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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자 사자장식 향로ㆍ청자 투각 칠보무늬 향로

고려시대 도자공예의 수준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료로 평가
[국립중앙박물관 큐레이터 추천 소장품 97]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1123년 서긍(徐兢, 태어나고 죽은 때 모름)은 송 휘종이 파견한 국신사 일행 가운데 한 명으로 한 달 남짓 고려에 머물면서 공식일정을 수행하였습니다. 이때 고려의 여러 곳을 둘러보고 그에 대한 면모를 기록한 것이 바로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입니다. 이 책의 그릇 부분에는 고려의 다양한 그릇들이 소개되어 있는데 특히 ‘도로조(陶爐條)’의 내용이 흥미롭습니다.

 

“산예출향도 비색이다. 위에는 짐승이 웅크리고 있고 아래에는 봉오리가 벌어진 연꽃무늬가 떠받치고 있다. 여러 그릇 가운데 이 물건만이 가장 정교하고 빼어나다. 그 나머지는 월요의 옛날 비색이나 여주에서 요즘 생산되는 도자기와 대체로 비슷하다.”

 

위의 내용은 고려시대 도자공예의 수준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료로 평가받습니다. ‘산예출향(狻掜出香)'은 사자가 장식된 향로를 말하는데, 당시 서긍은 연화형(蓮花形) 향로 뚜껑 위에 사자가 장식된 것을 보고 이처럼 묘사한 것으로 보입니다. 색은 비색(翡色)이며 매우 뛰어난 솜씨로 만들어졌다고 평하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위 기록에 맞는 가장 비슷한 것은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국보 ’청자 사자장식 향로‘입니다. 이 향로는 뚜껑 위에 사자가 올라가 있고, 향을 피우는 몸체에는 세 개의 귀신 얼굴 모양을 한 다리가 붙어 있습니다. 그런데 몸체에서 향을 피우면 뚜껑에 장식된 사자의 입을 통해 향이 나올 수 있도록 만들어졌습니다.

 

사자의 두 귀는 아래로 처져있고 코는 들려 있으며 살짝 벌린 입에는 가지런하게 이빨이 드러나 있습니다. 목덜미의 갈기는 탐스럽고 몸통은 매끈합니다. 넓적하게 만든 꼬리는 등에 착 감겨 있어 안정감을 주고, 발 또한 맹수의 것으로 손색이 없도록 다부지게 표현하였습니다. 특히 가슴에 방울을 달고 오른쪽 발로 보주(寶珠)를 잡은 모습은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사자 가운데 매우 드문 예에 속합니다.

 

최근 태안 마도 인근에서 같은 형태의 사자 향로 2점이 인양되어 주목받은 바 있습니다. 이목구비 형태와 전체적인 모습이 어색한 조화를 이루고 있어 이 향로와 차이가 있지만 이 같은 발견으로 인해 고려시대에 다양한 사자 장식 향로가 애용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밖에도 고려시대에는 다양한 형태의 청자 향로가 사용되었습니다. 그 가운데서 국보 ’청자 투각 칠보 무늬 향로‘는 고려청자, 더 나아가서 고려시대의 우수한 공예문화를 확인할 수 있는 대표 작품으로 손꼽힙니다.

 

이 향로는 투각(透刻)된 구형 뚜껑과 연화형 몸체, 그리고 세 마리의 토끼가 받치고 있는 판형 받침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서로 다른 형태의 상형물이 유기적으로 결합하여 하나의 완성도 높은 조형물로 승화되었습니다. 먼저 뚜껑을 보면, 전면에 칠보(七寶) 무늬를 투각하고 무늬의 교차 지점에는 작은 점을 백상감하여 장식성을 높였습니다. 몸통에는 틀로 찍어낸 꽃잎들을 하나하나 붙여 활짝 핀 연꽃으로 만들고, 꽃잎에는 가늘게 잎맥을 표현하여 섬세함을 부여하였습니다.

 

특히 향로 받침을 떠받치고 있는 앙증맞은 토끼 세 마리는 향로의 조형미를 배가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비록 작은 상형물이지만 토끼의 눈에 검은 철화 점을 찍어 영특한 눈매를 만들어 주었으며, 그로 인해 청자 토끼는 생명력을 얻었습니다. 이 향로는 오목새김(음각)ㆍ볼록새김(양각)ㆍ투각ㆍ퇴화ㆍ상감ㆍ첩화(貼花, 도자기의 몸과 같은 재료로 여러 가지 모양을 만들어 붙인 무늬)ㆍ상형 등 모든 장식 기법이 동원되어 만들어진 화려한 것으로, 12세기에 제작된 절정기 청자의 모습을 잘 보여줍니다.

 

 

이처럼 고려시대에 다양한 청자 향로가 사용되었다는 것은 당시 사람들이 향을 가까이 두고 향 문화를 즐겼던 증거라고 볼 수 있습니다. 향을 피우는 목적은 다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지요. 첫째, 벌레로부터 인체를 보호하고 둘째, 옷의 냄새와 좀 벌레를 예방하며 셋째, 종교의식이나 의례를 행할 때 신성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입니다. 향을 어떤 방식으로 피웠는지 구체적인 자료는 거의 없지만 몇몇 기록을 통해 고려시대 사람들이 즐긴 향 문화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관료이자 문인이었던 이규보(李奎報, 1168~1241)는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에 이러한 상황을 보여주는 몇 편의 글을 남겼습니다. 쓸쓸한 암자에 향로가 놓인 한적한 풍경을 읊은 구절이나, 향을 피우는 가운데 돌솥에 차를 달여 마시며 귤을 먹는 상황을 묘사한 것이 있습니다. 또 술자리에서 침향(沈香) 연기 때문에 노래하는 목청이 메인다는 내용도 있습니다.

 

이 같은 기록을 통해 공식적인 의례나 종교 활동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여가를 즐길 때 향을 피우는 행위가 자연스러운 하나의 문화로 정착되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완벽한 조형과 비색의 조화로 완성된 청자 향로는 실용성과 더불어 감상용기라는 미적 성취까지 거둔 고려청자의 절정(絶頂)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강경남)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