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며칠 뒤 K 교수는 공과대학의 ㅍ 교수와 ㅎ 교수와 함께 점심을 먹으러 미녀식당으로 갔다. 키가 훤칠하고 예쁜 종업원이 손님을 맞고 있었다. 자리를 잡은 뒤, 컵에 물을 따르는 종업원에게 사장님 계시느냐고 물으니 출타중이란다. “아가씨는 여기 종업원이냐?”라고 물으니 인접한 대학의 아르바이트 학생이라고 대답한다. 항공관광과 2학년 학생이라고 한다. 항공관광과란 스튜어디스를 배출하는 학과다. 스튜어디스는 우리나라에서는 매우 인기가 있는 직종이다.
요즘 새로운 추세는 전통적으로 인기가 있던 이공계열보다는 연극영화과, 신문방송과 등 연예계와 언론계에 사람이 몰린다. 탤런트나 영화배우를 모집하면 수천 명이 모여들어 경쟁률이 장난이 아니다. 과거에는 사법고시나 행정고시 등이 인기가 있었지만 이제 세상이 변하였다. 청소년들의 우상인 연예인 되기가 판검사 되기보다 훨씬 더 어렵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미녀를 보러 왔는데 미녀가 없으니 식사하면서 하는 대화가 약간은 김빠진 맥주 같다. 대화의 주제는 남자들의 단골 메뉴인 여자 이야기가 아니고 어쩌다 보니 바둑이야기가 나왔다. ㅍ 교수가 “러시아의 체스 최강자가 컴퓨터와 대결하여 1:1로 비기고 있다”라고 이야기를 꺼내었다. ㅎ 교수가 K 교수에게 물었다. “바둑계의 세계 최강자인 이창호 9단과 컴퓨터가 대결하면 결과가 어떻게 나올까?”
K 교수는 1급 정도의 바둑 실력이었는데 그 자리에 있던 세 사람 가운데서는 가장 강자였다. K 교수는 자신있게 이창호 9단이 이길 것이라고 단언했다. 다른 교수들은 정말 그럴까 반신반의하는 것 같았다. K 교수는 바둑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 놓았다.
바둑은 언제부터 나타났을까? 중국의 요(堯)ㆍ순(舜)임금이 그의 우매한 아들 단주(丹朱)와 상균(商均)의 어리석음을 깨치기 위해 만들었다는 설이 있다. 바둑이 중국에서 발원한 것은 확실하나 언제 그리고 누가 창안하였는지는 전설에 의존하고 있을 뿐이다. 그 전설조차도 사실(史實)을 적은 어떤 정사(正史)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다만 서진(西晉)시대 장화가 만든 백과사전 《박물지(博物誌)》에 `요조위기 단주선지(堯造圍棋丹朱善之)`라는 문구가 나온다. 그러므로 학계에서는 기원전 2천3백 년 요임금이 바둑을 만들어서 아들 단주를 가르쳤다는 요ㆍ순 창시설을 정설로 받아들이고 있다.
(중국에서 발원한 바둑이 우리나라를 거쳐 일본까지 전파되었다. 한동안 일본 바둑이 세계를 제패했는데, 우리나라의 조훈현 9단과 그의 제자인 이창호 9단이 세계 제일의 실력을 보여주었다. 우리나라가 인구는 중국, 일본보다 적지만 머리 좋은 사람이 많은 것 같다. 이창호 9단에 이어 이세돌 9단이 세계 바둑계를 제패하였고, 요즘에는 신진서 9단이 세계 제1위를 지키고 있다.)
K 교수는 유학 시절의 바둑 이야기를 꺼내었다. K 교수가 유학하던 미국 뉴욕주 시러큐스(Syracuse)라는 도시에 서양 사람들이 모이는 바둑 클럽이 있었다. 그 바둑 모임의 회장은 마크 브라운이라는 사람이었는데 철학과 교수였다. 그의 전공은 논리철학이었는데, 그는 무척 논리적인 사람이었다. K 교수가 그 당시에 바둑실력이 3급 정도였고, 브라운 씨가 3점 바둑이었으니까 6급 정도 실력이었을 것이다. 브라운 씨는 시청에서 공무원으로 근무하는 그레이브 할아버지에게서 바둑을 배웠다. 그레이브 할아버지는 20년 전 어떤 일본사람에게서 바둑을 배웠다고 한다.
그런데, 영어로 바둑을 뭐라고 할까? 고(go)라고 표현한다. 아마도 일본에서 바둑을 뜻하는 글자인 기(碁)를 ‘고’라고 발음하는 것을 그대로 영어로 음역한 것 같다. 그런데 그레이브 할아버지는 먼저 바둑을 배웠지만 실력은 10급 정도로 늦게 배운 브라운 씨보다 약했다. K 교수는 그레이브 할아버지와 친해졌는데, 그 할아버지는 시러큐스에서 약 20마일 떨어진 작은 마을에 살면서 차로 출퇴근하고 있었다.
언젠가 그레이브 할아버지 집에 놀러 가서 하룻밤 자고 온 적이 있었다. 한적한 전원 마을에 나무로 지은 근사한 집이었다. 미국의 시골집은 잔디밭도 넓고 집이 매우 크다. 차고도 딸려있고, 지하실도 있고. 그때 그레이브 할아버지는 K 교수에게 자기가 수집한 옛날 장기와 체스를 보여주었다.
장기와 체스의 원형은 원래 인도에서 만들어진 게임인데, 중국으로 건너오면서 장기가 되고 아라비아를 거쳐 서양으로 건너간 것이 체스가 되었다고 한다. 중국 장기를 처음 보았는데 가운데에 강물이 표시된 것이 특징이란다. 장기는 바둑 못지않게 중국에서 인기가 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장기는 노년층에서 인기가 있다. 요즘에는 화투로 하는 고스톱이 더 인기가 있지만 노년층에서는 아직도 장기를 많이 두고, 장기 시합도 있다.

그레이브 할아버지 집에 놀러 갔다가 그날 저녁에 난생처음 체스를 배웠다. 체스에서 말이 진행하는 방법은 장기와 비슷하다. 퀸(Queen)은 장기의 차와 같이 똑바로만 갈 수 있고, 폰(pawn)은 장기의 졸처럼 한 칸씩 전진만 할 수 있고, 킹(King)을 공격하여 잡으면 이기는 것 등등. 그런데 그레이브 할아버지는 체스를 잘 두었다. 시라큐스 인근 3개 도시 대항 체스시합에 출전하여 우승까지 할 정도로 체스를 잘 두었다. 그러나 그레이브 할아버지가 바둑을 배운 이후로는 체스는 재미가 없어 안 두고 바둑만 둔다고 말하였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