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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진양 장단은 김성옥 처음 짜고 송흥록 완성

[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674]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진양조와 중몰이의 장단형에 이어, 지난주에는 중중몰이, 자진몰이, 휘몰이 장단형들을 소개하였다. 각기 다른 4각(刻)이 1장단을 구성하고 있다는 점은 앞의 진양이나 중몰이와 같다는 점, <각>이라 함은 장단형을 가리키는 또 다른 이름인데, 판소리 장단에서는 큰 형태의 개념보다는 작은 단위, 정확하게 말해, 부분적인 장단형을 의미하는 단위로 쓰이고 있다고 이야기하였다.

 

이번 주는 진양 장단에는 6박형과 24박형, 두 종류가 쓰이고 있는데, 이와 관련된 이야기들을 이어가 보기로 한다. 이미 이야기했던 것처럼 진양 1장단을 6박으로 보는 전문가들이 있는가 하면, 한 장단을 24박으로 인식하는 쪽도 있다. 박의 수(數)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각각의 장단형이 일정하게 반복하느냐 아니면, 각기 다른 형태로 짜여 있느냐 하는 점을 더더욱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글쓴이는 24박이 보다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 까닭은 작은 장단형(6박) 4개의 복합구성에서 제1각은 밀어주는 장단이어서 <미는 각>이라 부르고, 제2각은 달아 간다는 의미에서 <다는 각>, 제3각은 맺어 준다는 의미로 <맺는 각>, 그리고 마지막 제4각은 맺음을 풀어준다는 의미에서 <푸는 각>으로 구분하고 있다.

 

그것은 1~4각 모두를 하나의 형태로, 다시 말해 매 장단 동일한 형태의 반복형으로 치지 않고, 잔가락의 활용이라든가, 강약, 또는 악센트의 정도, 등등이 다르게 구성되어 있다는 점에서 6박형보다는 24박형이 더욱 설득력이 강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간혹, 같은 하나의 장단형(6박 구성)만으로 북을 치는 고수들이 있다면, <밀고-달고-맺고-푼다>라는 개념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궁금하다.

 

 

진양 뿐이 아니다. 중몰이 장단에 있어서도 맺는 각의 제9박을 어떻게 처리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 관심 대목이다. 만일 이 부분을 매 장단 강하게 쳐서 맺으려는 고수들이 있다면, 이들은 아직 명고수 반열에 오르지 못한 고수이지 않을까?

 

앞에서 판소리나 민요, 또는 기악의 산조음악에서 제일 느린 형태의 장단을 <진양 장단>이라 소개하였는데, 과연 이 진양 장단의 활용은 언제부터 누가 쓰기 시작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는 것일까?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은 그렇게 간단해 보이지 않는다.

 

알려지기로는 동편제 소리의 대가, 송흥록이 그의 매부인 중고제의 김성옥 명창이 부르는 진양조를 듣고 그것을 여러 해 연습해서 완성했다는 이야기가 전해 온다. 그러나 보다 더 확실한 검증은 필요하다.

 

1939년, 정노식이 쓰고, 조선일보사가 발행한 《조선창극사》에는 진양장단의 생성배경을 어렴풋이 짚어 볼 수 있는 의미있는 이야기 한 토막이 소개되어 있다. 그 내용은 동편제 소리의 가왕, 송흥록과 관련한 이야기여서 더더욱 흥미를 끌고 있다. 여기에 그 이야기 일부를 소개해 본다.

 

 

“송흥록은 동편제 소리의 거목으로 전라북도 낭원의 운봉 비전리 출생이다.

조선조 순조(재위 1800-1834)~헌종(1834~1849), 철종 1849~1863)의 3조를 거친 인물로 모든 노래, 특히 판소리를 집대성한 공로로 보거나 기량의 특출한 점으로 보아 극창(劇唱)의 중시조(中始祖)로 보인다.

 

- (가운데 줄임) -

 

그의 매부 김성옥으로부터 진양조를 처음 듣고, 그것을 여러 해 갈고 닦아 그 완성이 극치에 이르렀으며 우조, 계면, 기타 모든 것이 신적인 영역에 이르렀다. 특히 진양조 완성에 관해서는 맹렬(猛烈)이라는 여인과의 재미있는 연애담이 소개되어 있다.”

 

그 연애담의 내용 일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송흥록이 처음에 소리 공부를 마치고 세상에 나와 보니, 과연 그의 명성이 원근에 널리 퍼져 있는 것이었다. 하루는 대구 감영(監營)에 초대되어 소리를 하게 되었다. 그가 소리를 끝내고 나니, 과연 보기 드문 명창이라는 칭찬이 여기저기에서 넘쳐 나오는 것이었다. 그런데 정작, 인물 좋고 가무(歌舞)에 뛰어난 일등 명기(名技), 맹렬(猛烈)의 입에서는 이렇다, 저렇다 한 마디 잘잘못의 평가가 없었던 것이다.

 

송흥록은 그다음 날, 일찍이 맹렬의 집을 찾아가, 그 연유를 묻는 것이었다.

맹렬은 웃으면서 ”그대의 소리가 명창은 명창이로되, 아직도 내가 듣기엔 미진한 대목이 있다. 아마도 피를 3동이는 더 토해내야 비로서 참 명창이 될 것 같소이다.”

 

이러한 평가를 받게 된, 송흥록은 콧대가 납작해져서 곧바로 고향 땅으로 돌아와 그곳 폭포 밑에서 다시 소리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는데, 목을 얻으려고 소리를 지르지만, 며칠이 지났음에도 아주 목이 잠겨 터지지 않는 것이었다.(다음 주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