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2025년 현재 원자력 발전은 세계 전력의 약 10%를 공급하고 있는데, 30개 나라에서 약 420기의 원자로가 가동되고 있다. 원전은 양면성을 가지고 있는 에너지원이다. 원전은 이산화탄소를 발생시키지 않기 때문에 친환경적인 에너지원으로 환영받기도 하지만, 사고가 나면 매우 치명적이기 때문에 배척을 받기도 한다.
원전 찬성론자들은 원전이 과학 기술적으로 안전하다고 주장한다. 그렇지만 1979년 미국의 스리마일 원전 사고, 1986년 우크라이나의 체르노빌 원전 사고, 2011년 일본의 후쿠시마의 원전 사고를 기억하는 필자로서는 원전이 안전하다고 믿을 수가 없다. 우리나라는 2025년 현재 모두 26기의 원자로 가운데 21기가 운영 중인데, 국토가 좁아서 원전 밀도(단위 국토면적당 원자력발전 설비 용량)가 세계 제1위로 높아서 불안감을 떨쳐 버리기가 어렵다. 만에 하나라도 원전 사고가 나면 수백만 명이 피해를 볼 것이 너무나도 분명하기 때문이다.
사고 위험성 말고도 원전이 환영받지 못하는 이유는 핵폐기물 때문이다. 원자력 발전은 쉽게 말하면 원자폭탄을 매우 느리게 폭발시키면서 열에너지를 얻는 발전 방식이다. 원자폭탄의 원료인 우라늄이 원자력 발전소의 원료로도 사용된다. 우라늄이 핵분열 반응을 일으키면 많은 열이 나오는 동시에 강력하고 인체에 해로운 방사선이 나온다.
원자력 발전소의 원자로에 연료봉을 공급한 뒤 1년 반이 지나면 연료 효율이 떨어지므로 1/3씩 연료봉을 교체하여 4.5년이 지나면 연료봉 전체가 교체된다. 원자로에서 나오는 핵폐기물은 매우 위험하다. 핵폐기물에서 나오는 강력한 방사선은 세포를 파괴하고 DNA를 손상시킨다. 핵폐기물에서 나오는 방사선을 쐬면 돌연변이ㆍ암ㆍ과다출혈 등을 초래하고 생명을 잃게 될 수도 있다.
핵폐기물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플루토늄이다. 플루토늄의 반감기는 24,100년이다. 플루토늄은 반감기가 4번 지나서 10만 년이 지나야 인체에 해롭지 않은 수준으로 방사능이 줄어든다. 자손만대까지 해롭다는 말은 플루토늄에 딱 맞는 표현이다.
방사선이 반드시 해로운 것만은 아니다. 우리는 방사선을 이용하여 질병을 진단하고 치료하는데, 도움을 받고 있다. 병원에서 사용하는 X-ray 촬영기, CT 촬영기에서도 방사선이 나오지만, 인체에 해롭지 않은 약한 수준이다. X선 촬영을 자주 하더라도 암이 발생할 위험은 없다.
방사선의 세기에 따라 핵폐기물을 두 가지로 분류하고 있다. 첫째로 ‘중저준위 방사성 폐기물’은 원자력 발전소나 병원, 공항의 검색대, 산업체 등 방사능 기기를 사용하는 작업장에서 폐기한 작업복, 장갑, 부품 등 방사능 농도가 비교적 낮은 폐기물을 말한다. 2015년부터 운영되고 있는 경주 방폐장은 국내에 하나뿐인 중저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리장이다.
둘째로 원자로에서 나오는 핵폐기물을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이라고 부른다. 고준위 폐기물은 매우 위험하며 적절히 처리해야 한다. 원자로에서 나오는 핵폐기물은 현재 어디에서 처리될까? 믿기지 않겠지만 우리나라에는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을 처리하는 시설이 아직 없다. 왜 그런가? 고준위 핵폐기물을 영구 보관하는 저장소가 필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한다. 그러나 누구도 내 집 가까이에 영구 저장소를 두고 싶어 하지 않는다.
원전 6기를 운영하는 핀란드는 세계 처음으로 2016년에, 수도인 헬싱키에서 250km 떨어진 해안 지역 올킬루오토 섬의 온칼로에서 핵폐기물 영구 저장소 공사를 시작하였다. 온칼로 영구 저장소는 고준위 핵폐기물을 420m 깊이의 화강암 암반 속에 묻는다. 사용이 끝나면 터널 전체를 콘크리트로 메우고 10만 년 동안 봉인할 것이다. 온칼로 영구 저장소는 올해에 운영을 시작할 계획이다.
중국은 58기의 원자로를 운영 중인데, 핵폐기물 영구 저장소를 북서부 간쑤성 베이산(北山) 지역 고비 사막 지하에 건설하기로 2020년에 결정하였다. 2021년부터 깊이 560m 지하에 연구 시설을 건설하고 현장 실험을 병행하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중국은 2050년까지 영구 저장소를 완공할 계획을 했다. 핀란드와 중국을 제외하고 원전을 운영하는 그 밖의 모든 나라는 핵폐기물을 처리할 영구 저장소의 입지를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지금 대한민국에는 원전이 총 26개다. 26개 원자력 발전소에서 사용후 핵연료(고준위 방사성 폐기물)가 계속 나오고 있는데, 영구 폐기장이 아직 없다. 화장실 없는 아파트라고 말할 수 있다.”
이 말은 기후 전문가인 김성환 국회의원이 2024년 10월 더팩트 언론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영구 저장소가 없는 지금은 핵폐기물을 원전 안에 있는 수조에 임시 보관하고 있다. 그런데 수조의 용량이 꽉 차가고 있어서 문제다. 임시 저장시설은 2031년부터 포화하기 시작할 것이다. 핵폐기물을 영구 보관할 저장소를 선정하는데, 필요한 법이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관리 특별법’(고준위법)이다.
고준위법은 2021년에 국회에서 처리하기로 여야 원내대표 사이에 합의가 있었다. 그러나 원전이 밀집된 부산 지역에서 167개 시민사회단체가 연합하여 고준위법을 맹렬하게 반대했다. 부산 시민들은 영구 저장소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고 임시 저장소를 현재의 원전 바로 옆에 짓기 때문에 반대하였다. 각각의 원전에 임시 저장 시설을 만들면 사실상 영구 저장소로 전환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렇게 되면 부ㆍ울ㆍ경 주민 800만 명은 자손만대로 방사선 위험을 안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고준위법은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2024년 5월에 자동 폐기되었다.

그 뒤 22대 국회가 2024년 9월에 개원하자 여야 의원 5명이 공동으로 고준위법을 상정하였다. 고준위법은 공청회 한번 열지 않고 2025년 2월 27일에 국회를 통과되었다. 이때는 마침 윤 대통령 탄핵으로 온 국민의 관심이 헌법재판소에 쏠려 있어서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은 채 국회를 (무사히?) 통과할 수 있었다. 고준위법은 고준위 방폐물 중간 저장시설과 영구처분 시설의 건설 방안, 유치 지역 지원, 안전 기준 및 부지 선정 절차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환경단체에서는 고준위법은 악법으로서 폐기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대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고준위법은 핵폐기물의 발생을 억제하는 대신 노후 핵발전소의 수명을 연장하고 신규 핵발전소를 건설하여 핵폐기물의 발생을 증가시키는 친원전 정책을 지원한다는 것이다. 둘째, 계속해서 늘어나는 핵폐기물을 현재의 원전 옆에 임시저장소(건식 시설)를 각각 만들어 2050년까지 보관하면 방사능 위험이 분산된다는 것이다.

핵폐기물을 영구 저장할 처리장의 입지를 결정하는 것은 국회의원과 행정가들에게는 골칫거리이며 어려운 과제다. 2025년 2월에 통과된 고준위법은 어려운 과제를 현 정부에서 감당하지 않고, 미래 정부와 미래 세대에게 미루고 있어서 매우 안타깝다.
유럽의 대부분 나라는 재생에너지 중심으로 가고 있다. 우리나라는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윤석열 정부에서 친원전으로 뒤집었다. 2025년 6월 3일은 새 정부의 대통령을 선출하는 선거일이다. 유권자인 국민은 대통령 후보들의 원전 관련 공약을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한다.
자손만대로 영향을 미칠 핵폐기물 문제를 현 정부에서 해결하지 않고 다음 정권으로 미루는 지도자는 비겁하다. 이번 21대 대통령 선거에서 내가 가지고 있는 한 표는 비겁하지 않은 후보에게 주려고 한다. 독자 여러분도 기표소에 들어가기 전에 손말틀(휴대폰)에 저장된 귀여운 손자 손녀 사진을 한 번씩 보고서 투표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