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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 변호사의 세상바라기

사흘 내리 울 때 그냥 옆에 계셨잖아요

양승국 신부 강론집 《축복의 달인》, 생활성서사
[양승국 변호사의 세상 바라기 217]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요즘 같은 검색의 시대에 누구나 한 번쯤은 자기 이름으로 검색해본 적이 있으시겠지요? 저는 제 이름으로 검색을 하면 제일 많이 나오는 사람이 세 사람입니다. 양승국 서울대 국문과 교수,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그리고 저입니다. 아무래도 자기와 이름이 같은 사람이면 좀 더 친근감이 가겠지요? 그래서 예전에 이분들에게 연락하여 ‘식사 한번 하자고 할까?’ 하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지만, 실행에 옮기지는 않았습니다. 이분들 중에 양 신부님 글은 종종 봅니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제 이모가 양 신부님 강론하신 말씀을 카톡으로 가끔 보내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모님 덕분에 가끔 양 신부님 강론을 보다가, 문득 양 신부님 책을 사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구입한 책이 《축복의 달인》이라는 강론집입니다. 축복의 달인이 누군가 했더니, 바로 하느님을 말하는 것이네요. 책 머리에서 양 신부님은 이렇게 말합니다.

 

 

한 인간이 다른 한 인간에게 꿈을 주고, 희망을 주고, 어려움 한가운데서도 힘차게 살아가게 만듭니다. 따지고 보니 결핍투성이라고 여겨 왔던 이웃들의 얼굴은 또 다른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이었습니다. 내 깊은 상처의 원인이라고 여겨 왔던 내 이웃들이 사실은 ‘축복의 달인’인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가장 큰 축복의 선물이었습니다.

 

그렇지요. 우리가 인간들에 의해 상처를 많이 받지만, 그런 인간들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을 볼 수 있고, 또 하나님의 깊은 뜻을 알 수 있지요. 강론집을 보다 보니 양 신부님이 참 유머 감각이 풍부하신 분이라는 것을 알겠습니다.

 

「그 놈이 그놈」이란 글을 보니, 한 번은 강론 중에 신부님이 다시 태어나도 지금의 배우자를 다시 배우자로 선택하겠다는 사람은 손 들어보라고 하였답니다.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아 곤혹스러워하는 순간, 제일 앞줄에 앉아 계시던 할머니 한 분이 손을 번쩍 들더랍니다. 그래서 양 신부님은 반가운 마음에 할머니에게 훌륭하다 하시면서 그 까닭을 물었답니다. 그랬더니 할머니가 말하기를, “훌륭하다고까지 할 것은 없고, 나는 젊어서 사별하고 재혼했는데, 살아 보니 특별한 것이 없어! 그놈이 그놈이더라구. 그렇다면 아무래도 낯선 놈보다는 익숙한 놈이 더 낫지 않겠수?”

 

할머님 대답에 양 신부님은 거의 뒤로 넘어질 뻔했답니다. 하하하! 그러면서 신부님은 강론의 결론을 배우자는 모든 것이 나와 다른 ‘그’라며, 그러기에 ‘그’의 나와 다름을 당연한 것으로 바라보고, 끊임없이 ‘그’에 대해 연구해야 하고, ‘그’를 위해 기도해야 하고, ‘그’를 이해하고, ‘그’와 소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합니다.

 

「불면 치료제 강의」라는 강론을 읽으면서 웃음이 또 터졌습니다. 신부님이 강론을 끝내고 나오는데, 한 자매님이 계속 따라오면서 몇 번이고 감사의 인사를 계속하더라나요? 그래서 신부님이 그 자매님에게 어떤 부분에 그렇게 필이 꽂혔나고 물으니, 평소 불면증에 시달렸다는 그 자매님 왈, “오늘 정말이지 기적적으로 신부님이 강의하시는 2시간 동안 세상 모르게 잘 잤네요. 지금은 머리가 개운한 게 날아갈 것만 같아요. 죄송스럽기도 하지만 정말 감사합니다. 이건 작지만 감사예물입니다. 너무너무 감사해서요.” 하하! 신부님의 강론이 또 이런 식으로도 신자들에게 유용하게 먹히는군요.

 

「존재 자체로 구원을」에서는 신부님이 어느 수도원의 젊은 사제 때 훌륭하신 원장 신부님에 대해 얘기합니다. 한번은 양 신부님이 차를 몰고 나갔다가 오후 3시경 택시와 충돌래ㅆ는데 차를 폐차장으로 보낼 정도였답니다. 경찰서와 폐차장을 돌아 저녁 9시 무렵 수도원으로 들어올 때, 양 신부님은 원장 신부님의 말씀을 이렇게 상상했습니다. “니가 도대체 인간이냐? 그 차 뽑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책임질 거야? 내일부터 수녀원 미사 어떻게 다니라고? 말 좀 해 봐!”

 

그런데 원장 신부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스테파노, 어디 다친 데는 없냐? 아무 걱정하지 마. 차, 그까짓 것 아무것도 아냐! 네가 살아 돌아온 것만 해도 얼마나 다행이냐?” 그러면서 원장 신부님은 배고프겠다며 손수 라면을 끓여주시더랍니다. 소설 《장발장》에 나오는 미리엘 신부님처럼 원장 신부님도 참 가슴이 따뜻하신 분이네요.

 

마지막으로 「추억 속의 울보」라는 강론 하나만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신부님이 아동보육시설 책임자로 있을 때, 그 시설에 한 아이가 들어왔답니다. 사업 실패로 부모는 잠적해버리고 친척들로 나 몰라라 하니, 할 수 없이 아이는 시설로 들어온 것이지요. 그런데 아이는 사흘을 계속 울더랍니다. 신부님이 아이의 울음을 멈춰 보려고 별의별 방법을 다 써보았지만, 소용이 없더라나요. 결국 아이는 제풀에 지쳐 사흘째 되는 날 울음을 멈추었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성인이 된 그 친구가 찾아왔더랍니다. 직장도 있고 열심히 사는 그 친구가 대견해서, 신부님은 그 친구와 단둘이 마주 앉아 술 한잔을 했답니다. 그때 그 친구가 신부님에게 하는 말,

 

“신부님, 아세요? 제가 사흘 내리 울 때 옆에 계셔 준 것 평생 잊지 못해요. 제게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지 몰라요. 부모님은 아무도 모르게 사라지고, 친척들도 다들 절 나 몰라라 하고, 다들 날 버렸는데, 다들 그렇게 절 내쳤는데, 그래서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았는데... 그때 신부님이 그냥 그렇게 옆에 계셔주셨잖아요.”

 

그렇군요. 옆에 그냥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되는군요. 그래서 신부님은 힘든 순간 함께 걸어 주는 것, 손 한 번 잡아 주는 것, 같이 눈물 흘려 주는 것, 그것이 사랑 중의 사랑이요, 구원 중의 구원이라고 합니다. 이 말씀을 들으니, 돌아가신 신영복 선생님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돕는다는 것은 우산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는 것입니다.”

 

양승국 신부님! 비록 얼굴은 뵌 적이 없지만, 이름이 같다는 인연으로 신부님의 강론집 《축복의 달인》 잘 읽었습니다. 늘 사람들에게 영성이 있는 말씀 전하시고, 또 우는 자 옆에 따뜻하게 서주시는 신부님! 저도 신부님 말씀 잘 새겨듣고 ‘양승국’이라는 이름에 누가 되지 않도록 잘 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