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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림살이

‘무기인야(無棄人也)’, 버릴 사람은 없다

‘사자성어’(四字成語)로 보는 세종의 사상 8

[우리문화신문=김광옥 수원대 명예교수]  

 

사람 찾기와 인재 살리기

 

세종의 인재에 관한 명제는 사람 찾기와 사람의 재능 살리기이다. 다시 말해 재능 있는 사람을 찾아 그 재능을 충분히 발휘하게 해주는 정치를 펴려고 한다.

 

가) 의부(절개가 굳고 의로운 여자)ㆍ절부(절개가 굳은 부인)ㆍ효자ㆍ순손(조부모를 잘 받들어 모시는 손자)은 의리상 표창해야 할 것이니, 널리 방문하여 사실을 자세히 적어 아뢰어 표창하게 할 것이다. (《세종실록》 2/1/21)

 

나) 재주와 도덕을 가지고도 초야에 숨어서 세상에 널리 알려짐을 구하지 않는 선비는, 내가 장차 자문하여 직무를 맡길 것이니, 감사가 널리 구하여, 이름을 자세히 적어서 아뢸 것이다. (《세종실록》 즉위년 11/3)

 

세종은 즉위하자 효(孝)를 행한 사람과 함께 인재 찾기부터 시작하였다. 또한 나라를 위해 희생한 사람의 자손과 재주 있는 사람을 찾으라 했다. 어짐을 베푸는 정치의 시작과 끝은 사람으로부터 나오는 이치에 따른 것이다. 이런 신념은 ‘천하에 버릴 사람[재목]은 없다’(《세종실록》 5/5/17)는 믿음에 근거한다.

 

천하무기인야 : (박연이 아뢰다) 옛날의 제왕은 모두 시각장애인을 악사로 삼아서 현송(絃誦, 거문고를 타면서 시(詩)를 읊음)의 임무를 맡겼으니, 그들은 눈이 없어도 소리를 살피기 때문이며, 또 세상에 버릴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세종실록》 13/12/25) *천하무기인야(天下無棄人也) : 세상에 버릴 사람은 없다.

 

 

인재에 대한 기본 사상은 세상 모든 사람은 자기의 몫이 있고 또 할 일이 있다. 시각장애인은 음악을 잘하는 재능이 있는 것이다.

 

세종은 사람을 고르는 데 있어서 개인의 판단에 의지하지 않으려 했다. 즉위하자 스스로 사람을 알지 못함을 고백하고 인사에 대해 의논할 것이라고 밝힌다.

 

인물 고르기 : 임금이 하연(河演)에게 이르기를, ‘내가 인물을 잘 알지 못하니, 좌의정ㆍ우의정과 이조ㆍ병조의 당상관(堂上官)과 함께 의논하여 벼슬을 제수하려고 한다.’ (《세종실록》 즉위년/8/12)

 

이 말에 하연은 “이제 전하께서 처음으로 정치를 하심에, 대신과 함께 의논하옵심은 매우 마땅하옵니다.” 하였다. 그 임금에 그 신하의 응답이다. 22살의 임금은 ‘잘 모르니 의논하자’라고 한다. 변계량은 세종의 학문은 이미 대학자라고 말하고, 부왕도 정치의 큰 줄거리를 안다고 인정한다. 세종은 처음 출발을 신하들과 함께한다는 겸양 속에 아직 부왕의 신하들과 어울려 나가야 한다는 점진적 계획을 표방하고 있다.

 

세종은 선비 뽑는 일의 다양성을 제기했다. 더불어 과거라는 제도에 얽매이지 않고 천거를 통하여서도 뽑는데 이는 새로운 정치로 사회 풍속을 바르게 하는 기풍을 기를 것으로 기대하는 마음에서다. ‘우리나라에는 과거로 선비를 뽑을 뿐이고 덕행 있는 사람을 천거하는 법이 없어서 성질이 아주 들뜨고 방정 맞는 사람을 뽑는 풍습이 계속 이루어지게 놔둘 수는 없다’(《세종실록》 20/3/12)고 생각했다.

 

인재 : ‘인재는 몸가짐을 바르고 점잖게 하여 절조와 염치가 있는 사람과, 마음에 작정한 것이 강개(慷慨)하며 바른말로 지극히 간하는 사람과, 선비로서 우뚝한 행실이 고을 안에 알려지고 특이한 재능과 솜씨가 남에게 믿음을 받는 사람’이다. ...대저 열 집이 사는 고을에도 반드시 충직하고 신실한 사람이 있는 것이거늘, 하물며 온 나라 안에 어찌 사람 없음을 걱정하랴. 다만 한스러운 것은 구하기를 정성껏 못하고 천거하기를 조심하지 않는 것이니, 너희들이 어진 이를 떨쳐 일어나도록 하려는 나의 뜻을 능히 받아서, 백성을 교화하고 풍속을 이루게 하라, 하였다 (《세종실록》 20/3/12)

 

특지, 문음, 취재, 보거 : 그러나 지금 제수(除授)하는 법을 살펴보면, 특지(特旨, 임금의 특별한 명령)라든가, 문음(門蔭, 특별 채용)이라든가, 취재(取才, 재주를 시험해 뽑음)라든가, 보거(保擧, 고위직 관원이 담당 관아의 관원 가운데 자기가 책임지고 임금에게 천거하는 일)라든가 하다.(세종 6/2/17)

 

인재를 과거만이 아닌 인성을 보는 방법으로 연구하게 하고 이에 경중(京中, 서울의 안)에서는 한성부가, 외방(서울 바깥)에서는 감사와 수령이 항상 찾아서 직품의 유무, 수효가 많고 적은 것에도 구애되지 말고 그 사람의 행적을 갖추어서 모두 나라에 신고하라(《세종실록》 20/3/12)고 하였다. 세종은 신하들의 반대에도 재주 있는 사람을 뽑으려 여러 가지 방법을 썼다. 이는 사사로이 운영하면 파국이지만 세종은 정에 흐르지 않을 신념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세종은 신하들과 더불어 인재에 대한 여러 말을 남긴다.

 

· 정치하는 요체는 인재를 얻는 것이 가장 우선해서 처리해야 하는 것이다.(《세종실록》 5/11/25)

 

· 재능 있는 사람 : 어질고 재능이 있으며 재주와 덕행이 있는 자는 차례 없이 가려 뽑아 공평하고 진실하게 사람을 썼다. (《세종실록》 32/2/22) 。

 

· 인재 발탁 : 만일 쓸 만한 인재가 있을 때는 승진하는 차례를 무시하고 발탁하여 채용하기로 함이 어떠한가. (《세종실록》 12/윤 12/27)

 

인재의 중요성과 공평하게 사람 쓰기다. 승진의 경우 차례를 어기는 것에 대해 허조(許稠)가 대답하기를, “옛적에 소동파(蘇東坡)는 문림랑(文林郞, 종9품)으로 한림학사(翰林學士)와 예부상서(禮部尙書)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관계가 관직과는 상관이 없었던 법입니다.”라고 답한다.

 

인재 고르기와 더불어 인재의 교육과 양성은 이미 세종 2년(1420)에 집현전을 설치하여 집단지성을 기르는 지식경영을 시작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