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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도시대의 남색(男色) 엿볼 수 있는 책 나와

에도시대 인기작가 이하라 사이카쿠 작품 《남색대감》
[맛있는 일본이야기 697]

[우리문화신문= 이윤옥 기자] “대체로 여자의 마음을 비유하자면, 꽃은 피지만 덩굴이 뒤틀린 등나무와 같다. 소년은 가시가 있지만 처음 핀 매화꽃처럼 형언할 수 없는 깊은 향기가 있다. 그러므로 이런 기준으로 판단한다면 여자를 버리고 남자에게 가야 할 것이다. 남색도(男色道)의 심오함을 홍법대사(弘法大師, 774-835)가 널리 퍼트리지 않은 것은 인간의 씨가 마르는 것을 애석하게 여겨 말세의 남색을 내다보셨기 때문이다. 한창때는 목숨을 걸어야 한다. 어찌하여 《호색일대남(好色一代男)》의 남자주인공은 많은 금과 은을 여러 여자에게 써 버렸을까? 진정한 유흥은 남색(男色)뿐이다. 다양한 남색을 이 책 《남색대감(男色大鑑)》에 빠짐없이 기록하기 위해서 나니와만(難波灣)의 해초를 채취하듯 많은 소재의 글을 수집하였다” -제1권 1화 가운데-

 

 

이는 이하라 사이카쿠의 저서인 《남색대감(男色大鑑)》의 제1권 1화 끝에 나오는 남색(男色) 예찬(?) 글의 일부다. 이하라 사이카쿠(井原西鶴, 1642-1693)는 《남색대감(男色大鑑)》 외에도 《호색일대남(好色一代男)》 등을 써서 에도시대(1603-1868)의 인기도서 작가로 등극한 인물이다.

 

《남색대감》은 불가(佛家)나 무가(武家)사회에서 정당한 애욕으로서 용인되었던 남색을 주제로 한 소설로 이 책은 지난 8월 31일, 한국어판 번역본이 지식을 만드는 지식(지만지) 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 책을 쓴 사람들은 한국외대에서 일본고전문학을 연구ㆍ강의하는 교강사들의 모임인 <일본고전명저독회(지도교수 문명재)>에서 펴낸 것으로 모두 8권 40화 가운데 이번에 펴낸 무사편(武士編)에는 제1권부터 제4권까지의 전반부 20화를 담았다. 아울러 원전의 삽화 20컷과 대표 역자인 문명재 교수의 논문 <일본 고전으로 본 남색(男色)과 지고(稚兒)>를 부록으로 실어 한국인 독자의 작품 이해를 돕고 있다.

 

“어느 때는 흐트러진 채 잠들어 있으면 베개를 고쳐 베어 주시고 내 벌어진 가슴을 속에 입은 흰 고소데(小袖)로 가려 주셨다. 또 바람이 불면 감기라도 걸릴세라 걱정하시는 마음 씀씀이가 꿈결에서도 느껴져 분에 넘치는 사랑이 두렵기도 했다. 잠에서 깨면 ‘우리 둘 말고는 듣는 이도 없다’ 하시며 집안의 대사, 큰 도련님에게도 말씀하시지 않은 일들까지 들려주셨다. 또한 서로가 푸른 소나무처럼 변치 말자시며 내 옆얼굴에 난, 남들이 알아채지 못하는 작은 사마귀까지도 신경이 쓰이신다며 손수 솔잎 바늘로 떼어 주셨다. 이래저래 감사한 일만 가득한 세월을 살아왔다. 이 은혜, 지금이라도 영주님께 무슨 일이 생긴다면 세상이 금지한 일인 걸 알지만 주인님을 따라 깨끗이 죽으려 마음먹고 있었다.” -제2권 1화 가운데-

 

이는 제2권 1화 가운데 영주(領主)와 남색 대상인 미소년(가쓰야)의 사랑을 절절하게 묘사한 대목이다. 그러나 남색이든 여색이든 간에 달콤한 사랑은 그리 영속되는 것은 아닌 듯, 영주는 또 다른 남색 대상인 미소년에게 마음을 주고 만다.

 

 

“내 꽃다운 자태, 지금이 절정이라 조금은 자만했는데 분하구나. 지난달 초순부터 지가와 모리노조(千川森之林丞)에게 주인님의 마음이 옮겨 가시니, 세상만사 믿을 게 없어 늦가을비 내리는 10월 3일에 자결하리라 마음먹었다.” -제2권 1화 가운데 -

 

위 내용은 ‘영원히 유지 될 것 같던 관계’가 영주님의 배신으로 깨어진 것을 안 첫째 애인(미소년)의 독백이다. 남색 관계에서도 사랑의 배신은 흔하다. 그러나 미소년은 자결하지 않는다. 자결하지 않는 또 다른 복마전으로 소설은 흥미를 더한다. 

 

이번에 한국어 번역본으로 펴낸 《남색대감(男色大鑑)》은 말 그대로 ‘남자가 남자를 성의 대상으로 삼은 것’으로 작가인 이하라 사이카쿠의 출세작인 《호색일대남(好色一代男)》이 ‘남자가 여자를 성의 대상으로 삼은 것’, 곧 호색(好色) 이야기에서 남색(男色) 이야기로 작가의 관심과 주제가 확장되고 있다는 평을 받는 작품이다.

 

일본의 남색에 관한 역사는 《일본서기》(720) 기록에서 엿볼 수 있을 만큼 그 역사가 길다. 이러한 남색의 역사가 처음부터 ‘수용’ 된 상황은 아니었다. 《왕생요집(往生要集), 승려 겐신 지음, 서기 985년》 의 경우 남색은 경계의 대상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책에 보면 당시 남색 관계를 가진 자가 사후에 가는 곳은 다고뇌처(多苦腦處)라는 지옥으로 이곳은 불꽃에 타는 남자의 몸을 안고 온몸이 녹아서 죽게되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그러나 에도시대로 들어서면 상황은 달라진다. 에도시대는 그야말로 색(色)과 관련 한 자유분방한 시대였음을 《남색대감(男色大鑑)》 같은 책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이번에 한국외대 <일본고전명저독회>에서 펴낸 《남색대감(男色大鑑)》은 혹독한 ‘코로나19’로 모든 모임이 통제된 가운데 매달 비대면 모임을 대신해 가며 회원 각자가 맡은 부분의 번역을 발표하여 최종 마무리한 작품이다. 기자 역시 이 모임의 회원으로 그동안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참여하여 에도시대의 ‘남색’에 관한 공부를 해보는 기회를 가졌다.

 

 

<일본고전명저독회>에서는 이번에 출간한 《남색대감(男色大鑑)》 이전에 이하라 사이카쿠의 작품으로 《사이카쿠의 여러 지방이야기(西鶴諸国ばなし)》(2021. 4)를 펴낸 바 있다. 이 책은 ‘일본판 전설의 고향’으로 등장인물은 당시의 중심 계층이던 무사와 상인을 비롯해 선인(仙人), 덴구(天狗)와 같은 비현실 세계의 존재까지 다양한 계층의 삶을 그린 작품이다.

 

또한 <일본고전명저독회>에서는 한국의 혹부리영감 이야기 등과 비슷한 설화가 담긴 일본 중세 고전 《우지습유모노가타리(宇治拾遺物語)》 한국어 번역본(2019. 1)도 펴내는 등 일본의 고전문학공부를 통한 한국어 번역본을 꾸준히 내고 있다.

 

《남색대감(男色大鑑)》, 지식을 만드는 지식(지만지) 출판사, 2023, 24,8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