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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유현덕의 일편심, 공명의 마음을 움직이다

[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750]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유춘랑 명창이 그의 발표무대에서 독창으로 열연한 서도 좌창, <초로인생(草露人生)>과 관련한 이야기를 하였다,

 

인생의 존재를 풀잎에 맺힌 아침 이슬에 비유할 정도로 짧다는 점을 강조하는 제목인데, “어화 청춘, 소년들아 이내 한 말 들어 보소. 어제 청춘 오날 백발, 그 아니 비통한가! 로 시작하여 진시황제가 장성을 쌓고, 아방궁(阿房宮) 지은 뒤, 불사약 구하러 삼신산(三神山)에 500인 보냈으나 소식조차 돈절(頓絶, 편지나 소식 따위가 딱 끊어짐) 하다는 이야기,「아서라, 초로인생 한번 가면, 만수장림(萬樹長林, 큰숲)의 뜬구름이로다. 살아생전 효도 헐 일, 허면서 잘 살아를 보리~」로 마무리한다는 이야기 등을 덧붙였다.

 

이번 주에는 서도의 대표적인 긴 잡가, <공명가(孔明歌> 이야기가 한다. 긴잡가를 서도지방이나 경기지방에서는 좌창(坐唱)이라고도 하는데, 노래의 특성상 앉아서 부르는 적절한 노래이기 때문으로 보인다. 좌창의 상징이라고 볼 수 있는 가곡이나 가사, 또는 시조, 시창과 같은 노래들은 정좌(正坐)하여 부르기 때문에 손이나 발의 움직임을 불허한다. 민속 성악 가운데서도 앉아서 부르는 좌창이라 하는 노래들은 대부분 감정을 절제하는 노래들이기에 손이나 발과 같은 신체의 움직임을 불허하거나 자제하는 것이다.

 

얼마 전, 유춘랑의 <2025, 서도소리발표회> 당일, 유 명창은 이나라, 장효선, 김유리, 김무빈, 이석필, 윤흥복, 김점례 등등, 젊고 활발한 활동을 하는 소리꾼들을 대동하고 무대에 좌정한 다음, 서도의 대표적인 긴잡가, <공명가(孔明歌)>를 힘차게 불러 객석으로부터 열띤 박수를 받았다. 창자의 좌정 태도에 따라 객석의 분위기가 좌우되는 것은 당연한 결과인데, 이들 신진들의 당당하고도 기품있는 태도에서 이미 객석은 압도를 당하고 있었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서도의 좌창, <공명가>는 중국 촉한(蜀漢)의 명재상이었던 제갈량(諸葛亮)을 주제로 하는 노래다. 제갈량이란 이름에서 제갈(諸葛)은 성(姓)이고, 이름이 량(亮)인데, 그의 별칭인 자(字)가 공명(孔明)이기에 노래의 제목을 <공명가>로 붙인 서도 긴잡가의 대표적인 노래다, ‘공명’이라는 별칭 외에도 ‘와룡’, ‘복룡’으로도 부른다. 서도좌창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공명은 과연 어떤 인물인가?

 

한마디로, 유황숙(유비)을 도와서 촉한을 세우는 데, 큰 공을 세운 일등 공신(功臣)이다. 공명에 관한 이야기는 중국의 고전이나 각종 문헌에 널리 소개되어 있으므로 자세한 첨언은 생략하고, 판소리 「적벽가」에 나오는 유비가 공명을 만나는 대목을 참고해 보는 것으로 대신한다.

 

유비가 어느 날, 공명과 친한 촉한의 서서(徐庶)로부터 “양양성 근처에 기재가 뛰어난 젊은 사람이 살고 있는데, 그는 불러서는 오지 않는 사람이니 직접 찾아가 만나보라”라는 전갈을 받게 된다.

 

이 소식을 듣게 된 유비는 관우와 장비를 데리고 함께 만나러 가지만, 삼고초려(三顧草廬), 곧 저 멀리 풀밭에 있는 오두막집을 세 번이나 찾아가 그것도 반나절이나 기다린 뒤, 처음 만나게 된다. 그가 보통 사람과는 다른 면모를 지니고 있다는 점을 알게 하는 대목은 유비가 공명을 만나 그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아래의 대목에서 확인된다.

 

“지금 삼국이 분분허여 사방은 난신(亂臣), 적자(賊子, 불충하거나 불효한 사람)구름 일 듯 허옵기로, 억조창생이 소연, 십실구공(十室九空-열에 아홉은 비어있는 집)이라. 미약한 우리 한실(漢室), 선생이 아니시면 뉘라 부흥허오리까?”

오열(목메어 욺)한 소리 끝에 흐르나니 눈물이요, 쉬나니 한숨이라.

현덕(유비)의 일편심이 구천에 사무치니 그제야 감탄하고 함루(含淚-눈물을 머금고)허며 공명이 입을 열며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이다.

“천단(淺短-식견이 매우 부족함)한 재주를 버리지 아니 허시니, 현주(賢主-유황숙, 곧 유비)를 도와 견마지력(犬馬之力-개나 말이 주인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과도 같은 충성심)을 다하겠나이다.”

 

성미가 급한 장비는 말할 것도 없고, 관우 역시, “공명이 나이도 어리고 진실한 재주가 없거늘, 지나치게 대접하는 것은 불가하다고 불평이 이어진다. 유비(현덕)가 말하기를 “공명을 얻음이 고기가 물을 얻음과 같으니, 너희(관우와 장비를 말함)는 그런 말을 허지 말라”라고 일침을 놓는 대목도 인상적이다. 여하튼 유현덕이 세 번이나 찾아가 겨우 만날 정도의 인물이니, 그의 존재를 가장 정확하게 믿는 사람이 유비, 유황숙이었던 것이다.

 

서도좌창 <공명가>는 유현덕이 조조의 군사와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공명의 활동을 중심으로 엮은 내용, 곧 제갈량(諸葛亮)이 남병산(南屛山)에 제단을 쌓고, 동남풍이 불기를 기도하는 장면으로부터 공명을 잡으려고 추적하던 오나라의 서성(徐盛)과 정봉(丁奉)의 군대를 격퇴하고, 조자룡(趙子龍)과 함께 돌아가는 대목까지를 엮은 내용이다.

 

가사의 내용도 사실적이며 가락의 전개나 창법, 장단 등등, 각각의 음악적 요소들이 서로 잘 짜여져 있어서 경서도 명창들은 이 노래를 서도의 대표적인 좌창으로 곱는다. (다음 주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