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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면을 벗고 그 흉흉함을 떨쳐버리자

허홍구, 가면
[우리문화신문과 함께 하는 시마을 113]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가  면

 

                       - 허홍구

 

   당신은 누굽니까?

   늑대입니까?

   양입니까?

 

   언 듯 언 듯

   더럽고 치사한

   나의 얼굴도 보입니다

 

   이제 우리

   가면을 벗어 던집시다

 

   사랑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입니다.

 

 

 

 

조선시대 궁궐에서는 그믐 전날, 탈을 쓴 방상씨(方相氏)가 <처용무(處容舞)>를 추면서 잡귀를 쫓아내는 놀이 곧 <나례(儺禮>를 했다. <처용무>는 신라 헌강왕 때 처용이 지었다는 8구체 향가 ‘처용가’를 바탕으로 한 궁중무용이다. 《삼국유사》의 <처용랑ㆍ망해사> 조에 보면 동해 용왕(龍王)의 아들로 사람 형상을 한 처용(處容)이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어 천연두를 옮기는 역신(疫神)으로부터 인간 아내를 구해냈다는 설화가 있다. 그런데 처용무의 특징은 자기의 아내를 범하려는 역신을 분노가 아닌 풍류와 해학으로 쫓아낸다는 데 있다.

 

우리 역사에 보면 <나례> 말고도 탈 곧 가면을 쓰고 놀았던 탈놀이들이 많은데 크게 황해도 지방의 ‘탈춤’, 중부지방의 ‘산대놀이’, 영남지방의 오광대ㆍ들놀음[野遊], 동해안지역의 ‘별신굿놀이’ 등이 있다. 그 탈놀이 가운데 고성오광대를 보면 말뚝이를 내세워 신랄하게 양반을 조롱하는 것이 두드러진다. 이달균 시인의 《말뚝이 가라사대》 사설시조집에는 “어허, 할 말 많은 세상, 대신 이놈 말뚝이 잘난 놈 욕도 좀 하고 못난 놈 편에서 슬쩍 훈수도 두려 했다.”라는 대목이 나온다.

 

그런데 여기 허홍구 시인은 자신의 시 <가면>에서 탈놀이처럼 세상을 향한 외침이 아니라 스스로 부끄러운 가면을 쓰고 있다고 고백한다. 자기 얼굴이 아닌 언뜻언뜻 늑대가 나타났다가 양이 나타나기도 하는 그런 가면 말이다. 그러면서 “이제 우리 / 가면을 벗어 던집시다/ 사랑할 수 있는 / 마지막 기회입니다.”라고 호소한다. 세상 사람들은 누구나 가면을 쓰고 산다. 그러기에 세상이 흉흉할 수밖에 없음이다. 가면을 벗고 그 흉흉함을 떨쳐버리자.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김영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