.

 

제주도에서 이사하는 것은 물론 부엌ㆍ문ㆍ뒷간, 외양간 고치기, 집 뜯어고치기, 울타리ㆍ돌담고치기, 나무 베기, 묘소 고쳐 쌓기 등은 언제나 ‘신구간(新舊間)’에 한다. 신구간은 대한 뒤 5일에서 입춘 전 3일 사이를 말하는 것인데 이때 모든 신들이 염라대왕에게 새로운 임무를 부여받기 위해 자리를 비우기 때문에 어떤 일을 하여도 탈이 없다고 믿는다.

 

그러나 아직 이 무렵은 한겨울인지라 먹거리가 부족했던 옛사람들은 끼니 걱정이 컸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세끼 밥을 두 끼로 줄였는데, 겨울철엔 나무 한두 짐씩 하는 것 말고는 힘든 농사일은 없으므로 세끼 밥 먹기가 죄스러워 점심 한 끼는 반드시 죽을 먹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또 죽을 먹는 까닭으로 양식이 있는 겨울에 아껴서 돌아오는 보릿고개를 잘 넘기려는 뜻도 들어 있다. 좋은 난방시설 속에 살아가는 요즈음은 대한이나 소한 추위도 어렵지 않다고 하지만 양식을 아껴 돌아오는 봄의 보릿고개까지 생각하던 미덕은 되새겨볼 일이다.

 

요즈음 매서운 추위에 사람들은 쩔쩔매지만, 온난화 때문에 예전같이 살을 에는 추위는 아니다. 그러나 예전엔 추위도 추위지만 난방이 제대로 되지 않는 집과 추위를 막아낼 옷가지도 변변치 못했기에 백성은 참으로 힘든 겨울을 보내야 했다. 심지어 《삼국사기(三國史記)》 권제10 “신라본기” 애장왕조 801년 10월에 보면 “큰 추위가 있어 소나무와 대나무가 모두 죽다.”라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지금의 추위와는 견줄 수도 없을 만큼 추웠나 보다.

 

그래서 예전 백성을 사랑하는 임금들은 백성 보살피는 것이 큰일이었다. 조선 전기 문종 2년에 나온 고려시대의 역사서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권4 정종(靖宗) 5년 12월조에는 임금이 신하에게 분부하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절기가 대한이므로 바람이 불고 눈이 내려 심히 차갑다. 생각건대 가난한 자들은 필시 얼고 굶주리는 지경에 이를 것이다. 외국에서 귀화한 사람과 오랑캐에게 잡혔다가 되돌아온 남녀 모두 80여 명에게 그 늙고 어림을 헤아려 각기 면포를 하사하라.” 예전 같지 않은 추위라도 어려운 이에게는 견디기 어려운 추위다. 모든 어려운 이들도 더불어 겨울을 날 수 있으면 좋겠다.

 

 

김영현의 소설 《깊은 강은 멀리 흐른다》에 보면 "도시에서 온 놈들은 겨울 들판을 보면 모두 죽어 있다고 그럴 거야. 하긴 아무것도 눈에 뵈는 게 없으니 그렇기도 하겠지. 하지만, 농사꾼들은 그걸 죽어 있다고 생각지 않아. 그저 쉬고 있을 뿐이라 여기는 거지. 적당한 햇빛과 온도만 주어지면 그 죽어빠져 있는 듯한 땅에서 온갖 식물들이 함성처럼 솟아 나온다 이 말이네.”라는 구절이 나온다. 지금은 온 세상이 얼어붙은 겨울이지만 이제 대한을 고비로 서서히 얼음이 풀릴 것이란 희망의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