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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분, 선비는 지조를 닦아야 하느니

김리박, <갈 같 날>
[겨레문화와 시마을 158]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갈 같 날

 

                                      - 한밝 김리박

 

   낮때와 밤때가 똑 같다 하느니

   오면 앗 읽고 달 돋으면 임 생각고

   고요히 깊어가는 갈 선비는 졸 닦고

 

 

 

 

오늘은 낮과 밤의 길이가 같고 서서히 음의 기운이 커지는 24절기 열여섯째 추분(秋分)이다. 《철종실록》 10년(1859) 9월 6일 기록에 보면 “추분 뒤 자정(子正) 3각(三刻)에 파루(罷漏, 통행금지를 해제하기 위하여 종각의 종을 서른세 번 치던 일)를 치면, 이르지도 늦지도 않아서 딱 중간에 해당하여 중도(中道)에 맞게 될 것 같다.”라는 내용이 보인다. 여기서 중도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바른길’을 말하고 있는데 우리 겨레는 추분이 되면 더도 덜도 치우침이 없는 중용의 도를 생각하려고 했다. 세상일이란 너무 앞서가도 뒤처져도 안 되며, 적절한 때와 적절한 자리를 찾을 줄 아는 것이 슬기로운 삶임을 추분은 깨우쳐 준다.

 

또 추분 무렵이 되면 들판의 익어가는 수수와 조, 벼들은 뜨거운 햇볕, 천둥과 큰비의 나날을 견뎌 저마다 겸손의 고개를 숙인다. 내공을 쌓은 사람이 머리가 무거워져 고개를 숙이는 것과 벼가 수많은 비바람의 세월을 견뎌 머리가 수그러드는 것은 같은 이치일 것이다. 그리고 그런 벼에서는 향[香]이 우러나고 사람에게서도 내공의 향기가 피어오름을 알 수가 있다.

 

여기서 우리는 일본 교토에서 토박이말로 시조를 쓰는 한밝 김리박 선생의 <갈 같 날>이란 시조를 읽는다. 여기서 ‘갈 같 날’은 추분(秋分)을 가리키는 토박이말이며, ‘앗’은 책, ‘갈’은 가을, ‘졸’은 지조(志操)를 뜻한다. 조금 쉽게 풀어본다면 “추분은 낮과 밤이 똑같다고 하느니 / 추분 오면 책 읽고, 달 돋으면 임 생각나는 때라 / 고요히 깊어 가는 가을, 선비는 지조를 닦아라.”라고 할 수 있겠다. 김리박 선생은 추분을 맞아 선비는 중용을 찾고, 내공을 다지며 지조를 닦이야 한다고 조용히 이른다.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김영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