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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나들이

통일신라때 조성한 감은사지 동탑 사리장엄구

 

 

 

 

 

 

감은사 동탑 사리내함-지붕장식 3(왼쪽), 감은사 동탑 사리내함-지붕 상부장식

 

 

 

 

[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뒤 조성한 경주 감은사에는 통일을 완수한 문무왕이 스스로 동해의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겠다는 염원에 따라 문무왕의 수중왕릉이 보이는 곳에 감은사를 조성하였다. 신문왕은 감은사를 지으면서 용이된 문무왕이 감은사의 금당까지 들어올 수 있는 구조로 절을 짓고, 금당 앞에는 삼층석탑 2기를 세웠다.

 

절의 석탑은 본래 인도에서 기원한 것인데, 인도에서는 전탑(벽돌을 구워서 만든 탑)이었으나 한국에서는 석탑으로 정착하였다. 인도의 전탑이 중국을 거쳐서 한국에 와서 한국만의 석탑으로 변하였고, 한국의 삼층석탑의 원형이 된 것이 바로 감은사 삼층석탑이다. 이탑이 있기 이전에 백제의 익산 미륵사 구층석탑이 있었다.  절의 석탑은 절의 중심건물인 금당 앞에 조성하는데, 탑속에 불교의 창시자인 석가모니의 사리를 모시기 위하여 조성하였다. 그 까닭은 불교의 창시자인 석가모니의 모습을 조성하여 금당에 모시고 예불을 하고, 그가 남긴 사리를 모신 석탑을 금당 앞에 세우고 그의 가르침을 따르면서 수행하기 위함이었다. 

 

따라서 금당 앞에 세운 탑에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반드시 모셔야 했다. 따라서 어떤 어려운 경로를 거쳐서라도 반드시 진신사리를 모시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후대에 많은 절들도 탑을 조성하였지만, 모두가 진신사리를 모실 수가 없었고, 이 때에는 부처님이 설법했던 경전을 종이에 인쇄하여 탑에 봉안하기도 하였다. 이렇게 절 석탑에 모신 사리장엄구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사리로 여기고 예불의 대상으로 삼아 탑돌이를 하였다.

 

오늘 보는 경주 감은사터 동탑 사리장엄구는 현재 국립중앙박물관 3층 상설전시실에 전시중인 것으로, 1996년 감은사 동탑을 해체복원하던 중 발견한 것이다. 사리장엄구의 구성은 사리를 보관한 수정사리함과 이를 보관한 내함 그리고 그 밖에는 외함으로 구성되었다. 외함에는 불법을 수호하는 사천왕이 4면에서 지키고 있고, 내함에는 누각모습의 금동장식이 있으며, 그 안에는 수정사리함에 사리를 봉안하였다. 내함의 모습은 연꽃과 다양한 모습의 장식이 있으며, 누각의 기둥은 대나무 마디가 뚜렸하고, 처마 밑에는 둥근장식안에 많은 불상들이 새겨져있고, 지붕 또한 다양한 덩굴무늬로 장식하였다.

 

통일을 이룩한 신라시대 으뜸 장인들이 최고의 정성으로 조성한 부처님의 진신사리탑인 감은사 동석탑의 주인은 바로 부처님의 진신사리인 것이다.

 

 

기자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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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성 기자

최우성 (건축사.문화재수리기술자. 한겨레건축사사무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