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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마인드는 훌륭하고, 열린 마음은 이상한가요?


오픈마인드는 훌륭하고, 열린 마음은 이상한가요?
아름다운 토박이말을 살려 써야할 때


며칠 전 텔레비전을 보다가 답답한 마음이 들은 적이 있었다. 대안교육에 대한 이야기를 진행하는 중에 대안학교에 아이를 보내는 한 아버지가 한 말은 그야말로 문화사대주의가 아니면 잘난 채에 다름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오픈마인드로 커뮤니케이션을 해야 합니다.”라고 말하고 있었다. 소위 진보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사람의 입에서 쉽게 나오는 이 말을 우리는 진보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가?

세계화 속에 파묻혀 외래어를 남발하는 것이 진보는 아닐 터이다. 굳이 ‘오픈마인드, 커뮤니케이션’으로 말을 해야 할까? ‘열린 마음’과 ‘이야기’ 혹은 ‘대화’라고 하면 격이 떨어진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아니면 잘못된 버릇일까?

이런 사례는 텔레비전에서도 신문, 잡지, 책에서도 각종 회의나 행사자리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회의 자리나 각 홈페이지들, 경제자료들에서 콘퍼런스, 솔루션, 포트폴리오, 이니셔티브, 네가티브, 디폴트는 흔히 듣는 말이고, 텔레비전에서 이슈, 스페셜, 토크쇼, 섹션, 캠프, 선데이, 컬처 클럽, 네트워크, 모닝, 와이드, 투데이, 플러스, 오픈, 휴먼스토리, 포커스, 르포, 리포트, 클릭, 뮤직뱅크, 클리닉, 해피투게더 등 헤아릴 수가 없을 정도이다.

소위 지식인이란 사람들이 더더욱 이런 행위를 부추기고 있으니 한심한 노릇이다. 교수, 아나운서, 기자들이 나서서 외래의 남발은 물론 일본식 말투 “~적”을 쓸데없이 쓰는가 하면 자기주장이 분명치 않은 “~는 것 같다”는 말을 반성없이 쓰고 있으니 대중들이 어떤 사람들의 말글생활을 닮아야 하는지 도대체 알 수가 없다.

방송은 왜 하며, 신문과 책은 왜 펴내고, 대화는 왜 하는가? 또 여기에 쓰이는 말들은 무엇을 하기 위함인가? 한마디로 방송하는 이, 책을 펴내는 이, 말하는 이의 주장을 들려주고 공감을 이루어내기 위함이 아닐까? 그렇다면 가장 바람직한 일은 상대가 이해하기 쉬운 말을 사용하는 일이다. 아무리 좋은 말이라도 상대가 이해하지 못한다면 어떤 유식한 용어를 썼다하더라도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는 바보스런 짓이 아닐까?

더욱 한심한 일이 있다. 최근 서울시가 대중교통 정책을 크게 고치면서 시내버스에 알파벳글자 R, B, G, Y 자를 커다랗게 새겨 넣은 일도 있다. 개편담당자들은 아름다운 디자인을 위해 그렇게 했겠지만 시내버스를 이용할 사람 중 할머니 같은 분들에겐 무용지물이다. 할머니들은 타지 않아도 좋다면 몰라도 그렇지 않다면 분명 알파벳의 사용은 자제했어야 한다. 할머니들뿐이 아니다. 분명한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 것은 물론 알파벳이 아무런 뜻도 담보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 정책은 실패한 것에 다름이 아니다. 단순한 외래어의 사용보다 더 형편없는 일에 불과하다.

소위 지식인들이 쓴 책들은 보면 가관이다. 책을 읽기 시작해 몇 쪽을 넘기면 설명되지 않은 전문용어는 물론 쓸데없이 쓴 외래어와 한자용어들 때문에 많은 대중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상태에 빠져 책을 던져버리기 일쑤이다. 그럼 분명 책을 쓴 이의 목적은 물건너 갔음이다.

말을 하고, 글을 쓰는 것의 목적이 의사고통에 그리고 설득에 있음에도 어려운 외래어, 한자투의 말을 사용함으로써 유식한 채 하면 듣는 이는 상당한 부담과 함께 거부감을 느는 것이다. 어느 누 가 그런 책을 즐겨 읽고, 그의 강연을 즐겨 들을 것인가?

또 분명히 한 나라에 말과 글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남의 나라 말글을 무작정 사용한다면 결국 문화사대주의에 매달린 꼴에 다름일 뿐이다. 또 자신이 속해있는 나라의 말글을 병들게 하고, 죽어가도록 돕는 꼴이 될 뿐이다. 결국 스스로 자신의 나라를 멸망하게 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는 일이다.

글 쓰고 말하는 것을 잘난 채 하기 위해 선보이기(쇼)를 벌이는 일로 만들 생각이 아니라면 제발 상대가 이해하기 쉬운 토박이말을 제대로 대접하는 일이 필요할 일이다. 서양 반바지를 입고, 품격을 갖추려는 어리석음이 아니라 한복을 입고, 스스로 자신의 품격을 가다듬어보면 어떨까?

‘커피숍’이 ‘다방’을, ‘웨딩홀’이 ‘예식장’을 몰아냈으며, 가게를 ‘개업’하는 이들보다 ‘오픈’하는 이들이 훨씬 많아졌다고 서울대 권재일 교수는 한탄한다. 이는 누구나 잘 아는 최근의 상황이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토박이말을 살려 쓰자는 운동을 하고 있다. 그래서 ‘마일리지’를 ‘콩고물점수’로, ‘휴대폰’은 ‘손전화’로, ‘이벤트, 축제’는 ‘잔치’로, ‘경매’는 ‘내가 값매기기’로, ‘화이팅’은 ‘아리아리’로, ‘홈페이지’는 ‘누리집’으로, ‘모델하우스’는 ‘구경하는 집’으로, ‘입구’는 ‘들머리’로 점차 번져 나간다. 잘난 채가 아닌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엿보이며, 재미있고, 신선한 말들이 아닐까? 뜻도 맞지 않는 콩글리쉬를 쓰기보다는 훨씬 감칠맛 나고 아름다운 토박이말들을 이제라도 적극적으로 사용해보자.

오마이뉴스 2004-08-09