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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 의식"


우리말 낱말을 기원에 따라 나누어 보면 토박이말, 한자말, 서양 외래말이 큰 몫을 이룬다. 이들에 대해 언어 사용자들의 의식을 조사해 보면, 서양 외래말에 가장 높은 가치를 주고, 그 다음 한자말, 토박이말 차례로 가치를 부여하고 있다. 이런 생각은 외래 문물을 떠받드는 풍조에서 나온 것으로서, 결코 바람직한 언어 태도라고 할 수 없겠다. ‘커피숍’에 ‘다방’이 밀려난 지 오래고, 불과 몇 해 만에 ‘웨딩홀’이 ‘예식장’을 몰아냈다. 가게를 ‘개업’하는 이들보다 ‘오픈’하는 이들이 훨씬 많아졌다.

“저렴한 가격에 모시겠습니다” 하면 고상하게 물건을 사고파는 일처럼 생각이 들지만, “싼값에 팝니다, 헐값에 팝니다” 하면 그냥 길거리에서 물건을 떨이하는 것처럼 속되게 들린다고 한다. 이것은 우리의 언어 의식 형편이 어떠한지를 단적으로 보여 준다. 아울러 요즘 신문·방송의 기사, 생활정보, 광고 따위를 살펴보면 ‘저렴하다’란 말이 ‘싸다’라는 말을 밀어내고 있다. 상인들로서는 무조건 손님들의 환심을 살 만한 낱말을 골라 써야 장사가 되니 어쩔 수 없을 터이나, 언론까지 따라가며 부추기는 태도는 문제다.

물건값을 깎는 데도 그렇다. 값을 깎아 준다고 하거나 값을 깎아 달라고 하면 장바닥 분위기로 들리며, 바겐세일하거나 할인판매하는 데서 디스카운트(실제로는 ‘디씨’로 쓰이지만)해야 만족스럽다고 한다.

외래 문물이 들어오면서 거기에 명칭과 개념이 함께 묻어오긴 한다. 그러나 토박이말이 있는데도 한자말이나 외래말을 즐겨 쓰고, 그 말의 가치를 높이 여기는 태도는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토박이말에 자긍심을 가지는 의식 전환에 크게 힘써야 할 것이다.

한겨레신문 <말이 올라야 나라가 오른다>
권재일 / 서울대교수 언어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