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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치 그리고 행사

코트 갤러리에서 태어난 23인의 세종들

한글 전시 <➗:나눔과 나뉨> 성황리에 끝나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지난 9월 1일부터 4일까지 인사동 코트 갤러리 3층에서는 한글 전시 <➗:나눔과 나뉨>이 열렸다. 23명의 여성 청년 작가들(대표 문지예ㆍ이지은)은 마음을 나누는 소통을 하며, 청년들의 생각을 알리고 동시에 사라져가는 글자 4자를 재조명하기 위해 인사동에 모였다.

 

 

사실 그동안 한글운동은 말이나 글자 자체에는 소홀히 하고 그저 한글 자체에만 몰두했다. 그러니 절름발이 운동에 그쳤다는 아쉬움도 토로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세종이 뜻한 진정한 운동이 되려면 한글에 앞서서 토박이말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하고, 세종이 창안한 훈민정음 전체 28글자의 아름다움을 알려내야 한다고 말이다.

 

전시의 이름은 <➗:나눔과 나뉨>이다. 이들은 이렇게 전시 이름을 지은 까닭을 “나누기는 긍정의 뜻인 나눔과 부정의 뜻인 나뉨의 두 가지 중의적인 뜻이 있다. 저희는 다양한 까닭으로 점점 더 나뉘는 세상에서 나눔을 실천하자는 의미로 <➗:나눔과 나뉨>으로 이름을 지었다. 더하여 나누기의 형태는 기하학적이어서 땅ㆍ하늘ㆍ사람으로도 볼 수 있다. 그것은 한글의 천지인 사상과 닮았다는 생각이다.”라고 말한다.

 

이들 여성 청년 작가들의 뜻이 참 깊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작품을 하나하나 감상하면서 젊은 청년들의 기발한 발상이 빛을 발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먼저 장이경 작가의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보자. 작가는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발견의 순간 새로운 의미를 갖습니다. 그렇게 의미는 수정되고 관계는 또다시 태어납니다. 이러한 것들이 쌓이고 모여 하나의 사전으로 재구성됩니다. 당신의 사전들은 어떤 단어들로 채워져 있나요?”라고 묻는다.

 

 

작가는 그러면서 한 낱말의 풀이를 이렇게 말한다. “달걀 : 사전적 정의로는 그저 닭의 알이지만 나에겐 그렇지 않다. 소중한 친구와 보러 간 전시에서 그에게 선물한 달걀 모양의 석고방향제는 그 단어에 새로운 의미를 불어 넣었다. 친구와 전화를 하며, 너의 달걀은 잘 지내냐고 물었을 때 그는 우리가 행복했던 그때가 그리워 그 달걀을 매일 목에 문지른다고 말했다. 그날 이후로 달걀은 나에게 그저 닭의 알이 아니다.“ 생각지도 못한 풀이다. 그동안 우리는 국어사전에 나온 대로 “달걀”은 닭의 알이라고만 머릿속에 집어넣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가 하면 홍성민 작가는 ‘당신에게만’ 작품에서 이중으로 된 전시물 앞면에 왜곡(歪曲), 무시(無視), 조작(造作), 금기, 선동과 날조 같은 글자들을 복잡하고 빼곡하게 써놓고는 뒷면에는 이것들을 깨끗하게 정리해놓는다. 명백한 사실들을 불편해하고 외면하는 이들에게 그것이 당신에게만 불편한 진실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어서 또 다른 작품 강민주 작가의 ‘웃음짓다’는 우리가 현대 사회를 살아오며 웃는 웃음이 진실한 웃음인가라고 물으며, 남을 위해 웃는 웃음이 아닌 나를 위한 웃음, 수단이 아닌 나누는 웃음을 짓자고 호소한다.

 

 

전시의 끝에서 나에게 강한 울림을 준 대목은 문지예ㆍ이지은 작가가 함께 작업한 ‘정(情)’이다. 서울여자대학교에서 시각디자인을 가르치는 한재준 교수는 훈민정음에 담긴 세종 이도의 ‘정(情)’을 강조하고 하는데 이들도 바로 그 얘기를 하는 것이다. “세종대왕, 이도는 훈민정음을 통해 정(情)을 나누기를 바랐다. 이도의 마음을 사라져가는 글자의 형상에 담아서 우리도 정을 나눠보려고 한다. 다 같이 ‘여린히읗, 반치음, 옛이응, 하늘아’를 재조명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라고 작품을 설명하는데 이는 바로 이번 전시 <➗:나눔과 나뉨>의 주제이다.

 

 

전시장에서 만난 조정우(22살) 씨는 “작품들 속에서 나의 존재, 나를 둘러싼 세계, 알 수 없는 미래를 각자의 생각대로 해석해낸 작품들을 마주하는 것도 매우 좋았지만, 관람자를 그저 작품을 바라만 보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 아니라, 군데군데 자기의 생각을 기록할 수 있는 공간을 두어  소통의 대상으로 바라보고, 참여를 유도한 것이 좋았다. 이는 전시를 더욱 풍부하게 만들고 전시회의 주제를 전시 속에 자연스럽게 녹여내는 것으로 생각한다.”라고 칭찬했다.

 

문지예 대표는 전시회를 열고 난 소감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모두가 처음 하는 전시인지라 불안과 걱정을 가득 안고 시작했지만, 주변 좋은 사람들의 격려와 도움, 그리고 전 작가의 믿음으로 무사히 잘 마칠 수 있었다. 이 전시를 준비하면서 한글에 대해 더 배울 수 있어 좋았고 우리가 말글을 함부로, 잘못 사용했던 지난날들을 되짚어보는 시간이 되었다. 세종대왕의 정을 나누길 바라셨던 마음을 전시에 담기 위해 노력했고, 많은 분이 전시를 보며 정을 나누고 가시는 것을 보고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앞으로 우리 23명은 다양한 곳에서 다른 일을 하며 살아가게 될 테지만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창제하신 뜻을 잊지 않고 살 것이다.”

 

이번 전시회를 함께 연 청년 작가들은 이구동성으로 “세종대왕은 소리와 꼴이 일치하도록 훈민정음 28자를 통해 세상의 모든 소리를 표현할 수 있게 고안하였다. 여기에는 모든 이들이 동등하게 서로를 나누고 어울리길 바라는 마음이 담겼다. 그러나 현재 우리는 28자 가운데 24자만을 사용하고 있기에, 사라지는 4자는 소리가 있되 꼴을 사용하지 못하여 마음이 온전히 전해지지 못하고 있다. 이에 현재 사라져가는 4자를 다시 가져와서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또 하나 방법의 열쇠로 사용할 수 있다는 생각에 도달하였다.”라고 강조한다.

 

이들 청년 작가들의 평균 나이가 22살이라는데 한재준 교수는 이를 두고 세종대왕이 임금이 되신 때가 22살이라고 귀띔해준다. 나는 세종 때의 많은 활자가 발굴된 곳 코트 갤러리 옥상에 올라 발굴 현장을 바라보며 <➗:나눔과 나뉨> 전시에서 또 다른 현대의 세종들이 태어나고 있음을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