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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유지숙의 제자들이 올린 의미 있는 음악회

[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636]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금 <서한범의 우리음악 이야기>는 판소리 <적벽가> 가운데 삼고초려(三顧草廬) 대목을 소개하고 있다. 유비, 관우, 장비 등 3인이 의형제를 맺고, 제갈양의 초려를 찾아가는데, 무인(武人) 장수들의 위엄을 그려내기 위해 웅장한 우조(羽調)로 부른다고 이야기하였다.

 

예부터 사대부들이 <적벽가>를 즐겨온 배경은 호령하듯 높고 크게 질러내는 소리가 중심을 이루기 때문이라는 점, 찾아온 손님들을 세워놓고 낮잠을 즐기고 있는 초려의 젊은 주인, 제갈량(諸葛亮)에게 장비는 불만이 많았다는 점. 제갈량은 형주에서 문인(文人)들과 교류하며 20대 중반부터 재야의 현인(賢人)으로 알려지기 시작하였는데, 그의 자(字)를 따라 와룡선생으로 불렸다는 점을 이야기하였다.

 

이어서 후에 유비가 황제에 오르자, 승상(丞相)에 취임하였고, 유비가 병사함에 그의 장남을 보좌할 고명대신이 되었다는 점, 세간에 구전하는 제갈량의 초인적 지략은 대부분 소설 《삼국지연의》을 따르고 있지만, 유비의 신임을 받아 중용된 것은 소설과 역사서의 기록이 일치한다는 점도 함께 이야기하였다.

 

<적벽가> 이야기 가운데, 이번 주에는 유지숙 명창의 제자들이 스승을 위해 준비한 발표회(2023년 7월 9일 저녁 4시, 서울 강남구의 한국문화의 집(코우스)에서 열린 <청출어람(靑出於藍)>이라는 표제의 음악회 이야기를 소개하기로 한다.

 

최근 들어, 우리 사회 일각에서 일고 있는 바람직한 현상들이 있다면, 그 가운데 하나는 전통문화에 대한 인식이 조금씩 긍정적으로 바뀌며 그 분위기가 조금씩 고조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일까? 국악 관련기관을 포함하여 국공립의 연주단체나, 사설단체, 그리고 개인 연주자들도 전례 없이 고무되어 있는데, 그 가운데 서도소리의 최정상급 여류 명창, 유지숙(劉智淑)도 포함되어 있다.

 

그는 얼마 전, 국립국악원 민속악단 예술감독이 되어 첫 발표회 “꽃신 신고 훨훨”을 성황리에 올려 극찬받기도 했다. 그 행사를 마친 일주일 뒤에 제자들의 음악회가 또다시 화제가 되고 있어 이 난에 소개해 보는 것이다. 이 행사는 유지숙 명창에게 서도소리를 배워 왔거나 현재 배우고 있는 70~80명의 제자가 스승의 60회 생일을 맞이하여 그들의 스승은 물론, 선배 국악인과 애호가들에게 올리는 행사였다.

 

이날, 그들이 발표한 악곡들은 서도소리의 대표적인 수심가와 엮음 수심가를 비롯하여 산염불과 자진염불, 긴아리, 자진아리, 난봉가류, 아리랑 류, 배치기 등등, 스승을 통해 익히고 배운 서도지방의 좌창, 입창, 민요, 놀이요 등을 망라한 소리들이었다.

 

 

제자들의 소리판은 각각의 서도소리가 지닌 특징적인 표현이나 강약, 시김새 등을 제대로 잘 배웠다는 점을 확인시켜 주었다. 특히 곡선(曲線)의 자연스러운 연결이나 호흡의 처리는 스승 유지숙 명창을 그대로 빼닮았다는 평가를 받았는데, 객석을 메운 참석자들은 기립박수로 이들을 환호해 주었다.

 

특히 이나라, 장효선, 김유리, 류지선, 김무빈, 김초아, 박지현, 최민정, 등 큰 제자들의 소리는 유지숙의 분위기가 그대로 녹아 있어 많은 박수를 받았다. 박세음 외의 산타령도 일품이었고. 야월 선유가 외에 2곡을 불러 준 조윤희 외 4명의 소리도, 수준이 높았고, 개성난봉가 외 2곡을 부른 이서현 외 6명의 소리도 많은 박수를 받았다. 또한 영천아리랑 외 은성과 해주 아리랑을 부른 전옥희ㆍ김진숙 등 15명의 소리도 박수 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그런데도 이날의 결정적 순서는 오현승 외 15명의 제자가 열연한 <항두계놀이>의 재현이 아닐까 한다.

 

 

항두계놀이란 어떤 놀이인가?

고려시대에는 불사(佛祀)조직이었다고 전해오나, 조선시대에는 상부상조(相扶相助)를 목적으로 조직화한 일종의 공동 노동 조직체, 곧 계(契)의 일종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그래서 마을의 구성원들이 농사일을 함께 하면서 소리도 곁들여 가며 연희화한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

 

이 놀이는 월남해 온 김정연이나 오복녀와 같은 명창들이 고향에서 김칠성으로부터 익힌 놀이를 지켜가기 위해 서울을 중심으로 전승활동을 펼쳐왔는데, 그것이 오늘날까지 전승되어 오는 것이다. 이를 항두계놀이, 향도계놀이, 또는 향두계놀이 등등으로 부르고 있으나, 과거 이 분야의 원로들은 이를 <항두계놀이>로 불렀다.

 

 

이 놀이가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966년부터 수차례에 걸쳐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 출연하면서부터이나, 당시에는 단체의 규모나 출연자의 수가 열세여서 주목을 받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다가 몇 년 전, 단양 대회에서 이북 5도(평안남도) 대표팀으로 출전하여 대통령상을 수상하게 된 이후, 그 작품성이나 전통성을 크게 인정받게 된 것이다. 이 놀이는 씨앗받이, 씨앗뿌리기, 모심기, 김매기, 계놀이(契遊), 추수와 방아 찧기 등, 전체가 6경으로 구성되는데, 각 각의 경에는 노래와 춤, 대사와 연희 등 북한지역의 농촌 문화와 함께 평안도 언어를 비롯한 생활이나 놀이, 음악 등 고유한 문화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어 그 값어치가 높다고 보는 것이다.

 

<항두계놀이 보존회>에 의해 겨우 명맥을 유지해 오던 이 놀이가 그 정통성을 인정받아 지난 2010년 평안남도 무형문화재로 지정이 되면서 그 보존이 다소 활성화하고 있다. 그 역사가 두레 문화에 뿌리를 두고 있어서 그 유래가 오래되었다는 사실은 의심할 여지가 없을 것이다.(다음 주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