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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 변호사의 세상바라기

신영복 선생의 “함께 맞는 비”

노회찬이 꼽은 ‘내 인생의 한마디’
[양승국 변호사의 세상 바라기 233]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노회찬 평전>을 보니, 노회찬이 꼽은 ‘내 인생의 한마디’는 신영복 선생이 말한 ‘함께 맞는 비’네요. 저자 이광호는 이를 얘기하면서 아래와 같이 말을 이어갑니다.

 

“그는 비가 내리는 현장을 떠난 적이 없었다. 표현에는 차이가 있지만 대부분 정치인이 입에 달고 다니는 민중성(서민을 위한 정치)과 ‘골방 사회주의자’들의 급진성은 실천과 동떨어져 있다는 점에서 닮아있다. 민중성과 급진성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필수적인 ‘현실성과 현장성’은 노회찬이 가장 그다울 수 있었던 특성이었고, 노회찬 정치의 ‘발’에 해당되는 가치였다.”

 

그렇지요. 노회찬은 이념에만 몰두하고 투쟁만 외치는 차가운 사회주의자들과 달리 현장으로 달려가는 정치인이었습니다. 우산을 왜 안 쓰느냐고 훈수만 하는 정치인이 아니라, 또 단지 우산만 들어주고 끝나는 정치인이 아니라, 그들의 아픔에 공감하고 눈물 흘리며 함께 비를 맞는 정치인입니다. 그런 정치인이기에 신영복 선생의 ‘함께 맞는 비’를 ‘내 인생의 한마디’로 꼽은 것으로 생각합니다. 회찬이가 ‘함께 맞는 비’를 ‘내 인생의 한마디’로 꼽았다니 저는 무척 반가웠습니다. 저도 이 말을 좋아할 뿐만 아니라, 아예 신영복 선생한테 이 글을 직접 받기까지 하였습니다. 신영복 선생이 직접 이 글을 써서 저에게 주셨거든요.

 

 

그러면 ‘어떻게 신영복 선생이 저한테까지 이런 글을 직접 써주겠냐?’라고 의아해하실 분도 있겠습니다. 제가 10년 전에 성공회대 인문학습원에서 하는 ‘CEO와 함께 하는 인문공부’ 11기를 다녔는데, 그때 신영복 선생이 인문학습원의 원장이셨습니다. 당시 성공회대 인문학습원을 다니면서 다양한 인문공부를 할 수 있었고, 또 신영복 선생을 옆에서 지켜보고 말씀을 들을 수 있어서, 제게는 참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당시 저는 신영복 선생의 여러 저서를 감명 깊게 읽었던 차에, 선생이 원장으로 있는 인문학습원이 있다는 것을 알고 망설이지 않고 등록하였었지요. 보통 책을 감명 깊게 읽고 저자를 직접 만났을 때 오히려 실망하는 수도 있는데, 신영복 선생은 직접 만나보니 책에서 본 감동이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았습니다.

 

신영복 선생은 역대 기수마다 개근한 수료생에게는 수료생이 원하는 자신의 글귀를 직접 써서 선물해주셨습니다. 그때 저는 선생님에게 ‘함께 맞는 비’를 써달라고 하였습니다. 선생은 단순히 이 글귀뿐 아니라 옆에 우산도 그려주셨고, 큰 글씨의 ‘함께 맞는 비’ 밑에는 ‘돕는다는 것은 우산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는 것입니다’라고 작은 글씨를 더불어 써주셨습니다. 저는 선생이 써주신 것을 표구하여 제 사무실 벽에 걸어두고 출근할 때마다 바라봅니다.

 

이제 회찬이가 ‘함께 맞는 비’가 자기 인생의 한마디였다고 하니, 앞으로는 ‘함께 맞는 비’를 바라볼 때마다 회찬이도 같이 떠올릴 수 있겠네요. 그리고 《노회찬 평전》에는 신영복 선생의 또 다른 유명한 말 ‘머리에서 심장으로의 긴 여행’도 나옵니다. 저자 이광호 씨는 회찬이가 참당암에서 결의를 다지고 영등포청소년직업학교에 입학한 것을 ‘머리에서 심장으로의 긴 여행’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머리에서 심장까지의 거리는 얼마 안 되는 것 같지만, 보통 머리로만 이해하는 것을 가슴으로 품어 들이고 함께 나누는 데에는 시간이 꽤 걸리기에 ‘긴 여행’이라고 한 것입니다.

 

많은 운동권 사람이 단지 머리에서만 놀다가 그치는 경우가 많지요. 그러나 노회찬은 머리에서 심장으로의 긴 여행을 하였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직업학교를 졸업한 뒤 직접 노동현장에 뛰어들어 노동자들과 함께 웃고 함께 아파하다가 감옥까지 갔습니다. 그러니까 머리에서 심장으로 다시 심장에서 발까지 여행한 것이라 하겠습니다.

 

이제 그렇게 열심히 현장을 뛰던 노회찬의 발은 멈췄습니다. 아니 지상에서의 발은 멈췄지만, 하늘나라에서도 회찬이는 열심히 뛸 것으로 생각합니다. 비를 함께 맞는 정치인! 요즘같이 회칠한 무덤 같은 정치인만 득시글한 정치 세계에서 노회찬이 더욱 그리워지는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